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72
마염의 황제 072화
“저 주술은…….”
천상의 문이 열린다. 그리고 그 아래로 내려오는 금빛 찬란한 10인의 기사들. 그들은 성스러운 몸에 금빛 무구로 무장하고 악을 베는 기사들이었다. 세레나는 그 주술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빛의 기사단.”
고위 사제가 아니면 불러낼 수도 없다고 하는 천상의 기사들. 하나하나가 소드 마스터 하나를 상회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빛의 기사는, 불러낼 수 있는 숫자가 그 사람의 신성력 깊이와 맞먹는다고 전해졌다.
열. 결코 작은 수가 아니었다.
기진맥진해진 유라는 의자에 몸을 털썩 기대며 지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입가에는 미소가 어려 있었다.
“후후, 성기사들은 쓰러뜨렸다고 해도 이 빛의 기사들은 어떻게 쓰러뜨릴 것인가? 어쭙잖은 실력으로 훈계를 하려고 한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맥스가 검을 고쳐쥐며 휘파람을 불었다.
“빛의 기사라… 이건 위험하군. 고생 좀 하겠는데.”
“괜찮다. 우리가 나설 필요 없어.”
“엥?”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돌아보는 맥스에게 세레나는 가벼운 고개짓으로 아네스를 가리켰다. 무표정하게 가라앉아 있던 아네스의 눈동자가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맥스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검을 거두었다.
“아, 보스 타임이라는 말이군.”
물러나는 둘 사이로 아네스가 걸어나왔다. 빛의 기사단에게서 시선을 거둔 그녀는 유라 대신관을 엄한 목소리로 꾸짖었다.
“빛의 기사단의 광채는 여신의 거룩한 빛.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주어진 힘이 아닐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의 힘마저 능멸하려 하다니! 용서할 수 없습니다.”
빛의 기사들이 포진하고 있는데도 한치의 두려움도 없이 걸어오는 아네스를 보며 대신관은 혀를 찼다. 정말 당찬 계집이었다.
“흥. 겁 없는 계집 같으니. 적당히 물러가게 하려 했더니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그렇게 죽고 싶다면 원대로 해주마. 네가 좋아하는 그 여신의 힘으로. 쳐라, 빛의 기사들이여!”
아네스를 겁만 줘서 돌려보내기에는 이미 일이 너무 커졌다. 차라리 지금 제거하고 추후에 인맥으로 적절히 막아버리는 것이 최선이다.
유라의 명령을 받은 빛의 기사들이 아네스를 둘러싸고 검을 휘둘렀다. 다음에 벌어질 일을 생각하며 유라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의 미소는 짓는 것만큼이나 빠르게 사라져갔다.
“아니?”
빛의 기사들의 검은 아네스를 내리쳤다. 하지만 검은 아네스에게 닿지 못했다. 그들의 검이 허공에 멈춘 채 움직이지 않았다.
“어째서… 어째서 베지 않는 거지? 빛의 기사들이여, 어서 저 여자를 베어라!”
“아직 모르겠습니까, 유라 대신관?”
은은한 빛이 아네스의 몸을 감싼다. 유라 대신관의 성력이 거칠고 날뛰는 기운이라면 아네스의 것은 조용하고 부드러운 바람과도 같은 기운. 그 빛이 빛의 기사들의 몸을 부드럽게 감아올리고 있었다. 그 빛에 감싸인 빛의 기사들은 검을 내리치기는커녕, 오히려 검을 치우며 물러섰다. 아네스는 기막혀하는 유라를 보며 말했다.
“신은 진실로 믿음 있는 자를 위해서만 길을 열어주십니다.”
“마, 말도 안 돼. 네깟 일개 사제 녀석의 신성력이 나보다 더 높다는 말인가?”
당황하는 유라의 말에 아네스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수인을 맺었다.
“그럼…….”
조용하던 바람이 멈췄다. 그것을 시작으로 아네스의 주위에 폭발할 것 같은 진동과 함께 강렬한 빛이 폭사되어 터져나왔다.
