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85
마염의 황제 085화
“…….”
얼굴로 날아드는 검은 허리를 틀어 비껴내었다. 팔과 다리를 노리고 날아드는 것은 가볍게 펜릴을 돌려 피했고 좌우로 날아드는 것은 몸을 틀고 허리를 숙이며 피해냈다. 10자루의 검은 단 하나도 이터의 몸에 닿지 못하고 비켜나갔으며 이는 1초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모든 검을 피해낸 이터는 움직이기 전과 똑같은 자리,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는 베가스를 보며 선언하듯 말했다.
“끝이다.”
이터는 펜릴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대로 단번에 베가스의 숨통을 끊어버리려고 할 때였다.
화르륵!
“……?”
이터가 선 자리에 붉은 원이 그려지더니 폭염의 기둥이 터져나왔다. 쏟아지는 불꽃에서 간발의 차로 물러나자 이번에는 양쪽에서 고무처럼 늘어난 루파의 팔과 올가의 손톱이 날아들었다. 남은 루시펠 나이츠가 일제히 이터에게 덤벼든 것이다. 불꽃을 날린 이조르네가 부채를 펼치며 날카롭게 외쳤다.
“전부 다 덤벼도 상관없다고 한 건 너였으니까. 불만은 없겠지?”
이터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펜릴을 돌렸다.
카아앙!
이터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던 올가의 손톱이 펜릴과 부딪히며 불똥을 터트렸다. 펜릴에서 뻗어 나오는 투기에 말려든 올가의 손은 걸레처럼 짓이겨져 버렸다. 손을 잃은 올가가 비명을 지르며 물러나는 순간 이터는 옆에서 날아드는 루파의 팔을 낚아채 올가의 몸에 처박아 버렸다.
“카앙!”
“쿠뉴!”
서로 부딪힌 충격으로 뒤로 밀려난 올가와 루파. 충격을 받은 둘이 균형을 잡기도 전에 이터가 그들 사이에 내려섰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이터는 전력으로 투기를 전개했다.
“하앗!”
콰아아아!
폭풍처럼 터져나가는 투기. 그것은 올가와 루파를 동시에 휘감으며 거세게 폭발했다. 투기에 휘말린 올가와 루파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나가며 바닥에 처박혔다.
“키에에에!”
올가와 루파가 바닥을 구르는 것과 동시에 위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울음소리. 어느새 다가왔는지 붉은 날개를 펼치며 환하게 타오르는 불새가 이터의 머리 위를 덮치기 직전이었다. 이터가 둘을 상대하는 사이에 이조르네가 피닉스화 한 프리야를 날린 것이다. 너무 가깝다. 피하기에는 좋지 않은 타이밍.
이조르네는 미소를 지었다.
“훗. 프리야의 몸속에서 불꽃 샤워라도 해보라고.”
이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새하얗게 빛나는 왼손을 뻗어 날아드는 불새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불새의 머리를 터트려 버렸다. 이조르네가 눈을 부릅떴다.
“뭐야?”
콰아아아!
머리가 터지는 충격에 찢겨져 나간 피닉스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열기를 뿌렸다. 강제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프리야는 열기 사이로 떨어져 기절해 버렸다. 사방으로 쏟아지는 열기를 피해 물러나며 이조르네는 혀를 찼다.
‘뭐, 이런 무지막지함이…….’
올가와 쉐드의 소환수를 동시에 상대하는 스피드와 프리야의 피닉스를 한 손으로 쥐어 터트리는 괴력이라니.
열기가 흩어진 자리에 멀쩡히 서 있는 것은 이터 한 사람뿐이었다.
“우아아아아!”
걷히는 열기를 헤치며 이터의 뒤에서 튀어나온 베가스가 검을 휘둘렀다. 기습적으로 날아든 참격!
하지만 이터는 쳐다보지도 않고 가볍게 팔을 들어 베가스의 안면을 후려갈겼다. 주먹에 얻어맞은 베가스는 콜로세움의 구석까지 날아가 처박혔다. 무너져 내리는 벽이 그의 몸을 묻어버렸다.
