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59
마염의 황제 05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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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제 정리가 끝났네!”
마지막 남은 비까번쩍 금송아지를 아공간 속으로 넣어버린 로자리아가 손을 털었다. 휑하니 빈 거대한 석실. 알 제라드의 모든 보물은 이미 그녀의 아공간 안으로 이사를 마쳤다. 예전에 배울 땐 알센데린의 탑에 처박혀만 있는데 굳이 필요할까라고 생각했던 아공간 보관 마법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 정도의 보물이면 나중에 마녀의 탑을 세우는 건 물론이고, 앞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는 비용 걱정 없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로자리아는 길게 기지개를 켜며 몸을 풀었다.
“몇 시나 됐을까?”
석실을 나와보니 벌써 저녁놀이 지고 있었다. 문득 아까의 일이 떠올랐다.
“이터는 이데아로크를 막겠다고 결심했었지.”
이터는 루시펠이 이데아로크의 마지막 조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거기에 그의 목적이 이데아로크를 이용한 세계 파괴라는 것까지. 이터는 어째서 그런 것들을 알 수 있었던 걸까?
“역시 그것도 사라진 기억과 관계가 있는 것일까?”
인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이터. 거기에 그는 이데아로크의 조각과도 공명을 일으켰다. 생각해 보면 하나같이 평범하지 않은 것들뿐이다. 도대체 이터의 과거에는 뭐가 있는 것일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로자리아는 허기를 느끼며 배를 문질렀다.
“석실에 너무 오래 박혀 있었나?”
어느새 저녁식사 시간이 다 된 모양이다. 이터도 한창 배고파할 시간. 로자리아는 팔을 걷어붙였다.
“오늘 활약도 했고 앞으로 또 바빠질 테니, 모처럼 로자리아 특제 요리로 서비스해 볼까?”
일행은 다들 어디에 흩어져 있는지 보이질 않았다. 로자리아는 일단 이터부터 찾았다.
잠시 헤맨 뒤에 로자리아는 폐허가 된 예배당 잔해 위에서 이터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자리엔 이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엘리스가 함께 앉아 있었다.
“이터 씨, 아!”
“아!”
“꼭꼭 씹어 드셔야 해요!”
알 제라드의 사원 안에서 발견한 재료로 만든 요리를 이터에게 먹여주는 엘리스. 그 모습을 보며 로자리아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저 엘프 녀석, 또 선수를 쳤군. 이런 짧은 기회도 놓치지 않고 접근이라니, 영악하긴……. 아니, 그런데 내가 왜 엘프 꼬마애가 영악한 거에 화를 내고 있는 거야?’
엘리스는 이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러면 저렇게 살갑게 구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로자리아는 자기가 객관적으로 화낼 이유가 없음에도 왜 화를 내고 있는지, 왜 사사건건 저 엘프 꼬맹이 때문에 이상야릇한 불쾌감을 느끼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내가 왜 이런 자리에 숨어서 몰래 관찰해야 하는 거냐구!’
둘의 시선이 닿지 않는 잔해 사이에 몸을 숨긴 로자리아였다.
하지만 스스로 이상하다 생각하면서도 로자리아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귀를 기울였다.
엘리스는 이터와 수다를 떨면서 요란한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호. 오늘 정말 수고하셨어요. 전 이터 씨라면 당연히 해낼 줄 알았다니까요! 아까 ‘이데아로크의 부활을 막겠다!’고 할 때 정말 멋졌어요!”
그때를 떠올리며 뺨을 붉히는 엘리스. 얼굴의 홍조로는 모자라 코피까지 줄줄 흘린다.
로자리아는 식은땀을 흘렸다.
‘저 녀석,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이데아로크가 부활해서는 안 된다. 녀석은 위험한 존재니까. 하지만…….”
이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로자리아에게 미안하다.”
“……?”
그 말에 엘리스는 물론, 숨어서 지켜보고 있던 로자리아까지 깜짝 놀랐다. 왜 뜬금없이 자신의 이름이 여기에서 튀어나온다는 말인가.
