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66
마염의 황제 066화
“그럼 녀석들은 지금 어디에?”
이터는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푸른 초원 너머를 향했다.
“서쪽. 놈은 여기에서 서쪽 방향에 있다. 아까도 말했지만 완벽한 방법은 아니다. 정확한 위치까지 알아내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루시펠과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서쪽이라… 약간 애매하기는 하지만.”
로자리아는 미소를 지었다. 정확한 위치는 아니지만 루시펠의 본거지가 서쪽이라는 것을 알아낸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그녀는 의기양양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좋았어. 이번엔 이쪽에서 역으로 반격이다!”
“당장이라도 추적하자고요.”
엘리스도 맞장구쳤다. 루시펠의 위치를 알아낸 것으로 이터 일행의 사기가 순식간에 올라갔다. 하지만 그때 일행 사이로 낮은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난 그만두겠어.”
“소류 씨?”
목소리의 주인공은 소류였다. 나무에서 일어난 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일행을 마주했다. 엘리스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소리예요? 그만두겠다니?”
“말 그대로다. 나는 너희 일행을 떠나겠어.”
그레이센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야, 도망치는 건가?”
“그럴지도……. 하지만 그것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소류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을 이었다.
“내 힘은 지금 이 파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소류 씨…….”
“바르엘과 루시펠 나이츠와의 싸움에서 확실히 느꼈다. 나는 지금까지 거의 모든 싸움에서 마창의 힘에 기대어왔다는 것을. 그리고 그 결과…….”
소류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내 스스로의 힘은 보잘것없었어. 어느샌가 난 마창의 힘이 통하지 않는 녀석들을 만나게 되면 이길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그렇지 않아요. 그건…….”
엘리스가 무어라고 말하려고 하는데 누군가 그녀를 제지했다. 이터였다.
“이터 씨?”
“계속해라, 소류.”
“이대로는 안 된다고 느꼈을 뿐이다. 호아족의 전사는 최강의 용사. 나약해서는 안 돼. 하지만 지금 너희를 따라가면 나는 같은 자리를 겉돌게 될 뿐이다.”
고개를 든 소류가 이터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떠날 생각이다. 펜릴이나, 너희가 아닌 내가 소류로서 강해질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서.”
“…….”
일행 사이로 침묵이 흘렀다.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는 어색한 침묵. 그것을 깬 것은 이터였다.
“강해질 거다.”
이터는 웃는 얼굴로 소류를 보며 말했다.
“확실히 넌 지금까지 무기에 의존해서 싸워왔었다. 기동성 또한 디파의 힘을 빌렸지. 하지만 넌 지금 그걸 버렸다. 분명히 강해지게 될 거야.”
“이터…….”
소류는 코웃음 치며 말했다.
“착각하지 마라. 단순히 강해지기만 하는 게 아니다. 난 반드시 너를 능가할 것이다. 다음에 만날 땐… 다시 승부다.”
“그 말, 잊지 않겠다.”
이터는 펜릴을 들어 보였다.
“펜릴은 우리가 가져가겠다, 괜찮겠지?”
소류는 말없이 펜릴을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종족의 보물. 하지만 다시 태어날 전사에게는 필요없는 물건이지. 네가 원하는 대로 사용하도록 해. 부족 사람들도 그렇게 바랄 거다.”
“고맙다.”
이터의 감사를 들은 소류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행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럼 나는 이만…….”
“버, 벌써 가시는 건가요?”
걸음을 옮기는 소류는 뒤도 돌아보지 않으며 답했다.
“떠나기로 결정했다면 머뭇거릴 이유는 없지. 안녕이다.”
그 말과 함께 소류는 일행을 떠났다. 소류가 시야에서 완전히 멀어져 버리자 엘리스는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가버렸네요, 소류 씨.”
짧은 시간이었지만 꽤 정이 든 엘리스였다. 늘 무뚝뚝하게 일행을 대해 왔지만 그것이 소류의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엘리스는 잘 알았다. 그렇게 말없이 서 있는 일행을 이터가 재촉했다.
