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92
마염의 황제 092화
여기서 자신이 쓰러져 이데아로크가 부활하든지, 내면의 힘을 개방하는 것이 실패하든지 결과는 같다.
밑져야 본전. 이건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루시펠이 천천히 이터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럼 슬슬 마무리지어 보도록 할까.”
로자리아는 초조해졌다.
‘침착해, 로자리아.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이터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로자리아는 생각했다. 이터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자신에게 이 둘의 싸움 속에 끼어들 수 있는 실력은 없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이터에게 힘이 될 수 있는 방법이. 반드시.
‘루시펠은 이터와 싸우는… 이터를 쓰러뜨리는 순간을 고대해 왔어. 하지만 그의 목적은 이터와 싸우는 것이었나?’
아니야.
‘그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로자리아의 눈이 자신의 손을 향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가즈 블레이드가 감탄사를 터트리며 날을 떨었다.
“어머, 이터가 밀리고 있는 거야? 의외네. 저렇게 무식하게 센 녀석을 밀어붙이는 녀석이 있다니. 이거 엄청난 구경거리인걸!”
“가즈 블레이드.”
가즈 블레이드는 가드를 들었다. 어딘지 모르게 안색이 좋지 않은 얼굴의 로자리아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가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응? 허접 마녀, 왜 그런 눈으로 보고 있는 거니? 똥이라도 마려운 거야? 혹시 변비라도 걸렸어?”
“미안해.”
“뭐가?”
로자리아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가즈 블레이드를 하늘로 번쩍 치켜들었다. 검을 쥔 반대 손에 강력한 마나의 기운이 모여 스파크를 일으켰다. 깜짝 놀란 가즈 블레이드가 허공에서 발버둥치며 소리쳤다.
“꺄아악~ 너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루시펠!”
로자리아의 외침에 루시펠은 고개를 돌렸다. 로자리아는 마나가 맺힌 손을 가즈 블레이드의 날에 살며시 갖다 대었다. 마나의 빛이 가즈 블레이드의 날에 닿자 강렬한 스파크가 일었다.
“꺄아악! 뜨거워!”
“그쯤에서 손을 떼는 게 좋을걸. 아니면 네가 그토록 가지고 싶어하는 가즈 블레이드는 네 눈앞에서 박살나 버릴 테니까.”
“로자리아.”
로자리아의 갑작스러운 행동은 이터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가즈 블레이드는 비명을 지르며 날을 휘었다.
“꺄악! 박살내 버리겠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너 지금 농담하는 거지? 그렇지?”
하지만 입을 굳게 다문 로자리아의 표정은 농담하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녀는 루시펠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이데아로크의 나눠진 조각들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고리,네가 설령 이대로 이터를 쓰러뜨려 펜릴을 빼앗는다고 해도 가즈 블레이드가 없으면 무용지물이야. 난 비록 이터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 정도로 약한 인간이지만… 저항 못 하는 에고 소드 하나 부러뜨릴 정도의 힘은 있어.”
무뚝뚝한 얼굴로 로자리아를 바라보던 루시펠은 어깨를 피식 웃음을 흘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훗. 나 이것 참. 완전히 허를 찔러버렸군.”
“…….”
로자리아의 뒤에서 이조르네가 한 걸음 내딛었다. 하지만 로자리아는 그녀의 움직일 것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움직이지 마, 이조르네. 이미 주위에는 트웰브 쉐도우 소드를 설치해 두었으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네가 날 공격하는 것보다 내가 검을 깨부수는 게 더 빨라.”
“흥.”
이조르네는 부채를 펼쳐 얼굴을 부치며 말했다.
“착각하지 마. 이터와 그 일당의 목숨은 루시펠님이 취한다. 나는 그저 옆에서 지켜볼 뿐. 내가 나설 자리가 아니야.”
가즈 블레이드를 쥔 로자리아는 루시펠과 팽팽히 대치했다. 이터가 로자리아를 말리며 소리쳤다.
