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67
마염의 황제 067화
“놈들이 신성연맹의 정의를 위협하는 존재라고 인식시키면 되겠지.”
“바로 그거야. 그리고 그런 방법으로 재미있는 것이 있지.”
***
루시펠 나이츠가 모의를 하고 있는 성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인근 마을. 대도시는 아니었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커다란 마을이었다. 물건을 사러, 일을 하러, 모험에 찌든 몸을 쉬러. 각각의 다양한 사정을 가진 사람들이 분주히 마을 안을 오가고 있었다. 여느 때와 다를 것이 없는 오후다.
문득 쨍쨍하던 하늘이 어두컴컴해졌다.
“비가 오려나? 하늘이 우중충하군 그래.”
마을 사람들은 검게 물든 하늘을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특히 노점 상인들은 곧 이어 소나기라도 쏟아질 것 같은 분위기에 황급히 물건들을 정리했다.
“응?”
어두운 하늘에서 뭔가가 떨어진다. 그런데 빗방울은 아니다. 저기 저 빨간 점은… 불?
하늘에서 불덩어리가 떨어져 내린다.
멍하게 바라보던 사람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불덩어리 하나가 건물 하나를 통째로 집어삼키며 폭발하자 그제야 사태를 깨닫고 비명을 질렀다.
“부, 불벼락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덩어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수십 개의 불덩어리가 연이어 마을에 떨어져 내렸다. 요란한 폭발이 마을을 뒤흔들고 건물이 터져나갔다. 불씨가 상점을 태우고 옆 건물에 옮겨붙었다. 사람들은 기겁을 하며 도망쳤다.
“하늘에서 불비가 내린다!”
“도, 도망쳐!”
“으아아악!”
난데없는 불벼락 세례에 마을 사람들은 혼비백산했다. 당황하고 겁에 질려 도망치는 마을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흑의의 여인이 부채를 펼쳤다. 부채에 가려진 그녀의 얼굴에는 작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자아, 도망치거라. 불꽃에 타서 잿더미가 되어버리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가슴과 허리가 유난히 돋보이는 검은 차이나드레스. 머리를 뒤로 말아올리고 부채로 입가를 가린 여자. 불비가 내리는 것은 다름 아닌 이 여자의 힘이었다. 마을에 고용된 기사들 한 무리가 마을을 폭격하는 불덩어리의 근원을 느끼고 달려나왔다. 그들은 이 여인을 발견하고는 검을 겨누며 소리쳤다.
“멈춰라!”
“싫어.”
여인은 가볍게 부채를 저었다. 그러자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 달려들던 기사들을 날려버렸다.
“크아악!”
반항을 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단 일격에 기사들의 갑옷과 무기가 완전히 부서져 나갔다. 바닥에 쓰러진 기사들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흑의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마, 말도 안 돼. 이 많은 수의 나이트들이 고작 여자 마법사 하나에게…….”
“도대체 너는 누구냐.”
부채를 접은 여인이 진득한 웃음을 지으며 기사들을 내려다보았다. 매혹적인, 그러면서도 도도한 미소를 짓는 여인. 그녀는 로자리아였다.
“내 이름은 로자리아 림 아슈벨. 기억해 두는 것이 좋을 거야. 곧 이 일대를 모두 불바다로 만들 마. 녀. 님이니까 말이야.”
“마, 마녀!”
그 단어의 의미를 아는 기사들의 눈이 흔들렸다. 난데없이 불비를 내려 마을을 불바다로 만들고, 자신들을 부채 한번 휘둘러 가지고 노는 실력. 그것이 저주받은 마녀의 권능이었단 말인가. 로자리아는 넋이 나간 기사들을 보며 차갑게 웃었다.
“뭘 멍하니 보고 있는 거야? 어서 꺼져. 아니면 모두 궁둥이에 불이라도 붙이고 싶은 거야?”
“히익!”
