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99
마염의 황제 099화
하지만…….
론의 주위로 환한 빛무리가 일어났다. 그 빛을 머금으며 론은 말했다.
“하지만 약하기 때문에 힘을 합할 줄 압니다. 약하기 때문에 서로를 지켜주려 합니다. 당신이 말하는 그 인간의 단점들이 오히려 인간을 강하게 엮어주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아는 인간들은…….”
눈앞에 그레이센의 마지막 모습이 지나간다. 론은 입을 열었다.
“강합니다.”
휘이이잉!
론의 주위로 빛의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이터 일행은 그것이 무언지 잘 알고 있었다. 신의 힘을 인간의 몸에 강제로 강림시키는 주술.
디센트 프럼 헤븐!
“론 씨.”
엘리스가 눈을 크게 떴다.
‘설마… 론 씨는 지금.’
빛에 휘감긴 론이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이 이데아로크를 정면으로 향했다.
“왕자님은 늘 장난스럽고 어딘가 나사 하나 빠져 있는 듯 하긴 했지만 좋은 분이었습니다. 저에게는 그분의 유지를 이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설령 당신에게 미치지 못할지라도…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멈춰. 당신이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이데아로크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웃기는군. 너희들이 아무리 뭉치고 하나가 된다고 해도 강대한 힘 하나 앞에서는 무용지물일 뿐이야!”
“키이이이!”
다시 전열을 가다듬은 갑주들이 론을 향해 달려들었다. 제 아무리 디센트 프럼 헤븐을 쓰고 있다고는 하지만 론은 천성이 사제. 이런 괴물들과 싸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위험해!”
퍼억!
갑주들의 공격이 론의 몸에 작렬했다. 디센트 프럼 헤븐의 성력이 그의 몸을 보호했지만 천부적으로 전사가 아닌 그가 갑주들의 사정없는 공격을 견뎌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성력이 보호한다고 해도 몸 안을 울리는 충격이 그의 내장기관을 파괴했다.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된 론이 갑주들의 검에 매달려 하늘에 들렸다.
“이것 참 못 보고 있겠군.”
견디다 못한 맥스가 바닥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세레나도, 엘리스도 그의 뒤를 따랐다. 허나, 이터는 나서지 못했다.
아네스가 그의 손을 잡고 막았다.
“뭐 하는 거냐?”
“네게는 따로 할 부탁이 있다.”
“부탁?”
아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데아로크의 시선을 5분만 잡아주지 않겠나?”
“뭐?”
이데아로크의 시선을 잡아 끌어달라니?
그 와중에 맥스와 세레나, 엘리스는 갑주들과 전투를 시작했다. 그 덕분에 하늘로 들려진 론은 다시 바닥에 떨어질 수 있었다. 이미 몸은 엉망진창이지만 몸에 빛은 남아 있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이데아로크를 향해 기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까이…….’
“우아아악!”
“타아앗!”
“차앗!”
콰앙! 쾅! 쾅!
빛의 창, 홀리 스피어와 홀리 소드가 갑주들과 부딪히며 빛을 폭사했다. 갑주들과 전투를 치르는 맥스와 세레나는 대단했다. 과연 성기사들 중에서도 최고의 실력자라 불릴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한계점이었다. 그 두 사람이 힘을 합쳐도 밀고 들어오는 갑주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
“크윽!”
“실프여, 숲은 아니지만 내게 힘을 빌려주세요. 동료들을,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주세요.”
휘이이잉!
날카로운 바람이 울부짖으며 하늘을 날았다. 거대한 검의 형상을 한 녹빛의 기운들이 갑주들을 향해 부딪혀 들어갔다.
“바람의 검!”
“키이이!”
녹색의 검풍이 갑주들을 밀어냈지만 여전히 그들은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그야말로 잠시 시간을 번 것뿐이다.
맥스는 욕지기를 내뱉었다.
“제길. 저놈들은 약점도 없나.”
