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71
마염의 황제 071화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다. 상인들과 병사들이 자신을 알아보질 않나, 변방의 마녀를 상대로 성기사들이 등장하지 않나, 거기에 이조르네 패거리까지 끼어들어서 법석을 떨어대질 않나.
문득 엘리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방금 이조르네 씨가 로자리아 씨한테 님이라고 했잖아요.”
“응, 그러고 보니 그랬지. 그 녀석들 또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지만.”
엘리스가 곰곰이 생각하며 말했다.
“혹시 그 1,500명을 괴롭혔다는 거… 이조르네 씨가 아닐까요?”
“뭐? 그 녀석이 할 일 없이 왜 그런 짓을……?”
말을 잇던 로자리아의 얼굴이 새카맣게 굳어졌다. 그리곤 뭔가 떠올랐다는 듯 경악한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이조르네!”
그레이센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조르네란 여자에 대해 제대로 기억해 낸 모양이군.”
“네.”
이제야 모든 상황이 정리되는 로자리아였다. 필경 이조르네는 자신의 모습으로 변장을 했을 것이다. 그 정도 마법사에게 한번 만난 상대 흉내를 내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닐 터. 그녀가 일을 저지르고 자신에게 뒤집어씌운 것이다. 여기에 나타난 것은 오해의 골이 더 깊어지게 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왜 그런 짓을? 그야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릴 골탕 먹이려는 작정이었구나! 이 마법사 할망구……!”
용서할 수 없다. 감히 자신처럼 섬세한 마녀에게 누명 따위 지저분한 짓을 걸어 명예를 실추시키다니! 하지만 루시펠 나이츠들은 다시 기척을 감추고 있었다. 찾아갈 수도 없었다. 이터가 일행을 이끌며 말했다.
“가자. 이러고 있어도 누명을 벗을 길은 나오지 않는다. 지금은 루시펠을 찾는 일에 전념할 수밖에 없다.”
이터의 말대로다. 분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다. 로자리아는 투덜거리며 이터의 뒤를 따랐다.
“두고 봐, 이조르네 녀석들……. 반드시 복수해 주고 말겠어.”
하지만 하필이면 끌어들인 것이 신성연맹이라니. 일은 생각만큼 간단하게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사건을 불러 일으키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Chapter 3-5. 심판관 아네스
웅장하게 펼쳐진 홀. 검을 든 천사의 조각상과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가 엄숙하면서도 화려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스테인드글라스 아래에는 무장한 성기사들이 절도 있는 자세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홀의 끝. 이마에 주름이 가득한 나이 많은 신관은 의자에 앉은 채로 자신을 마주한 세 명의 남녀를 보며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는 불쾌감을 감추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이러는 이유가 뭡니까? 아네스 심판관.”
신관을 마주한 것은 짧은 갈색 머리와 가벼운 차림의 늘씬한 검사와 금빛 생머리를 뒤로 늘어뜨린 제복 차림의 여자, 그리고 그 둘 가운데에 선 신성사제 복장의 여성이었다. 검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에 그리 작지는 않은 키. 희고 고운 피부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검은 눈동자는 보기만 해도 시리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차가워 보였다.
심판관, 아네스 마리아나는 입을 열었다.
“이미 말씀드렸을 터입니다.”
낮고 차가운 목소리. 흔들림이 없는 눈이 신관을 향했다.
“유라 대신관, 당신은 면죄부를 빌미로 돈을 내면 죄를 사할 수 있다는 거짓 믿음을 주어 민중들을 선동한 혐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죄를 사할 수 있는 권능은 믿음의 권능이지, 재물의 힘이 아닐 터. 당신의 행위는 여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자 모욕. 본관으로 압송해 성전의 법으로 처리하겠습니다.”
유라 대신관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피곤하군. 이래서 세상물정 모르는 풋내기들은 곤란하단 말이야.”
그는 의자에 몸을 기대며 느긋한 얼굴로 아네스를 바라보았다.
