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80
마염의 황제 080화
“그들의 진의는 알 수 없으나 제가 증언한 것은 사실입니다. 에이다 마을의 사람들은 마녀의 손이 아닌 성기사들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그들은 인근 마을의 게시판에 공고문을 설치하여 민중들의 불안을 유도하였고, 자신들의 죄를 마녀에게 덮어씌웠습니다. 이에 저는 마녀를 사칭한 성기사들 사건의 진상과 이 사칭의 무리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 대꾸하는 이는 없었다. 그들의 관심은 이미 다른 곳에 넘어가 있었다. 진행을 맡은 추기경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작은 알의 안경을 고쳐 쓰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아네스 심판관, 자네는 어째서 그 로자리아라는 마녀를 만났다면서 잡아오지 않았나?”
“그것은 그 마녀의 죄가 없었고 또한 제 능력으로는 그들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장내가 술렁였다. 이번에는 아까와는 달리 아네스의 발언에 대해 언성들이 높아졌다.
“마녀에게 죄가 없다니, 그 무슨 당치도 않은 말인가!”
“그랜드 크로스를 쓸 수 있는 사제가 마녀 하나 잡지 못하고 놓친다고?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핏대 오른 사제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하지만 아네스는 이미 그런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담담한 어조로 답했다.
“저는 진실만을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그 말이 사제들을 더욱 흥분하게 만들었다. 누군가가 객석에서 일어나 아네스를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감히 이런 신성한 곳에서 마녀를 감싸다니!”
“저런 발언을 서슴없이 할 줄이야. 마녀와 결탁한 것이 아닌가?”
“성기사들이 마녀 행세를 했다는 것도 거짓말임에 틀림없어! 저 여자는 악마의 추종자가 된 거라고.”
격한 웅성거림은 더욱 커져갔다. 추기경은 탁자를 두드리며 그들을 조용히 시키려 애썼다.
“조용히. 조용히 하시오! 청문회에 방해가 되는 이들은 즉시 퇴정 조치하도록 하겠소.”
격해진 언성이 간신히 낮아졌다. 추기경은 미간을 좁히며 다시 아네스를 바라보았다.
“이것은 중요한 문제다. 아네스 심판관, 그대는 왜 마녀를 잡지 않았지? 그에 대해서 명백한 대답을 요구하는 바이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제 능력이 미치지 못했고 또한 그들에게 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추기경은 손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다시 물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는가? 심사숙고해서 대답하라.”
하지만 아네스는 요지부동이었다.
“저는 거짓말은 하지 못합니다. 제 말은 진실입니다.”
그 말 한마디에 객석의 사제들은 마침내 폭발해 버리고 말았다.
“감히 일개 심판관이 저런 오만방자한 말을!”
“어떻게 저런 자가 사제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신에 대한 모욕이오. 처벌을 내려야 합니다.”
“조용히! 다들 조용히!”
강당 안은 격분하는 사제들과 그들을 진정시키려는 추기경의 목소리로 소란스러워졌다. 오직 아네스만이 그 격동 속에서도 평정을 유지한 채로 서 있었다.
추기경은 못마땅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네스 심판관. 그대의 성직을 박탈하고 근신에 처한다. 그대의 미심쩍은 행동은 교단 내부에서 즉시 조사에 들어갈 것이다. 그대에 대한 처우는 그 뒤에 결정하도록 하지. 그러니 그때까지 방에서 참회하면서 기다리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요구한 마녀 사칭 성기사들 사건의 진상과 그 외의 다른 사칭의 무리에 대한 조사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분노한 사제들이 객석에서 고함을 질러댔다.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아직도 입을 놀리다니!”
“뻔뻔한…….”
추기경 역시 아네스의 발언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그는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으며 말했다.
“그 건은 자네의 처우가 결정되는 대로 다시 회의를 거쳐 재고해 볼 것이다. 그대는 자신의 죄에 대한 참회나 하도록. 이상.”
청문회는 끝났다. 아네스는 성기사들 둘에게 이끌려 방으로 향했고 추기경도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객석의 사제들은 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는지 아직도 남아 떠들며 서로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하나같이 아네스가 교단을 모욕했다느니, 그녀에 대한 처벌이 가볍다느니 하는 이야기였다.
한쪽 구석에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마드렐 추기경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마녀와의 결탁이라… 생각보다 훨씬 쉽게 끝났군 그래.”
아네스의 이미지는 이번 일로 급격히 추락했다. 대가 곧고, 심지가 굳은 그녀라면 이런 상황까지 올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융통성이 없고 굵기만 한 나무는 부러지기만 할 뿐이다.
‘이제는 이빨 빠진 늙은 교황만 적당히 구워삶으면 되겠군. 후후후…….’
원하는 바를 이룬 마드렐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강당을 나섰다.
***
“한심한 꼴이 되었군.”
침대에 누운 아네스가 천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얼핏 보기에 그녀는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화장실 외의 외출은 할 수 없었고, 식사 또한 방 안에서만 해야 한다. 성서 이외의 도서도 허용되지 않았다.
물론 성실한 신자이자 신의 말씀을 읽는 것을 즐기는 아네스에게 근신 생활이 그리 힘들 것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에게는 할 일이 있었다. 성기사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마녀 사칭 무리의 정체를 알아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맘 편하게 있을 시간은 없었다.
‘나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해버린 건가.’
자신이 생각해 봐도 헛웃음이 나오는 일이었다. 마녀에게 죄가 없다니. 객석의 사제들의 폭언도 이해되는 일이었다. 당장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해도 누가 자신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면 분노를 금치 않았으리라.
그런데 대체 자신은 왜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인가.
