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54
마염의 황제 054화
‘이제는 녀석이 찾아오길 기다리면 되는군.’
당장 사당을 박차고 들어올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이터는 의외로 조용했다. 하네스는 곧 들이닥칠 적을 기다리며 성좌에 앉았다. 음침한 예배당 안에 무거운 침묵이 자리 잡았다.
“…….”
‘기다리고만 있자니 심심한데.’
하네스는 앉은 자세로 악령의 지팡이를 내뻗으며 소리쳤다.
“용케 여기까지 왔구나, 이터. 하지만 여기가 바로 네놈의 무덤이다!”
쩌렁쩌렁하게 예배당을 울리는 목소리. 하네스는 실소했다.
‘나도 한심하군. 이런 위기 상황에서 이런 짓거리나 하고 있으니.’
하네스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그래도 나름 멋진데?’
악당의 카리스마라는 것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음침한 배경, 싸늘한 조명 효과만으로 해결하려는 녀석들은 3류다. 낮게 깔면서도 상대를 압도하는 멘트, 최고보스다운 여유를 곁들인 포즈. 이 두 가지가 결합된 뒤에야 비로소 카리스마도 나오는 것이다.
자신은 알 제라드의 수장을 맡고 있는 인물이다. 상대를 맞이함에 있어서도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다리를 살짝 꼬아볼까? 허리를 좀 펴고, 턱도 치켜 들고.”
자세를 이리저리 교정하며 멘트를 연습하는 하네스. 하지만 그가 한참을 자세 교정에 열을 올리고 있는 동안에도 이터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데 이 녀석은 왜 안 나타나는 거지?’
***
같은 시간 사당 밖. 이터는 아직 정원에 있었다. 박살난 골렘의 파편에 걸터앉은 이터는 엘리스가 싸준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말이 변변찮다지, 도시락은 풀어보니 진수성찬이었다. 훈제구이와 샐러드, 살코기가 두툼하게 들어간 샌드위치, 입맛을 돋우는 엘프 식 그린수프와 곰 산적도 포함되어 있었다. 후식으로는 조각케이크와 각종 이름 모를 과일 한 세트가 또 기다리고 있었다.
이 작은 도시락 보따리 안에 어떻게 이 많은 음식을 채워넣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것만큼이나 놀라운 속도로 사라져갔지만.
적진 한가운데에서 도시락을 먹어치운 이터는 일어나서 길게 트림을 했다.
“꺼억! 배는 채웠고, 그러면…….”
이터는 사당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이제부터 두목을 쳐부순다.”
사당의 건물은 사원의 핵심적인 건물이었기 때문인지 겉보기에도 상당히 넓었다. 이 안에서 알 제라드의 두목을 찾아내려면 아까처럼 한참을 헤매야 할 듯하다. 그러기엔 귀찮다.
이터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
“여기가 네놈의 무덤이다!”
하네스는 다시 지팡이를 휘둘렀다. 마신의 상이 예배당의 희미한 빛에 부딪혀 반짝였다. 음산한 어둠 속에 하네스의 여유로운 미소가 배어나왔다. 연출 효과는 완벽했다.
“우아아아아!”
그때 천지를 울리는 외침이 터져나왔다.
이터가 내지른 기합이 충격파로 변한다. 그것은 주변에 흩어진 파편들을 날려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중앙사당 건물까지 통째로 날려버렸다.
“뭐지?”
요란한 소음과 함께 조금 전까지 있던 음침한 실내가 사라져 버렸다. 뜯겨나간 천장에서는 푸른 하늘이 비쳤다. 사라져 버린 예배당에서 하네스는 지팡이를 뻗은 자세로 굳어버렸다.
‘사, 사당이 날아갔어?’
그리고 흔적만 남은 예배당 너머로 이터의 모습이 보였다.
하네스를 발견한 이터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찾았다.”
“이, 이터?”
하네스는 식은땀을 흘렸다.
‘이놈이 이터?’
자신들, 알 제라드의 실력자들을 하나씩 쓰러뜨리고는 마침내 여기까지 도착한 괴물 같은 꼬마. 수정구슬로만 보다 이렇게 실물로 보니 더 위축되는 기분이 들었다. 방금 건물을 통째로 날려버리면서 나타난 연출 또한 효과가 컸다. 역시 생각대로 무지막지한 놈이다.