전투는 세 사람에게 점점 불리한 형국으로 전개되었다. 그 와중에도 론은 조금씩 이데아로크를 향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손을 이데아로크가 밟았다.
“크악!”
“인간이라는 것들은 참으로 어리석어. 되지 않는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포기라는 것을 모른다니까. 봐라, 오히려 네 녀석이 무모한 짓을 하는 바람에 네 동료들만 위험에 처하지 않았나.”
“그럴지도 모르지요.”
론은 힘겨운 숨을 고르며 고개를 들었다. 이데아로크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과연 파괴신. 그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은 장난이 아니었다.
하지만 론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무모한 짓을 해도… 뒤에서 견뎌내줄 동료들이 있다… 뒤에 남을 사람들을 믿고 앞을 향해 걸음을 내민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네, 이제야 알 것 같군요. 왕자님께서 무슨 생각으로 그러셨는지… 왜 저희들만 남겨두신 건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론은 웃으며 답했다.
“인간이 나아갈 수 있는 건 자신이 실패하더라도 반드시 그 유지를 이어줄 누군가가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지금의 저처럼요.”
파아앗!
론의 말과 함께 눈부신 광채가 이데아로크의 몸을 휘감았다. 그것은 디센트 프럼 헤븐의 빛이었다.
“이건?”
“신의 힘을 몸에 강림시킬 수 있는 인간 따위는 없어. 그레이센 왕자님이었기에 3분이나 가능했던 것. 원래… 원래 디센트 프럼 헤븐은 강화형 보조 주문이 아닌, 진실로 최후의 때에 상대와 자멸하는 것도 각오할 용기가 생겼을 때만 펼치는 카드. 이렇게 가까운 거리라면 당신도 무사하진 못하겠지요.”
“네 녀석, 설마?”
그 말에 이데아로크는 론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깨달았다. 이 자식, 자폭을 할 생각인가? 그는 재빨리 빛과 함께 론의 몸통을 끊으려 했다.
하지만 론이 한발 빨랐다.
‘부탁합니다. 이터 씨, 엘리스 씨, 부디… 왕자님과 제 희생을 헛되이 하지 말아주시길.’
그리고 빛은 폭발했다.
신의 성령이 가득 담긴 섬광이 사방으로 폭사해 나아갔다.
“뭐, 뭐야! 이 빛은?”
“키이이!”
성령의 빛을 견디지 못한 갑주들이 녹아내렸다. 산산이 가루가 된 그들이 먼지처럼 흩어졌다.
맥스와 세레나는 재빨리 빛의 방패를 꺼내 충격의 여파를 견뎠다.
“우아아아아!”
하늘 위로 솟구치는 섬광의 기둥. 론의 모습은 그 빛 안에서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아…….”
사라지는 빛을 보며 엘리스는 울상이 되었다. 그레이센과 마찬가지로 론도… 그녀는 목청껏 론의 이름을 외쳐 불렀다.
“론 씨-!”
론은 답하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도 다시는 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엘리스가 그렇게 슬픔에 잠겨 있는데 사라지는 빛 사이로 뭔가가 보였다.
“……!”
그것의 정체를 깨달은 엘리스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 되었다. 빛과 먼지가 사라진 자리에 우뚝 서 있는 것. 그것은 론과 함께 사라졌어야 할 남자였다.
“이데아로크!”
“…….”
이데아로크는 천천히 자신의 몸을 둘러보았다. 작은 상처와 먼지투성이가 된 몸. 이터도 어쩌지 못한 자신의 몸에 인간 따위가 상처를 입히다니.
이데아로크는 먼지로 더러워진 주먹을 움켜쥐며 입술을 깨물었다.
“건방지게.”
콰아아아!
그의 눈이 분노로 물들기 무섭게 주위에 태풍 같은 기의 기류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그 무시한 굉음 사이로 쩌렁쩌렁한 이데아로크의 외침 소리가 들렸다.
“거치적거린단 말이야. 너희들…….”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깨달은 이터는 황급히 엘리스를 낚아채며 물러났다. 하지만 맥스와 세레나는 아직 그 자리에서 주춤하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피해!”
