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68
마염의 황제 068화
“섹시하고 청순가련하기만 한 엘프에겐 채찍이 약이지.”
철썩. 철썩.
“아악! 주인님, 좀… 좀 더 세게 때려주세요.”
이건 주인님의 애정 어린 채찍질. 이건 이터 씨의 사랑의 매. 이터가 휘두르는 채찍이 더욱 강해져간다.
“아! 너무 행복해요.”
엘리스는 황홀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더 때려주세요, 이터 씨. 좀 더.”
“……?”
혼자 눈을 감고 소리치는 엘리스를 이터는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로자리아는 왠지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겠군.”
그녀는 품에서 꺼낸 문서를 일행에게 내보이며 말했다.
“우리의 신분을 증명하는 건 왕국에서 서명한 이 노예상인 라이센스로 할 거야. 그러니까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통행증 받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이제 불만들 없지?”
로자리아의 설명이 끝났다. 문득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던 그레이센이 질문했다.
“그런데 말이다, 한 가지 신경 쓰이는데, 너는 왜 다른 옷으로 갈아입지 않는 거지?”
로자리아는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그야, 난 엘프를 사가는 귀족 부인 역할이니까.”
“…….”
다른 일행은 식은땀을 흘렸다.
‘너만 좋은 역이냐…….’
그레이센은 말도 안 된다는 듯 버럭 소리쳤다.
“어림없는 소리! 인정 못 한다. 귀족 부인 따위가 엘프를 사가다니 당치도 않다. 엘프는 페이샨 왕국의 왕자인 내가 사겠다!”
“지금 묘하게 핀트가 빗나가고 있습니다, 왕자님.”
수선을 떠는 일행은 줄을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들은 철창 안에 갇혀 있는 엘리스를 보며 감탄사를 터뜨렸다.
“우와, 저거 엘프 아냐?”
“어디? 헉! 정말이다. 진짜 엘프야.”
귀하디귀해 높으신 영주의 성에도 없는 엘프.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그런 엘프가 자신들 앞에 있다니. 모여 있는 사람들이 엘리스를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그들의 시선을 느낀 엘리스는 눈을 껌뻑였다.
‘어라, 다들 나한테 관심을 보이고 있잖아? 어떻게 된 일이지? 그래, 맞아!’
엘리스는 그들이 수군거리는 이유를 깨달았다.
‘다들 이 아름다운 종족 엘프인 나를 보고 반해 버린 게 틀림없어!’
그렇지 않으면 이 많은 사람들의 뜨거운 시선을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엘리스는 엘데라드의 숲에 처박혀 있을 족장을 떠올리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족장님, 이 엘리스가 해냈답니다. 인간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훌륭한 엘프가 되었어요.’
물론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과 훌륭한 엘프 사이의 상관관계는 아무것도 없다.
‘이럴 때가 아니지. 서둘러 팬 서비스를!’
자신을 성원해 주는 이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킬 수는 없지 않는가. 엘리스는 사명감에 불타는 얼굴로 포즈를 취했다. 찢어진 옷 사이로 살을 살짝 드러내며 옆으로 드러누워 사람들에게 윙크하는 엘리스.
“저… 오늘 밤에 한가해요! 웃흥.”
로자리아는 식은땀을 흘렸다.
“도대체 넌 그 안에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엘리스를 구경하던 사람들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듣던 거랑은 좀 다르네. 엘프면 쭉쭉빵빵할 줄 알았는데.”
“큭!”
엘리스의 가슴에 비수가 하나 박혔다. 중년 아저씨가 엘리스의 가슴을 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흐음! 발육이 덜 된 거 같은데.”
“여자였어? 가슴만 보면 남자 엘프 아냐?”
“크윽!”
퍽. 퍽.
두 개의 비수가 동시에 박혔다. 엘리스를 구경하던 여인 하나가 자신의 풍만한 가슴을 퉁기며 미소 지었다.
“훗.”
“실례네요, 정말!”
