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77
마염의 황제 077화
찢어진 미라주 나이트 뒤로 아네스가 튀어나왔다. 전광석화처럼 날아드는 검이 이터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문답무용! 마도의 무리와 더 이상 할 이야기는 없다.”
카아앙!
둘의 검이 다시 부딪히며 굉음을 토했다. 접근전을 시작한 둘의 검이 무서운 속도로 서로를 쳐내고 공격하고 막았다. 눈부실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참격들을 보며 다른 일행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소환, 타이탄 브레이커.”
카아앙!
타이탄 브레이커로 기간틱 블레이드를 쥔 이터가 아네스를 크게 베었다. 아네스는 검으로 막았지만 타이탄 브레이커의 힘까지 더해진 위력을 받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녀의 검이 충격을 이기지 못해 허공으로 튕겨져 나갔다.
주춤하는 아네스. 이터는 그대로 타이탄 브레이커를 휘둘렀다. 아네스는 재빨리 주문을 외웠다.
“홀리 월(Holy Wall)!”
콰아앙!
타이탄 브레이커가 빛나는 벽에 작렬했다.
하지만 주먹은 벽을 뚫지 못했다.
“타이탄 브레이커를, 저 주먹을 막았어?”
“걸렸구나.”
아네스는 미소 지었다. 그녀는 이터가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깊숙이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네스의 앞에서 새로운 미라주 나이트가 생겨나 창을 찔렀다. 제로의 거리. 창은 그대로 일직선으로 뻗어나가 이터의 등 뒤로 비죽이 튀어나왔다.
“이터 씨!”
“아니!”
아네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터는 창에 꿰뚫리지 않았다. 겨드랑이로 비껴내고 있었다.
굳은 아네스의 얼굴을 마주하며 이터는 히죽 웃었다. 타이탄 브레이커는 창을 날리기 전에 미라주 나이트의 머리에 박혀 있었다.
“키아!”
콰앙!
마치 폭죽이 터지듯이 폭발하며 사라지는 미라주 나이트.
물러나는 아네스의 목에 기간틱 블레이드가 닿았다. 이터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이겼다.”
“…….”
아네스는 말이 없었다. 그녀는 포기한 듯 눈을 감았다.
“지금 마도의 무리가 강대해 내 비록 이기지는 못했지만 또 다른 이들이 뒤를 이을 것이다. 너희의 악행도 계속되지는 않을 거야. 어서 쳐라.”
하지만 이어지는 날카로운 고통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목에 닿은 블레이드의 감촉이 사라졌다. 이터가 검을 거둔 것이다. 아네스는 돌아서는 이터를 보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뜻이지? 동정인가?”
“넌 다른 마을은 몰라도 로자리아가 적어도 이 마을 사람들은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해 줄 증인이다. 설마 그렇게 신에 대한 믿음이 크다는 자가 거짓말을 하진 않겠지.”
아네스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어째서지? 이 마을에서의 일을 무마시켰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냐. 너희가 악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데 왜?”
“그쯤 해두세요. 저희는 정말 악한 무리가 아니랍니다, 사제님.”
휘이이.
따스한 빛이 아네스의 앞에 어른거렸다. 론이 펼친 신성력의 빛이었다.
“당신은?”
“페이샨 왕국의 신관입니다. 비록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저도 여신을 믿고 있는 사람이랍니다.”
강하지는 않다. 하지만 분명히 순수한 신성력. 저 정도의 빛은 거짓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네스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째서 당신 같은 사람이 이런 자들과 함께 있는 것이죠?”
“하하… 그, 그건 뭐… 사정이 있어서지만.”
론은 웃으며 말했다.
“확실히 로자리아님… 악독한 면도 없잖아 있는 분이지만 악랄한 마녀는 아닙니다. 제가 보증하지요. 그러니 오해는 푸시고 저희를 그냥 보내주시지 않겠습니까?”
“누가 악독하다는 거야.”
