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57
마염의 황제 057화
“아니?”
어느새 다가왔는지 루시펠의 곁에는 다크 로드 캘릭스가 떠 있었다. 마왕의 성배가 만들어내는 흑빛의 장막이 이터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루시펠은 이터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서두르지 마. 이번엔 이렇게 헤어지지만 우린 곧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 아니, 반드시 다시 만나. 그러니 기대하고 있으라고.”
우웅…….
바닥을 차고 일어난 검은 빛이 루시펠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 빛은 루시펠과 함께 산산이 흩어졌다. 폐허가 된 예배당에 루시펠의 마지막 말만이 메아리쳤다.
“다음에 만날 때는 좀 더 재미있는 일을 잔뜩 만들어줄 테니.”
루시펠의 기척은 완전히 사라졌다. 홀로 폐허 속에 남은 이터는 콧방귀를 뀌며 펜릴을 거두었다.
“도망쳤나. 일을 귀찮게 만드는군. 쳇! 녀석이 내 성질만 건드리지 않았어도…….”
애초에 루시펠이 건방지게 자신에게 덤벼들지만 않았어도 자신이 그와 싸울 이유는 없었다. 그 역시 루시펠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으니까. 바로…….
“이데아로크의 부활.”
[왜지?]그때, 내면에서 울리는 목소리. 동시에 붉은 눈의 이터는 강한 통증을 느꼈다.
“쳇, 깨어났나?”
내면의 이터가 육체를 빼앗아가려 하고 있었다. 육체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그. 아직 붉은 눈의 이터가 그에게 대적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내면의 이터는 단숨에 육체를 빼앗지 않았다. 대신 물었다.
[왜 루시펠은 이데아로크를 부활시키려는 거지?]이미 루시펠의 실력은 정점에 달해 있었다. 그 정도라면 이데아로크의 힘이 없어도 뭐든지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굳이 이데아로크를 부활시키려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더 강한 힘을 추구하기 위해서? 아니다. 그것 역시 루시펠의 성격엔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체 왜?’
붉은 눈의 이터가 조소하며 답했다.
“지금의 너라면 알 수 있을 텐데. 보이지 않나? 내 기억의 일부가.”
말 그대로였다. 그의 기억을 통해 볼 수 있었다. 루시펠의 진정한 목적을. 내면의 이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세계의… 파괴.]루시펠의 목적. 그것은 바로 이데아로크의 힘을 이용해 세계를, 바로 이 세상을 파멸시키는 것. 이터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왜 그런 짓을 하려는 거지? 무엇을 위해.]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일부러인지, 힘이 다해서인지 붉은 눈의 이터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터는 원래의 빛으로 돌아온 눈으로 주위를 바라보았다.
“붉은 눈의 이터는 자신의 목적 역시 루시펠과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역시 세계를 파괴하겠다는 뜻인가? 도대체 왜?
‘분노하라. 그러면 너는 진짜 힘을 얻을 것이니. 신들조차 너를 넘보지 못하리라. 그 힘으로… 세상을 멸해라.’
그것은 지금 자신에게는 생각나지 않는 기억의 파편. 전체를 끼워맞추기에 그가 알고 있는 조각은 너무 작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바로 붉은 눈의 이터는 위험하다는 사실을. 루시펠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지만 그는 그 몇 배는 더 위험한 존재다. 그가 이데아로크를 부활시킨다면 돌이킬 수 없는 무서운 일이 벌어지리라.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기억이 그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이터는 결심을 굳혔다.
“네가 이데아로크를 부활시켜 세계를 파괴하겠다면.”
이터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난 그걸 막는다.”
***
“뭐라고?”
잠시 뒤, 이터는 마을로 돌아와 일행에게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그가 이데아로크의 부활을 막기로 결심했다는 말에 로자리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말도 안 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데아로크의 조각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얼마나 고생을 해왔는데, 이제 와서 포기하라니!”
로자리아가 거품을 물며 반대했지만 이터는 물러나지 않았다.
“그 힘은 위험하다. 로자리아, 너도 잘 알고 있을 거다.”
이터의 말에 로자리아는 마른침을 삼켰다.
악신, 이데아로크.
5,000년 전에 이 세상의 3분의 2를 죽음의 땅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마신. 그에 맞서싸우다 멸망해 버린 나라가 몇이었던가.
그 악신의 숨결 속에 먼지로 사라진 이들의 시체를 모으면 대륙 전체를 덮어버릴 수 있을 정도라 한다. 그를 쓰러뜨리기 위해서 수많은 희생과 지옥 같은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이데아로크는 다섯 조각으로 갈라져 봉인되었지만 그 힘은 그 후로도 몇 번이고 다시 세상에 나타나 대륙을 혼란에 빠뜨렸다.
그럼에도 수많은 이들이 이데아로크의 힘을 동경하고 탐내는 이유는 하나였다.
세계를 뒤흔들 수 있는 힘. 전율적인 악신의 힘을 손에 넣는다면 세계 전체를 자신의 발밑에 둘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힘은 세계를 파괴할 수도 있는 힘이다. 조각의 힘이 위험하다는 것은 그런 이유였다.
“루시펠은 이데아로크를 부활시켜서 세계를 파괴하려고 하고 있다. 녀석을 멈추기 위해서는 조각을 모으지 못하게 해서 이데아로크의 부활을 막는 것뿐이다.”
“하, 하지만 그렇다면 우리가 루시펠이라는 녀석 몰래 조각을 먼저 모으는 방법도 있잖아?”
로자리아는 미련을 버리지 못해 하는 말이었지만 이터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불가능하다.”
“뭐? 어째서?”
