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87
마염의 황제 087화
“큭, 제길!”
허공에서 몸을 돌려 간신히 추락하는 것만은 모면한 베가스. 하지만 그가 내려서기가 무섭게 옆에서 튀어나온 이터의 검이 그의 허리를 노렸다. 베가스는 급히 디바이더로 기간틱 블레이드를 막았다. 그러나 한 번 틈을 파고든 이터는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거대한 대검, 기간틱 블레이드가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춤을 췄다. 베가스의 검은 이터의 검을 마주하기도 벅찼다.
베가스의 인상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내가 힘에서 밀릴 것 같으냐!”
화악!
검은 투기가 검 날을 감싸며 솟구쳐 오른다. 베가스의 패도적인 힘의 투기. 베가스는 이터의 공격을 투기로 밀어내며 이터를 단숨에 쪼개버릴 듯한 기세로 검을 내리쳤다. 베가스의 검이 하늘에 일자를 그리며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이터는…….
콰아앙!
정면에서 그의 검을 받아냈다.
“아니?”
얼굴이 흑빛으로 굳어지는 베가스를 마주한 이터가 입을 열었다.
“힘에서 밀리지 않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흥!”
카아앙!
다시 서로를 떨쳐내는 두 개의 대검.
그와 함께 동시에 두 사람은 무서운 속도로 다시 서로를 향해 부딪혀갔다. 베고, 찌르고 다시 베어 들어간다. 검날이 부딪힐 때마다 힘의 압력이 주위의 대지를 흔들었고 사방으로 내리치는 불꽃과 번개는 격렬하게 터져나갔다.
힘과 속도에 있어 호각의 승부를 펼치는 두 사람. 괴성을 지르며 울부짖는 콜로세움에서 그들의 검과 권 그리고 마법이 폭발했다. 격렬하게 싸우는 중에도 데미지 판정은 계속 되었다.
[베가스 데미지 5%, 이터 데미지 0%]“쳇…….”
베가스는 입가의 피를 닦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결정적인 데미지를 입은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데미지가 누적되는 반면 이터는 아직도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다. 어떻게든 흐름을 바꾸지 않으면 이터의 페이스에 계속 끌려 다닐 뿐이다. 베가스는 과감하게 이터가 펼치는 검무를 정면으로 치고 들어갔다. 박력 있게 날아드는 베가스의 검이 이터의 인중을 정확히 노리고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대로 베어버렸다.
퍼엉!
“……!”
자신의 검에 베인 이터가 흐릿해지더니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환영으로 눈을 속이는 기술, 환영잔상권!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이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수십 명의 인영. 그것은 모두 이터와 똑같이 생긴 이들이었다.
‘다중 환영잔상권이라는 건가?’
이 중에 진짜 이터는 단 하나일 터. 하지만 하나같이 똑같이 생긴 환영들은 육안으로는 구분할 수가 없었다. 어줍잖은 심안 따위로 찾아낼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이터와 완전히 똑같이 느껴졌다. 그야말로 완벽한 분신. 표정이 굳어지는 베가스를 보며 이터… 아니, 이터들이 미소를 지었다.
“어느 게 진짜일까?”
“한 번 맞춰봐.”
“하지만…….”
“쉽게 찾아내진 못할걸.”
휘익.
사방에서 떠들어대던 이터 중 하나가 베가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베가스는 단번에 디바이더로 그를 갈랐다. 흐릿해지면서 사라지는 육체. 환영이다.
“이쪽이다.”
환영이라는 것을 느끼기가 무섭게 위에서 날아드는 일격. 하지만 첫 일격이 눈속임수라는 것을 베가스는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몸을 틀어 떨어지는 참격을 피하며 그대로 디바이더를 휘둘렀다. 허공에서 찔러 들어오던 이터는 그 일격을 피하지 못했다. 베가스는 미소를 지었다.
‘걸렸다.’
그리고 허공의 뜬 이터를 그의 검이 베는 순간, 뒤통수에 이터의 발차기가 작렬했다.
