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73
마염의 황제 073화
“레이아크 사제님.”
“오랜만입니다, 두 분.”
레이아크. 그는 12인의 신성사제 중 하나인 남자로, 맥스와 세레나에게는 대선배 격인 인물이었다. 항상 웃는 표정을 지우지 않아 곁에 있는 사람을 푸근하게 만들어주는 사람. 반면 늘 웃는 얼굴이기에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인물이기도 했다. 확실한 것은 아네스의 편이라는 사실이었지만…….
세레나는 레이아크의 말이 못마땅한지 눈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당신까지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그냥 보아도 함정인 것이 눈에 보이는데 아네스님을 사지로 가게 내버려두란 말입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막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능청스럽게 말하는 레이아크. 그 말이 틀린 것이 아닌지라 세레나는 할말을 잃었다.
“그건 그렇지만.”
레이아크는 느긋한 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말했다.
“세레나 사제. 지키는 것이 꼭 곁에 있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엥? 무슨 소리야?”
무슨 말인지 몰라 눈을 껌뻑이는 맥스. 하지만 세레나는 레이아크가 하고자 하는 말의 요지를 파악했다. 그녀의 눈이 짧게 반짝였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레이아크는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나타날 때처럼 조용히 복도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럼 저는 이만.”
그 인사를 끝으로 레이아크는 그대로 복도 너머로 사라져갔다. 그가 사라지자 세레나도 곧장 반대쪽 복도로 걸음을 옮겼다. 오직 맥스만이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겠다는 얼굴로 둘을 번갈아 바라보다 세레나의 뒤를 쫓았다.
“어이, 이봐. 둘이서만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응? 나도 가르쳐줘.”
“근육으로 뭉친 뇌를 풀면 간단히 이해되는 이야기다.”
“뭐야?”
“그것보다 서둘러라.”
세레나가 맥스를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
“아네스님이 떠나기 전에 여행 준비를 하려면 시간이 부족할 테니까.”
“뭐?”
세레나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맥스가 허겁지겁 뒤를 따랐다.
“이봐, 설명은 제대로 하고 뭘 하라고 해야 할 거 아냐? 이봐!”
꼭 곁에서 지키지 않아도 된다. 그 말의 요지는 간단했다. 아네스가 마녀 토벌을 위한 여행을 떠나면 자신들은 그녀의 뒤를 몰래 따라가 지켜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혼자서도 무사히 처리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것이고 위험에 부딪히게 되면 자신들이 구해 주면 된다. 다행히 자신들에게는 지금 특별한 임무가 할당되어 있지 않으니 아네스의 뒤를 쫓는 데 무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네스를 지킬 방법을 찾았음에도 세레나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대며 미간을 좁혔다.
‘뭐지? 이 가슴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불길함은…….’
뭔가 불길한 일이 벌어질 것 같다. 그녀는 그때 그렇게 느꼈다.
그녀의 불길함은 머지않아 현실로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그날 오후. 마침내 심판관, 아네스는 마녀, 로자리아와 그의 종자들을 토벌하기 위한 사명을 띠고 출발했다.
***
그로부터 다시 열흘의 시간이 지났다.
유라스 영지 클라우드로 들어온 로자리아 일행은 루시펠의 정보를 찾기 위해 여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루시펠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는 하나도 건질 수 없었다. 생각했던 대로 루시펠의 단서가 너무나 적었기 때문이다. 펜릴도 아직 루시펠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지 못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으나 정보는 제로. 루시펠을 찾는 일행의 여행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대신, 가는 곳마다 로자리아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다. 전설 속의 악의 마도사의 환생이라는 소문에서부터 노처녀 히스테리가 극에 달한 여자일 거다, 머리가 세 개에 꼬리는 아홉 개라는 등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다.
물론 그것이 전부 이조르네의 공작이었지만 그걸 아는 사람들이 있을 리가 없다. 로자리아만 열 받는 일이었다.
활기 넘치는 마을 거리를 걸으며 엘리스가 밝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마을에서는 아무도 못 알아보는 거 같은데요?”
곁에서 론도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네요. 모처럼 마음 편하게 다닐 수 있게 되었군요. 진작 이 방법을 쓸 것을 그랬네요.”
그동안 가는 마을마다 로자리아의 얼굴을 알아보고 덤벼드는 병사들과 도망치는 마을 사람들을 수습하느라 골머리를 많이 썩은 일행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자신들이 마녀, 로자리아의 일행이라는 것을 알아보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딱 한 명 불만인 사람이 있기는 했지만.
“다 좋은데 말이야…….”
일행 가운데에 선 로자리아가 딱딱한 표정으로 얼굴을 굳혔다.
“어째서 내가 이런 복장을 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로자리아의 복장은 확 달라져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마녀가 아니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남장. 로자리아는 남자용 가발을 쓰고 바지를 입었다. 가슴은 복대를 채워 납작하게 만들어 달라붙는 셔츠를 입었다. 그렇게 꾸며놓고 보니 20대 초반의 청년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정작 본인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그레이센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어쩔 수 없다. 이미 네 얼굴이랑 이름이 다 팔려버린 덕에 작은 마을에도 들어갈 수 없게 됐단 말이다. 불편하기 짝이 없게 말이지.”
“가는 마을마다 어새신들을 끌어들이는 네가 할 소리야?”
불퉁해하는 로자리아. 론이 그녀를 위로했다.
“괜찮습니다. 요즘 같은 유니섹스 시대에 뭐 어떻습니까. 그런 모습으로 계시니 오히려 더 섹시해 보이는걸요.”
“그, 그래?”