그리고 이터의 입에서 놀라운 말이 튀어나왔다.
“그건 루시펠이야말로 이데아로크의 마지막 조각, 이데아로크의 ‘육체’이기 때문이다.”
그랬다. 가즈 블레이드를 통해 하나로 모이는 이데아로크의 힘. 그것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 루시펠은 바로 그 그릇, 이데아로크의 육체 그 자체였던 것이다.
“뭐라고?”
이터의 말에 로자리아를 비롯한 일행은 경악했다. 알 제라드가 마왕의 성배와 악령의 지팡이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도 놀라운데 거기에다가 이데아로크의 육체라니! 그 말이 사실이라면 다섯 개의 조각은 모두 모습을 드러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로자리아는 당황한 목소리로 재촉했다.
“그게 사실이야? 어떻게 네가 그것까지 아는 거야?”
“그건 모른다. 하지만 녀석이 조각 중 하나라는 것은 만나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루시펠은 이데아로크의 마지막 조각. 그 말은, 즉 루시펠 몰래 조각을 모은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
‘그리고 그게 아니라고 해도…….’
일행의 경악 어린 시선을 뒤로하고 이터는 생각에 잠겼다.
‘붉은 눈의 이터는 그 자신이 육체의 주도권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도 로자리아 일행의 곁에서 조각을 모으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도와줬다고 하는 편이 옳다. 그 말은 누가 조각을 모아도 이데아로크만 부활시킬 수 있다면 목적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라 해석하는 것이 맞겠지. 다만 알 제라드에게 협조하지 않았던 것은 그 조직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가 없었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이데아로크. 그 악신 자체가 세계를 파괴하기 위해 만들어졌을 확률이 높았다. 로자리아는 실망한 얼굴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말도 안 돼. 이렇게 끝이라니……. 하아, 이건 너무해.”
“너,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로자리아 씨.”
엘리스가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로자리아에겐 들리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이터가 말했다.
“로자리아, 너는 전에 마녀의 탑만 세울 수 있다면 이데아로크의 힘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그랬지?”
“응? 뭐… 그렇게 말한 적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로자리아의 말에 이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
잠시 후, 이터는 순간이동으로 일행을 폐허가 된 알 제라드의 사원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는 즉시 로자리아를 사원에서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석실로 데려갔다.
석실의 문을 연 로자리아는 입을 쩍 벌렸다.
“이, 이건!”
광장처럼 넓은 석실은 찬란하게 빛나는 금화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반쯤 벌어진 보물상자에는 온갖 진귀한 보석들이 쌓여 있었고, 이름만 들어도 감탄할 법한 아티팩트들이 즐비했다. 이곳은 바로 알 제라드의 보고였던 것이다.
엘리스도 감탄한 얼굴이었다.
“엄청나다… 이게 다 보물들인 건가요?”
값어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개중에는 흑마법에 필요한 중요한 마법석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정도의 재화라면 마녀의 탑을 세우는 것은 물론이고, 한층 발전된 연구도 가능할 것이다.
한참을 멍하니 보고를 바라보던 로자리아는 이터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 들며 어색하게 웃었다.
“여, 역시 이데아로크 같은 건 없어져 버려야 해. 그렇지?”
그레이센은 식은땀을 흘렸다.
“속이 너무 뻔히 보이는 여자다.”
그리하여 마침내 로자리아도 이데아로크의 조각을 포기해 버렸다.
그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던 소류가 이터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이제 조각을 파괴할 건가?”
“파괴?”
소류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네 입으로 말했잖아. 이데아로크의 부활을 막겠다고. 그렇다면 가장 간단한 방법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조각을 파괴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였다. 이데아로크는 다섯 개의 조각이 모여야 비로소 부활할 수 있는 존재.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두 개의 조각을 파괴하면 조각은 영원히 모일 수 없다.
일행의 시선이 가즈 블레이드를 향했다. 그 시선에 흠칫한 가즈 블레이드가 어색한 웃음소리를 내뱉으며 가드를 달칵거렸다.
“어머! 갑자기 너희 왜 그런 눈으로 날 보는 거야? 시, 싫다, 얘. 너희 지금 장난치는 거지? 호호.”
덜컥거리는 가즈 블레이드를 보며 이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소류의 말이 맞긴 하다.”
“넘어가지 마!”
가즈 블레이드가 새파랗게 질린 날을 덜컥이며 소리쳤다. 이터는 그 시선을 뒤로하고 소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가즈 블레이드는 지금까지 함께해 온 동료다. 그렇게 쉽게 부숴버릴 순 없다.”
“이, 이터…….”
동료라는 말에 가즈 블레이드는 코끝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터, 너 나를 그렇게 생각해 주고 있었던 거구나.’
이터는 덧붙였다.
“물론 있어도 쓸모는 없지만.”
“그런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돼.”
가즈 블레이드는 투덜거렸다. 정말 무드라고는 코딱지만큼도 모르는 촌스런 꼬마 같으니!
소류는 그들의 사정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가. 그럼 답이 나왔군. 펜릴을 파괴하도록 하지.”
“그것도 안 돼.”
이번에도 이터가 막았다.
“그건 너희 부족의 상징이다. 소중한 물건을 함부로 부수면 안 된다.”
이터의 말대로다. 펜릴은 호아족에게 있어서도 상징적인 중요한 물건이다. 하지만 소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냐? 이데아로크의 부활을 막아야 한다면서 조각은 부수지 않겠다니. 뭘 어떻게 할 셈이지?”
“조각은 파괴할 거야. 이데아로크의 다섯 조각. 그 중 하나만 파괴되어도 이데아로크는 깨어나지 못한다. 그 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