아네스는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마녀인데 악독하지는 않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적어도 신의 말을 계율로 삼아 살고 있는 그녀에게는. 그녀는 짐짓 무서운 얼굴로 론을 노려보며 말했다.
“마녀를 두둔하다니 당신도 타락한 신관인 것입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호호호. 정말 꽉 막힌 사제로군. 그렇죠, 로자리아님?”
간드러지는 웃음소리가 허공에서 들려왔다. 아네스를 포함한 모든 이의 시선이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광장에서 조금 떨어진 반쯤 무너진 건물. 그 위에서 네 명의 인형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일행이 잘 알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었다.
“루시펠 나이츠!”
이조르네가 로자리아에게 웃으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로자리아님? 미천한 저희의 이름을 다 기억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호호호.”
“저들은?”
하나같이 사악한 기운을 풍기는 이들의 등장에 아네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렇게 대놓고 불길한 기운을 뿌리는 이들은 처음이다. 이터가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여기엔 뭐 하러 나타난 거지?”
“어머, 어머…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마세요. 저희도 좋아서 나타난 건 아니랍니다. 세상에 어떤 시건방진 녀석들이 로자리아님의 흉내를 내고 있다는 소리가 들리지 않겠어요? 그래서 구경 좀 하러 왔는데……. 호호, 벌써 다 끝나버려서 말이죠. 그래서…….”
탁.
이조르네는 부채를 접으며 씨익 웃었다.
“뒷정리나 좀 할까 해서요.”
콰아앙!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쓰러진 성기사들 사이로 여러 개의 거대한 불기둥이 솟았다. 불길은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성기사들의 몸을 태워버렸다.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막을 수도 없었다. 순식간에 광장의 성기사들은 모두 재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무슨 짓을 하는 거냐!”
휘잉!
보다 못한 아네스가 홀리 스피어를 만들어 던졌다. 살짝 고개를 돌려 창을 피한 이조르네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슨 짓이냐니……. 아깝잖아. 멋대로 우리 아이디어를 훔친 건 괘씸하지만 그건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모처럼 로자리아님의 악명이 높아질 찬스인데 이 녀석들이 살아 있으면 방해가 되지 않겠어. 일종의 증거인멸이랄까?”
“뭐라고?”
아네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로자리아에게 ‘님’ 자를 붙이며 장난을 치는 사악한 기운의 존재들. 이 일행과 분위기를 보건대 그들이 아는 사이라는 것은 자명했다.
하지만 ‘우리 아이디어를 훔쳤다’와 ‘증거인멸’은 무슨 의미지?
“설마…….”
“그래.”
아네스의 생각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이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녀석들이 바로 우리를 사칭해서 네가 말한 짓을 저지른 마녀 무리다.”
“……!”
아네스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 말대로라면 이 꼬마와 신관의 말대로 로자리아에게는 정말 아무 죄가 없다는 것인가?
이조르네가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딩동! 정답입니다. 그럼 여기서 퀴즈! 마녀의 예고장과 파괴된 마을, 로자리아님들을 빼고 모두 없애버리면 사람들은 누가 범인이라 생각할까요?”
화아악!
이조르네가 가볍게 부채를 퉁겼다. 그러자 날카로운 불의 꼬챙이가 아네스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아네스야말로 그들이 제거할 마지막 증거였던 것이다.
“그만둬!”
어느새 아네스의 앞으로 온 이터가 기간틱 블레이드로 불의 꼬챙이를 베었다. 그리고 잘린 꼬챙이가 흩어지기 무섭게 이터는 왼손에 불꽃을 맺어 휘둘렀다. 7서클의 위력을 넘어서는 거대한 폭염구가 대폭발을 일으키며 루시펠 나이츠가 선 자리를 날려버렸다.
하지만 루시펠 나이츠는 이미 그 자리를 피해 다른 곳에 내려선 뒤였다.
모자를 눌러쓴 쉐드가 손부채로 얼굴을 부쳐댔다.
“휘이! 뜨거워, 뜨거워. 언제 봐도 열혈적인 녀석이라니까, 이터는.”