“그만둬, 로자리아. 이데아로크는 그렇게 간단히 물러설 녀석이 아니야. 녀석은 내가 처리한다. 쓸데없이 녀석을 도발하지 마.”
“이터,.”
로자리아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너를 만나서 여행한 지 얼마의 시간이 흘렀지? 2달? 3달? 짧은 시간 동안에 너무 많은 일이 생겨서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겠어.”
처음 만났을 때의 순간이 떠오른다.
시간 자체는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옛날 일이 되어버린 것처럼 아득해져 버린 기억들. 그때를 떠올리며 로자리아는 입을 열었다.
“처음엔 배고프다면서 나타났던 꼬마가 날 지켜주겠다고 했었지. 하지만 난 너랑 같이 여행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너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어. 자존심 상한단 말이야. 이래봬도 이 몸은 알센데린의 마녀라고. 꼬마 하나에게 짐짝 취급을 당하는 건 싫단 말이야.”
그러니까.
검을 움켜쥔 로자리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니까 이번엔 내가 도와줄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런 것뿐이니까.”
“로자리아…….”
가즈 블레이드가 있는 힘을 다해 날을 비틀며 소리쳤다.
“그만둬, 로자리아. 이터 목숨만 귀하니? 나처럼 우아하고 섬세한 검은 세상에 몇 개 없단 말이야. 게다가 다른 것도 아니고 그 불결한 손으로 날 부러뜨리겠다니. 그런 끔찍한 농담은 그만둬.”
로자리아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 가즈 블레이드.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방법밖에 없어.”
“아무리 생각해도?”
“용서해 줘.”
“…….”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그 적막을 깨뜨린 것은 가즈 블레이드의 차가운 콧방귀 소리였다.
“흥. 하여간 인간들이란. 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자기들 편한 대로만 생각하는 족속들이라니까.”
“가즈……?”
우우우.
가즈 블레이드가 새하얗게 불타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로자리아였지만 한 번 불타기 시작한 가즈 블레이드는 멈추지 않았다. 새하얀 불길 너머로 가즈 블레이드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필요할 땐 동료라고 부르더니 잘도 헌신짝같이 버리는군. 인간들의 동료라는 건 그런 건가? 아니면 어차피 인간이 아닌 것의 생명은 가치가 없다는 건가? 조금 더 놀아주고 싶었는데 실망이야.”
가즈 블레이드의 검신을 휘감던 새하얀 빛이 정점에 달하며 폭발했다. 그 엄청난 빛에 로자리아는 눈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
“윽!”
눈을 가리고 주춤하면서도 로자리아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대체… 지금 가즈 블레이드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새하얀 광채를 내뿜는 가즈 블레이드는 그는 가드를 살짝 돌려 루시펠을 향해 말했다.
“나름 재미있었지만 이제 끝내겠다. 루시펠, 괜찮겠지?”
“마음대로 해.”
“가즈 블레이드… 너?”
콰아아.
빛을 폭사하며 가즈 블레이드는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그 열기를 견디지 못한 로자리아는 검을 놓치며 비명을 질렀다.
“꺄악!”
로자리아의 손을 벗어난 가즈 블레이드는 스스로 허공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대로 루시펠의 손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날아가 쥐어졌다.
“가즈 블레이드!”
화상을 입은 손을 움켜잡고 당황해하는 로자리아를 보며 루시펠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는 손에 쥔 가즈 블레이드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가즈 블레이드가 아니야. 정식으로 소개하지. 이 녀석은 이데아로크의 모든 조각을 잇는 고리이자 나의 애검, 라그나 블레이드.”
“라그나… 블레이드.”
“후후, 이 녀석을 쥐어보는 건 오랜만이로군. 5천 년 만이었던가?”
과거의 향수를 떠올리는 루시펠의 앞에서 로자리아는 몸을 떨었다.