“로자리아는 지금까지 그 조각을 찾으려고 했다. 그런데 내가 그걸 막아버린 거다. 로자리아도 상심이 클 거다.”
‘이터, 저 녀석…….’
로자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찡한 것을 느꼈다. 아닌 것 같으면서도 자신에 대해 신경을 써주고 있었다는 건가.
고개를 끄덕이는 엘리스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어졌다.
“그렇군요. 이터 씨는 로자리아 씨가 걱정되시는 거네요.”
“응.”
“이터 씨, 한 가지만 물어봐도 돼요?”
엘리스가 이터 앞으로 얼굴을 확 들이밀며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터 씨는 저와 로자리아 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죠?”
“푸웁!”
엘리스의 말을 듣고 있던 로자리아가 사레가 들렸다. 엘리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주위를 바라보았다.
“지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요?”
“글쎄.”
로자리아는 입을 틀어막은 채로 바닥에 엎드려 몸을 숨겼다. 엘리스가 다시 고개를 돌리자 그제야 작은 소리로 켁켁거리며 일어나는 로자리아. 하지만 흥분된 가슴은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저 엘프 녀석, 난데없이 저런 질문을 하다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하지만 로자리아는 뺨을 붉히며 귀를 쫑긋 세웠다.
‘나도 궁금해.’
“로자리아와 엘리스라…….”
질문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하는 이터. 그 모습을 보며 엘리스와 로자리아는 더 긴장했다. 이터는 과연 자신들에 대해 뭐라고 말할 것인가?
짧지만 길게 느껴지는 시간 뒤에 마침내 생각을 마친 이터가 입을 열었다.
“로자리아는 맛있어.”
“네?”
‘뭐, 뭐?’
로자리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맛있다니. 이터가 언제 자신의 맛(?)을 보았단 말인가.
엘리스는 쌍코피를 터뜨리며 소리쳤다.
“그, 그게 진심인가요!”
이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로자리아의 요리는 맛있다. 엘리스의 요리도 맛있다. 둘 다 최고야.”
“요, 요리 이야기인가요…….”
엘리스는 안도의 한숨을, 로자리아는 김빠진 한숨을 내뱉었다.
로자리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손수건으로 식은땀을 닦았다.
‘하하… 이터다운 대답이로군. 난 뭘 기대하고 있었던 걸까.’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가라앉자 낮에 있었던 루시펠과의 싸움이 떠오른다. 자신, 그리고 자신 안에 있는 또 다른 자신. 내면의 자신은 이데아로크를 부활시켜 세계를 파괴하려 하고 있었다.
저녁놀을 바라보던 이터가 입을 열었다.
“엘리스, 기억이란 건 뭘까?”
“기억이요?”
이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로자리아와 만났을 당시, 난 과거를 잃어버린 상태였다. 내가 누군지, 내게 어째서 이런 힘이 있는지 난 알지 못한다. 이터라는 이름도 내 이름이 아니야. 기억이 없는 난 지금 이데아로크의 부활을 막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기억을 되찾은 나도 이데아로크의 부활을 막으려고 할까? 기억을 되찾는다면… 내가 더 이상 이터가 아니게 되면 너희는…….”
팡팡.
엘리스가 이터의 등을 세게 두드렸다.
“에이! 그런 표정, 이터 씨답지 않아요. 걱정할 필요 없다구요. 당연하잖아요? 이터 씨는 이터 씨인걸요.”
“엘리스.”
“우리 장로님에게서 들은 이야기예요. 기억은 여기에 남지만…….”
머리를 가리키던 엘리스가 가슴으로 손을 옮기며 말했다.
“추억은 여기에 남는대요. 이터 씨가 기억이 돌아온다고 해도 이터 씨와 만든 추억은 전부! 이 안에 들어 있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요.”
로자리아는 식은땀을 흘렸다. 관절염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피를 토하던 엘프 장로가 떠오른다.
‘그 영감이 그런 말을 했다고는 믿을 수가 없어.’
