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83
마염의 황제 083화
우걱우걱. 쩝쩝.
뼈째로 고기를 삼키며 이터가 답했다.
“그건 직접 몸으로 체험해라.”
샐러드에 드레싱을 하며 루시펠이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그 말이 정답이군.”
접시에 남은 소스까지 혀로 핥아낸 이터가 물었다.
“언제 싸울 거냐?”
“너무 그렇게 서두르지 마. 오늘은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푹 쉬어두라고. 너와의 싸움은 내일 시작할 생각이니까.”
“너답지 않게 친절하군.”
루시펠은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서비스지, 뭐. 후후. 이왕에 친절한 김에 한 가지 더 친절하게 가르쳐줄까?”
시원한 레몬티 한 모금을 마시며 루시펠은 이터를 바라보았다. 그는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너에 대해서는 많이 연구를 해봤어. 지금까지 네가 해온 싸움. 내 부하들, 그리고 객관적으로 보아온 전투 데이터를 분석해 볼 때 네게는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힘이 있더군. 그걸 네가 자유롭게 발동시킬 수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마어마한 힘을 숨기고 있는 것은 확실하지.”
“…….”
이터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 힘이 무엇인지는 이터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 루시펠은 팔짱을 끼며 손가락으로 팔을 툭툭 쳤다.
“하지만 그걸 계산한다고 해도 네가 이길 확률은…….”
세 개.
루시펠은 이터에게 손가락 세 개를 들어 보였다. 로자리아가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30%?”
“아니.”
루시펠의 입가가 길게 찢어졌다. 그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로 말했다.
“3%. 네가 나를 이길 확률은 고작 3%밖에 되지 않아.”
3%?
로자리아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소리쳤다.
“3%라고? 웃기지 마. 깔보는 것도 정도가 있지!”
또 하나의 접시를 비우며 이터가 말했다.
“그래도 0%는 아니군.”
테이블 위의 시선이 이터를 향했다. 이터는 자신을 보는 루시펠을 마주하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0%가 아닌 걸 보니 완벽하게 날 쓰러뜨릴 자신은 없었던 모양이지?”
“……!”
루시펠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이터는 다음 접시를 꺼내 다시 입에 음식을 털어넣었다.
“그럼 그걸로 충분하다. 3%라고 해도 너를 떡으로 만들기엔 충분한 수치야.”
“훗. 후후후. 하하하하!”
루시펠이 웃음을 터뜨렸다. 식당 안을 가득 채우는 호쾌한 웃음소리. 이터가 짤막하게 감상을 말했다.
“시끄럽다.”
“크큭. 그래서 이터가 좋아. 널 보면 어떻게든 자근자근 밟아주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을 것 같거든. 물론 이제 내일이면 그렇게 되겠지만.”
루시펠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며 이터를 바라보았다.
“기대하고 있도록 해.”
“너도 기대하도록 해라.”
마주하는 두 사람의 시선. 서로의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루시펠은 일행에게 손을 들어 바이바이 하며 식당을 나섰다.
“그럼 다들 즐거운 식사 시간을 가지도록 해. 내일이 무척이나 기대되는군.”
“쳇, 허풍쟁이 같으니. 저런 녀석의 말은 무시해, 이터. 알았지?”
식당을 나가는 루시펠을 보며 로자리아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새로운 접시를 꺼내 든 이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3%라는 말은 아마 허풍이 아닐 거야.”
“에엑? 너까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터 씨…….”
자신의 승산이 3%라는 걸 이터가 인정했다? 로자리아가 어색한 미소를 터뜨리며 물었다.
“하, 하지만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그렇지? 뭔가 새로운 필살기라든지…….”
“필살기? 그런 건 없는데.”
“…….”
왠지 상황이 상당히 심각한데…….
이터가 일행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루시펠의 말대로다. 내일은 지금까지 있었던 어떤 싸움보다 격전이 될 거야. 그러니까…….”
일행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터는 무척 진지한 얼굴로 일행에게 말했다.
“다들 밥 많이 먹어둬.”
“…….”
내일의 결전은 다른 의미로 ‘골 때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로자리아였다.
Chapter 3-8. 시작되는 게임
아직 어둠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새벽녘. 곤히 자고 있던 로자리아가 뒤척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웅… 목말라.”
물이 어디 있더라…….
로자리아는 어제 저녁 늦게까지 자신을 괴롭히던 시종을 불렀다.
“저기, 라쉬펠트. 죄송한데 물이 어디 있는지 좀 가르쳐 주실래요?”
그러나 대꾸는 들려오지 않았다. 부르기만 하면 어디서든 재깍재깍 튀어오는 그도 새벽엔 곯아 떨어진 건가? 로자리아는 주섬주섬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고 나왔다.
“저기요, 라쉬펠트?”
밖에도 라쉬펠트는 없었다. 로자리아는 복도를 걸었다. 하지만 마주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넓은 성인데 보초를 서고 있는 병사 하나 없었다.
“아무도 없나? 다들 어디로 갔지?”
로자리아는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 보았다.
하지만 그곳 역시 자신이 있던 층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을씨년스럽게 어두운 복도에는 사람은커녕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다음 층도, 그 다음 층도 마찬가지였다.
‘성이 텅 비었어?’
어제까지만 해도 성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없다. 그제야 로자리아는 성의 복도 안을 뭔가가 메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어둠인 것처럼 숨어 있는 검은 안개였다.
“뭐지, 이 기분 나쁜 안개는?”
“로자리아…….”
“꺄악!”
잔뜩 긴장하고 있던 로자리아는 누가 어깨를 건드리자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이터는 눈을 깜빡이며 바닥을 구르는 로자리아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
“이, 이터였구나.”