일행은 놀란 눈으로 론을 돌아보았다. 론이 이런 여성 취향이었나. 아니면 내시라서 그런지도…….
론은 자신도 모르게 기분이 나빠져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로자리아는 가슴을 만지작거리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이 가슴의 복대는 정말 답답한걸.”
그레이센이 웃으면서 로자리아의 어깨를 쳤다.
“하하, 원래 거의 없던 절벽가슴인데 뭘 걱정하느…….”
말하던 그레이센과 로자리아의 시선이 마주쳤다. 살기가 번뜩이는 로자리아의 시선을 느끼며 그레이센은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그러나 수습할 시간은 없었다. 펑 하는 경쾌한 폭음과 함께 새카맣게 탄 그가 하늘로 튕겨올랐다.
“크허억!”
“왕자님!”
으드득.
허겁지겁 그레이센을 수습하는 론을 뒤로하고 로자리아는 쥐고 있던 부채를 손으로 쥐어 으스러뜨렸다. 지금 이런 취급을 당하는 것도, 이렇게 불편한 모습으로 돌아다녀야 하는 것도 모두 한 녀석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녀는 건방진 여마법사의 얼굴을 떠올리며 으르렁거렸다.
“이. 조. 르. 네……. 잡히기만 해봐. 절대로 가만 놔두지 않겠어!”
정말 전생에 무슨 원수가 졌기에 사람 속을 이렇게 긁어놓는단 말인가.
로자리아의 하는 양을 지켜보던 이터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데 가슴이 없는 게 왜 이조르네 탓이냐?”
“시끄러워!”
로자리아는 투덜거리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다음에 마녀의 탑을 세우면 가슴 확대용 약이라도 만들어야겠다고 굳게 다짐을 했다.
“일단 쉴 자리나 알아보자. 요 근래에는 제대로 쉬지도 못했었으니까. 일단 여관부터 잡고 보자고.”
그렇게 일행이 이동하려 할 때였다.
“……?”
이터는 순간 자리에 멈춰섰다. 바람을 타고 뭔가 따스한 기운이 흘러 들어온다.
‘뭐지? 이 따뜻한 느낌은.’
“왜 그래요, 이터 씨?”
일행이 떠나는데 이터 혼자 멍하니 서 있자 엘리스가 불렀다. 저 먼 곳을 향해 시선을 던지고 있던 이터가 고개를 돌렸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이터는 다시 일행의 뒤를 따랐다.
***
휘이이.
조용히 주위를 밝힌 빛이 걷혀갔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완전히 마비되어 앉은뱅이로 살아가고 있던 아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환한 얼굴로 소리쳤다.
“와아, 나았다. 다리가 나았어.”
“세상에. 저 앉은뱅이의 다리가 멀쩡하게 낫다니.”
“사제님, 저도 봐주십시오.”
“저도, 저도 봐주세요!”
“비켜. 내가 먼저 왔단 말이야.”
클라우드 마을의 구석진 자리는 한창 인파로 바글바글했다. 병자들의 몸을 낫게 해주는 사제가 나타났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신전에 낼 돈이 없어 평생 제대로 된 성직자에게 치료도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바글바글하지 않는 것이 신기할 일이었다. 그들의 앞에서 검은 머리의 여사제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천히 차례를 기다리세요. 아직 시간은 많이 있습니다.”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를 가진 그녀는 바로 심판관 아네스였다. 마녀, 로자리아의 토벌을 명 받은 그녀는 그들을 쫓아 여기까지 흘러온 것이다.
원래 비밀 임무에 이렇게 남의 눈에 띄는 짓을 하면 곤란하겠지만 아픈 사람들을 가만히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그녀는 군소리 없이 마지막 한 사람까지 친절히 치료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사제님. 이거 얼마 되지는 않습니다만.”
병이 낫자 밝아진 표정의 마을 사람들이 아네스에게 사례비를 내밀었다. 하지만 그녀는 생각할 것 없다는 듯이 단번에 뿌리쳤다.
“저는 신의 섭리를 행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에 사례는 필요없습니다. 그럼 이만…….”
“잠시만요, 사제님!”
따라오는 이들을 뿌리친 아네스는 마을의 거리를 걸었다. 벌써 일주일. 하지만 녀석들의 다음 목표는 물론, 마녀에 대한 그럴싸한 정보도 얻지 못했다. 그나마 알아낸 사실은 단 하나.
‘녀석은 서쪽으로 향하고 있다.’
조사를 시작한 뒤에 그녀가 가장 먼저 알아본 것은 로자리아라는 마녀의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로자리아가 최초 범행을 저지른 곳을 기점으로 유라스 영지의 서쪽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래서 이곳으로 급한 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예상이 맞는다면 다음에 로자리아가 노릴 곳은 이 근방일 확률이 높았던 것이다.
“이런 평화로운 곳에 마녀라니.”
마을은 활기로 넘치고 있었다. 길가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하늘은 푸르고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하늘이군.”
아네스는 나지막하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교도들을 화형시키기에 좋은 날이야.”
“저런 무서운 말을 태연스럽게 담고 있으니까 심판관님께선 지금까지 남자친구도 하나 없는 거라고.”
어디선가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목소리. 아네스는 고개를 돌렸다.
“누가 있나?”
하지만 시선이 닿는 자리에 자신을 보고 있는 이는 없었다.
“잘못 들었나?”
아네스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다시 고개를 돌리며 상념에 빠졌다. 그녀가 걸음을 옮기자 뒷골목의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세레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하마터면 들킬 뻔했군. 멍청한 남자 같으니. 목소리가 너무 크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