소리치는 엘리스와 수군거리는 사람들. 그렇게 한참을 옥신각신한 뒤에야 일행은 줄을 설 수 있었다.
로자리아는 피곤한 얼굴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이제야 겨우 줄을 섰네. 정말 시끄러운 녀석들이야.”
관문을 지나려는 사람들은 계속 나타났고 어느새 일행의 뒤에도 긴 줄이 생겨났다. 하지만 앞으로 향하는 줄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때, 한 무리의 덩치들이 일행 앞으로 끼어들었다. 이터가 그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봐, 우리가 먼저 왔다.”
이터의 말에 고개를 돌린 덩치 하나가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으르렁거렸다.
“뭐야? 꼬맹아. 네가 먼저 왔다는 증거 있냐? 앙?”
“야, 됐어. 냅둬. 애냐? 꼬마랑 다투게. 꼬마야! 형아들이 한 번만 봐줄 테니까 얌전히 엄마 치마폭에 숨어 있어라.”
다른 덩치가 살살 달래자 그는 킥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꼬마야, 운 좋은 줄 알아. 크큭.”
그들이 고개를 돌리자 이터는 다시 그들의 등을 두드렸다.
“한 번만 더 말할게. 우리가 먼저 왔다. 뒤에 가서 줄 서라.”
맹랑한 이터의 말에 덩치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줄 서? 하하, 들었어? 이 꼬마가 나보고 줄 서라는군.”
자신들의 동료들끼리 키득거리던 덩치는 이터 앞에 얼굴을 들이밀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싫은데? 줄 서지 않으면 어쩔래?”
“줄 안 서면…….”
퍼억!
이터의 돌려차기가 덩치의 얼굴에 작렬했다.
“크에엑!”
“이렇게 된다.”
이터에게 얻어맞은 덩치는 저 하늘 너머로 사라져갔다. 덩치의 동료들의 눈은 터져나올 듯이 커졌고 행렬의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봤어? 사람이 날아갔어.”
이터는 나머지 덩치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희는 줄 설래, 아니면 맞을래?”
기겁을 한 덩치들은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깊숙이 숙이며 빌었다.
“죄, 죄송합니다. 저희가 몰라뵙고 실례를! 다, 당장 줄 서겠습니다!”
허겁지겁 도망치는 덩치들을 보며 가즈 블레이드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새치기라니… 인간들의 교양 수준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그렇지, 허접 마녀?”
“응? 아… 뭐, 그렇기는 한데…….”
로자리아는 떨떠름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엘프를 신기하게 보는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이터까지. 사방의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자신들을 보고 있었다. 엄청! 주목을 끌어버렸다.
‘뭐… 이 정도는 괜찮겠지. 이 정도 시비는 늘 있는 일이니까 특별히 우리를 수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으음… 음… 으으음.”
한편, 팔짱을 낀 채로 신경질적으로 손가락을 툭툭거리던 그레이센이 갑자기 인상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길어. 너무 길어. 더 이상은 못 참겠다!”
로자리아가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그레이센을 바라보았다.
“조금만 기다려. 두세 시간이 지나면 많이 줄어들 거야. 게다가 우린 아직 30분도 기다리지 않았…….”
그레이센이 호통 치며 소리쳤다.
“감히 왕족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페이샨 왕가는 기다리지 않는다. 론!”
“네, 왕자님.”
론은 즉시 ‘얼마 남지 않은 비자금 주머니’를 꺼냈다. 이번에는 인원이 인원인 만큼 크기도 특대였다. 론은 양쪽 길가에 금화를 뿌렸다.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와앗! 하늘에서 돈비가 쏟아진다!”
“금화다! 그것도 최상품이야.”
“비, 비켜!”
금화를 보고 정신없이 덤벼드는 상인들. 그 긴 대열이 마치 썰물처럼 흩어져 버렸다. 가운데가 빈 줄을 보며 그레이센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 좀 길이 생겼군. 가자.”
“네.”
“로자리아, 어서 가자.”