“자네 말이 다 옳다고 치세. 그런데 자네는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기고만장하여 떠들고 있는 건가?”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유라 대신관 당신의 업무 이행을 위해 지급된 성이지요.”
“그럼 자신의 처지도 잘 알고 있겠군. 여봐라, 심판관님께서 돌아가신다는구나. 정중히 모셔드려라.”
그가 살짝 손을 들자 몇 명의 성기사들이 일행의 주위로 다가와 섰다. 무장한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무언의 압박감. 그들에게서 시선을 돌린 아네스의 무표정한 눈빛이 대신관을 향했다.
“심판관의 교권 행사를 무력으로 막는다……. 지금의 행위를 교단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라고 판단해도 되겠습니까?”
“하하하핫. 보자보자 하니 정말 오만한 계집이군. 뭘 하느냐? 어서 저들을 끌어내지 않고.”
명령을 받은 성기사들이 아네스 일행에게 다가왔다. 갈색 머리의 검사가 짧게 휘파람을 불었다.
“부하나 대장이나 말을 안 듣는군.”
검사는 머리를 긁적였다. 상대가 이렇게 나오니 손을 쓰지 않고는 안 될 모양이다.
갈색 머리의 검사, 맥스 듀오는 가볍게 손을 풀었다. 그리고 움직였다.
“그럼 운동 좀 해보실까?”
“크헉!”
성기사의 시야에서 갑자기 나타난 맥스가 복부를 무릎으로 찍어버렸다. 분명히 신성주문이 새겨져 있음에도 갑주를 넘어 전달되는 통증. 맥스의 일격에 얻어맞은 성기사의 몸이 활처럼 휘었다. 그 틈에 검을 뽑은 맥스는 성기사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하앗!”
“마, 막아!”
그러나 성기사들이 움직이는 것보다 맥스의 검이 날아드는 것이 더 빨랐다. 잔상이 보일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맥스의 검이 갑주로 보호되고 있는 성기사들의 손목을 노렸다. 그리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들의 무기는 모조리 바닥을 굴렀다. 고통에 손목을 부여잡은 그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무슨……?”
“홀리 스피어(Holy Spear).”
멍하게 선 기사들에게 빛의 창이 날아들었다. 놀란 그들은 황급히 홀리 실드를 펼쳤지만 빛의 창은 그들의 방패를 뚫고 들어가 폭발을 일으켰다.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한 성기사들 일부는 허공으로 튕겨나가고 일부는 바닥을 굴렀다.
“으아악!”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구르는 성기사들. 그들을 보며 맥스는 능글맞은 웃음과 함께 홀리 스피어를 발사한 손을 후 불었다.
“성력의 힘을 성력으로 막아내면 그때부턴 기싸움이지. 더 강한 성력을 가진 쪽이 이기게 되는 거라고. 신앙심부터 좀 키우시지.”
“…….”
성기사 중 하나가 몰래 눈치를 보며 맥스의 뒤를 노리고 섰다. 맥스는 한창 설교를 늘어놓느라 신경을 놓고 있었다. 성기사는 있는 힘을 다해 빛의 날개를 펼치며 등을 보인 맥스에게로 돌진했다. 그의 검이 눈부신 광채를 뿌렸다.
“각오해라!”
성기사는 미소를 지었다. 타이밍은 완벽했다. 제아무리 빠른 녀석이라고 해도 이런 속도로 날아드는 근거리의 일격은 피해 낼 수 없을 터.
그런데 왜…….
‘내 몸이 내팽개쳐지는 거지?’
“크아악!”
자신의 몸이 허공으로 팽개쳐지는 것을 느끼기가 무섭게 그는 바닥에 처박히며 정신을 잃었다. 그를 날려버린 것은 아네스 일행 중 한 명인 검은 제복을 입은 금발 머리 여인의 채찍이었다.
“아, 세레나. 땡큐.”
윙크하며 감사를 표하는 맥스의 모습에 세레나는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채찍을 거둬들였다.
