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64
마염의 황제 064화
퍼억!
명령과 동시에 난데없이 커다랗게 늘어난 루파의 주먹이 그레이센의 얼굴을 강타했다. 그레이센은 그대로 목이 돌아가며 하늘을 날았다.
“쿠엑!”
“왕자님!”
피를 쏟으며 일어난 그레이센은 황망한 얼굴이었다.
‘바, 방금 손이 늘어났어?’
“쿠뉴!”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다시 루파의 손이 늘어나 그레이센을 후려갈겼다. 진짜 늘어난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게다가 위력은 곰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장난 아니게 강한 펀치였다.
그레이센은 피하려 했지만 루파는 늘어난 팔을 밧줄처럼 사용해 그레이센을 묶어버렸다. 그리고 나머지 팔로 그를 미친 듯이 두들겨팼다.
“우게엑!”
“와, 왕자님! 괜찮으십니까?”
“괜찮냐니, 니 눈엔 괜찮아 보이냐! 이 내시 놈아, 빨리 구해 줘!”
“저는 내시가 아닙니다!”
루파와 옥신각신하는 그레이센과 론을 보며 쉐드는 짧게 손가락 끝을 후 불고는 고개를 돌렸다.
“얼간이들이로군.”
콰앙! 쾅! 콰앙!
요란한 폭발이 주위를 집어삼킨다. 터져나가는 불꽃이 바닥을 부수고 기둥을 녹였다.
간발의 차이로 그것을 피한 로자리아는 바닥을 구르며 일어섰다. 온통 먼지투성이인 그녀는 땀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하아! 하아!”
“벌써 지친 거야? 난 아직 준비운동도 안 끝났는데.”
로자리아와 마주선 자리에는 거만한 표정의 이조르네가 서 있었다. 로자리아와는 달리 그녀의 얼굴엔 지친 기색은커녕, 먼지 하나 묻어 있지 않았다. 그녀는 플레어 브레이저의 불꽃에 부채를 적셔 휘둘렀다. 그리고 또다시 미칠 듯한 공세가 시작되었다.
“크윽! 제길!”
날아드는 불의 화살을 로자리아는 파이어 볼로 요격했다. 주문과 부딪힌 화살들은 하나같이 끔찍한 폭음과 함께 주위를 뒤흔들며 터져나갔다.
말이 막아낸다지, 폭발이 한번 일어날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릴 지경이었다. 강할 거라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였던가.
“질 줄 알고!”
로자리아는 최선을 다해 막았다. 하지만 모두 막아낼 수는 없었다. 마지막 하나의 화살이 파이어 볼들을 뚫고 로자리아를 향해 날아들었다. 주문을 준비할 틈도, 피할 틈도 없었다. 그래서 로자리아는…….
“에에익!”
화살을 향해 가즈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꺄아아악!”
엄청난 폭발과 불길에 휩싸인 가즈 블레이드가 날을 퍼덕거리며 비명을 토했다.
“무슨 짓이야, 허접 마녀! 뜨겁다고. 내 섬세한 블레이드가 숯덩어리가 되어버린단 말이야!”
“시끄러워. 피할 방법이 없는데 어쩌라고. 그리고 네 블레이드는 하나도 섬세하지 않으니까 좀 타버려도 상관없어.”
간신히 피해 내긴 했지만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도도한 표정으로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이조르네의 모습에 로자리아는 분한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이 녀석, 정말 강해. 제대로 공격하기는커녕, 저 자리에서 움직이게도 하지 못했어.’
공격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과 엘리스의 공격은 제대로 나아가기도 전에 이조르네가 만드는 불의 벽에 막혀 소멸해 버렸다. 이터가 손쉽게 깨뜨려 버려 실감을 못 하고 있었던 것뿐, 상대의 마력은 둘을 훨씬 상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파고들 틈을 만들지 않으면…….’
하지만 이조르네는 그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그런 실력으로 지금까지 용케 버텼군. 하지만 이건 어떨까? 프리야.”
“그렇게 꼬붕 부르듯이 하지 말라카이.”
화르륵!
피닉스로 변화한 프리야가 거대한 불의 날개를 펼쳤다. 공간을 가득 메운 불의 새가 로자리아와 엘리스를 향해 날아들었다.
로자리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 이건 못 피하겠어.’