이터까지 엘리스의 철창을 끌며 나아갔다. 로자리아는 한숨을 쉬며 말을 옮겼다. 하나같이 사람들 시선을 끌어대는 일만 골라서 하다니. 이래서는 주목 받지 않으려고 변장한 의미가 없잖아.
어쨌든 덕분에 일행은 순식간에 관문 앞에 당도할 수 있었다.
“다음.”
일행의 차례가 되었다. 로자리아가 말을 몰아 관리 앞으로 나섰다. 검은 차이나드레스 차림의, 고상하고 한편으로는 요염해 보이는 여자가 앞에 서자 관리는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부인. 신분증을 보여주시겠습니까?”
“안녕하세요, 여기 왕국에서 허가한 증서입니다.”
로자리아가 전달한 상인 증서를 건네받은 관리가 내용을 훑었다. 그가 턱을 쓸며 입을 열었다.
“노예상인이라… 뒤의 분들이 모두 일행이십니까?”
“네.”
그는 약간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수행원 세 명에 노예 하나라… 많군요. 왕국 발행 문서이긴 하지만 한 장에 이 인원 모두의 통행증을 내려면 시간이 좀…….”
돈 좀 달라는 소리다.
로자리아는 피식 웃으며 금화 주머니를 꺼냈다. 그레이센의 넘쳐나는 비자금의 조력을 좀 받았다. 그녀는 슬쩍 그것을 관리에게 전달하며 미소 지었다.
“힘드신 건 알지만 수고 좀 해주세요.”
“흠, 흠!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제 임무가 원래 그런걸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최대한 신속하게 통행증을 발행해 드리겠습니다.”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냉소하는 로자리아였다. 정말 이런 것들도 관리라고 세금으로 월급 받고 있는 걸 생각하면 한심한 일이다.
참고로, 로자리아는 세금을 내지 않는다.
“그럼 부인, 실례지만 성함이…….”
“제 이름은…….”
로자리아는 입가를 가린 부채를 치웠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관리는 깜짝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헉! 다, 당신은…….”
당황한 그는 벽에 붙어 있는 공문과 로자리아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몸을 떨었다. 그는 경악한 얼굴로 로자리아를 가리켰다.
“설마… 설마… 당신은 죽음의 마녀라고 불리는 로자리아 림 아슈벨!”
“네, 네?”
화들짝 놀란 로자리아는 급히 부채로 입을 가렸다.
‘아니, 이 병사 나부랭이가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지?’
하지만 이미 관리의 외침은 뒤에까지도 들렸다. 로자리아의 이름을 들은 행렬에 동요가 일어났다.
“로자리아라고?”
“그 마녀, 로자리아란 말이야?”
“설마…….”
당황하는 관리와 필요 이상으로 경악하는 상인들. 로자리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어떻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일단은 수습부터…….’
로자리아는 호호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농담이 지나치시군요. 사람을 잘못 보신 게 아닌가요?”
관리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공문과 로자리아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하긴, 그림과 실물이 닮았다고 해서 똑같은 것은 아니다. 자신이 착각한 것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런 귀부인이 그 마녀, 로자리아라면 통행증을 발급 받으러 올 리가 없지 않는가. 관리는 식은땀을 흘리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여…역시 그렇겠지요?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착각을 해서 결례를 범했군요.”
“맞아요. 죽음의 마녀라니, 당치도 않아요.”
철창 안의 엘리스가 포즈를 잡으면서 정정해 주었다.
“로자리아 씨는 알센데린의 마녀란 말이에요. 그렇죠, 로자리아 씨?”
엘리스의 말에 관리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듣고 있던 상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지, 진짜다! 진짜 마녀 로자리아다!”
“도, 도망쳐!”
“흐아아악!”
“아니, 저기… 통행증은 주시고…….”
로자리아가 손을 뻗었지만 이미 관리들은 허겁지겁 도망간 뒤였다. 뒤로 뻗은 그 길던 대열도 다 어디 갔는지 사라지고 없었다. 로자리아는 멍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