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62
마염의 황제 062화
‘정말 와일드한 여자로군.’
콰아앙!
또 한 무리의 가드들이 박살나 흩어졌다. 로자리아는 눈에서 불을 뿜을 기세로 소리쳤다.
“당장 나와, 이조르네! 빨리 주술을 풀지 않으면 다 박살내 버릴 거야!”
성의 정원을 초토화시키면서 쳐들어오는 일행을 보며 이조르네는 식은땀을 흘렸다. 고민하거나 고뇌할 틈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나.
“의연하지 못한 여자네. 정말 추해.”
“니 같으면 죽는다 카는데 가만히 있겠나?”
프리야의 말에 이조르네는 콧방귀를 뀌었다. 어차피 쳐들어올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다만 생각보다 빨랐을 뿐. 이조르네는 의자에 털썩 몸을 기댔다.
“녀석들이 제아무리 빨리 치고 들어온다고 해도 여기까지 오는 데 5분은 걸리겠지. 담배나 한 대 피우면서 기다릴까?”
담배를 꼬나문 이조르네는 프리야를 돌아보며 말했다.
“불.”
“니는 도대체 내를 뭐라고 생각하는 기고!”
콰아아앙!
그때, 방문이 터져나갔다. 걸레짝처럼 찌그러져서 바닥을 뒹구는 문 너머에 이터 일행이 있었다. 이조르네를 발견한 로자리아가 눈에 불을 켰다.
“이조르네!”
“어머, 벌써 왔네! 정말 초고속인걸?”
이조르네는 자리에서 일어나 일행에게 손을 흔들며 상냥하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여러분. 두 시간 만의 재회네. 변함없이 건강해 보이는 것 같아 다행이야.”
“건강한 거 좋아하네. 벌써 깃털이 두 개나 사라졌다고!”
목을 가리키며 로자리아는 악을 썼다. 그 모습을 보며 이조르네는 고개를 저었다.
“아까 설명 못 들었어? 두 시간이 지났으니 두 개가 사라지는 건 당연한데 웬 호들갑이야? 게다가 성 주인이 이렇게 정중히 인사하는데 남의 성에 다짜고짜 쳐들어와서는 예의 없게 무슨 짓이람.”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불을 토하며 따지는 로자리아의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이조르네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럼 결정은? 가즈 블레이드와 펜릴을 내놓을 결심이 선 거야?”
로자리아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가즈 블레이드를 내밀며 소리쳤다.
“물론이지. 당장 줄 테니까 얼른 날 살려내라고.”
“꺄아! 허접 마녀, 이년아! 고민도 한번 안 해보고 주는 거냐!”
“시끄러워! 일단 내가 살고 봐야 할 거 아냐.”
로자리아는 항의하는 가즈 블레이드의 날을 비틀어 움켜쥐며 으르렁거렸다.
이조르네는 식은땀을 흘렸다.
‘역시 전혀 고민 따윈 하고 있지 않군.’
그때, 옥신각신하는 로자리아와 가즈 블레이드를 뒤로하고 이터가 나섰다.
“조각은 넘기지 않는다.”
“호오. 그럼 저 여자는 열 시간 뒤에 죽는데? 그래도 괜찮은 거야?”
로자리아가 맞장구를 치며 소리쳤다.
“그래, 맞아! 날 죽일 셈인 거야?”
“로, 로자리아 씨, 진정하세요.”
흥분한 로자리아 때문에 일행 가운데서 다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이터는 이조르네를 마주보며 말했다.
“확실히 넌 로자리아가 검은 깃털 문양이 사라지면 죽는다고 했다. 아마 그 주술은 시전자가 주술을 풀거나 시전자가 죽으면 효력을 잃어버리는 주술. 그 말은 즉…….”
이터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 시간 전에 널 쓰러뜨리면 된다는 뜻이다. 아직 열 시간이나 남은 거지.”
로자리아가 소리쳤다.
“열 시간’이나’가 아니라 ‘밖에’라니까!”
“로자리아 씨…….”