기사들은 앞을 다투어 도망쳤다. 불에 탄 마을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박살나 버렸다. 하지만 엄청난 피해에 비해 의외로 희생자는 얼마 없었다. 발 빠르게 도망친 사람들은 불바다가 마을을 휘감아 버리기 전에 마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로자리아가 노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 이후. 마을에서 살아남은 기사들과 마을 사람들의 증언으로 로자리아 림 아슈벨이라는 마녀에 대한 소문은 일파만파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방법이라고 말한 게 이런 건가?”
로자리아, 정확히는 로자리아의 모습으로 변장한 이조르네의 뒤에서 쉐드와 올가, 베가스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이조르네가 부채를 접으며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신성연맹을 움직이는 데 가장 좋은 건 어둠이야. 그쪽은 빛이니까, 강력한 힘을 가진 마녀와 그의 종자들은 녀석들의 관심을 끌기엔 훌륭한 미끼지. 우리는 마을을 파괴하면서 스트레스 풀고, 로자리아는 신성연맹의 목표가 되고. 일석이조의 멋진 작전 아냐?”
베가스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 역할은 네 종자 역이란 말이냐.”
“결국 또 자기만 임팩트 있는 역할이잖아.”
“카앙. 카앙.”
불만 어린 셋의 항의를 가볍게 씹어버린 이조르네는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잔말 말고 따라와. 녀석들이 더 멀리 가버리기 전에 소문을 퍼뜨려야 한다고.”
이조르네는 미소를 지었다. 이 소식을 들으면 으르렁거릴 한 여자를 떠올리면서.
‘내 선물을 부디 기쁘기 받아주길, 로자리아.’
Chapter 3-4. 신성연맹, 움직이다
서쪽을 향해 길을 떠난 이터 일행은 마침내 남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다리 관문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관문에 도착한 것은 이터 일행뿐만이 아니었다. 엄청난 인파가 관문에 몰려 있었다. 다들 서부로 넘어가려는 사람들이었다. 관문에서 언덕까지 길게 이어진 사람들의 행렬을 보며 엘리스가 혀를 내둘렀다.
“어마어마한 인파네요. 끝이 보이질 않아요.”
“유라스 영지로 이동하려는 사람들이야. 대부분이 상인들이지. 유라스 영지에는 아젠트라는 상업이 발달한 무역 도시가 있는데, 요 근래가 장이 있어 제일 짭짤할 때거든. 많은 인파가 한 번에 관문에 몰렸으니 우리 차례가 오려면 꽤 오래 기다려야 할 거야.”
“그렇다고 해도 많네요.”
엘리스는 행렬을 바라보면 식은땀을 흘렸다. 이걸 다 지나가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계산이 되질 않았다.
그녀의 말에 이터도 공감했다.
“맞다. 쓸데없는 시간낭비다. 다른 길로 해서 지나가자.”
로자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유라스 영지는 꽤나 엄격한 검문 제도를 택하고 있어. 여기서 통행증을 얻지 못하면 이동하는 데 제약이 걸릴걸. 영지에서의 움직임에 제약이 걸린다면 루시펠을 찾는 건 더 어려워질 거 아냐.”
이터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왜? 통행증이 없는데 왜 제약이 걸리는 거냐.”
“그야 검문소마다 수상한 녀석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난 수상한 녀석이 아닌데?”
“통행증이 없으면 그렇게 생각한다는 말이야. 통행증은 네가 수상하지 않다는 걸 증명해 주는 증명서 같은 거거든.”
엘리스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세상에서는 통행증을 얻기 전에는 수상한 사람이 되는 거군요. 그럼 이 사람들은 모두 그 통행증을 얻으려는 수상한 사람들인 거네요.”
“전혀 틀려.”
로자리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이 두 녀석이랑 대화를 오래 하면 피곤해진다.
“수상하든 안 하든 상관없어. 유라스 영지에 들어가서 조사를 하기 위해서는 통행증을 받아내야 한다구. 서쪽으로 가야 하니까 어쩔 수 없잖아.”
루시펠의 본거지를 찾기 위한 여행. 서쪽이라는 단서로 지도를 뒤져보았을 때, 가장 유력한 곳은 유라스 영지였다. 상업이 발달해서 살기 좋은 곳이기도 하지만 마기가 들어 제대로 쓸 수 없는 불모의 땅도 있었던 것이다.
