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93
마염의 황제 093화
이터는 자신의 품 안에서 식어가는 로자리아의 몸뚱이를 안은 채 멍한 얼굴이 되었다. 그런 그를 깨운 것은 루시펠의 웃음소리였다.
“네에~ 하하. 그냥 죽어버리셨습니다. 이런, 이런 이렇게 쉽게 죽어버릴 줄 알았으면 조금 위력을 낮출 걸 그랬나? 크크. 뭐 그래봤자 소용없었겠지만. 역시 평범한 인간을 괴롭히는 건 너무 시시하다니까.”
이터는 말없이 로자리아를 바닥에 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지은 적이 없었던 살기 어린 눈으로 루시펠을 노려보았다.
“루시펠…….”
“헤에. 화난 거야, 이터? 걱정하지 마. 네 녀석도 곧 뒤따라가게 해줄 테니까.”
검을 빙글빙글 돌리며 웃음을 터트리는 루시펠. 이터는 그를 마주하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피가 배어나올 정도로 꽉 쥔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나는 로자리아를… 그녀를 지켜주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런데 잘도…….”
용서 못 해.
이터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루시펠, 네놈만은 절대로 용서 못 해!”
불타는 분노는 마의 본성을 깨운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았던 순백은 붉은 분노에 물들었다.
붉은 투기.
이터의 몸을 휘감고 터져 나온 붉은 빛이 주위에 거친 바람을 일으켰다. 휘몰아치는 먼지 바람을 피하며 루시펠은 인상을 찡그렸다.
“뭐야? 기분 나쁘게 먼지나 일으키고?”
슈우.
먼지 구름을 뚫고 붉은 섬광이 날아든다. 순간 경직되는 루시펠의 얼굴, 루시펠은 그 일격을 간발의 차이로 비켜냈다. 뺨에 가늘지만 작은 상처가 남았다. 재빨리 물러나며 균형을 잡은 루시펠은 흡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호오… 드디어 제대로 할 생각이 든 건가?”
마침내 이터는 붉은 투기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루시펠은 크게 놀라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바라던 바였다. 자신은 바로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힘에 대해서는 나도 나름대로 연구를 해뒀거든. 그 정도로 나를 쓰러뜨릴 순 없…….”
퍼억!
루시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터의 주먹이 안면에 정통으로 처박혔다. 루시펠의 몸이 순간 크게 휘청였다. 깜짝 놀란 이조르네가 소리쳤다.
“루시펠님!”
“뭐, 뭐야?”
휘청거리며 물러난 루시펠은 자기 스스로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지금… 맞았다?’
눈살을 찌푸리는 그의 앞에 붉게 빛나는 이터가 서 있었다. 루시펠은 굳어진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쳇, 조금 방심했나. 어쩔 수 없지. 한 대 정도는 서비스해 주는 수밖에. 하지만 지금 거 꽤나 아팠다고.”
우연에 불과하다.
붉은 투기의 이터에 대해서는 예전에 분석을 마쳤다. 제법 실력이 상승되긴 했지만 그래봤자 자신의 아래, 루시펠은 날개를 펼치며 이터를 향해 달려들었다.
“차앗!”
고속으로 이동해 정확히 이터의 인중으로 주먹을 날리는 루시펠. 계산대로라면 이터의 움직임으로는 이 공격을 피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주먹은 이터에게 닿지 않았다. 애꿎은 허공을 파고들었다.
“뭐?”
루시펠은 흠칫했다. 이터가 움직이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놀랄 틈은 없었다. 어느새 눈앞에 나타난 이터가 발을 들어 그의 얼굴을 밟아 버렸다.
“큭!”
루시펠은 얼굴을 부여잡고 뒤로 물러섰다. 주먹으로 얻어맞은 자리에 또 맞았다. 코피라도 터졌는지 검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마주한 이터가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보다 서비스가 많아졌군.”
“이… 까불지 마!”