“여신의 은총과 여신의 분노가 내 손에 거하니… 거짓된 빛의 사도들이여, 사라질지어다. 거룩한 십자가, 그 이름을 불러 가로되.”
아네스의 주문을 듣고 있던 유라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이건 설마… 설마!”
그리고 눈부신 빛의 십자가가 터져나왔다.
“그랜드 크로스(Grand Cross)!”
쿠오오오오!
터지듯이 뿜어져 나온 빛의 십자가가 홀의 천장을 깨부수며 하늘로 솟구쳤다. 그 빛은 주위에 서 있던 빛의 기사들을 집어삼키며 환하게 타올랐다. 그랜드 크로스에 삼켜진 빛의 기사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뒤를 잇는 거대한 빛의 폭발.
후에 기절한 유라 대신관이 정신을 차리고 본 것은 완전히 박살난 홀의 천장과 그 사이로 비치는 푸른 하늘. 그리고 그 아래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아네스의 얼굴이었다. 그녀가 조용하고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라 대신관, 당신을 신성모독 혐의로 체포하겠습니다.”
***
“또 잡혔다고?”
신성연맹의 대신전. 추기경 마드렐은 보고서를 접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깡마른 체격에 고집스러운 눈매를 가진 그는 계략과 편법으로 차기 교황 후보까지 올라간 남자로, 현재는 세력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 조심스럽게 면죄부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는 기가 막힌다는 듯 혀를 차며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이것 참. 이번 달에만 벌써 몇 번짼가.”
방 안에 모여 있는 사제 중 하나가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말도 마십시오, 추기경 예하. 그년 때문에 정말 죽을 맛입니다. 좀 제대로 수익을 올린다 싶은 곳마다 나타나서 훼방을 놓아대니…….”
모인 사제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옳다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네스 심판관의 최근 행태는 불쾌할 정도입니다. 면죄부 사업은 여신의 자비와 영광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사업이거늘. 일개 심판관 주제에 함부로 입을 놀리다니요.”
“말이 심판관이지, 이건 무슨 자기가 추기경이라도 된 양 행세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여우가 대체 교황을 어떻게 구워삶았기에…….”
“크흠!”
추기경 행세라는 말에 마드렐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헛기침을 했다. 그제야 사제들은 자신들이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제 말은 그게 아니라…….”
“됐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니.”
마드렐은 고민하는 얼굴로 턱을 쓰다듬었다.
“아네스 마리아나.”
확실히 불편하긴 한 여자다. 그렇지 않아도 현 교황이 그녀를 총애하고 있어 눈엣가시 같은 존재인데 이렇게 보란 듯이 활개를 치고 다니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차근차근 교황의 신임을 쌓아가고 있으니 지금 분위기라면 그녀가 추기경이 되지 말란 법도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추기경이 된다면 교황 자리를 놓고 상당히 귀찮은 라이벌이 될 위험이 있었다.
‘곤란한 상대로군. 늙은 꼰대들이라면 어떻게 돈으로라도 해결되겠지만 곧고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여자라…….’
융통성 없이 정공법으로 달라붙는 무식한 녀석들만큼 귀찮고 짜증나는 적도 없다.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하던 마드렐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주위 사제들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유라스 영지 쪽에서 마녀가 나타난다는 소문이 들리던데.”
사제들이 하나같이 머리를 조아리며 아부를 떨었다.
“그저 소문입니다. 우매한 백성들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 예하께서 신경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 아니… 환상이라고 해도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지.”
손을 젓는 마드렐의 말에 사제들은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뜻이신지?”
마드렐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아네스 마리아나. 그녀에게 이 마녀를 던져주겠다. 곧고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여사제. 그녀가 사람들을 해치고 공포에 떨게 만들고 있는 마녀를 맡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후후. 아마 십중팔구 녀석을 잡겠다고 덤벼들겠지. 그리고… 이 마녀가 녀석을 찍어내리게 될 것이다.”
