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7
마염의 황제 007화
“이데아로크의 다섯 조각이라는 게 뭐냐?”
“이데아로크는 5,000년 전에 존재했다는 악신의 이름이야. 당시의 세상을 불바다로 만들었다는 무시무시한 녀석이지. 하지만 인간들의 끝없는 저항에 악신은 파괴되었고 그 힘은 다섯 개의 조각으로 나뉘어 사라졌어. 그걸 후세 사람들은 이데아로크의 다섯 조각이라 불렀지. 그 조각을 모두 가진 자는 악신, 이데아로크의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해.”
이터는 가즈 블레이드를 보며 물었다.
“너, 정말 전설의 검이었냐?”
“촌스러운 인간. 그럼 내가 너 같은 인간이랑 장난치고 있는 건 줄 알았니? 이 몸이 누군지 알았으면 지금부터라도…….”
이터는 가즈 블레이드를 땅바닥에 꽂았다.
“읍읍…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얼굴에 더러운 흙이 묻잖아! 꺄아! 얼른 뽑아줘!”
“아무리 봐도 별거 아닌 거 같은데.”
고개를 돌리는 이터의 시선에 제 발 저린 흑마법사는 있는 힘껏 영업용 미소를 띠고 답했다.
“그건 가즈 블레이드가 이데아로크 다섯 조각 중 하나인 ‘인격’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나머지 네 조각의 힘을 하나로 연결시켜 주는 일을 하고 있지요.”
“나도 고문서에서 읽었어. 이데아로크의 조각은 각기 ‘무(武)’ ‘마(魔)’ ‘혼(魂)’ ‘체(體)’, 그리고 ‘인격(人格)’의 다섯 조각으로 나뉘어 있다고.”
로자리아는 바닥에 박힌 가즈 블레이드를 뽑아 들었다. 아직도 잘 실감이 나질 않는다. 이렇게 건방지고 도도하면서, 능력은 개뿔도 없는 에고 소드가 이데아로크의 인격을 가진 검이라니.
‘농담이 아니야. 이데아로크의 다섯 조각은 그 후에도 몇 번이나 더 세상에 나타났었어. 과거 수많은 왕국을 흥하게 만들고 또 멸망시켰던 전설의 힘.’
하긴, 모습을 감추고 쥐 죽은 듯이 살아가는 흑마법사들이 이렇게 대놓고 모습을 드러낼 만한 일이 흔하겠는가. 확실히 이데아로크의 힘이라면 이런 작자들이 군침을 흘리기에 좋은 미끼일 터. 터무니없는 소리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좋아. 결정했어.”
선언 같은 로자리아의 말에 이터가 물었다.
“뭘?”
“나머지 네 조각을 찾을 거야. 다섯 조각 중 하나가 내 손에 들어온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니겠지? 호호, 다 이데아로크의 힘을 가지라는 하늘의 뜻 아니겠어?”
가즈 블레이드가 코웃음을 쳤다.
“착각은 자유라지.”
화르륵.
말이 끝나기도 전에 로자리아의 손에서 나온 불꽃이 가즈 블레이드의 날을 휘감았다.
“케엑!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뜨거워!”
“넌 버릇부터 조금 고쳐놔야겠구나.”
어수선해진 분위기 속에서 흑마법사는 초조한 얼굴로 슬그머니 물러섰다.
“저… 그럼 저는 이만 가봐도 되겠죠?”
로자리아는 잊고 있었다는 듯 활짝 웃으며 답했다.
“아, 맞아. 좋은 정보 잘 들었어.”
“네. 그, 그럼 안녕히…….”
로자리아의 표정을 보고 흑마법사는 안심하고 물러서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알 수 없는 오한이 그의 몸을 흔들었다.
“하, 지, 만.”
로자리아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마법사를 바라보았다.
“내 탑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그냥은 못 돌아가지.”
“으아아아아악!”
숲 속에 다시 한 번 비명이 메아리쳤다. 바지 가운데를 움켜쥔 채 거품 물고 엎드려 기절해 버린 흑마법사의 옆에서 로자리아는 손을 털었다.
“이제야 좀 홀가분하군.”
“잔인한 인간.”