이터의 말을 들은 이조르네는 부채를 펼쳐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날 쓰러뜨리고 주술을 풀겠다라. 확실히 시간을 새긴 이상, 그 이전에 내가 죽일 방법은 없지.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이조르네는 주먹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그와 함께 7서클 주문, 익스플로전이 이터가 선 반경에 범위 폭발을 일으켰다. 그 위력에 바닥이 터져나가고 기둥은 무너졌다. 가공할 만한 열기가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다음 순간, 그 열기를 뚫고 이터가 튀어나왔다. 주문을 정면에서 받아냈음에도 이터의 몸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이조르네를 치고 들어가면서도 이터는 그녀의 물음에 답해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순식간에 접근한 이터의 주먹이 이조르네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카아앙!
“……?”
요란한 쇠 마찰음과 함께 이터의 주먹이 멈췄다.
대검. 기간틱 블레이드만큼이나 거대해 보이는 대검이 이터의 주먹을 가로막았다.
이터가 그것을 깨닫는 순간, 동시에 사방에서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위험을 느낀 이터는 재빨리 대검을 쳐내며 뒤로 물러났다.
이터가 물러나자 이조르네의 뒤로 크고 작은 세 개의 인형이 내려섰다. 이조르네는 팔을 들어 그들을 가리키며 소개했다.
“다시 한 번 소개하기로 하지. 루시펠님의 피와 암흑의 영광으로 생명을 얻은 우리, ‘루시펠 나이츠’를.”
“루시펠 나이츠?”
늘씬한 키에 가벼운 조끼와 활동바지 차림, 샌님처럼 고운 피부의 미청년이 중절모를 눌러쓰며 항의했다.
“뭘 다시 소개한다는 거야. 소개는 너 혼자만 했다고, 이조르네.”
거대한 대검을 바닥에 박아넣은 두터운 갑주의 사내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임팩트 있는 걸로 세 번이다. 이번에도 끼어들어 혼자만 어필하려 한다면 용서하지 않는다.”
“크아…….”
갑주의 전사 옆에서 온몸에 암석을 박아넣은 야수 인간이 낮게 울음을 터뜨렸다. 짐승의 얼굴과 갈기, 날카로운 손톱을 가진 그것은 흡사 웨어울프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조르네는 팔짱을 낀 채로 콧방귀를 뀌었다.
“남자들이 하나같이 쫀쫀하긴. 히로인이 어필하는 건 당연하잖아?”
즉시 동료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누가 히로인이냐.”
“인정할 수 없다, 그런 전개.”
“크아, 크아, 크아앙!”
소란스러운 이조르네의 패거리를 보며 엘리스는 어깨가 처지는 것을 느꼈다.
“또 이상하신 분들이 잔뜩 나왔네요.”
“그래…….”
하지만…….
그레이센은 진지한 얼굴로 미간을 좁혔다.
‘그 괴물 같은 이터의 공격을 한 번에 막고 물러나게까지 만들었다. 단순히 이상하기만 한 녀석들이 아니야.’
그 말대로다. 비록 기습이었다고 해도 이터의 공세를 끊는 실력. 게다가 루시펠 나이츠라는 이름으로 보건대 놈들도 루시펠의 부하들이다. 이조르네 이상의 실력을 감추고 있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이조르네 진영의 소란은 금세 가라앉았다.
중절모를 눌러쓴 미청년이 먼저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내 이름은 쉐드. 마스크 반질한 데다, 실력 있고 유망한 엘리트 소환사다. 사인은 나중에 따로 신청하도록.”
다음은 두꺼운 갑주의 전사였다.
“투사 베가스다. 태어난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지.”
“라기보다, 태어난 이후로 아직 한 번도 싸운 적 없잖아, 당신.”
이조르네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다음 차례는 암석을 몸에 박아넣은 야수 인간. 그는 자신의 가슴을 두들기며 괴성을 내질렀다.
“크아…….”
괴성을 지르는 야수 인간의 옆으로 쉐드가 나섰다.
“이 친구는 말을 못 하니 내가 소개하지. 이 녀석은 올가. 취미는 독서와 야간 낚시야. 잘 부탁한다는군.”
“…….”
저 얼굴의 어디가 독서와 야간 낚시에 어울린단 말인가.
루시펠 나이츠의 소개는 끝났다. 하지만 이터 일행은 할말을 찾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이었다.
‘뭔가 또 골치 아픈 녀석들이 나온 거 같군.’