[올가 15% 데미지. 베가스 18% 데미지]데미지 판정과 함께 또다시 객석의 마을사람들이 폭발해버렸다. 싸움이 시작되고 나서 벌써 116명의 목숨이 사라져 버렸다.
허나 그것도 중요하지만 일행에겐 루시펠 나이츠를 혼자서 압도하는 이터의 모습이 더 놀라웠다. 로자리아는 마른침을 삼켰다.
‘대단해. 이터의 실력이 높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이 녀석들 모두를 혼자서…….’
자신은 나설 필요도 없었다. 로자리아는 생각했다.
어쩌면… 어쩌면 정말.
‘단 한 대도 맞지 않고 저 녀석들 모두를 쓰러뜨려버릴지 몰라.’
“아무래도 루파는 더 이상 싸울 수 없을 것 같군.”
쉐드는 충격파에 너덜너덜해져 엉망이 된 루파를 원래의 세계로 돌려보냈다. 부채를 펼친 이조르네는 가만히 서서 아무런 말이 없었다. 올가의 부서진 손은 스스로가 가진 재생복원 능력으로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터에게 당한 타격의 후유증은 남은 듯했다. 무너진 잔해 속에 묻힌 베가스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터는 주위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이 정도다, 너희들과 나의 차이는. 너희들은 날 이길 수 없어. 그러니 무의미한 싸움은 그만두고 루시펠에게 안내해.”
“……!”
오만함을 넘은 자신감. 이터의 발언은 루시펠 나이츠 전원의 자존심을 뭉개버리는 말이었지만 발끈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실제로 이터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루시펠 나이츠의 힘으로는 그를 쓰러뜨리기는커녕 루시펠님의 방패막이도 제대로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조르네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부채를 부쳤다.
“이것 참… 정말 터무니없는 터프가이네. 게임은 원래 치고 박아야 재미가 있는 건데 한쪽이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기만 하니 재미가 없잖아.”
허나, 밀리고 있음에도 말과는 달리 이조르네의 얼굴에 당황함이나 곤란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야릇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그런 의미로 개막식은 이 정도로 하고 본 게임을 시작해 볼까?”
“본 게임?”
콰아아앙!
요란한 폭음과 함께 바닥이 갈라지며 파편이 하늘로 떠올랐다. 힘의, 투기의 울림. 그 진원지는 베가스를 묻어버린 잔해였다.
“크아아아아!”
검은 빛.
박살나 흩어진 잔해 너머로 우뚝 선 베가스. 세차게 몰아치는 검은 기류가 그의 몸을 감싸 오르고 있었다. 그 속에서 느껴지는 강대한 힘의 해일. 이조르네는 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시작하려는 모양인데?”
베가스는 지금 마지막 고리를 풀고 있었다.
루시펠의 금제.
루시펠이 그들에게 준 힘을 억제하고 있는 육체의 봉인을 끊으려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였지만 베가스는 망설이지 않았다. 자신의 최대, 최강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이터와 대등한 자리에서 겨루기 위해 베가스는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
“이터.”
처음부터 이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목숨까지 태우지 않고서는 이터에게 절대 닿을 수 없다는 사실도.
하지만…….
‘너와 나의 차이가 이 정도나 되었을 줄이야.’
베가스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쥐고 있는 주먹에 불끈 힘이 들어간다.
“정말 열 받는 녀석이라니까.”
분노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뻤다. 전사에게 있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싸워보고 싶은 상대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되겠는가.
베가스는 미소를 지었다.
“나는 루시펠님의 힘을 이어받은 지상 최고의 전사다. 절대 패배하지 않는다. 이터, 너만은…….”
절정에 달한 흑빛 섬광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반드시 내 손으로 쓰러트린다!”
외침.
그리고 그의 힘을 제어하고 있던 봉인은 깨어졌다.
“…….”
흑빛 섬광이 사라지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베가스의 변화는 피부색이었다. 그의 피부는 마치 새카맣게 타버리기라도 한 듯 검게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와는 상대적으로 백발이 되어버린 머리카락. 갑옷이 깨어져 드러난 몸의 여기저기에서는 검은 입자가 떠올라 허공에 흩어지고 있었다.
