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94
마염의 황제 094화
‘제길. 데미지를 너무 많이 받았나. 이 몸으로는 한계로군. 완전하지 못한 몸으로는 이 이상 힘을 끌어내는 것은 무리야.’
아직 이데아로크의 조각은 완전하지 않다. 루시펠, 그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힘에는 분명히 한계선이 존재했다. 이대로 싸움이 계속된다면 이터에게 죽든지, 스스로 붕괴하든지 둘 중 하나였다.
그는 억지로 떨리는 팔을 붙잡아 멈췄다.
‘방법은 하나뿐이야.’
루시펠의 시선이 이터의 손에 들린 펜릴을 향했다.
이데아로크의 마지막 조각, 펜릴.
저것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이데아로크로 각성할 수 있다. 세상의 파멸로 몰고 갔던 악신의 힘. 모든 조각을 모아 그 힘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이까짓 꼬마 하나 밟아버리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펜릴만 손에 넣으면 돼.’
그것만 있으면 이길 수 있어!
루시펠은 다크 로드 캘릭스를 꺼내들었다. 그와 함께 루시펠 주위의 바닥이 검게 물들고 그 안에서 크기가 2미터가 넘는 거대한 갑주들이 몸을 일으켰다. 나이트 가디언 20기가 강철 검을 움켜쥐며 안광을 빛냈다.
이터는 그 광경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완전히 맛이 갔군. 이런 걸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쿠으으…….”
나이트 가디언들이 이터를 노리고 덤벼들었다. 이터는 사양하지 않고 그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붉게 빛나는 펜릴의 블레이드가 허공에 수를 놓았다. 그러자 기세 좋게 달려들던 나이트 가디언들은 자신의 무기들과 함께 그대로 쪼개어져 흩어져 버렸다.
하지만 그 순간 거대한 섬광이 이터와 나이트 가디언들이 선 자리로 날아들었다.
“……!”
콰아앙!
거대한 폭발과 함께 섬광이 주변을 삼켜버렸다. 주문을 날린 루시펠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지금이다.’
지금 이렇게 어수선한 틈을 노려 펜릴을 빼앗으면!
루시펠은 재빨리 날개를 펼쳐 먼지 사이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가 먼지 속을 뛰어들기가 무섭게 튀어나온 블레이드가 그의 눈을 찔렀다.
“끄아아악!”
불로 눈을 지지는 듯한 끔찍한 고통을 느끼며 루시펠은 비명을 질렀다. 블레이드에 찔린 왼쪽 눈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눈알은 터져버렸는지 형체도 없었다. 고통에 몸을 떠는 루시펠에게서 펜릴을 거둔 이터가 차갑게 말했다.
“너답지 않군. 이건 예전에 하네스가 써먹었던 수법이잖아. 똑같은 수법이 먹힐 거라고 생각한 거야?”
“비, 빌어먹을! 제기랄!”
루시펠은 닥치는 대로 마탄을 날렸다. 한발 한발이 첨탑 하나를 흔적도 없이 날려버릴 위력을 갖춘 공격. 하지만 이터에게는 닿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터가 초고속으로 이동하면서 공격을 피하는 것도 아니었다. 한걸음, 한걸음. 이터는 천천히 루시펠을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마침내 이터는 루시펠의 바로 앞에 섰다. 손만 뻗으면 닿을 듯한 짧은 거리임에도 루시펠은 차마 손을 뻗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으…….”
두려움. 이게 바로 공포라는 건가?
5천 년 전에도, 그리고 수없이 먼 과거의 순간에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5조각으로 나뉘어져 산산이 찢겨져 나갈 때조차.
하지만 지금 루시펠은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자신보다 그리 크지도 않은 어린 인간 꼬마에게.
이터는 떨고 있는 루시펠을 향해 펜릴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루시펠, 널 파괴하겠다.”
‘여기까진가.’
이터가 겨눈 펜릴의 끝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지만 루시펠은 무엇을 내놓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검으로 반격? 아니면 권으로? 아니, 마법을 쓰면 막을 수 있을까? 펜릴이 루시펠의 심장을 노리고 뻗어나갔다. 루시펠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펜릴은 꿰뚫었다.