“저돌적으로 덤벼들기만 하지 말고 침착하게 자기 주위부터 살펴라. 그래서 네가 단순하다는 소리를 듣는 거야.”
“누가 단순하다는 거야. 잠깐 방심 한 것뿐인데 너무하잖아.”
“이런 녀석들에게 틈을 보인다는 것 자체가 네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수준이라고 말해 주는 거다.”
“뭐야?”
적진 한가운데에서 언성을 높이며 옥신각신하는 두 사람. 그들을 포위하고 있던 성기사들은 자신들을 깎아내리는 세레나의 발언에 분노했다.
“이놈들, 까불지 마라!”
그것을 시작으로 홀 안에 있던 모든 성기사들이 세 사람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맥스와 세레나는 아네스를 중심으로 다가오는 성기사들을 향해 고속으로 움직였다.
앞에 달려드는 성기사의 얼굴을 주먹으로 쳐내며 맥스가 소리쳤다.
“그렇게 미운 소리만 골라 하니까 20년간 연애 한번 못 해본 노처녀가 되는 거라고.”
휘리릭.
새하얗게 물든 채찍이 성기사 하나의 목을 휘감아 뒤로 팽개쳤다. 채찍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다음 사냥감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못 한 게 아니라 안 한 거다. 그런 넌 그렇게 예쁜 짓만 골라 해서 23년 동안 동정이냐? 혹시 불능인 거 아냐?”
콰득!
맥스의 검이 성기사의 검을 깨부쉈다. 산산조각으로 터진 검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큭!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럴 리가 없잖아! 내 건 멀쩡하다고. 정 못 믿겠다면 시험해 봐도 좋아!”
성기사의 목을 휘감은 채찍에 힘이 들어간다. 목뼈가 꺾일 것 같은 충격에 성기사는 켁켁거리며 기침을 토했다. 세레나는 핏대가 오른 얼굴로 인상을 찡그렸다.
“변태 같은 자식.”
서로 티격태격하면서도 둘은 성기사들 사이를 휩쓸었다. 맥스의 검이 한번씩 움직일 때마다 성기사의 무기가 부서지거나 갑주가 찢겨져 나갔고 세레나의 채찍은 덤벼드는 성기사들의 날개를 꺾고 모조리 바닥에 눕혀버렸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홀 안에 움직이는 성기사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
“아니…….”
유라 대신관은 할말을 잃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는데도 믿어지지가 않는다. 1개 성기사단이 고작 두 명에게 당해 버리다니? 그에 반해 아네스 일행은 처음과 다를 것이 없는 모습이었다. 특히 두 일행에게 싸움을 맡긴 아네스는 그 자리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주위가 정리되자 아네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쓰러진 성기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도의 길에 빠져 이게 올바른지 아닌지도 모르는 자들. 당신들의 성기사 자격을 모두 박탈하도록 하겠습니다.”
순식간에 홀 안의 성기사들이 몽땅 강등되어 버리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려 유라 대신관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유라 대신관? 지금이라도 조용히 저희를 따라오시면 직권남용, 공무집행방해죄는 붙이지 않겠습니다. 죄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참회하신다면 상부에서도 가벼운 처벌을 내릴 것입니다.”
그 말에 다시 정신을 차린 대신관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네까짓 어린 풋내기가 감히 내게 설교를 하는 것인가?”
“옳고 그름을 따지는 데 나이는 상관없습니다.”
으득.
유라 대신관은 이를 악물었다. 자신에게 한마디도 지지 않는 도도한 어린 계집이라니. 지금까지 이런 수모는 당해 본 적이 없었다.
“설마 조그만 계집에게 이런 소리를 들을 줄이야. 하지만 기고만장하진 말거라. 비장의 카드는 아직 남아 있다.”
유라는 천천히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그의 몸을 중심으로 환한 빛이 일어나며 하늘 위로 올라갔다. 빛은 천장에 원형의 마법진을 그렸다.
마법진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성력을 느끼며 맥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저 영감 꽤 대단한 신성력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