“라그나 블레이드라니… 이데아로크의 애검이라니. 그럴 수가. 말도 안 돼. 가즈 블레이드는…….”
“아무런 능력이 없다,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로자리아 대신 말한 루시펠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물론 그렇게 보였겠지. 너희들은 이 녀석을 다루는 법을 전혀 모르니까. 라그나 블레이드는 자신이 인정한 주인이 아닌 자에게는 힘을 빌려주지 않거든. 이렇게 말이야.”
휘익.
루시펠이 라그나 블레이드를 가볍게 휘둘렀다. 하지만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력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검면에서 튀어나온 예리한 투기가 이터와 로자리아를 뛰어넘어 뒤편에 서 있던 첨탑 하나를 대각선으로 그어버렸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무너지는 첨탑. 로자리아는 마른침을 삼켰다. 장난치듯이 휘둘렀을 뿐인데 이 정도라니.
‘어, 엄청난 위력이야.’
검을 한 번 휘둘러본 루시펠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검을 튕기며 말했다.
“좋아~ 예리함은 변함이 없군. 검을 돌려줘서 고마워, 로자리아. 하지만…….”
루시펠의 미소 띤 얼굴이 로자리아를 향했다.
“그렇다고 해도 감히 멋대로 나와 이터와의 싸움에 끼어들다니. 그건 용서받을 수 없겠는걸? 벌을 받아야겠어.”
“그만둬, 루시펠. 네 상대는 나다.”
루시펠의 의도를 알아챈 이터가 그를 막으려고 달려들었지만 루시펠은 충격파로 날려버렸다. 밀어내는 힘을 이기지 못한 이터는 뒤로 밀려나 탑에 처박혔다.
“큭!”
“이터!”
“넌 거기서 가만히 구경이나 하라고.”
루시펠은 로자리아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가 만들어내는 검기가 돌풍이 되어 로자리아의 주위로 날아들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예리한 검기가 뺨을 스치고 지나간다. 화끈한 느낌과 함께 핏방울이 하늘로 튀어올랐다. 검기 사이에 몰린 로자리아는 죽음을 느꼈다. 날카로운 검기가 그녀의 팔을 벤다.
“꺄아악!”
사방으로 흩어지는 붉은 피. 균형을 잃은 그녀의 눈앞에 하늘로 튀어 올라가는 물체가 보였다. 저것은…….
‘내 팔…….’
그리고 팔이 잘린 것을 느낀 순간, 그녀를 에워싸고 있던 검기가 그녀를 난자했다.
‘역시 난…….’
눈앞이 붉어진다. 푸른 하늘이 새빨갛게 물든다. 로자리아는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짐밖에는 될 수 없는 걸까.’
털썩.
로자리아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막 무너진 탑의 벽을 헤치고 나오던 이터의 눈에 그 광경이 담겼다.
“로…….”
이터는 바닥을 박찼다. 그는 옆에 루시펠이 있다는 것도 잊고 로자리아를 향해 달려갔다.
“로자리아!”
“이터…….”
이터에 의해 반쯤 일으켜진 몸뚱이. 하지만 하체의 감각은 없었다. 자신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하는 이터의 얼굴을 보며 로자리아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터의 표정을 저렇게 까지나 변하게 만들다니. 자신은 이터에게 결국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역시 난… 변방의 마녀로 살아가는 게 더… 어울렸을지도…….”
“로자리아…….”
“마음껏 힘을 발휘해, 이터… 기억에 얽매일 필요는 없어.”
로자리아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네 스스로가… 인간으로 살아가면 되는 거니까.”
“로자리아.”
이터가 가장 두렵게 생각하는 것은 내면의 이터에게 잠식 당하는 게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자신을 깨달아가는 것이었다. 로자리아는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인가. 로자리아는 힘에 겨운 듯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인간으로… 살아줄 거지?”
그리고 로자리아는 눈을 감았다. 그녀의 숨이 조용히 멎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