퍼어억!
“……?”
펜릴로 찔러간 이터도, 그와 마주한 루시펠도 깜짝 놀랐다. 펜릴은 루시펠의 몸에 닿지 않았다. 루시펠을 대신해 펜릴에 가슴이 꿰뚫린 것은 이조르네였다.
“이조르네?”
으스러진 가슴과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온 몸을 받쳐 펜릴을 붙잡은 그녀는 고통 속에서도 절대 손을 놓지 않았다.
“부탁해, 프리야.”
“미친년, 또 귀찮은 일만 맡기고 있네.”
욕지기를 뱉으며 투덜거리는 프리야였지만 어느새 하늘로 솟구쳐 거대한 불새의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프리야는 인상을 찌푸렸다.
‘문디 같은 가시나. 그렇게 끼어들면 어짜자는 거고!’
아무리 주인을 위한 거라고 하지만…….
죽는단 말이다. 니는 그렇게 죽어도 상관없는 기가.
“키에에엑!”
바보 가시나.
프리야는 전력을 다해 날개를 펼쳤다. 그리고는 그대로 이터를 휘감았다. 죽을힘을 다해 전개한 프리야의 열풍이 이터를 뒤로 밀어냈다. 하지만 그뿐. 약간 뒤로 밀려난 이터는 단숨에 피닉스가 된 프리야를 분쇄했다.
파아앗!
“크윽!”
이터가 터트리는 투기를 이기지 못한 피닉스가 붕괴하고 엉망으로 그을린 프리야는 튕겨나가 바닥을 굴렀다. 무위로 돌아간 프리야의 공격. 그에게서 시선을 돌린 이터는 이조르네에게 말했다.
“안됐군. 이런 녀석의 공격으로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아니.”
피로 범벅이 된 이조르네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딱 한가지가 바뀌었어.”
이조르네가 천천히 무너졌다. 그리고 보였다.
무너지는 그녀의 뒤에 서 있는 루시펠이. 마지막 조각, 펜릴을 손에 거머쥐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 루시펠의 모습이.
이조르네는 처음부터 목숨을 바쳐 루시펠에게 펜릴을 넘길 작정이었던 것이다. 펜릴을 쥔 루시펠이 광소를 터트렸다.
“돼, 됐다. 크크크크. 잘했다, 이조르네! 마지막 조각이 모두 모였어.”
마지막 조각은 마침내 루시펠의 손에 들어왔다. 날개를 펼친 그가 하늘 위로 날아오르며 외쳤다.
“각오해라, 이터. 이제 널 죽여주겠다! 이데아로크의 조각을 한자리에 모아서.”
“…….”
루시펠이 조각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을 기다릴 이유는 없었다. 이터는 그를 격파하기 위해 하늘로 날아오르려 했다. 하지만 그가 뛰어오르려는 순간, 바닥에 쓰러져 있던 이조르네가 이터의 다리를 와락 끌어안으며 잡았다.
“이조르네.”
“미안. 가게 내버려둘 수는 없거든.”
이터는 미간을 좁혔다.
“쓸모없는 짓이다. 루시펠에게 있어 넌 소모품일 뿐이야.”
“알고 있어.”
베가스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몸도 가루가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조르네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누구도 아닌 루시펠님의 부하. 그 정도는 꿰뚫어볼 눈은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분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은 나도 마찬가지거든.”
“……!”
‘로자리아.’
순간 이조르네에 로자리아가 겹쳐 보였다. 로자리아처럼 이조르네도 루시펠의 힘이 되기 위해서 스스로를 버렸다는 건가.
이조르네는 천천히 부서져 갔다. 자신은 충분히 시간을 벌었다. 그녀는 짧게 웃음을 터트렸다.
‘인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쁘지는 않았어.’
“루시펠님… 부디 승리를.”
그리고 이조르네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이터는 말없이 흩어져가는 그녀의 최후를 지켜보았다.
콰르릉!
“……!”