‘뭐 하는 거냐, 하네스? 네가 위축되면 어쩌자고?’
자신은 알 제라드 안에서 유일하게 이터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다. 자신이 무너지면 조직은 어떻게 되나? 이데아로크의 조각을 쥔 양손에 힘이 들어갔다.
‘걱정할 건 없다. 내게는 악신의 조각이, 이데아로크의 힘이 있다.’
이터가 하네스를 보며 말했다.
“두목이 여기에 있다고 들었다. 네가 알 제라드의 두목이지?”
“두목이라. 후후,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내 이름은 하네스 드라이엘. 알 제라드의 모든 것을 통괄하는 대법관이시다.”
이터의 왼손이 짧게 반응했다. 하네스의 손에 들린 두 개의 조각과 반응한 것이다.
“얌전히 이데아로크의 조각을 내놓고 더 이상 나쁜 짓 하지 마라. 안 그러면 박살을 내줄 거다.”
하네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건방진 꼬마 놈. 네놈이야말로 그 창을 내놓고 꺼지는 것이 어떠냐? 그렇게 하면 우리 사원에서 벌인 소란은 내 특별히 용서해 주겠다.”
“못 준다는 말이군.”
이터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면 약속대로 박살내 주겠다.”
이터는 바닥을 박차며 하네스에게 달려들었다. 평소 이상의 동물적인, 그러면서도 정확하고 빠른 몸놀림. 그런 이터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했는지 이터가 코앞에서 창을 휘두르는데도 하네스는 가만히 서 있었다.
“하아아앗!”
허공을 대각선으로 가르는 펜릴. 하네스의 입가가 묘하게 틀어졌다.
“걸렸군.”
“……?”
쿠우우우!
순간 바닥에서 검은빛 충격파가 튀어나와 이터를 덮친다. 갑작스러운 기습이다.
하지만 이미 안쪽까지 파고든 이터가 피할 길은 없었다. 엄청난 폭발과 함께 이터는 뒤로 튕겨났다.
공중에서 균형을 잡아 바닥에 내려서는 이터. 그의 눈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했다.
‘느껴지지가 않았다.’
아무리 기습이라고 해도 행해지기 직전에는 무의식중에 살기가 배어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방금의 일격은 아무런 살기도, 기척도 없었다. 마주하고 있는 하네스가 그 정도의 경지에 달한 실력자란 말인가?
‘아니다.’
적어도 바르엘이나 슈페른처럼 지금까지 상대했던 자들에게서와 같은 투지나 기세는 없었다. 그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다.
“훗! 바로 공격해 들어오지 않는 것을 보니 꽤나 놀란 모양이군. 좋아, 가르쳐주마. 네가 튕겨나간 이유를.”
아래로 기울인 성배에서 검은 피가 쏟아져 내린다. 피는 바닥을 적시고 검게 물들였다. 검은 피로 젖은 바닥에서는 다른 곳과 다른 기운이 뿜어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악한 죽음의 기운. 사기(邪氣)였다.
“후하하하, 놀랐느냐. 마왕의 성배, 다크 로드 캘릭스는 그 암흑의 피가 닿는 모든 땅을 사기로 가득 찬 죽음의 공간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 빛깔로 물든 땅 위의 것들은 내게 대항하는 모든 것들을 적대하지. 네 녀석의 공격을 막고, 네 녀석의 생명력을 빼앗아 먹어치운다.”
“그래?”
이터는 기간틱 블레이드를 꺼냈다. 불꽃과 바람이 만들어내는 열풍이 블레이드를 휘감았다.
“그 말은 가까이 가지만 않으면 된다는 거군.”
이터는 기간틱 블레이드를 있는 힘껏 내리쳤다.
폭마검.
강대한 에너지의 투기가 하네스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열풍의 검기가 하네스와 검은 공간 자체를 집어삼켜 버린다.
콰콰쾅!
“훌륭한 일격에 감사한다. 덕분에 확실히 알았군.”
“……!”
열풍이 걷혀간 자리에 하네스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런 폭발이 있었는데도 그의 몸에는 먼지 하나 묻지 않았다. 대신 거대한 검은빛 장막이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하네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네 녀석의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는 걸 말이야.”