그들의 소개가 끝나자 이조르네는 부채를 펼치며 앞으로 나섰다.
“난 이제 알고 있겠지? 마법사 이조르네야. 여긴 내 부하 겸 꼬붕 프리야구. 잘 부탁해!”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한 번 동료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아앗! 또 했다, 자기소개. 네 번이나 해먹었어!”
“치사하다, 이조르네.”
“내는 니 부하가 아이라니까!”
“크아!”
쉐드가 즉시 올가의 말을 해석했다.
“비겁한 치사뽕 개허접 마법사라는군.”
“해석해 주지 않아도 돼.”
이조르네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혀를 찼다.
“하아, 정말 사내 녀석들이 계집애보다 더 속이 좁다니까. 아무튼 자기소개는 이걸로 끝. 그럼…….”
루시펠 나이츠가 이터 일행을 마주했다. 이조르네는 부채 끝을 살짝 혀로 쓸며 미소 지었다.
“한번 놀아볼까?”
맨 앞줄에 나선 쉐드가 중절모를 빙빙 돌리며 이터를 바라보았다.
“미리 말해 두지만 나의 소환 마법은 강력하지. 각오해 두는 것이 좋을……”
퍼억!
“크엑!”
깨끗한 타격음과 함께 쉐드는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처박혀 벽에 자국을 찍은 그는 주르륵 흘러내려 바닥에 쓰러졌다.
이조르네가 그를 보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큰소리만 치더니 한 방에 나가 떨어지고.”
“누가 할 소리야! 애초에 대열이 잘못됐잖아. 왜 소환사인 내가 맨 앞인 거냐고! 전사들이 몸빵 해주고 날 보호해 줘야 하는 거 아냐?”
베가스가 바로 눈에 불을 켜며 받아쳤다.
“웃기지 마라, 전사가 왜 네 몸빵이라는 거냐?”
이조르네가 곁에서 거들며 큰소리쳤다.
“그래, 전사들의 몸빵을 받으면서 뒤에 숨는 건 나 같은 엘리트 마법사들 몫이라고.”
“그러니까 전사는 몸빵이 아니란 말이다.”
“크앙!”
다시 소란스러워지는 루시펠 나이츠들을 보며 마창을 잡은 소류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렇게 얕잡아보는 것은 참을 수 없다. 그는 마창의 블레이드를 개방했다.
“적당히 해!”
“소류?”
파앗.
바람처럼 바닥을 박찬 소류가 빛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그의 창이 투닥거리는 루시펠 나이츠들을 가로로 길게 베었다. 아니… 베었다고 생각했다.
“헤, 귀여운 공격이네.”
“뭐?”
길게 뻗은 마창의 블레이드. 순식간에 소류의 공격을 피한 루시펠 나이츠는 그 블레이드 위에 발끝을 대고 올라서 있었다.
쉐드가 중절모를 고쳐 쓰며 말했다.
“저쪽도 슬슬 열이 받기 시작한 모양인데?”
“어쩔 수 없군. 실력 발휘를 해보실까.”
소류는 다시 마창을 휘둘렀다. 그러나 루시펠 나이츠는 이미 블레이드에서 물러나 바닥에 내려선 뒤였다. 소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놈들?’
“자, 어느 놈부터 맡을래?”
거대한 대검을 붕붕 휘두르며 베가스가 나섰다. 그는 이터를 바라보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이터다. 녀석의 기억을 가지게 된 이후로 꼭 붙어보고 싶었어.”
“어쩔 수 없나. 난 접근전에는 영 소질이 없으니.”
어깨를 으쓱한 쉐드는 일행을 바라보며 상대를 골랐다. 그리고는 그레이센과 론을 선택했다.
“좋아, 그럼 난 이 녀석들을 맡도록 하지. 제일 허접해 보이니까.”
제일 허접?
그레이센은 자신을 얕잡아보는 건방진 소환술사의 태도에 눈살을 찌푸렸다.
“무례한 놈이군.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말하다니… 후회하게 만들어주겠다.”
적과의 거리를 벌린 소류는 그들을 살피며 계산했다. 놈들은 상대를 선택하니 어쩌니 하지만 그런 장단에 놀아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소류는 이조르네와 쉐드를 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