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95
마염의 황제 095화
콰앙! 쾅!
거침없이 휘두르는 올가의 주먹을 간발의 차이로 피해내며 그레이센은 올가의 몸에 검날을 박아 넣었다. 하지만 다치는 것은 오히려 자신의 검이었다. 이가 떨어져 나간 검을 보며 그레이센은 혀를 내둘렀다.
“칫. 정말 무식할 정도로 단단한 몸뚱아리로군.”
“그레이센 씨, 조심해요!”
“……!”
등 뒤에서 살기를 느꼈을 때는 늦었다. 어느 틈엔가 다가온 올가가 손을 들어 내리치고 있었다. 이 녀석이 이렇게 움직일 수도 있었나? 그레이센은 검을 들어 전력을 다해 막았지만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져 버렸다.
“크윽!”
“캬아-!”
그레이센이 쓰러지는 틈을 놓치지 않은 올가는 그대로 마무리를 지으려 했다. 하지만 그가 그레이센을 내리치는 것보다 엘리스의 화살이 그에게 날아드는 것이 더 빨랐다. 황금빛의 화살이 올가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라이트닝 애로우!”
“크응.”
올가는 날아드는 빛의 화살들을 갑주로 튕겨내며 물러섰다. 론이 재빨리 다가와 그레이센을 부축했다.
“왕자님, 괜찮으십니까?”
쳇.
바닥에 피를 한 움큼 뱉어내며 일어난 그레이센은 쪽팔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정말 스타일 구기는군. 조금 농땡이를 피우기는 했지만 나도 꽤 검술 실력을 연마해 온 검사인데 말이야.”
‘역시 그게 아니면 싸울 수가 없다는 건가.’
입가의 피를 닦아낸 그레이센이 론을 바라보았다.
“론.”
“네, 왕자님.”
“한 번 더 디센트 프럼 헤븐으로 간다.”
그 말에 론은 경악하며 소리쳤다.
“무, 무립니다, 왕자님. 기술의 효력이 사라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요. 디센트 프럼 헤븐은 평범한 보조 능력 주문이 아니라 신의 힘을 강림시키는 겁니다. 한 번 한계까지 간 몸으로 다시 기술을 사용하면… 자칫하면 몸이…….”
“그럼 다른 좋은 방법이 있나?”
론은 대답하지 못했다. 확실히 디센트 프럼 헤븐을 사용하지 않는 그레이센의 힘은 올가에게 미치지 못했다. 잠시간 버틸 수는 있겠지만 이대로라면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디센트 프럼 헤븐은.”
“걱정하지 마. 난 악운은 억세게 강한 녀석이니까. 너도 잘 알잖아.”
“왕자님…….”
“꺄아악!”
둘이 대화를 하고 있는 사이, 엘리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상처를 입은 엘리스가 바닥에 쓰러져 있고 올가가 그녀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상황으로 보아 직격은 면한 것 같지만 결코 작은 부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에, 엘리스 양!”
“시간이 없다, 론.”
그레이센은 론에게 결단을 촉구했다. 론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며 갈팡질팡했다. 올가가 다시 한 번 엘리스를 향해 다가왔다. 더 이상은 지체할 수 없다. 론은 입술을 깨물고 수인을 맺었다.
“무리하지 마십시오, 왕자님.”
그레이센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한 번 론의 입에서 디센프 프럼 헤븐은 주문이 흘러나왔다.
나 여기에 서서 당신을 부르니. 미천한 몸에 거해주옵소서. 빛의 자락 속에 울려 퍼지는 열두 아리아보다 더 거룩하신 분이여. 디센트 프럼 헤븐(Descent From Heaven).
파아앗!
그레이센의 몸이 다시 한 번 성령의 빛으로 환해졌다. 잠시 자신의 몸을 바라보던 그레이센이 짧게 미소지었다.
“생각보다 그리 힘들지도 않은 것 같군. 다녀오마.”
그 말과 함께 바닥을 박차고 달려 나가는 그레이센. 한편, 엘리스의 앞에 선 올가는 그녀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엘리스는 회복 주문을 사용해 몸을 치료했지만 아직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녀는 가만히 앉아 올가가 자신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으…….”
