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9
마염의 황제 009화
그레이센은 적잖이 놀랐다.
‘이 여자, 설마 마법사였나?’
“마법사라… 여자 치곤 제법 쓸 만한 기습이었소. 하지만…….”
“앗!”
그레이센은 힘을 놓아 넘겨주는 척하며 재빨리 술병을 잡아챘다. 결국 라모스 15년산은 그레이센의 손에 넘어갔다.
그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병을 내보이며 말했다.
“하하, 이제 술병은 내 것이 된 것 같군. 어디 뺏을 수 있으면 뺏어보시오.”
“이 인간이 정말! 어디 한번 해보자, 이거지?”
로자리아는 팔을 걷어붙였다. 둘 사이에 당장이라도 부딪힐 것 같은 냉랭한 기운이 흘렀다.
가만히 둘의 하는 양을 지켜보던 이터가 가즈 블레이드에게 물었다.
“저 둘은 왜 싸우는 거냐?”
“글쎄? 저 술 때문에 싸우는 것 같은데. 저런 유치한 걸로 싸우다니 역시 인간은 개념 없어.”
이터는 그레이센이 흔들고 있는 술병을 가리켰다.
“그럼 그냥 저것만 가져오면 되는 건가?”
“뭐, 그것 때문에 시작된 거니까 아무래도 그렇겠지.”
이터는 고개를 끄덕이곤 곧장 그레이센의 앞으로 나섰다.
“이봐, 그거 가져간다.”
“응?”
로자리아와 대치하고 있던 그레이센은 당돌하게 나선 이터를 보며 코웃음 쳤다.
“뭐야, 이 꼬마는? 훗, 미안하지만 꼬마는 집에 가서 엄마 젖이나 더…….”
“수리수리.”
한 손을 오므렸다가 펼치는 이터. 쥘 때는 아무것도 없던 손 위에 어느새 라모스 15년산이 들려 있었다.
깜짝 놀란 그레이센은 자신의 손을 보았다. 당연히 손에 들려 있어야 할 병이 없다.
‘빼앗겼어?’
그레이센은 경악했다.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설마 내가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채갔다는 건가? 이런 꼬마가?’
그가 당황하는 사이, 술병은 로자리아의 손에 넘어갔다.
“이제 됐나?”
“좋아. 아주 잘했어, 이터!”
이제 기세가 바뀌었다. 어이없이 술병을 빼앗겨 황당해하는 그레이센과는 반대로 이젠 로자리아 쪽이 기세등등해졌다. 그레이센은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느꼈다.
“감히 건방진 꼬마 녀석이 버릇없게 이 그레이센님이 친히 노린 술병을! 훗, 좋아. 그렇다면 힘으로 받아가도록 하지.”
그레이센이 로자리아에게 빠르게 다가왔다. 그러나 로자리아의 얼굴은 여유로 가득했다.
그녀는 딱 하나만 주문했다.
“날려버려, 이터!”
그레이센은 뭐가 어떻게 되는지 제대로 보지 않았다. 다만 그가 제대로 느낀 것은 갑자기 이터가 자신 앞에 나타난 것과 뭔가 강하게 턱을 후려쳤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펍의 천장을 뚫고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끄아아아악!”
“와, 왕자님!”
그때까지 원산폭격을 하고 있던 론은 허겁지겁 일어나 그레이센이 날아가 버린 곳을 찾아 달려나갔다.
로자리아는 뻥 뚫린 천장을 보며 깔깔 웃었다.
“호호호홋! 속이 다 시원하네.”
“보통 저렇게 날아가면 사람부터 걱정해야 하는 거 아냐?”
가즈 블레이드가 식은땀을 흘리며 물었지만 로자리아는 괜찮다는 듯 그를 두드리며 말했다.
“자, 자, 사소한 건 신경 쓰지 말고 밥이나 먹자. 이봐, 웨이터. 식사는 언제 나오는 거야?”
“아? 아,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방금 전의 소동을 지켜본 웨이터는 분주히 부엌을 오갔다. 아무래도 오늘 비위를 잘못 맞춰줬다가는 난리날지도 모른다. 펍의 부엌이 때아니게 정신없이 돌아갔다.