이터는 그런 베가스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뭘 한 거지?”
“놓아버린 거야.”
질문에 대한 답은 이조르네가 해주었다.
“루시펠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기 위해서 이런 육체에 그 힘을 담으셨지. 하지만 동시에 그 육체가 안전 장치 역할을 해버려서 우린 루시펠님이 주신 힘의 3할도 제대로 쓰지 못해. 그 모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안전장치 역할을 하는 육체를 버리는 것뿐이지. 허나, 한 번 버린 육체는 돌아오지 않아. 조금씩 소멸을 시작해서 결국 완전히 사라져 버리게 되는 거야. 모든 힘을 쓸 수 있게 되는 대신에.”
그리고…….
이조르네는 베가스를 바라보았다.
“베가스는 지금 그 육체를 버렸어. 너를 쓰러뜨리기 위해서 자신의 자존심뿐만이 아니라 생명까지 버린 거야.”
“…….”
훗.
부채를 접은 이조르네는 뒤로 물러나며 말을 맺었다.
“너한테는 의미 없는 장난 정도로 보일지는 몰라. 하지만 저 녀석은 그만큼의 각오로 싸우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조금은 진지하게 대해줘.”
스윽.
변화를 마친 베가스가 이터를 향해 한 걸음 내밀었다. 몸 위로 피어나와 흩어지는 검은 입자는 그의 생명이 소멸해 간다는 증거. 하지만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이터뿐이었다. 그는 미소를 지었다.
“오래 기다렸다, 이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으니 바로 시작하도록 하지.”
한 번 시작된 소멸을 막을 방법은 없다. 이것은 베가스가 목숨을 걸고 이터에게 던진 도전장. 그리고 이터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좋아.”
이터는 펜릴을 바닥에 박았다. 동시에 무서운 힘으로 기세로 바닥을 박차며 베가스를 향해 쏘아져 나간다. 굳게 움켜쥔 주먹이 베가스의 머리를 향해 섬광처럼 날아들었다. 깔끔하고 정확한 일격.
퍼억!
“……!”
이터는 눈을 가늘게 떴다. 주먹은 베가스의 얼굴에 닿지 않았다. 베가스의 왼손이 그의 주먹을 가로막고 있었다.
‘막았다?’
주먹에 실린 투기는 결코 만만한 위력의 것이 아니다. 베가스가 받아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을 텐데.
‘이조르네의 말대로 진화한 것인가?’
베가스가 짧게 웃음을 흘렸다.
“뭐 하는 거야? 벌써 공격이 끝났나?”
“이제부터 시작이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터는 재빨리 반대편의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베가스의 손이 그의 주먹을 막아냈다. 동시에 양손을 서로 맞잡은 둘.
이터와 베가스의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하아아앗!”
“타아아!”
쿠구구구.
땅이 갈라지고 바람이 불었다. 초월적인 위력을 가진 두 힘의 격돌이 콜로세움 전체를 뒤흔들었다. 부서진 파편이 주위를 날았고 충격으로 일어나는 자욱한 먼지가 콜로세움을 덮었다. 그레이센은 주위에 튀어나오는 파편들을 피하며 손수건으로 코를 막았다. 그가 투덜거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 무지막지한 놈들 같으니. 다 좋은데 먼지는 좀 풍기지 마라. 기관지 다 상한단 말이다.”
손을 맞잡은 둘은 팽팽한 접전을 펼쳤다. 어느 한쪽도 다른 한쪽에게 밀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호각의 파워. 그 팽팽함을 먼저 무너뜨린 것은 이터였다.
“핫!”
퍼억!
이터는 자유로운 다리를 움직여 베가스의 턱을 올려쳤다. 그 충격에 베가스의 고개가 뒤로 꺾이며 주춤하자 재빨리 팔을 풀어낸 이터는 베가스를 그대로 후려갈겼다. 그 일격에 베가스가 튕겨나자 이터가 왼손에 폭염을 맺었다. 붉게 물든 왼손이 베가스를 향해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