다시 웃는 얼굴을 되찾은 이터가 감사를 표했다.
“고맙다, 엘리스.”
“고맙긴요! 그것보다 이터 씨, 말 나온 김에 우리도 추억 하나 만들어볼까요?”
“추억을?”
천진난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엘리스는 이터를 눕혔다.
“뭐 하는 거지?”
“가만히 있어요. 손만 잡는 거니까요.”
“손을 잡는데 왜 내 위로 올라오는 거냐?”
엘리스는 입을 가리며 호호 웃었다.
“이터 씨도 참… 저 못 믿어요? 조금만 기다리시라니깐요!”
이터를 눕힌 엘리스의 손이 이터의 손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가슴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셔츠를 벗기기 시작…….
“그쯤 해둬! 변태 엘프!”
콰앙!
아공간에서 꺼낸 황금 프라이팬이 엘리스의 머리에 작렬했다. 이터의 몸에서 떨어진 엘리스를 보며 로자리아는 거친 숨을 내뱉었다.
“하아… 하아… 위험했다. 이 엘프 꼬마, 정말 어린애 맞는 거야?”
반쯤 벗겨진 셔츠의 이터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정말 이대로 뒀으면 엘리스에게 먹혔을(?)지도 모른다.
“로자리아?”
“아무 말도 하지 마! 그다지 훔쳐보고 있었던 것 따윈 아니니까. 그리고…….”
로자리아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이터에게서 돌아섰다.
“별로 미안해할 필요 없어. 내 목적은 뭐 처음부터 마녀의 탑이었으니까. 이데아로크의 조각에 그다지 집착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로자리아는 인상을 구겼다. 우물쭈물하는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뭘 그렇게 부끄러워하고 있는 거야. 이런 어린애의 말 한마디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난 대체 이 꼬마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캬아!”
“응?”
그때 조용하던 저녁 하늘에 문득 이상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로자리아는 고개를 들었다. 하늘 위에 까만 점 하나가 천천히 커다란 원을 그리며 돌고 있었다.
“새? 까마귀인가?”
로자리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까마귀가 캬아! 하고 울었던가?’
거기다가…….
“왠지 점점 커지는 거 같지 않아?”
커지는 게 아니었다. 무언가가 떨어지고 있었다. 가까워질수록 떨어지는 것의 윤곽이 또렷해졌다. 엘리스가 소리쳤다.
“어, 엄청 큰 새예요. 게다가 불에 타고 있어요!”
“넌 언제 일어났냐.”
엘리스의 말대로다. 웬 거대한 새가 불길에 휘감긴 채 날아오고 있었다. 방향은 바로 자신들의 머리 위.
“이, 이쪽으로 오고 있어!”
알아차렸을 때는 너무 늦었다. 거대한 불의 새가 세 사람을 집어삼켰다.
“우와아앗!”
그리고 동시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의 새는 산산이 흩어져 사라졌다. 꼼짝없이 불길에 휘말릴 거라고 생각했던 로자리아와 엘리스는 멍한 얼굴이었다.
“뭐, 뭐야? 이건?”
“사라졌다?”
두 사람이 어리둥절해할 때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간드러지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호호호. 프리야, 잘했어. 녀석들 깜짝 놀랐는걸?”
“이 정도야 기본이제.”
박살난 잔해 너머에 누가 서 있었다. 번들거리는 붉은 천으로 아슬아슬하게 몸을 가린 여자. 휘황찬란한 장신구들을 몸에 두른 그녀는 매혹적인 의상만큼이나 붉은 입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에는 작은 새가 한 마리 앉아 있었다. 깃털이 불타고 있다는 것과 말-그것도 사투리-을 한다는 것 빼고는 지극히 평범한(?) 새가.
로자리아는 이 기묘한 여자의 등장에 긴장했다.
“너희는 누구지?”
붉은 가운의 여자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짧게 웃었다.
“아아, 미안.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어. 하지만 원래는 놀라게 할 생각이었으니까 미안할 필요는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