금세 표정이 바뀐 로자리아는 다시 들뜬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이왕에 이렇게 된 거 당분간 세상 구경이나 해야겠다. 이데아로크의 나머지 조각들을 찾으러 가는 거야. 전설의 힘을 손에 넣는 거라고.”
이터가 물었다.
“그런데 전설의 힘을 손에 넣으면 뭐 할 거냐?”
“뭘 하다니? 그야 당연히… 최고의 마녀 탑을 세우는 거지.”
가즈 블레이드가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고작 그거?”
“고작 그거라니? 마탑은 모든 마녀들의 로망이라고. 두고 봐. 최고의 탑을 세워서 세상 모든 마녀들이 우러러보게 만들 테니.”
“하아.”
왠지 모르게 앞으로 골치 아픈 일이 잔뜩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다.
로자리아는 이터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터는 어떻게 할래. 너도 같이 갈 거니?”
이터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간다. 혼자서는 위험하니까.”
“좋아. 그럼 함께 가자. 분명 재미있는 일들이 잔뜩 벌어질 거야.”
앞으로의 일을 기대하며 활짝 웃는 로자리아. 이터와 로자리아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Chapter 1-3. 망국의 왕자, 그레이센
도미크.
영지를 벗어나 남쪽으로 숲을 지나면 도착할 수 있는 도시로, 왕국 수도 할테인과 신성교단 바르하의 성지로 들어갈 수 있는 교두보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푸른 하늘 아래로 쏟아지는 따사로운 햇빛 사이로 스쳐지나는 기분 좋은 바람. 마을은 저마다의 일들로 분주히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 활기찬 곳에서 벗어나 햇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음침한 뒷골목에서 로자리아는 옷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간신히 빠져나왔네. 오랜만에 바깥 구경을 하는 건 대환영이지만 인간들 북적거리는 건 질색이란 말이지.”
“싫은데 여긴 왜 왔나?”
이런저런 잔짐들을 든 이터가 물었다.
“그야 이데아로크의 나머지 네 조각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지. 무작정 전 세계를 헤매고 다닐 수는 없잖아? 여기 도미크의 뒷골목에는 상당히 체계가 잘 잡힌 도둑 길드가 있어. 최근에 등장한 마도구들의 소문 같은 것들 중에 분명히 쓸 만한 것들이 있을 거야.”
그렇게 설명하며 로자리아는 골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미크의 뒷골목은 미로처럼 복잡했지만 로자리아는 이곳 지리에 익숙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골목 구석에 허름한 건물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오래되어 낡아빠진 모습의 을씨년스러운 건물 바깥에는 불량스럽게 치장한 사내 몇이 로자리아 일행을 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도미크의 도둑 길드 본거지였다.
“이터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금방 갔다가 올 테니까.”
이터에게 짐을 다 맡긴 로자리아는 홀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도둑 길드는 정보를 사는 데 유용한 곳이기는 하지만 도둑놈들이라는 게 워낙 교활한 놈들이라 까닥하면 귀찮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뭐, 이터가 함께 있는 편이 도움이 되기도 하겠지만 소란을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처리하기 위해서는 그녀 혼자 들어가는 편이 더 나았다.
어쨌든 그녀는 마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좋을 건 없었다.
덜컹. 덜컹.
짐들 사이로 비죽 튀어나온 검 자루가 흔들거린다. 이터가 그것을 잡아 뽑아내자 검집이 채워진 가즈 블레이드가 빠져나왔다. 날을 비틀고 용을 쓰자 이터는 검집을 풀어주었다.
“야! 너희 이게 무슨 짓이야. 숨 막혀 죽는 줄 알았잖아. 어푸어푸… 인간들은 정말 개념 없어!”
“넌 시끄러우니까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나의 이 아름다운 몸을 저런 싸구려 검집에다가 집어넣었단 말이야? 불결해, 불결해. 내 몸은 민감하다구. 이런 데다 넣으면 몸이 다 상한단 말이야. 꺄아! 벌써부터 비린내가 몸에 배는 것 같아.”
혼자서 발악을 하는 가즈 블레이드를 보며 이터는 말했다.
“아무런 능력도 없는 게 까다롭군.”
“능력이 없다니. 이 몸은 이데아로크의 조각들을 하나로 모으는 열쇠란 말이야. 그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네가 알아? 너희같이 무식하게 힘자랑이나 하는 인간들 따윈 평생… 웁웁!”