농작물은 자라지 않고, 인간을 먹는 마물들이 기승을 부리는 저주의 땅이 있는가 하면, 언데드와 고스트들로 죽음의 땅이 되었다고 하는, 안개가 깔린 미로 숲도 있었다. 그 외에도 마계와 연결된 통로가 있는 골짜기에 대한 소문 등 수상쩍은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너무 냄새가 풀풀 풍겨서 오히려 의심스러울 정도지만 말이야.’
어쨌거나 지도만 바라보며 끙끙거리고 있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가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로자리아의 말을 들은 이터는 소매를 걷어붙이며 말했다.
“그렇군. 그러니까 어찌되었건 통행증만 받아내기만 하면 되는 거지?”
“힘으로는 절대 안 돼. 수상한 눈초리보다 몇 배는 주목 받게 돼버린다구.”
이터가 무슨 짓을 할 생각인지 대번에 알아차린 로자리아는 바로 그를 말렸다. 이터는 피곤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로자리아를 바라보았다.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로자리아는 정말 까다롭다.”
“그냥 잔말 말고 얌전히 기다리면 되잖아!”
“하지만 괜찮을까?”
그레이센이 입을 열었다. 그는 탐탁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일행을 둘러보았다.
“우리 신분도 결코 평범한 것은 아니잖아. 기억상실의 꼬맹이, 흉악한 마녀, 밝힘증 엘프, 거기에다 쫓기는 망국의 왕자와 그의 심복 내시라니. 누가 봐도 수상한 파티지 않나.”
일행은 즉시 항의했다.
“누가 흉악하다는 거야!”
“오해입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남들에 비해 약간 조숙한 것일 뿐이에요.”
“저도 절대 내시가 아닙니다! 두 쪽 다 달려 있는 데다 밤일도 잘한다구요!”
잘한다? 론의 그 말에 로자리아와 엘리스의 시선이 동시에 그를 향했다.
“당신 신관이라고 하지 않았어?”
“아니, 저… 그, 그게…….”
일행의 하는 양을 지켜보던 가즈 블레이드가 날을 떨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하나도 정상인 인간들이 없다니까. 그렇게 촌스럽게 노니까 수상하다는 소리를 듣는 거야.”
“니가 제일 수상해.”
말하는 검에게 그런 소리 들을 이유가 없는 일행이었다.
로자리아는 그레이센의 지적에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러니까, 이런 모습으로 통행증 요구를 하긴 어렵다는 거지? 그럴 줄 알고 준비를 해뒀지.”
“준비?”
그리고 로자리아는 즉시 준비해 온 복장을 일행에게 갈아입혔다.
그레이센은 어딘지 모르게 싸구려 티가 나는 망토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뭔가 답답하다.”
이터는 꽉 끼이는 제복이 불편한지 단추를 만지작거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갈기갈기 찢어진 옷을 입고 난데없이 철창에 갇힌 엘리스는 의아한 얼굴이었다.
“근데 제가 왜 철창에 갇혀 있는 거죠?”
로자리아가 설명했다.
“우리는 지금부터 노예상인 행세를 하는 거야. 엘프는 만나기도 어렵고, 구하기는 더 더욱 어려운 종족. 그래서인지 어쩌다가 한번 나타나는 엘프들을 귀족들이 상당히 좋아하지. 우리는 그런 귀족들에게 엘프를 팔러 가는 상인이 되는 거야.”
“너무해요! 어째서 그런 심한 짓을 하는 거죠?”
엘리스의 경멸 어린 눈빛을 마주한 로자리아는 식은땀을 흘렸다.
“아니, 아니… 진짜 노예상인이 되었다는 게 아니라 그런 척만 한다는 거야. 관리들이 의심하지 않도록. 넌 가녀린 노예 역할만 하면 돼.”
“가녀린 노예 역할?”
엘리스는 상상하기 시작했다.
찢어진 옷차림의 자신이 나무기둥에 매달려 있다. 그 앞에는 제복 차림의 이터가 채찍을 들고 자신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가 채찍을 휘두르며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