모인 사제들은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오직 마드렐만이 흡족한 얼굴로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생각하며 미소 짓고 있었다.
“흐흐흐흐… 기대되는군.”
***
다음 날 이른 아침, 대신전 사제들의 숙소 아네스의 방.
“마녀 토벌이라고요?”
아직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맥스가 입을 열었다. 여행 채비에 분주한 아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아침에 명령서를 하달 받았다. 준비가 끝나는 대로 녀석들을 찾아 떠난다.”
“아무리 그래도 돌아온 다음 날에 갑자기 임무라니……. 누굽니까, 그 마녀는?”
대답은 세레나가 해주었다.
“로자리아 림 아슈벨. 최근 2주간, 여섯 개의 마을을 파괴하고 1,500에 달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힌 마녀. 신고를 받고 출동한 레이핌 1개 부대를 격퇴한 뒤로 현재 행방이 묘연한 상태.”
맥스는 놀랍다는 듯 휘파람을 불었다.
“헤, 2주 만에 1,500을? 게다가 성기사 1개 부대 격퇴라니… 대단한 마녀네. 그 정도면 기사단 하나 정도는 지원 나오겠구만.”
그러나 맥스의 기대와는 달리 아네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지원부대는 없다.”
“네? 어째서요?”
“상부에서는 이 일이 퍼져나갈 경우, 군중들의 불안이 극대화될 것이라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임무는 비밀리에 처리한다. 비밀 임무에 부대를 끌고 간다는 건 어불성설이지. 임무는 단신으로 수행. 물론 너희 둘도 제외된다.”
“뭐라고요?”
맥스는 어이없다는 듯 소리쳤다. 세레나도 그것만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네스님,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그 정도로 일을 벌였다면 평범한 마녀가 아닙니다. 그런 마녀를 토벌하는 임무를 혼자서 수행한다니. 정보에 의하면 그 마녀는 강력한 힘을 가진 종자들도 거느리고 있다는데…….”
“상부의 명령이다.”
“하지만…….”
저렇게 단호하게 말하니 할말이 없는 세레나였다. 하지만 맥스는 납득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말도 안 돼, 이건. 뻔히 보인다고. 또 마드렐 그 영감의 술수가 분명해. 마녀를 핑계 삼아서 아네스님을 찍어내려는 수작이야.”
“그렇습니다, 아네스님. 재고를…….”
“둘 다 말이 지나치다. 추기경 예하의 신분은 우리보다 위일 터. 어찌 그 이름을 함부로 읊는 것이냐.”
아네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녀의 시선이 자신들을 향하자 맥스와 아네스는 움찔했다.
“그리고 이것은 신께서 내게 부여한 신성한 임무. 민중을 짓밟는 악을 물리치고 신의 율법을 바로잡는 거룩한 임무다. 내게서 그 보람을 빼앗을 생각인가?”
“그게 아니라…….”
어떻게든 마음을 돌리려는 두 사람이었지만 아네스는 더 이상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다시 시선을 돌린 아네스가 조용히 명했다.
“알아들었다면 물러나라.”
아네스의 축객령에 맥스와 세레나는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복도에 기댄 맥스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투덜거렸다.
“아네스님은 정말 융통성이 없다니까. 대체 무슨 여자가 저렇게 황소고집이람. 뭐, 가슴은 커서 좋긴 하…….”
퍼억.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세레나의 펀치가 맥스의 안면에 적중했다. 그녀는 한심하다는 눈으로 맥스를 바라보았다.
“이런 때에 어디서 불경한 소리를 읊는 거냐! 변태 놈.”
“보내드리는 게 어떻습니까? 아네스님이 저렇게 즐거워하시는데.”
난데없이 둘 사이에 끼어드는 목소리.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40대를 조금 넘긴 외모에 인자한 표정이 인상적인 사제가 서 있었다. 맥스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