루시펠은 비명과도 같은 외침을 내지르며 이터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와 함께 라그나 블레이드와 펜릴, 둘의 권각 그리고 마법이 부딪혀 들어가기 시작했다. 초고속으로 움직이며 합을 겨루는 둘을 보며 이조르네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터의 공격이 아까보다 훨씬 빠르고 강해졌어.”
그런 이터를 마주한 루시펠은 이터와 비슷한 속도로 움직이며 마주치고 들어가고 있었다.
‘루시펠님은 아직 전력을 다하고 계시지 않은 건가. 너무 느긋하신 것 같은데.’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이터를 마주한 루시펠의 손발이 점점 어지러워졌다. 이조르네는 눈을 크게 떴다.
“아니야…….”
그제야 이조르네는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루시펠님은 느긋한 게 아니야. 지금 전력을 다하고 계신 거야. 서, 설마.’
이조르네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루시펠님이 정말로 이터에게 밀리고 있다는 말인가?
또 한 번의 주먹이 루시펠의 턱에 작렬했다. 루시펠은 검은 피를 한 움큼 토해내며 뒤로 물러섰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 말도 안 돼. 네 힘은 이런 정도가 아니었어. 내가 밀릴 리가 없어. 내가… 내가 너 같은 녀석에게. 이건 말도 안 돼!”
하지만 이터는 그가 경악할 틈도 주지 않았다. 붉은 블레이드를 뿜어내는 펜릴이 무서운 속도로 찔러 들어왔다. 피할 자리가 없다. 입술을 깨문 루시펠은 급히 날개를 펼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제기랄!”
날아오르며 바닥을 바라보던 루시펠은 흠칫했다. 이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소환. 타이탄 브레이커.”
우우웅!
깜짝 놀란 루시펠이 고개를 돌리자 붉게 물든 주먹이 그를 향해 정면으로 날아들었다. 루시펠은 피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대로 주먹에 얻어맞을 수밖에 없었다. 타이탄 브레이커가 그의 안면에 작렬했다.
“크아악!”
콰앙!
타이탄 브레이커에 정면으로 얻어맞은 루시펠은 그대로 추락해 바닥에 처박혔다. 먼지에 뒤덮여 잔해를 헤치고 나오는 루시펠의 모습은 엉망진창이었다.
“쿨럭. 쿨럭! 비, 빌어먹을.”
탁.
그런 루시펠의 맞은편에 이터가 내려섰다. 펜릴의 붉은 블레이드가 더욱 더 환하게 타올랐다.
“넌 실수한 거다, 루시펠.”
이터는 루시펠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를 화나게 해서는 안 되는 거였어.”
콰아아아!
이터의 몸 주위로 터져 나오는 강렬한 투기. 루시펠은 그 압도적인 힘 앞에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크, 크윽!”
“루시펠님…….”
루시펠은 입술을 깨물었다. 믿을 수가 없다. 엇비슷한 것도 아니고 이렇게 일방적으로 얻어터지다니.
‘이게 무슨 쪽팔리는 일이냐. 나 루시펠이… 이데아로크의 육체가 이런 꼬맹이 하나한테… 비, 빌어먹을.’
하지만 분노해도 달라지지 않는 것은 현실은 이터가 강하다는 사실이었다.
녀석은 정말 강하다. 진짜다. 프라이드 때문에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와 자신과의 사이에는 분명히 파워의 차가 있다.
계산이나 분석으로는 닿을 수도 없는… 그야말로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대체 어떻게 된 놈이냐. 분명히 저번에 싸웠을 때는 이 정도가 아니었을 텐데… 어떻게 실력이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는 거지?’
루시펠은 주춤하고 있었다. 처음의 기세는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반면 내면의 힘을 개방한 이터는 새로운 기분을 맛보고 있었다.
‘알고 있다.’
이터는 조용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자신은 알고 있었다. 이 힘이 무엇인지. 이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그리고 알 수 있었다.
이터는 루시펠을 바라보며 말했다.
“넌 나보다 약해.”
“뭐라고?”
으득.
루시펠은 이를 악물었다. 건방진 꼬마놈이 조금 강해졌다고 우쭐대기는…….
루시펠은 바닥을 박찼다.
