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75
마염의 황제 075화
마녀 복장의 여인이 손을 내밀며 명령했다. 그러자 성기사들은 일제히 광채를 뿌리며 아네스에게 달려들었다. 눈부신 검이 허공에 수를 놓았다.
“한 가지 착각하고 있는 게 있군요.”
퍼어억!
난데없이 날아든 강력한 힘이 성기사들의 가슴을 후려쳤다. 갑옷을 찢으며 날카로운 창이 그들의 몸을 꿰뚫었다. 기세 좋게 달려들던 성기사들의 대열이 무너지며 뒤로 나가 떨어졌다.
하지만 정작 아네스는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곁에 그녀와 똑같은 키의 여전사가 거대한 창을 들고 서 있었다. 아네스가 말했다.
“저는 혼자가 아니랍니다.”
“그것은?”
마녀 복장의 여인이 얼굴을 굳히며 물었다. 아네스는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신성력으로 만들어내는 분신, 미라주 나이트. 그 실력은 시전자의 신성력과 비례한다고 하지요. 어느 정도의 실력인지 한번 시험해 보시겠습니까?”
아네스의 분신, 미라주 나이트가 움직였다. 고속으로 돌진한 그녀가 성기사들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큭. 막아라!”
“홀리 실드!”
동료들이 당하는 것을 눈으로 보았기에 성기사들은 재빨리 빛의 방패를 펼쳐 막았다.
콰아앙!
창이 방패에 부딪히는 순간, 엄청난 충격이 성기사들을 흔들었다. 하지만 여럿이서 펼쳐내는 빛의 방어막은 아무리 아네스의 분신이라고 해도 뚫을 수 없었다.
미라주 나이트의 창이 튕겨져 나가는 것을 보며 성기사들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을 놓은 덕에 물러나는 미라주 나이트의 뒤에서 솟아나오는 아네스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빛나는 아네스의 검이 허공에 궤적을 그렸다.
“커헉!”
그녀가 그리는 궤적을 따라 성기사들의 머리가 하늘로 튀어올랐다.
무너지는 성기사들의 몸뚱이 앞으로 내려서며 아네스는 검에 묻은 피를 바닥을 뿌렸다.
“미라주 나이트는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한 돌진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정도의 힘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빠른 속도를 바탕으로 한 쾌검술을 사용할 수 있지요. 이 둘의 힘을 합친다면 어느 쪽이 유리할까요?”
“크윽. 뭘 하나! 상대는 고작 둘뿐이지 않나. 어서 공격해!”
성기사들은 아네스를 포위하고 성력을 모았다. 홀리 스피어. 수백 명의 성기사들이 만들어내는 수천 개의 홀리 스피어가 아네스와 미라주 나이트를 가운데에 두고 쏟아져 나왔다. 사방이 빽빽이 포위된 지금, 이렇게 엄청난 숫자로 쏟아지는 공격을 피해 내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아네스는 조금의 당혹스러움도 없이 신성력을 전개했다.
“홀리 월(Holy Wall).”
쿠오오오!
그녀의 주위를 감싸며 거대한 빛의 벽이 일어났다. 그리고 동시에 수천의 홀리 스피어가 빛의 벽과 부딪히며 폭발을 일으켰다.
마을 전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진동. 하지만 홀리 스피어는 단 하나도 홀리 월을 뚫지 못했다.
“이, 이럴 수가! 이 많은 이들의 신성력을 혼자서 받아내다니!”
아네스는 경악하는 성기사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무래도 당신들의 믿음은 그리 깊지 않은 듯하군요.”
화르륵.
이글거리는 불길이 아네스의 손 위에서 타올랐다. 새하얗게 빛나는 성령의 불길. 홀리 플레어(Holy Flare). 그 주문이 무엇인지 알아본 성기사들의 얼굴은 불길만큼이나 새하얗게 질렸다.
아네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안심하십시오, 모조리 죽이지는 않겠습니다. 당신들의 행위에 대한 설명과 조사가 필요할 테니까요.”
“큭! 피, 피해라!”