한편, 마을에서 좀 떨어진 숲 속. 론은 수풀 사이로 반쯤 처박힌 그레이센을 황급히 꺼냈다.
“와, 왕자님! 괜찮으십니까?”
“크으. 설마 그 꼬맹이가 이런 말도 안 되는 힘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거울을 보며 먼지로 엉망이 된 얼굴과 머리를 털어내던 그레이센은 순간 숲이 떠나가라 비명을 내질렀다.
“아니! 내, 내 튼튼하고 아름다운 치아가!”
하나가 비어 있었다. 백옥같이 아름답고 촘촘히 박혀 있던 치아 하나가 시커멓게 뻥 뚫려 있었다.
이런 수모를 겪다니. 너무 굴욕적이다!
“론 바할트!”
“네, 왕자님.”
멀쩡한 이빨로 아랫입술을 깨물며 그레이센은 말했다.
“지금 즉시 마을을 떠난다. 계획의 진행을 서두르자.”
“그 말씀은?”
그레이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데아로크의 다섯 조각을 찾는 여행을 서두른다. 그래서 절대의 힘을 얻어 나라를 멸망시킨 원수들에게 복수한다. 저 꼬마와 여자까지 덤으로!”
결의에 활활 불타오르는 그레이센을 보며 론은 왠지 어깨가 처지는 기분이 들었다. 왠지 앞쪽의 일이 덤인 기분이 드는데.
그레이센은 한 쪽이 빈 이를 갈며 마을을 노려보았다.
“절대 잊지 않겠다. 두고 봐라, 괴물 꼬마!”
***
“흐음. 쟤네들이 그 도둑놈들인가?”
마을에서 가장 높은 건물 옥상. 가슴이 움푹 패고 허리와 엉덩이 라인이 슬쩍슬쩍 드러나는 야릇한 복장을 한 여인이 망원경을 치우며 입을 열었다.
포니테일로 머리를 묶어 내린 여성의 곁에는 일전에 로자리아의 탑을 태웠다가 고문(?)을 당한 흑마법사가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네, 바로 저놈들입니다.”
“확실히 가즈 블레이드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 애들이잖아?”
여인의 목소리 끝이 묘하게 꼬여 들어가자 흑마법사는 황급히 말했다.
“애들이라고 얕보면 안 됩니다. 특히 저 꼬마는…….”
여인의 목소리가 싸늘해졌다.
“나한테 지금 잔소리하는 거냐?”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여인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흑마법사를 뒤로하고 차갑게 말했다.
“고작 맡긴 일 처리 하나 제대로 못 하고 이 네리아더러 애들 처리나 하게 만들다니. 각오하고 있어. 나중에 영감이 뭐라고 하면 네 녀석에게 톡톡히 따져 물을 테니.”
“알겠습니다.”
“어쨌든 일은 일이니까.”
네리아라고 이름을 밝힌 여법사가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눈에 신나게 음식을 먹는 이터와 로자리아의 모습이 들어왔다.
“오랜만에 한번 데리고 놀아볼까?”
Chapter 1-4. 악녀, 네리아의 도전
흑마법사는 네리아의 눈치를 살피며 눈을 굴렸다. 물어볼까말까. 괜히 물어봤다가 자존심 건드릴 거 같기는 한데 도저히 궁금해서 안 되겠다.
흑마법사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저어, 네리아님, 녀석들을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입니까?”
찌릿.
네리아의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내가 임무 계획을 일일이 너 같은 녀석에게 보고해야 하느냐는 불쾌한 표정에 흑마법사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아, 아니… 그게 저, 저는 그냥…….”
“됐어. 무지한 녀석의 결례 정도에 화를 낼 밴댕이는 아니니까. 그렇게 알고 싶다면 가르쳐주지. 일단은 이걸로 녀석들을 처리할 생각이야.”
언제 꺼냈는지 네리아는 옆구리에 광주리를 차고서 사과 하나를 베어물었다. 광주리에는 같은 사과들이 한가득 담겨 있었는데 하나같이 윤기가 좔좔 흐르는 것이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사과?”
흑마법사는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 사과로 뭘 어떻게 하시겠다는 건지. 그는 광주리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별다른 특이한 냄새 같은 건 안 나는데.’