“라이트닝 애로우!”
엘리스가 재빨리 빛의 화살을 날렸다. 그것은 정확히 불새의 머리를 꿰뚫었다.
하지만 그뿐, 뚫려버린 상처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불새의 움직임도 멈추지 않았다. 엘리스의 얼굴이 낭패함으로 물들었다.
“거짓말.”
불새가 그들을 집어삼켰다. 가즈 블레이드는 비명을 내질렀다.
“꺄악! 허접 마녀!”
퍼어엉!
불새가 일행을 덮치며 거대한 불기둥을 일으켰다. 이조르네는 만면에 미소를 띤 채 그 광경을 구경했다. 이걸로 녀석들은 숯검댕 행이다.
그런데 불길이 걷히고 보인 광경은 예상 밖이었다.
“베가스?”
불길이 사라진 자리에는 로자리아와 엘리스 대신 불길에 온몸이 그을린 베가스가 서 있었다.
‘저 멍청한 마초가 왜 여기 끼어든 거야?’
이조르네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베가스 뒤에 서 있는 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베가스의 목을 붙잡고 들어올린 이터였다. 이터가 베가스를 방패로 불새를 막아낸 것이다.
“아니?”
“이터!”
쿠당.
이터는 이조르네의 앞에 기절한 베가스를 내동댕이쳤다. 그리고는 그녀를 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은 네 차례다. 로자리아의 주술을 풀지 않으면 너도 이 꼴이 될 거다.”
하지만 동료가 당했는데도 이조르네는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히야, 베가스를 떡으로 만들어놓다니 대단하네. 역시 루시펠님이 점찍은 소년. 하지만 선전하는 건 너뿐인 거 같은데.”
그녀가 뒤편을 가리켰다. 거기엔 막 소류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있었다.
“크윽!”
“소, 소류!”
소류는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올가가 자신을 내려다보며 포효했다.
“크아아!”
소류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돼먹은 녀석이냐. 내 공격이, 펜릴이 전혀 통하지 않아.’
상상을 초월하는 반사신경과 공격능력……. 스피드에 있어서는 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소류였지만 올가의 움직임은 전혀 따라갈 수가 없었다.
“살려줘!”
그리고 그레이센은 여전히 루파에게 두들겨맞고 있었다. 이조르네는 웃으며 부채를 탁 접었다.
“그럼 슬슬 끝내보자고.”
화르륵.
이조르네가 그리는 궤적을 따라 일어난 불길이 화려하게 춤을 춘다. 그것은 이터와 로자리아 들을 지나 소류와 그레이센 들을 감싸며 거대한 돌풍을 일으켰다.
폭염의 돌풍이 일어나기 전에 급히 빠져나온 쉐드가 투덜거렸다.
“무슨 짓이야, 이조르네? 말도 없이 불덩어리 날리지 마.”
올가도 항의했다.
“카아아아앙.”
순식간에 소류와 그레이센들은 열풍에 휘감겼다. 그들을 가둔 열풍은 점점 주위를 잠식하고 다가오며 그들을 위협했다. 엄청난 열기. 흘리는 식은땀마저 말라버릴 정도였다.
“뜨, 뜨거워.”
“불꽃의 장벽인가.”
소류는 황금의 투기를 휘둘러 불꽃의 벽을 쳤다. 하지만 불꽃을 가르기는커녕 튀어나온 불꽃에 먹혀버릴 뻔했다. 쉽게 뚫릴 벽이 아니다. 소류는 입술을 깨물었다.
“제길…….”
그레이센은 그 열기 속에서도 루파에게 맞고 있었다.
“컥! 꾸엑! 넌 왜 아직도 남아서 날 때리고 있는 거야! 꽥!”
“왕자님!”
소류와 그레이센들이 불의 장벽에 갇힌 것을 확인한 이조르네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터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래? 이대로는 네 친구들 다 타버린다고. 구해야 하지 않아?”
생각할 필요도 없는 선택이다. 이터는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이조르네가 손에서 작은 병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 전에, 이건 무엇일까요? 한번 맞혀볼래?”
“병?”
정체 모를 액체가 담겨 있는 병. 이조르네는 웃으며 말했다.
“땡! 시간이 없으니 그냥 설명해 주도록 하지. 이건 로자리아에게 건 주술을 풀 수 있는 해독제야.”