“크아아!”
퍼어억!
그 순간 올가의 턱에 작렬하는 주먹. 뒤로 주춤하며 물러서는 올가의 앞에는 어느샌가 그레이센이 서 있었다.
성령의 빛에 감싸진 그는 환한 빛을 내뿜으며 씨익 웃음을 지었다.
“정의의 구원자 등장.”
“그레이센 씨? 설마 또다시 디센트 프럼 헤븐을. 괜찮은 건가요?”
그레이센은 대꾸해 주지 않았다. 대신 짧은 미소를 한 번 지을 뿐이었다.
“엘리스, 론을 잘 부탁해. 내시라는 걸 빼고는 튼실한 녀석이니까.”
“네?”
타아앗!
그레이센은 바닥을 박차고 돌진해 나갔다. 그런 그를 올가가 마주했다. 둘의 주먹이 서로 맞부딪혔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론은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왕자님은 죽을 각오이신 거야.’
알고 있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디센트 프럼 헤븐을 걸어달라고 한 것인지, 무엇을 할 생각인지…….
하지만.
‘하지만 막을 수가 없어.’
“크아아아!”
올가의 주먹이 그레이센을 정통으로 찍어 바닥에 처박았다. 그레이센은 올가의 주먹과 함께 바닥을 뚫고 들어가 버렸다.
“정말 나도 어울리지 않는 짓을 하는군.”
짧은 한숨 소리와 함께 올가의 주먹이 움직인다. 바닥에 처박힌 그레이센이 올가의 주먹을 밀어내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말이지. 희한하게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단 말이야.”
팔을 밀어내기가 무섭게 그레이센은 올가의 품안으로 파고들었다. 그의 주먹이 올가의 가슴에 정통으로 작렬해 들어갔다.
꽤 충격이 컸는지 올가는 뒤로 주춤하며 물러섰다.
“크.”
연이어 공격에 들어가려던 그레이센이 멈칫했다. 몸이 욱신거린다. 그는 고통에 인상을 찡그렸다.
‘벌써 몸이 견뎌내질 못하는 건가.’
“아직이다. 이 몸이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냐?”
그레이센은 억지로 견뎌내며 올가를 향해 달려들었다. 다시 두 사람의 주먹과 발이 격렬하게 맞부딪혀 들어갔다.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꼬여버렸는지… 거참.’
원래는 그저 이터 녀석들이 이데아로크의 조각을 찾으면 그걸 빼앗아버릴 생각이었는데. 어찌된 노릇인지 지금 자신은 그 꼬맹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고 있었다.
‘이런 서민 녀석들 때문에 설마하니 왕가의 자손인 내가 목숨을 걸게 될 줄이야.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건가?’
잠시 생각해 보던 그레이센의 입가에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뭐, 그럭저럭 있는 것 같군.”
“크아아아!”
“멀었다, 괴물 놈아!”
터어엉!
그레이센의 주먹이 올가의 머리를 흔들었다. 올가의 몸이 비틀거리며 꺾였다.
“정통으로 맞았다!”
“크르르…….”
하지만 올가는 금세 충격에서 회복했다. 쓰러질 듯하다 다시 몸을 일으키는 그를 보며 그레이센은 입술을 깨물었다.
“쳇. 조금 모자랐나.”
이번에는 올가의 반격.
그레이센은 다시 치고 들어오는 공격을 위로 솟구치며 피했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가격한다.
계속해서 치고 박는 공방전. 론은 그런 왕자의 싸움을 긴장된 눈으로 지켜보았다.
“왕자님… 힘내세요.”
“지독한 놈… 이건 어떠냐!”
그레이센은 통로 안에 자리한 기둥 하나를 뽑아 들어 올가의 머리에 내리쳤다. 엄청난 박력과 함께 터져나가는 기둥. 하지만 올가는 멀쩡했다.
“뭐라고?”
“크아아!”
그레이센이 주춤하는 순간, 그를 향해 올가의 일격이 날아든다. 그 주먹에 얻어맞은 그레이센은 통로의 한쪽 벽에 완전히 파묻혀 버렸다.
“왕자님!”