“웃기지 마라. 네깟 놈이 감히 이 루시펠보다 강하단 말이냐!”
분노를 터트리며 달려드는 루시펠. 하지만 이터는 그의 일격을 가볍게 피하며 발로 후려차 버렸다.
그는 턱이 꺾어져 처박히는 루시펠에게 대답해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응.”
“크…크윽. 젠장!”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바닥을 딛고 일어선 루시펠이 거칠게 검을 휘둘렀다. 라그나 블레이드가 일으키는 검은 선풍이 주위를 휘감으며 집어삼켜 버린다. 회심의 미소를 짓는 루시펠. 하지만 이터는 먼지가 사라진 자리에 멀쩡히 서 있었다.
“그, 그럴 수가…….”
루시펠은 몸을 떨었다. 이터의 힘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어떻게 자신의 힘이 하나도 먹히지 않을 수가 있는 거지?
이터는 그저 무뚝뚝하게 루시펠을 바라볼 뿐이었다.
“네 패배다, 루시펠.”
“…….”
루시펠은 말이 없었다. 이조르네도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럴 리가. 루시펠님이 저렇게 패하다니.”
“후… 후후. 후후후. 후하하하하!”
멍하게 서 있던 루시펠이 이마에 손을 얹고는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동시에 비명과도 같은 외침을 내질렀다.
“빌어먹을! 어째서, 어째서 저런 녀석이 나보다 강하다는 거야! 제기랄. 그럴 리가 없어. 난 분명히 최강일 텐데!”
루시펠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몸을 떨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붉은 눈의 이터는 여전히 그의 맞은편에 멀쩡히 서 있었다. 이터는 붉은 펜릴을 움켜쥐며 선언하듯이 말했다.
“끝이다.”
Chapter 4-4. 최후의 조각
콰아앙!
또 하나의 탑이 박살나 흩어져 갔다. 그 아래에 처박힌 루시펠은 검은 피를 토해내며 기침을 터트렸다.
“커억! 큭…….”
악몽이 따로 없었다.
루시펠은 힘겹게 고개를 들어 마주한 상대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의 끝에 이터가 서 있었다.
“아마 그대로 싸웠으면 네가 이겼을 거야. 로자리아를, 그녀를 네가 건드리지만 않았어도.”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거리는 데도 루시펠은 이죽거리며 말했다.
“큭. 뭐야. 그냥 평범한 동료가 아니었어? 꼬맹이 주제에 그런 아줌마를 좋아하기라도 했었다는 거냐?”
퍼억!
이터의 주먹이 루시펠의 뺨에 정통으로 작렬했다. 바닥에 처박힌 루시펠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크…….”
퉤.
입가에 모인 검은 피를 뱉어낸 루시펠은 다시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킥킥. 어떻게 된 거야, 이터? 방금 공격, 리듬이 약간 빗나갔잖아. 내 말에 정곡이라도 찔린 거야?”
이터는 일어나는 루시펠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차갑게 가라앉은 그의 눈이 뜨겁게 불타올랐다.
“난 나에 대한 기억이 없다. 어째서 이런 힘을 가지고 있는지, 가족이 있는지, 친구가 있는지… 난 아무것도 몰라.”
하지만 로자리아를 만나면서 달라졌다. 그녀와 함께 여행하면서 자신은 이터가 될 수 있었다. 세상에 존재할 수 있었다.
“로자리아는… 로자리아는…….”
이터는 입술을 깨물었다.
“로자리아는 내 가족이나 다를 게 없는 여자였다.”
“쳇, 시시한 이야기군.”
눈에 띌 정도로 약해졌다. 이조르네는 루시펠이 한계에 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루시펠의 분신, 루시펠의 몸에 생기는 이상은 누구보다 먼저 알아챌 수 있다. 이대로 계속된다면…….
‘위험해. 아무리 루시펠님이라고 해도 충격을 너무 많이 받으셨어.’
“콜록. 콜록.”
루시펠은 피 섞인 기침을 토해내며 입가를 닦았다. 손등에 묻어나는 검은 피를 보는 그의 안색이 어두웠다. 손이 절로 부르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