과장된 말이 아니었다. 지금 이 사기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이데아로크의 다섯 조각 중 하나다. 평범한 싸구려 주술의 위력과는 그 수준이 다른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지.”
검게 물든 바닥에 호수처럼 파문이 일어난다. 그와 함께 무언가가 그 안에서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2m가 넘는 거대한 체구. 날카로운 손톱이 박힌 손에는 자신의 몸보다 더 큰 창이 쥐여져 있었다.
“크으으…….”
검게 물든 피부와 붉은 눈동자. 커다랗게 펼친 날개는 성인 인간 남자를 가두어 으깰 수 있을 것처럼 넓고 강인해 보였다. 그런 것들 10여 마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터는 미간을 좁혔다.
“데몬?”
하네스는 진득한 미소를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마계의 데몬들, 그 중에서도 가장 흉포하기로 소문난 나이트 데몬들이다. 사기로 가득 찬 공간은 마계의 존재들을 불러오는 입구로도 사용할 수 있거든.”
하네스는 솔 이터를 들어 바닥에 쿵 찍으며 외쳤다.
“잡설이 길었군. 가라, 나이트 데몬들이여. 이터 놈을 쓰러뜨리는 거다!”
인간이 마계의 종족에게 명령을 내린다는 것은 이례적인 광경이었지만 악신의 지팡이를 가진 하네스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날개를 펼친 나이트 데몬 열 마리가 거대한 창을 치켜 들고 이터를 향해 맹렬히 쏘아져 나갔다.
“크아아아!”
카카카캉!
예리하게 궤적을 그리며 파고 들어오는 나이트 데몬의 창날이 마창, 펜릴과 부딪히며 요란한 소음을 토했다.
이터가 그것을 쳐내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양 옆에서 두 마리의 나이트 데몬이 협공을 펼쳤다.
쩍!
이터는 그것을 피하며 뒤에서 찔러 들어오는 나이트 데몬의 뺨을 후려찼다. 난데없는 일격을 얻어맞은 나이트 데몬은 뒤로 튕겨나가 바닥에 처박혔다.
“…….”
그러나 그뿐이었다. 바닥에 처박힌 나이트 데몬은 거의 타격을 입지 않은 모습으로 벌떡 일어나 다시 이터를 향해 날아들었다.
퍼억! 퍽!
이터의 손과 발이 화려하게 움직였다. 이터의 주먹이 앞에서 덤벼드는 나이트 데몬의 인중을 후려갈겼고, 품 안에 파고들어 날린 발차기가 나이트 데몬의 가슴을 뻥 차버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이트 데몬들은 멀쩡하게 일어났다. 맷집만큼은 바르엘 급이었다.
“주먹에 맞아도 타격을 받지 않는다면…….”
쪼개버릴 테다!
이터는 펜릴을 들어 힘차게 휘둘렀다. 펜릴이 무시무시한 파공음과 함께 대기를 가르며 나이트 데몬들의 머리 위로 쏘아져 나갔다.
카아아앙!
“……!”
펜릴이 허공에서 멈췄다. 다섯 마리의 나이트 데몬이 자신들의 창을 합쳐 펜릴을 막아낸 것이다. 서로 밀쳐내는 나이트 데몬과 이터.
이터는 신형을 전개했다. 나이트 데몬들은 날개를 펼쳤다. 열 개의 거대한 창과 이터의 마창이 허공에서 부딪쳤다가 떨어지고 다시 부딪쳤다.
일반 데몬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공격력과 움직임, 체력을 가진 나이트 데몬. 그들과 이터의 대결은 호각세를 이루었다.
“크크. 제아무리 네 녀석이라고 해도 바람처럼 움직이는 나이트 데몬 열 마리를 동시에 쓰러뜨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네스는 검게 물든 솔 이터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 틈에 나는 이런 걸 준비하는 거지. 다크 익스플로전(Dark Explosion)!”
이터와 나이트 데몬을 검은 빛이 집어삼켰다. 그리고 동시에 일어난 거대한 폭발이 그들을 휩쓸어 버렸다.
“콜록! 콜록! 위력이 너무 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