성기사들은 급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홀리 플레어는 아마 아네스의 손길을 떠난 뒤였다. 그리고 뒤이어 거대한 폭발이 마을을 뒤흔들었다.
***
같은 시각, 이터 일행 역시 에이다 마을에 들어서고 있었다. 을씨년스러운 마을의 분위기에 로자리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이 마을은? 아무도 없는 건가?”
사람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엘리스가 입을 열었다.
“마녀가 온다는 소문을 듣고 벌써 다들 도망친 건 아닐까요?”
“아니다.”
이터가 주위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을을 보는 그의 표정이 어두웠다.
“이 마을에는 죽음의 기운이 가득하다. 여기 있는 사람들 이미 모두 죽었다.”
“그런…….”
그레이센은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정오는 지났다. 거기다가 이런 오싹한 적막이라니……. 마을 사람들이 모두 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는걸.”
그렇다면 이미 자신들은 한 발 늦었단 말인가. 가즈 블레이드가 적막을 깨뜨리며 수선을 떨었다.
“아우, 음침해. 난 이런 데는 질색이야. 끝났으면 빨리 돌아가자고.”
“쳇, 이조르네 녀석들…….”
로자리아는 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또다시 자신만 덤터기 쓰게 생겼다.
쿠르르르.
그때, 거대한 진동이 마을을 뒤흔들었다.
“뭐, 뭐야, 이건?”
“저길 봐요!”
엘리스가 가리킨 곳에서 새하얀 불기둥이 치솟고 있었다. 마을을 뒤흔드는 힘의 정체는 저것인가?
“가보도록 하죠!”
빛의 불기둥이 솟아오른 곳은 마을 광장 방향이었다. 일행은 서둘러 광장으로 달려갔다.
광장에 도착한 일행의 눈에 들어온 것은 폐허가 된 광장과 빛의 검을 휘두르는 기사들, 그리고 그에 맞서고 있는 두 여인이었다.
“뭐지, 저 녀석들은? 이조르네가 아니잖아.”
“여자 둘을 몰아넣고 싸우고 있는데요?”
환하게 빛나는 빛 무리 속에서 드러나는 푸른 문장. 순백의 갑주와 그들의 모습은 일행에게도 낯익은 모습이었다.
“녀석들… 레이핌이야.”
“레이핌? 그 성기사단?”
일행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이조르네는 어디로 가고 웬 여자를 성기사들이……?”
마녀로 오인한 것일까? 하지만 로자리아와는 닮지도 않았는데? 이런저런 의문을 다 제쳐둔다고 해도 도대체 성기사단과 단 두 명으로 팽팽히 맞서는 저 여자들은 도대체 뭐 하는 여자란 말인가?
“로자리아, 저걸 봐.”
“저건?”
이터가 가리킨 곳. 거기에는 성기사들을 지휘하는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는 로자리아와 쏙 빼닮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나잖아.”
이조르네는 아니었다. 그런데 더 더욱 이상한 것은 성기사들이 마녀를 잡으러 나타난 거라면 이 여자를 공격하고 있어야 할 텐데 신경도 쓰지 않고 오히려 그녀의 명령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터무니없는 생각을 한 로자리아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그럴 리가. 지금 내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 이조르네가 아니라 성기사 녀석들이란 말이야?”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해가 되지 않는 로자리아였다. 그러는 사이, 순백의 광채를 뿜어내는 아네스의 검이 성기사들의 베었다.
이터는 미간을 좁혔다.
“저 여자…….”
아네스에게 뻗어나오는 기운은 느낀 적이 있다. 어제 오후, 클라우드 마을에서 느꼈던…….
“크윽.”
쿠당탕!
또 한 명의 기사가 바닥을 굴렀다. 홀리 플레어 덕분에 전력은 반으로 줄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들은 결코 작은 수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몰아치며 공격했는데도 아네스의 몸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그녀의 사제복 여기저기가 붉게 물들었지만 그것은 그녀의 피가 아니었다. 그녀의 분신도 마찬가지였다. 약간 지친 얼굴이었지만 아네스는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기사들을 노려보았다.