“우리도 지금부터 움직인다. 출발을 서두르자.”
어딘지 모르게 흥이 난 이터. 엘리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터 씨, 왠지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요.”
“남자들의 약속이라.”
로자리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남자들이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니까.”
그레이센이 론에게 물었다.
“너도 이해가 안 되겠지?”
“이해됩니다! 완벽하게 이해했고말고요.”
산만한 분위기 속에서 일행은 다시 여행 준비를 서둘렀다. 이터는 소류가 멀어져간 초원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강해져라, 소류. 기대하고 있겠다.’
“그럼 루시펠을 찾아 출발한다!”
일행은 다시 길을 떠났다. 이데아로크의 부활을 막기 위해 떠나는 이터와 더 강해지기 위해, 이터를 뛰어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소류. 하지만 이터도, 소류도, 그리고 다른 일행도 먼 훗날, 자신들이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다시 마주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
한편, 같은 시각. 이터 일행과 싸우고 물러난 루시펠 나이츠도 한창 다음 계획을 세우는 중이었다.
붉은 융단이 깔린 방 안에 혼자 움직이는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교향곡이 울려퍼진다. 방 안에는 분위기와 어울리게 세팅된 가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불이 꺼진 아름다운 등잔은 수줍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 방 한편에 자리한 푹신한 소파. 그 위에 앉은 이조르네가 프리야를 쓰다듬고 있었다. 나머지 루시펠 나이츠들도 방 안 여기저기에서 뒹굴고 있었다.
이조르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다들 감상은 어땠어? 이터와 그 일행.”
“이터라… 흐음.”
쿵!
난데없이 방 안에 둔탁한 소음이 울려퍼진다. 베가스가 원형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친 것이다. 그가 동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차갑게 내뱉었다.
“정면승부다. 녀석과 정면승부로 결판을 낸다. 정정당당하게 1대 1로 붙어서 박살낸다. 쓰러뜨리고 말겠다.”
“어이, 어이. 진정해, 베가스.”
쉐드가 피곤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터한테 깨지고 온 뒤부터 계속 저기압이다. 무리도 아니다. 자신들, 루시펠 나이츠 중 이터 일행한테 박살난 건 베가스뿐이었으니까. 베가스는 노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알아들었느냐, 너희? 이터 녀석은 내가 쓰러뜨린다. 바로 이 ‘라이벌’ 베가스님의 손으로 말이야.”
“어느 틈에 라이벌이 되어버린 거냐.”
그때의 싸움을 떠올리며 이조르네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터는 그렇게 생각 안 할 거 같은데.”
올가도 한마디 해주었다.
“크아앙.”
“시끄러워.”
미간을 좁히는 베가스. 그런 그에게서 시선을 돌린 쉐드는 아까 이조르네가 제일 먼저 던졌던 질문, 이터 일행에 대한 감상에 대해 답했다.
“확실히 이터는 강했지. 보스가 인정할 만한 녀석이었어. 베가스가 쪽도 못 쓰고 박살날 정도였으니. 저번 전투를 보고 객관적으로 판단컨대 우리가 비록 보스의 분신이라고는 하나 우리 중 누군가가 단신으로 녀석을 쓰러뜨리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거야.”
베가스가 험악하게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누가 쪽도 못 썼단 말이냐. 그건 접전이었다. 다음에 만난다면…….”
“어쨌거나 진 건 진 거. 그렇잖아?”
“크…….”
이조르네의 말에 베가스는 반박하지 못했다. 다만 분함을 이기지 못해 주먹을 움켜쥐었다 놓았다 할 뿐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쉐드가 손가락을 퉁기며 말했다.
“이건 어때? 옛 명언에 다굴에 장사 없다고 하잖아? 보스에게 부탁해서 우리 같은 녀석들을 엄청나게 많이 만들어달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단체로 몰려가서 이터 녀석을 밟아버리는 거지.”