“윽?”
검에 베인 이터는 흐릿해지며 사라졌다. 3중으로 노린 속임수였나?
“이놈!”
베가스는 분노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진짜 이터는 어느새 분신들 틈에 숨어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수십 명의 이터들이 베가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베어버리면 사라지고 환영이라고 생각하면 무섭게 튀어나와 가격하고 사라진다. 베가스는 이를 악물고 사방을 찢어발겼지만 그의 검에 걸리는 것 중에 이터는 없었다. 또다시 튀어나온 이터가 베가스의 뺨을 주먹으로 후려갈기곤 사라졌다.
베가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빌어먹을 자식, 까불지 마라!”
콰아아!
베가스의 노성과 함께 그의 검을 타고 일어난 흑투기. 베가스의 주위를 감싼 그것이 날카로운 검은 검 날이 되어 사방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마치 섬광처럼 사방을 뚫고 나가는 검 날은 순식간에 이터의 분신들을 모두 날려버렸다. 오직 진짜 이터만이 날아드는 공격을 기간틱 블레이드로 쳐내며 물러날 뿐이었다.
하나도 남기지 않고 소멸해버린 이터의 분신. 진짜를 마주한 베가스는 분노한 얼굴로 노성을 뱉었다.
“언제까지 그런 잔재주를 피울 셈이냐! 일부러 봐줄 필요 없다. 제대로 덤비지 않으면 큰 코 다칠걸.”
“…….”
베가스의 말에 이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들었다.
“좋아. 그럼 원하는 대로 제대로 된 일격을 보여주지.”
“저 자세는.”
검을 치켜드는 이터. 그의 자세를 본 엘리스가 흥분된 모습으로 소리쳤다.
“나왔어요!”
이터의 최강의 비검.
“폭마검!”
검을 쥔 이터의 왼손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지워라, 불. 부러져라, 천풍.”
거친 폭염이 바람을 타고 소용돌이가 되어 솟구쳐 오른다. 그 소용돌이의 가운데에 선 검이 하늘을 향한다. 대지를 찢어발길 듯이 하늘을 찢어발길 듯이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한 자루의 검. 검 날에 담긴 붉은 빛이 극에 달했다. 양손으로 그것을 움켜쥔 이터는 있는 힘을 다해 일자로 내리그었다.
“폭마검(暴魔劍)!”
쿠아아아!
검 끝을 쫓아 힘의 파도가 일어난다. 불꽃에 휘감긴 투기는 일직선으로 날카롭게 뻗어나가 그 앞을 막아서는 모든 것들을 집어삼켰다. 그것은 베가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베가스는 흑투기로 타오르는 검을 들어 맞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불꽃의 소용돌이가 베가스를 휘감고 콜로세움을 휘감으며 강렬하게 폭발했다.
천지가 흔들리는 거대한 진동과 함께 일어난 폭발. 한참 뒤에 연기가 가라앉은 그 자리에는 반쯤 무너져 내린 콜로세움만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선 이터.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로자리아가 콜록거리며 입을 열었다.
“끄, 끝났나?”
폭마검을 정통으로 맞았다. 제아무리 괴물이라고 해도 그런 일격을 정면에서 받아내고 무사할 리는 없…….
“……!”
자욱하게 걷혀가는 먼지 너머로 무언가의 인영이 보였다. 그것이 무엇인지 이터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레이센이 짧게 입술을 깨물었다.
“아니야, 놈은 멀쩡해.”
치이이.
흩어지는 먼지구름 속에서 나타난 것은 베가스였다. 폭마검을 받아낸 그의 몸은 여기저기가 열기에 그을려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타격은 받지 않았다. 로자리아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소리쳤다.
“말도 안 돼. 폭마검을 정통으로 받았는데.”
“저 녀석은 괴물인가.”
“…….”
베가스는 자신의 몸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몸의 상처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거의 부상을 입지 않았음에도 그는 오히려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그는 천천히 이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힘을 아끼고 있군. 루시펠님과의 싸움을 대비하기 위해서인가?”