“마을 사람들을 살해하고 마녀의 무리로 꾸며 심판관을 음해하려고 한 죄! 심판관의 권한으로 지금 이 순간부로 당신들의 성기사 자격을 박탈합니다.”
“살해라니? 우리는 이단들을 심판한 것뿐이다. 그리고 당신의 권한이 목이 떨어진 뒤에도 위력을 발휘할지? 뭣들 하나, 어서 쳐라!”
성기사들은 다시 아네스에게 달려들었다. 숨어서 그 싸움을 지켜보던 이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터?”
“저 상태로는 오래 못 버틴다. 구하러 가자.”
로자리아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무슨 소리야? 저 엄청난 숫자의 성기사들 안 보여? 지금 저렇게 많은 녀석들이랑 싸우겠다는 거야?”
“무슨 목적인지는 몰라도 성기사들은 너로 꾸미고 이런 일을 벌였다. 아마 이대로 저 여자가 당해 버리면 이 일도 네가 한 걸로 되겠지.”
로자리아는 악을 썼다.
“내가 안 그랬어!”
“그러니까 구하자는 거다. 저 여자는 네가 결백하다는 증거가 될 테니까.”
이터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성기사들이 무슨 계략을 꾸미고 있는 건지는 모르지만 저 여자까지 당하고 나면 이 마을의 참사도 고스란히 자신이 뒤집어쓸 판이다. 그렇게는 안 된다. 로자리아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아, 성기사 놈들. 단번에 날려버려 줄 테다!”
“로자리아 씨… 기합이 단단히 들어갔네요.”
그레이센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단순한 여자라니까.
***
투화아악!
“크악!”
미라주 나이트의 창이 성기사의 홀리 실드를 찢었다. 창에 꿰뚫린 기사는 바닥에 축 늘어진 채 일어나지 못했다.
“후우.”
아네스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지쳐가고 있었다. 개개인의 실력은 자신에게 미치지 못했지만 수가 너무 많았다. 더군다나 성기사들 절반을 쓸어버리기 위해 사용한 홀리 플레어의 후유증은 꽤 컸다. 거기다 미라주 나이트를 유지시키는 데 신성력이 계속 소모되고 있었다. 강력한 성력을 보유한 사제라고는 하지만 그 신성력은 무한이 아니었다.
점점 숨이 차고 검 끝이 무디어졌다. 그녀의 몸의 변화는 즉시 미라주 나이트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공격을 받지 않았던 미라주 나이트의 몸에 하나둘 생채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역시 혼자서 이 많은 성기사들과 맞서싸우는 것은 무리였나.’
맥스와 세레나가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겠지만 지금 자리에 없는 그들에게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패는…….
‘그랜드 크로스뿐인가.’
엄청난 신성력을 뿜어내 적을 멸하는 대신성주문.
하지만 섣불리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랜드 크로스처럼 한 번에 성력을 쏟아내는 기술은 큰 빈틈을 내어놓기 때문. 일격필살에는 유용할지언정 이렇게 다수와의 싸움에서 아무렇게나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었다. 물론 상대 역시 그것을 모르고 있진 않았다.
“왜 그러시나요, 심판관님? 빛의 기사들도 날려버린다는 그랜드 크로스를 보여주시지 그래요?”
마녀 복장의 여인이 이죽거렸다. 아네스에 대한 정보는 알고 있다. 물론 그랜드 크로스도. 대열을 지금처럼 나누어 공격한 것을 그것을 막기 위함이다. 함부로 쓸 수도 없겠지만 쓴다고 해도 앞줄의 희생을 감수하면 틈이 생긴 직후에 바로 반격할 수 있다. 조금 죽기야 하겠지만 대의를 위해 그 정도도 감수하지 못하겠는가.
‘이렇게 되면 일단 어떻게든 돌파구를 만들어서 이 자리를 피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 자리에서 소모전으로 계속 싸워나간다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탈출해서 이 사태를 상부에 알리지 않으면 안 된다. 미라주 나이트의 돌진력을 이용하면 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