“수로 밀어붙여서 밟아버리겠다라. 이터 녀석을 수로 밀어버리려면 몇 명이나 필요한데?”
쉐드는 턱을 쓸며 곰곰이 생각했다.
“글쎄? 한 100명 정도 몰려가면 충분하지 않을까?”
“100명을 만들려면 루시펠님의 피가 얼마나 필요하지?”
이조르네의 질문에 쉐드는 잠시 생각하다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흠. 한 1리터 정도 뽑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루시펠님을 먼저 죽여버릴 생각인 거야?”
“크앙.”
이조르네는 피곤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이것 참, 하나는 정면으로 밀어붙이자질 않나, 하나는 숫자로 밟아버리자질 않나. 남자들은 어째 하나같이 그런 무식한 생각만 하는 거야?”
“그럼 이조르네, 넌 뭐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
이조르네는 프리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짧게 웃었다.
“근원적인 것부터 생각해 보자고. 그런 식으로 이터를 쓰러뜨리고 조각을 가져올 것 같으면 루시펠님이 왜 굳이 우리를 만들었겠어? 그런 건 루시펠님 혼자서 하는 게 오히려 더 편했을 텐데 말이야. 너무 번거롭다고 생각 안 해?”
베가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뜻이냐.”
“루시펠님은 장난꾸러기야. 진부하게 그냥 조각만 빼앗아서 돌아오는 걸 바라지 않으신다고. 유희. 루시펠님에게 이터와의 싸움은 즐거운 유희거리란 거지. 그가 괴로워하고 좌절하는 모습을 보고 즐기고 싶으신 거라고.”
“우리 보스는 변태인 건가?”
위험 발언(?)을 던진 쉐드는 모자를 손가락에 걸어 빙빙 돌리며 물었다.
“그래서, 그 유희 거리에 대한 건 생각해 본 거야?”
“날 뭘로 보는 거야. 머릿속이 근육으로 가득 찬 남자랑 같이 취급하면 곤란해.”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이조르네의 곁에서 베가스는 투덜거렸다.
“근육으로 가득 차서 미안하군.”
이조르네는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가 직접 나서서 싸우는 건 재미없어. 우리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루시펠님이 재미있어하실 만한 판을 짜놓는 거니까 말이야. 예를 들어, 우리가 적당히 조작해서 이터 녀석과 인간들을 싸우게 만든다든지.”
쉐드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인간들? 농담하는 거겠지. 이터는 이미 인간들 왕국 하나 급의 무력을 한 몸에 가진 인간이라고. 그런 녀석을 상대할 수 있는 인간이 있을 리가 없잖아.”
“간단해. 이터가 왕국 급의 힘을 가졌다면 왕국이랑 버금가는 놈들이랑 싸우게 만들면 되는 거잖아? 그리고 그런 용도에 딱 어울리는 녀석들이 있지.”
그들 앞에 어떤 문장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청명한 푸른 판 위에 금실 수로 검을 든 천사 문양을 새긴 문장. 이조르네는 그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신성연맹이야.”
“신성연맹이라고?”
신성연맹. 그것은 여신, 루비에린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이들의 조직이었다. 비록 보유하고 있는 영토는 크지 않으나 전 세계적으로 신전을 가지고 있으며 하급 계층에서 고위 계층까지 두루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종교 단체였다. 특히 그들의 전력인 성기사단, 레이핌은 당대에 당할 기사단이 없다고까지 전해지는 강대한 전력이었다. 쉐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녀석들이라면 확실히 이터를 상대할 만한 세력은 되는군. 하지만 어떻게 이터를 녀석들과 싸우게 만들겠다는 거야?”
이조르네는 짧게 웃으며 답했다.
“신성연맹의 성기사들, 사도들은 자신들이 정의라고 생각해. 그들이 행하는 일이야말로 신의 뜻이라는 거지. 그 뜻에서 어긋나는 것은 악이며 타도해야 할 존재. 그렇다면 이터 들과 신성연맹을 싸우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