네리아도 잘 먹고 있는 것이 맛있어 보인다.
“어디…….”
흑마법사는 네리아의 눈치를 살피며 광주리에서 사과를 하나 꺼내 한 입 베어물었다.
“커억!”
한 입 베기가 무섭게 숨이 턱 막혀온다. 하늘이 노래지고 눈이 컴컴하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흑마법사의 모습을 보며 네리아는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응? 먹었어? 그거 삼키면 코끼리도 3분 만에 즉사하는 맹독인데.”
“웨… 웨에엑!”
얼마나 토해 냈을까. 노래진 하늘이 다시 푸른 하늘로 돌아오기까지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나마 그것도 흑마법사 짓을 하는 동안 이것저것 괴이한 실험들을 해보면서 몸이 어느 정도 적응을 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골로 갈 뻔했다.
“주, 죽다가 살았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안심이 되는 흑마법사였다. 이 맹독이 묻은 사과를 저 마녀와 꼬마에게 먹이겠다는 건가, 과연? 이런 맹독이라면 아무리 괴물 같은 놈들이라도 단번에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먹고 있다니.’
자신은 한 입 베어물고 생사를 오락가락했는데 그런 걸 태연한 얼굴로 베어먹고 있다니. 네리아에 대한 존경심이 무럭무럭 피어나는 흑마법사였다.
‘역시 서른네 가지 독과 456가지의 저주에 능하다 불리는 악녀, 네리아님.’
대단하다. 자신 따위완 다른 이분이야말로 프로. 진짜 프로인 것이다.
“내 거엔 안 발랐어.”
“…….”
사과를 다 씹어먹은 네리아는 찌꺼기를 뒤로 내던지며 흑마법사에게 광주리를 건넸다.
“아무튼 저런 애들한테 이거면 충분하겠지. 자.”
“이, 이걸 왜 절 주시는?”
“왜냐니? 녀석들에게 먹여야 할 거 아냐.”
흑마법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제, 제가요?”
“그럼 이 짬밥에 내가 하리? 얼른 안 가?”
무섭게 눈을 부라리는 네리아의 기세에 흑마법사는 알아서 꼬리를 말았다.
“발등에 불이 나도록 다녀오겠습니다.”
우렁찬 소리로 답한 흑마법사는 광주리를 들고 즉시 마을로 튀어갔다.
***
그때쯤, 이터와 로자리아 일행은 마을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모처럼 마을에 도착했는데 하루 정도는 묵어야겠지? 여관을 한번 찾아보자.”
분주한 거리를 벗어나 여관을 찾고 있는데 누군가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응?”
남루한 복장에 만들어 붙인 티가 역력한 매부리코, 후드를 길게 눌러쓴 노파가 광주리에 사과를 가득 담고 나타났다. 그녀(?)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 안녕하세요, 아가씨. 저는 보시다시피 평범한, 절대 수상한 사람이 아닌, 과일장수입니다. 오늘 오픈 기념으로 갓 따온 싱싱한 사과 세트를 무료로 드리고 있으니 한번 맛이나 보세요.”
“와아, 맛있겠다. 이게 다 무료라고요?”
로자리아는 의심도 없이 노파가 내민 광주리를 덥석 받아 들었다. 하나같이 알이 토실토실한 제대로 된 물건이다.
로자리아가 광주리를 받자 노파는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그렇습니다. 그럼 전 이만…….”
“잠시만요, 할머니.”
줄행랑에 가까운 걸음으로 도망가려던 노파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서, 설마 눈치 챈 건 아니겠지?’
“왜, 왜 그러시는지?”
골똘하게 생각하는 표정을 짓는 로자리아. 뭔가 생각날 듯하면서 안 난다는 얼굴이었다.
“우리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지 않나요? 어딘가 낯이 익은 것 같은데.”
“그, 그럴 리가요. 제가 아가씨께서 아시는 분이랑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우연이거나 착각일 뿐이랍니다. 안녕히!”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치는 노파의 뒷모습을 보며 로자리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흐음, 이상한 할머니네. 아무튼 맛있게 생긴 것은 사실이니까. 어디 맛 좀 볼까? 오픈 행사 기념이라니 운이 좋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