그레이센은 무사했다. 디센트 프럼 헤븐의 빛이 그의 몸을 외부의 충격에서 보호해 주는 것이다.
그는 부서진 벽을 헤치고 나오며 투덜거렸다.
“제길. 적당히 좀 해라, 괴물 놈아. 아프잖아.”
‘아니…….’
그레이센은 표정을 굳혔다. 자신의 몸에 남아 있는 이 고통은 올가 때문이 아니라 디센트 프럼 헤븐의 후유증인가…….
아무래도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었다.
“쳇. 건방지게 멋대로 아프지 마라. 조금만 더 버텨.”
그레이센은 다시 올가에게 덤벼들었다. 아직도 그의 몸은 환하게 불타고 있었다. 공격을 날리며 그레이센은 입술을 깨물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텨라!
그레이센의 싸움을 지켜보는 론은 마른침을 삼켰다.
“이미 디센트 프럼 헤븐의 타임 리미트는 지났을 텐데.”
‘왕자님은 억지로 붙잡아두고 있는 거야. 몸이 버티지 못할 것을 알고 있으면서…….’
이대로 싸움을 계속하면 결국 버티지 못한 그레이센의 몸이 붕괴해 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레이센은 그걸 알면서도 절대 주문을 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론도 그 이외의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그레이센이 죽기 전에 싸움이 끝나기를 비는 것뿐이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내뱉으며 그레이센은 다시 주먹을 뻗었다. 이번에도 올가의 몸에 정통으로 작렬했지만 갑주에 의해 다시 튕겨났다.
그레이센은 물러나며 욕지기를 내뱉었다.
“젠장! 빌어먹을 괴물 같으니. 네놈은 약점도 없냐!”
몸이 무겁게 느껴진다. 움직임이 아까와 달라진 것이 확연하게 느껴진다. 힘도 점점 떨어져간다.
‘제길. 이젠 서 있기도 힘들어져 가는군. 어떻게든 단숨에 끝장을 보지 않으면…….’
하지만 어떻게?
디센트 프럼 헤븐의 힘이 자신을 지켜주고 있기는 하지만 공격이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해서야 같은 자리를 맴돌 뿐이다.
“크아아!”
“크윽!”
콰아앙!
잠시 딴 생각을 하는 사이, 올가의 주먹이 거침없이 바닥에 내리꽂혔다. 간신히 피해 낸 그레이센이 투덜거렸다.
“이 자식 좀 살살…….”
투덜거리던 그의 눈이 커졌다.
‘있다… 약점.’
저 갑옷으로 완전히 가려진 녀석이 데미지를 받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장소가!
그건 바로 투구에 드러난 얼굴이었다.
몸이 떨리는 것을 느끼며 그레이센은 생각했다.
‘이젠 더 망설일 시간도 없을 것 같군. 이번 일격에 전부 다 건다.’
“훗. 어마마마께서 도박은 절대 금물이라고 하셨는데.”
보기에도 당장에 쓰러질 것처럼 안색이 창백한 그레이센을 보다 못한 론이 소리쳤다.
“왕자님, 이제 충분해요, 그만두세요! 이 이상은… 이 이상은 몸이!”
“네놈, 론. 지금 누구에게 명령하는 거냐?”
당장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리는 순간에도 자존심만은 꺾이지 않았다. 그레이센은 론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그레이센. 페이샨 왕국의 왕자, 그레이센 지그프리드님이란 말이다.”
“왕자님…….”
이게 마지막.
그레이센은 그렇게 생각하며 올가에게 달려들었다.
‘제발 버텨다오, 내 몸아.’
“크아아아!”
올가의 주먹이 그레이센을 노리고 날아든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몸을 날려 일격을 피하는 그레이센. 올가의 팔이 바닥에 박히자 그는 그것을 밟고 올가의 얼굴을 향해 도약했다. 빛나는 주먹을 있는 힘껏 젖힌다.
하지만 그 순간, 올가가 반대 팔로 날아드는 그레이센을 후려쳤다.
“그레이센 씨!”
펄럭.
올가의 주먹에 부딪힌 그레이센의 망토가 펄럭인다. 하지만 거기 그레이센은 없었다. 그레이센은 이미 그곳보다 더 높은 곳으로 뛰어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