후우.
로자리아는 십년감수한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일어났다.
“성이 너무 조용해서 둘러보고 있는 중이었어. 대체 어떻게 된 건지……. 하룻밤 사이에 유령 성이 되어버렸잖아.”
“응. 나도 알고 있어. 아무래도 이제 시간이 된 모양이야.”
이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슬슬 결판을 지을 시간이.”
“그래, 휴식은 이제 끝이야.”
로자리아와 이터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안개에 가린 복도 사이로 누군가의 인영이 보였다. 여마법사, 불꽃의 이조르네. 그녀가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푹 쉬었어, 이터? 그럼 이제부터 시작해 볼까?”
이조르네가 웃으며 부채를 활짝 펼쳤다.
“루시펠님을 위한 피의 축제를.”
이조르네의 말대로 휴식은 끝났다. 로자리아는 서둘러 엘리스와 그레이센, 론을 깨웠다. 아직 잠이 덜 깬 엘리스는 길게 하품을 하며 말했다.
“안 돼요……. 저는… 제 남자는 오직 이터 씨밖에…….”
“이 망할 엘프! 얼른 정신 차려!”
그레이센은 론에게 물었다.
“어젯밤은 즐거운 시간 보냈나?”
“뭡니까. 그 뭔가 기대하는 듯한 이상한 질문은.”
“다들 긴장 좀 할 수 없어?”
이조르네가 일행을 안내했다. 일행은 성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어둠은 아직 가시지 않았다.
“바깥에도 안개가…….”
성 안을 가리는 시커먼 안개. 그것이 마을 전체를 자욱하게 메우고 있었다.
이조르네는 웃으며 말했다.
“너무 그렇게 긴장하지 마. 평범한 연출이야, 연출. 최후의 결전이니까 분위기 좀 잡아놓은 것뿐이라고.”
“이런 게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하지 마.”
하지만 안개야 이조르네의 말대로 연출이라고 생각해도.
‘분명히 어제까지는 활기 넘치는 마을이었는데…….’
단 한 명의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성과 마찬가지로 모두 어디론가 실종되기라도 한 것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오늘 아침 다시 보는 마을은 마치 죽은 자들의 도시 같은 기분이 들었다.
로자리아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것도 연출인가?’
일행을 이끌던 이조르네가 걸음을 멈추었다.
“자, 다 왔어.”
“여기는…….”
안개에 가려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 이조르네가 일행을 이끌고 온 것은 거대한 원형 경기장 앞이었다.
“콜로세움?”
경기장 안까지 일행을 안내한 이조르네가 웃으며 가볍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손님 여러분, 오느라 고생이 많습니다. 바로 여기가 여러분과 우리, 루시펠 나이츠가 맞붙게 될 장소랍니다.”
“저기 봐요, 사람들이!”
엘리스가 경기장의 객석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어딘가 홀린 듯한 표정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어제 이터 일행이 본 마을 사람들이었다. 거기에 성 안에서 일하던 병사들, 하인들도 섞여 있었다. 아침부터 성과 마을 안에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던 것은 이런 이유였던 것인가.
이조르네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끼리 치고 박는 것보다는 관객이 있는 게 좋으니까.”
“사람들 눈에 핏기가 없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런 것보다, 슬슬 시작하지. 우리도 그동안 기다리느라 좀이 쑤셨거든.”
콜로세움에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루시펠 나이츠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법사 이조르네의 곁으로 그녀의 정령, 프리야. 전사 베가스와 마수 올가, 그리고 소환사 쉐드까지. 루시펠 나이츠가 드디어 한자리에 모였다.
베가스는 이터를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터는 그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
“루시펠은 어디 있지?”
으득.
자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이터의 태도에 베가스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그 둘 사이로 끼어들며 이조르네가 짧게 코웃음 쳤다.
“호호, 이터도 참. 최종 보스가 처음부터 나타나면 재미가 없잖아.”
휘이이…….
그녀의 뒤로 공간의 일그러짐이 일어났다. 그와 함께 거대한 철문이 그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바로 루시펠님이 계시는 곳으로 갈 수 있는 통로야. 그곳으로 향할 자격이 있는 건 당연히도.”
이조르네가 웃으며 부채로 자신을 가리켰다.
“우리를 쓰러뜨릴 수 있는 이뿐.”
“바라는 바야. 이번에야말로 이 유치한 장난을 끝내주겠어.”
“맞아요. 승리는 우리… 아니, 이터 씨의 것이라고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나를 유동하는 로자리아와 시위를 메우는 엘리스. 그들을 보며 이조르네는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좋은 자세야. 하지만 그냥 치고 박는 건 별로 재미없지.”
그녀가 부채를 휘둘렀다. 그러자 갑자기 일어난 무형의 바람이 일행을 뚫고 지나갔다.
“우왓?”
깜짝 놀란 로자리아는 몸을 살폈다. 상처는 없었다. 단순한 바람인가? 문득 그녀는 엘리스의 머리 위에 노란 바 같은 것이 떠있는 걸 발견했다.
“뭐야, 엘리스? 머리에 그건?”
“로자리아 씨도… 머리에 이상한 게 생겼어요.”
그 둘뿐만이 아니었다. 이터도, 그레이센도, 론도. 일행 모두의 머리에 노란색의 바가 생겨났다. 로자리아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너, 우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이조르네는 웃는 얼굴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일행뿐만 아니라 루시펠 나이츠의 머리 위에도 일행과 같은 모양의 바가 생겨나 있었다.
“놀라지 마. 독이나 저주 같은 건 아니니까. 우리의 체력을 시각적으로 보기 좋게 표시한 것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