아네스의 머릿속에 문득 자신을 구해 주었던 그 어린 소년 검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터라고 말한 소년의 모습이.
‘그 꼬마의 말을 믿고 있는 건가?’
이상했다. 단 한 번밖에 만난 적이 없었는데. 게다가 그는 사악한 마녀의 종자일 뿐인데 오히려 함께 있던 신관보다 그의 말이 더 진실처럼 느껴졌다.
아네스는 조용히 성호를 그었다.
‘여신께서 분명히 옳은 길로 이끌어주실 것이다.’
길고 긴 침묵의 시간이 지났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것일까? 방의 창을 누군가가 조용히 두들겼다. 아네스는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누구냐?”
“쉿! 저희입니다, 저희.”
천천히 창이 열리고 창을 연 자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것은 온통 시꺼먼 옷을 뒤집어쓴 맥스와 세레나였다.
“너희? 여기는 어쩐 일이냐.”
맥스는 급히 그들이 입고 있는 것과 비슷한 검은 복장을 품에서 꺼내 아네스에게 건넸다.
“설명은 나중입니다.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자고요.”
맥스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는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었다.
아네스는 맥스와 세레나를 바라보며 짐짓 엄한 얼굴로 꾸짖었다.
“나는 근신을 명령 받았다. 지금 내게 교단의 명령을 어기라는 거냐?”
“지금 그게 문제입니까?”
맥스가 조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간신히 보초를 기절시켜 놓고 급하게 들어왔더니 저런 소리라니. 기절한 보초가 깨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여기서 빠져나가지 않으면 곧 경비가 들이닥칠 것이다.
세레나가 아네스를 설득했다.
“마녀를 사칭하는 성기사들에 대한 이야기는 저희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레이아크 경의 말에 의하면 그들의 뒤에 마드렐 추기경의 입김이 닿았을 확률이 높다 합니다. 모든 것이 처음부터 아네스님을 몰아내기 위한 함정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네 말이 사실이라면 여기서 빠져나가는 것은 오히려 그들에게 좋은 건수를 주는 게 되지 않나?”
“그럼 아네스님은 이 안에서 적들의 계획대로 가만히 놀아나고 있어도 좋다는 겁니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도 못한 채 이대로 가만히 있어도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
아네스는 말없이 눈을 감았다.
‘마드렐 추기경… 마녀를 사칭한 성기사… 로자리아… 그리고 이데아로크…….’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초조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맥스에 세레나에게 말했다.
“몇 가지 신경이 쓰이는 것이 있긴 하군. 좋아, 이번은 너희의 힘을 빌리겠다. 하지만 나중에 모든 것이 종결되었을 때, 너희와 나는 지금 일에 대한 벌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알고 있겠지?”
세레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네, 알겠습니다.”
오직 맥스만이 입이 한주먹만큼 불퉁히 튀어나와 있었다.
“정말 깐깐 그 자체라니까. 그것보다, 서두릅시다. 보초 놈이 깨어나면 도망이고 뭐고 다 글러먹을 테니까 말예요.”
***
뒹굴뒹굴.
어두컴컴한 성의 내부. 잘 닦여 있는 바닥을 푸른 머리의 소년이 뒹굴거리며 구르고 있었다. 앙증맞은 날개와 꼬리.
장난스러운 얼굴로 바닥에 떨어진 사과를 툭툭 건드리는 소년의 이름은 루시펠. 이데아로크의 다섯 번째 조각, 육신이었다.
엎드린 채로 사과를 굴리며 놀던 루시펠이 입을 열었다.
“나이트께서 명하셨다.”
콰직.
손가락으로 위에서 짓누르자 잘 익은 사과는 흔적도 없이 터져나갔다. 흩어진 파편을 보며 루시펠은 씨익 웃었다.
“조각을 하나로 모아라… 무슨 말인지 알겠지?”
어둠 속에 도열해 있던 이들 중, 이조르네가 부채를 펼치며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드디어 때가 되었군요.”
루시펠은 빙긋 웃으며 사과 조각을 콕콕 찍었다. 산산이 부서진 파편을 보고 있자니 누군가의 모습이 떠오른다.
박살난 파편을 손가락으로 밀어내며 루시펠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후후. 오래 기다렸지, 이터?”
자신을 찾아서 없애겠다고 다가오는 것은 자신의 나이츠들을 통해 알고 있었다. 물론 자신 역시 그것을 바라고 있었고.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이터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루시펠은 짓궂은 악동의 미소를 지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두근두근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쿵.
그때 어둠에 가려진 루시펠 나이츠 중 하나가 루시펠 앞에서 한 쪽 무릎을 꿇었다. 베가스였다.
“베가스?”
“마스터, 간청이 있습니다.”
루시펠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사과 조각을 꾹꾹 눌러댔다.
“무슨 일이냐?”
“마스터께 송구스러운 말씀이지만… 이터를 제가 상대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이조르네가 깜짝 놀라 눈을 치켜떴다.
“베가스, 무슨 무엄한 소리를 하는 거야?”
저 인간이 이터에게 그동안 힘 한번 못 써보고 얻어터져서 억울해하는 것은 안다. 하지만 이터는 루시펠의 먹이. 감히 주인 앞에 주인의 먹이를 채가겠다고 하다니.
그러나 베가스는 막무가내였다.
“나는 루시펠님의, 악신 이데아로크의 육체를 물려받은 분신이다. 그렇다면 최고의 전사일 터. 하지만… 하지만 이터 녀석에게는 당할 수가 없었어. 이대로 물러나 버린다면 녀석을 쓰러뜨릴 수 있는 기회는 다시는 찾아오지 않아. 나는… 나는 그런 건 참을 수가 없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