이터는 검집을 다시 채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끄러운 검이었다.
“안녕… 꼬마야.”
웬 사내가 다가왔다. 껄렁껄렁해 보이는 차림의 그는 히죽 웃으며 물었다.
“이런 곳에 어린애가 오는 건 드문 일인데 여기서 뭘 하니?”
“로자리아 기다린다.”
“로자… 그렇구나. 같이 온 어른이 있는 거구나. 어른은 지금 저 안에 계시니?”
이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의 얼굴이 좀 더 진득하게 변했다.
“형이 재미있는 거 보여줄까?”
“별로 관심 없는데.”
이터는 거절했지만 사내는 떠날 생각은 않고 기분 나쁜 웃음만 지었다.
“그러지 말고 한번 구경해 봐. 재미있을 거야.”
사내는 오른손에 돌멩이 하나를 얹어 이터에게 내보였다.
“자아, 잘 봐라. 사라진다. 수리수리.”
사내가 돌멩이를 쥐었다가 손을 펼치자 돌멩이는 온데간데없었다.
“어라? 사라졌네? 이 돌멩이가 어디로 갔을까나?”
사내는 씨익 웃으면서 왼손을 폈다. 펼친 왼손 손바닥 위에 아까의 돌멩이가 놓여 있었다.
“여기에 있었네. 어때, 신기하지?”
이터가 자신에게 흥미를 보인다고 생각한 사내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번엔 더 재미있는 걸 보여줄게. 자, 수리수리.”
아무것도 없는 손을 보여준 사내가 손을 뒤로 돌렸다가 앞으로 빼냈다. 그의 손에는 돈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그것은 로자리아가 이터에게 맡긴 돈 주머니였다.
“오오, 여기 돈 주머니가 있네. 후후, 어때? 재밌었지? 그럼 난 이만 간다. 안녕.”
이터에게 돈 주머니를 돌려준 사내는 재빨리 돌아서 걸음을 옮겼다. 사내의 얼굴에 기분 좋은 표정이 떠올랐다.
‘후후, 또 한 건 성공했군.’
이터에게 돌려준 것은 돌덩어리들이 들어 있는 가짜 돈 주머니였다. 진짜 돈이 든 주머니는 이미 자신의 허리춤에 이런 식으로 훔쳐낸 다른 주머니들과 함께 채워져 있었다. 꼬맹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이걸로 당분간 술값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성싶다.
“…….”
멀어지는 사내를 보며 이터는 손은 내밀었다. 그리고는 아까 사내가 하던 양을 흉내 내며 주문을 외웠다.
“수리수리.”
그리고 오므린 주먹을 폈다. 손에는 돈 주머니뿐만이 아니라 다른 주머니들까지 함께 들려 있었다. 사내가 다른 이들에게서 훔친 물건들이었다.
“음… 다른 것들까지 와버렸군.”
“촌스럽게 그런 것도 하나 제대로 못 따라 하니?”
살짝 열린 검집 사이로 가즈 블레이드가 빈정거렸다. 그 와중에도 소매치기 사내는 자신의 돈을 몽땅 소매치기 당했다는 사실을 모른 채 히죽거리며 골목을 벗어나고 있었다.
“많이 기다렸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신사적이더라고. 꽤 괜찮은 정보들도 얻었어.”
도둑 길드 건물 밖으로 나온 로자리아에게 이터는 주머니들을 내밀었다.
“응? 이게 뭐야?”
“주웠다.”
로자리아는 입을 쩍 벌렸다. 주머니 안에는 하나같이 번쩍이는 금화가 가득 차 있었다. 이런 것들을 주웠다니? 로자리아는 기쁨에 겨운 얼굴로 소리쳤다.
“잘했어, 이터. 이게 다 얼마야? 역시 널 데리고 온 건 현명한 선택이었어. 호호호.”
그녀는 돈 주머니들을 챙기며 즐거워했다. 그녀에게는 모처럼 생긴 돈이었다.
“호호호. 좋아, 모처럼 돈도 생겼으니 기념으로 내가 맛있는 거 하나 쏠게.”
“뭐 사줄 거냐?”
그러나 이터에게는 돈보단 뭘 먹느냐가 더 중요했다.
일행은 식당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