“뭐?”
로자리아 일행은 다시 한 번 놀랐다. 힘을 아꼈다니. 방금의 폭마검이 그럼 전력을 다한 일격이 아니었다는 건가?
“…….”
이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허나 그것만으로 대답은 충분했다. 베가스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큭. 이리 되었건 저리 되었건 나란 녀석은 안중에 없다는 건가? 하지만 한 가지 알아두는 것이 좋을 거다, 이터.”
베가스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대신 뜨겁게 타오르는 눈동자가 이터를 향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난 너와의 싸움에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적당히 상대하겠다는 생각으로는 절대로 이길 수 없어.”
그르르… 그르.
땅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주체하지 못하고 갈라진 바닥에서는 자신이 설 곳을 찾지 못한 부스러진 돌조각들이 베가스의 힘에 이끌려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하늘이 검게 물들어간다.
“뭐야, 이 진동은!”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어요.”
멀쩡한 하늘을 뒤덮어버린 짙은 먹구름. 베가스는 디바이더를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자 하늘이 찢어지는 굉음과 함께 거대한 벼락이 디바이더 위로 내리꽂혔다.
“버, 번개가?”
지직. 지지직.
디바이더의 날에 맺힌 번개가 강렬한 스파크를 튀겼다. 그것을 움켜쥔 베가스가 소리쳤다.
“받아봐라. 이것이 나의 혼신을 다한 일격.”
콰르릉!
우레가 터져나간다. 번개가 터져나간다. 베가스는 혼신의 힘을 다해 검을 내리쳤다. 초고열의 전압으로 탄생하는 번개의 마법검. 이름하여…….
“폭뢰검(爆雷劍)이다!”
이터의 폭마검이 투기를 사방으로 폭발시키는 참격이라면 폭뢰검은 투기를 한 점에 작렬시키는 날카로운 참격이다. 순식간에 뻗어나간 폭뢰검은 이터를 삼키며 무시무시한 스파크를 뿜어냈다.
“꺄아악!”
사방으로 튀어나가는 스파크. 그 작은 스파크 하나마저도 라이트닝 마법과 맞먹었다.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스파크를 피하며 로자리아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대로 피하지 않았다면 이미 통구이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폭뢰검인가. 엄청난 위력이다.”
“이터는… 이터는 어떻게 됐지?”
스파크로 일어난 고열이 너무나도 강해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여유로운 미소의 베가스, 그리고 초조하게 바라보는 일행들의 귓가에 판정이 들렸다.
[이터 데미지 0%]베가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야?”
“이터!”
열기가 걷혀가는 자리에 이터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두 다리로 우뚝 서 있었다. 그의 앞으로 깨어져 가루가 된 사자상의 방패가 흩어지며 사라졌다. 베가스가 짧은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엡솔루트 프로텍터. 확실히 그건 어떤 공격이든 한 번을 무조건 막아주는 방패였지. 이럴 때 그런 걸 꺼내놓다니 약은 녀석. 하지만 다음은 어떨까. 그 방패로는 이제 폭뢰검을 막을 수 없을 텐데.”
“…….”
이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손에 들고 있던 기간틱 블레이드와 펜릴 두 개를 모두 바닥에 꽂아버렸다. 그것은 루시펠 나이츠는 물론 일행에게도 의아한 일이었다.
“이터?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전투 중에 무기를 놓아버리다니!
베가스도 의아한 얼굴이었다.
“뭐 하는 거지?”
“네 말대로야.”
뚜둑. 뚜둑.
주먹을 가볍게 풀며 이터가 입을 열었다.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하지. 아무리 약한 녀석이라도 목숨을 걸고 덤비면 위험한데 내가 너무 얕봤는지도 몰라.”
스으.
이터가 다리를 벌리며 자세를 잡았다. 그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지금부터 전력을 다해 없애주겠다.”
***
“이터 녀석, 너무 꾸물거리는데.”
성의 최상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