“뭐라고?”
놀라는 일행을 보며 이조르네는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
“갖고 싶지? 하지만 난 지금 슬슬 돌아가고 싶어져서 말이야. 네가 동료들을 구하러 가면 나는 이 해독제와 함께 여기서 사라질 거야. 네가 아무리 감각이 좋다고 해도 우리가 작정하고 기척을 지우면 찾아내지 못할걸. 적어도 열 시간 안에는. 내기해도 좋아.”
엘리스가 당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그럴 수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말인가. 로자리아의 목숨, 그리고 소류와 그레이센 들의 목숨 중에서?
프리야도 한마디 했다.
“닌 어떻게 같은 편인 내가 들어도 치사하노?”
“시끄러워. 이봐, 베가스. 넌 언제까지 처박혀 있을 거야?”
퉁명스러운 이조르네의 목소리에 바닥에 쓰러져 있던 베가스가 몸을 일으키며 답했다.
“잠시 체력을 보충했을 뿐이다.”
“저 덩치 씨도 멀쩡하게 일어났어요.”
엘리스는 놀랐다. 이터에게 그렇게 두들겨맞고도 무사하다니, 엄청난 맷집이었다.
이조르네는 손의 병을 장난스럽게 흔들며 말했다.
“자, 어쩔래? 시간도 없는데 어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하…….”
이조르네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어느새 다가온 이터의 주먹이 그녀의 인중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윽?”
“카앙!”
퍼억!
간발의 차이로 이터의 주먹을 올가가 막았다. 하지만 이터는 그대로 주먹을 바꾸어 올가를 후려쳐 날려버렸다.
“크아앙!”
“오, 올가!”
“이 녀석, 갑자기!”
베가스가 노성을 터뜨리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터 쪽이 빨랐다. 베가스의 다리를 건 이터는 바닥에서 솟아오르며 그대로 베가스의 면상을 이마로 받아버렸다.
코가 내려앉은 자리를 또 얻어맞은 베가스는 코를 부여잡고 바닥을 굴렀다.
“크윽!”
베가스에게서 시선을 돌린 이터는 이조르네를 노려보았다. 정확히는 그녀의 손에 들린 해독제를.
“어, 어딜!”
이조르네는 주문을 사용하려 했다. 하지만 이터가 손을 휘두르는 것이 먼저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이조르네의 손에서 해독제가 사라졌다.
“앗? 해독제가!”
이조르네의 손에서 사라진 해독제는 이미 이터에게 넘어간 뒤였다. 눈에 보이지도 않았는데!
해독제를 손에 넣은 이터는 경악하는 이조르네를 뒤로하고 불기둥을 향해 달려갔다. 그의 팔에 장착된 타이탄 브레이커가 불기둥의 가운데에 구멍을 뚫었다.
“하아압!”
콰아아아!
길게 튀어나온 실린더가 들어가며 대폭발을 일으킨다. 구멍이 뚫린 불기둥은 그 위력을 견디지 못하고 폭사하며 사방으로 흩어져 나갔다. 다행히 소류 들은 무사했다. 그레이센은 여전히 곰돌이, 루파에게 얻어터지고 있었지만.
“아갹! 그만 좀 때리란 말이야! 쿠엑!”
이조르네는 눈살을 찌푸리며 부채를 거두었다. 해독제는 빼앗기고, 장난도 끝나버렸다.
“터무니없이 터프한 녀석이네. 흥이 깨졌어, 돌아갈래.”
“도망치는 거냐?”
로자리아의 외침에 이조르네는 간드러지는 웃음을 터뜨리며 답했다.
“호호, 말했잖아? 오늘은 ‘인사’하러 왔다고. 대충 인사도 끝난 것 같으니 돌아가는 거지. 하지만 긴장하고 있는 게 좋을 거야. 다음에는 인사가 아니라 정말 조각을 빼앗으러 올 거니까. 아, 그리고…….”
이조르네는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해독제, 가짜야. 안녕!”
“뭐, 뭐라고?”
퍼어엉!
로자리아가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하기도 전에 요란한 폭발이 일어났다. 실내를 자욱이 메운 먼지가 가라앉을 때쯤에야 일행은 루시펠 나이츠들의 모습이 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