난데없는 천둥소리에 이터는 고개를 들었다. 성을 중심으로 하늘에 펼쳐진 거대한 마법진. 그 네 방위에 이데아로크의 조각들이 섰다. 힘을 상징하는 조각, 펜릴. 마력을 상징하는 조각, 소울 이터. 정신을 상징하는 조각, 다크 로드 캘릭스. 그리고 이데아로크의 육체, 루시펠.
그 조각들의 정중앙에는 라그나 블레이드가 떠 있었다.
“루시펠.”
이터는 바닥을 박차며 하늘로 뛰어올랐다.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둘 것 같으냐!”
펜릴을 빼앗긴 이터는 기간틱 블레이드를 꺼내 들었다. 붉게 물든 기간틱 블레이드가 루시펠을 노렸다. 하지만 이터가 채 다가가기도 전에 진의 주변에 선 무형의 벽이 이터를 튕겨내 버렸다.
“윽?”
‘방어막인가?’
이터가 튕겨나기가 무섭게 진이 회전을 하며 빛을 뿌리기 시작했다. 중앙에 선 라그나 블레이드가 환하게 물들었고 조각들이 떠올라 루시펠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루시펠이라는 틀 안에 이데아로크의 힘, 이데아로크의 마력 그리고 이데아로크의 정신이 모였다. 그리고 그것은 라그나 블레이드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하나가 되었다.
눈부신 빛이 주위를 덮친다.
“윽?”
쏟아지는 빛이 어찌나 강한지 이터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빛이 사라지자 어둠이 몰려왔다. 푸르게 빛나던 하늘은 어느 사이엔가 칠흑의 빛으로 물들었고 거대한 마법진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대신 이터의 앞에 누군가 마주하고 서 있었다.
“미안. 오래 기다렸지? 지금 막 끝났어.”
선명하고 아름다운 목소리. 그 안에 더 이상 앳된 악동의 느낌은 없었다. 대신 푸른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복잡한 문양이 가득 새겨진 검은 도포의 청년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청년은, 이데아로크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맺었다.
“너를 죽일 준비가.”
***
쿠르르르.
통로가 흔들린다. 움직이는 바닥은 균형을 빼앗고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천장은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그 진동에 서로 맞붙어 들어가던 올가와 그레이센 일행은 서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뭐지… 이 진동은?”
“성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멀쩡하던 성이 갑자기 무너질 것처럼 흔들릴 리가 없다. 일행들의 머리 속에 앞서 간 이터와 로자리아가 떠올랐다.
“아무래도 벌써 어마어마한 격전을 벌이고 있는 모양이군.”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을 느끼는 건 쉐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조르네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설마 녀석도 당해버린 건가? 게다가… 루시펠님의 힘이 계속해서 거대해지고 있어.’
뭔가가 일어난다. 그것도 자신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
쉐드는 뒤로 물러섰다.
“쳇. 아무래도 여기서 더 허비할 만큼 여유롭지 않은 모양이군. 미안하다, 올가. 뒤를 부탁할게.”
“크아아아!”
그 말과 함께 쉐드는 통로 너머로 사라졌다. 그레이센이 발끈하며 도망치는 쉐드의 뒤를 쫓았다.
“멈춰!”
쿠웅!
그레이센이 검을 날리려는 데 그 앞을 올가가 가로막았다. 그가 휘두른 주먹이 바닥에 박혔다.
그레이센은 그야말로 간발의 차이로 피해냈다.
“큭!”
디센트 프럼 헤븐의 효과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 힘으로 어떻게 올가와 막상막하로 겨룰 수 있었던 그레이센이지만 3분의 시간은 너무 짧았다. 하지만 통로를 넘어가기 위해서는 이 덩치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래도 시간이 좀더 걸릴 거 같은데.”
“크아아!”
올가가 그레이센을 향해 덤벼들며 주먹을 휘둘렀다. 그렇지 않아도 무지막지한 완력을 가진 녀석인데 지금 걸치고 있는 갑옷은 그 능력을 몇 배는 더 올려주고 있었다. 단 한 대라도 잘못 맞는 날에는…….
그레이센은 짧게 몸을 떨었다.
‘상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지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