“이런! 아무래도 이터님께서는 우리가 뒷정리하는 게 마음에 안 드시는 모양인데……. 어떻게 할까? 오랜만에 실력들이 얼마나 올라갔는지 테스트해 드릴까?”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베가스였다. 그는 투지에 불타는 눈으로 외쳤다.
“이터는 내 거다!”
쉐드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네, 그렇게 하시죠. 그럼 나는 누구……?”
상대를 막 고르려는 찰나,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앞으로 날아들었다. 쉐드는 급히 몸을 틀어 자리를 피했다. 예리하게 날아든 검기의 주인을 파악한 쉐드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훗, 이것 참, 고르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겠군.”
쉐드의 앞에 선 것은 바로 그레이센이었다. 그가 날카롭게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저번엔 추태를 부렸군. 오늘은 그렇게 쉽진 않을 것이다.”
“네, 네, 그렇길 빌어야죠.”
쉐드는 미소 지으며 소환을 준비했다.
“그럼 시작해 보실까?”
쉐드의 상대는 그레이센으로 정해졌다. 올가를 맡은 것은 엘리스였다.
“소류 씨가 없으니… 오늘은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여자라도 저 강하니까 각오하시라구요.”
“크앙.”
이조르네는 로자리아의 앞으로 내려서며 미소를 지었다.
“어머, 이쪽은 황송하옵게도 로자리아님이 상대네요. 우리도 몸 좀 풀어볼까요?”
로자리아는 지지 않고 대꾸했다.
“그 이죽거리는 것도 오늘로 끝이야. 각오 단단히 해두라고.”
그리고 다시금 일행은 루시펠 나이츠와 맞붙게 되었다.
그레이센과 마주한 쉐드는 가볍게 손을 저었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 털북숭이 곰돌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쉐드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너 정도는 루파 하나로도 충분하지. 처리해, 루파.”
“쿠뉴!”
작은 털북숭이의 곰돌이가 기운 찬 울음을 토하며 가슴을 쿵쿵 쳤다. 그리고 마치 풍차를 돌리듯 팔을 크게 돌리더니 다음 순간, 그레이센을 향해 뻗었다. 길게 늘어난 루파의 주먹이 그레이센의 가슴에 정통으로 명중했다.
쉐드는 미소를 지었다.
“응?”
미소를 짓던 쉐드의 얼굴이 흠칫했다. 그레이센은 루파의 주먹을 정통으로 맞고도 멀쩡히 서 있었다.
“아니? 분명히 직격을 당했을 텐데 어떻게?”
“쿠뉴.”
“흥. 간지럽구나.”
그레이센은 미소를 지으며 힘을 전개했다. 그러자 그의 몸을 감싼 눈부신 빛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이 빛은?”
성스러운 빛.
그것이 그레이센의 몸을 빛내며 감싸고 있었다. 그것이 루파의 주먹으로부터 그레이센의 몸을 보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레이센은 그대로 루파의 팔을 잡아당겼다. 압도적인 힘에 끌린 루파는 순식간에 그레이센의 앞으로 날아들었다. 그레이센은 씨익 웃으며 성력으로 빛나는 주먹을 휘둘러 루파의 안면을 그대로 후려쳤다.
“쿠뉴욱!”
“루파!”
빛이 가득 담긴 주먹에 얻어맞은 루파는 그대로 바닥에 처박히며 다시 튕겨져 나갔다.
쉐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히 전의 싸움에서 그레이센은 루파에게 압도적으로 당해 버렸을 텐데, 고작 몇 주밖에 지나지 않은 시간 동안 이만큼이나 실력이 늘었단 말인가.
그레이센은 여유로운 얼굴로 설명했다.
“디센트 프럼 헤븐. 신의 권능을 강제로 몸에 강림시켜서 싸우는 비장의 기술이다. 그야말로 무적의 몸이지. 네 소환수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이 빛을 뚫고 내게 상처 입힐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