“늦었다.”
“우아아아악!”
이데아로크가 만들어내는 힘의 소용돌이가 맥스와 세레나를 그대로 집어삼켰다. 하늘로 치솟는 소용돌이가 라그나 블레이드에 베이며 폭발해 버렸다.
“패왕격!”
휘몰아치는 기의 폭풍이 사라지고 바닥에 맥스와 세레나가 떨어져 쓰러졌다. 온통 피와 먼지로 엉망이 된 둘은 살았는지 죽었는지 쓰러진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검을 거둔 이데아로크가 그런 그들의 몰골을 보며 비웃음을 터트렸다.
“흥. 처음부터 이렇게 될 녀석들이.”
이데아로크는 시선을 돌렸다. 이제 남은 것은 이터와 엘리스 그리고 아네스까지 3명뿐이었다. 이데아로크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 남은 것은 너희들인가? 어떻게 할래? 셋 다 덤빌래?”
“빌어먹을…….”
이터는 곁눈질로 아네스를 보며 물었다.
“이봐. 방금 전에 5분만 버텨달라고 했는데 뭔가 승산이 있는 거야?”
“어디까지나 가능성이다.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어.”
“멋대로군.”
하지만 다른 방도는 없었다.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만 한다.
“알았다. 엘리스를 부탁한다.”
“잠깐만요, 이터 씨. 저도…….”
이터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 엘리스. 네가 함께 싸운다면 오히려 집중만 떨어질 거야. 이데아로크는 너를 지키면서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그런…….”
“그리고… 더 이상 잃고 싶지 않아.”
이터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은 엘리스는 순순히 물러났다. 대신 간절히 기원하는 얼굴로 말했다.
“알았어요. 하지만… 무사하셔야 해요.”
“가능하다면.”
콰앙!
그 말과 함께 이터는 자리를 박차고 이데아로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데아로크는 정면에서 덤벼드는 이터를 보며 차갑게 웃음을 흘렸다.
“질긴 놈들이야, 인간은. 몇 번을, 몇 번을 그렇게 덤벼도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언제쯤 깨달을 것이냐!”
이데아로크는 이터의 공격을 가볍게 흘리며 일격을 먹였다. 이터는 달려가던 속도 그대로 잔해를 부수고 바닥에 처박혔다.
“크윽.”
팟.
바닥에 처박히기가 무섭게 사라지는 이터의 신형. 이터는 순식간에 이데아로크의 머리 위를 점하고 나타났다.
하지만 이데아로크는 이미 공격을 읽고 있었다.
“느려!”
“……!”
퍼억!
이터의 안면에 이데아로크의 주먹이 작렬했다. 튕겨나는 이터를 향해 이데아로크는 이글거리는 손을 뻗었다.
“이터널 플레어!”
“지워라, 불!”
다시 한 번 부딪히는 두 개의 주문. 하지만 이터의 폭염과 이데아로크의 주문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불꽃의 용은 순식간에 이터의 주문을 깨뜨리고 이터를 집어삼켰다.
“큭… 앱솔루트 프로텍터!”
이터는 서둘러 앱솔루트 프로텍터를 꺼내들었다. 무슨 공격이든 한 번은 막아주는 절대의 방패가 이터널 플레어와 함께 소멸되어 사라졌다.
그와 함께 이터의 앞에 나타난 이데아로크가 이터의 머리를 붙잡고 바닥에 처박아 버린다.
“으윽!”
“하하하! 어떻게 된 거야, 이터. 맥을 못 추는데!”
“이터 씨…….”
엘리스는 안절부절못했다. 그 와중에도 이터는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어떻게 좀 해봐요. 이러다가 이터가 당해버리겠어요.”
허나, 아네스는 엘리스와는 달리 차분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조용하고 가라앉은 어조로 입을 열었다.
“5천 년 전, 이데아로크를 봉인시켰던 것은 인간의 힘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의 근원, 5속성의 정령왕이었지.”
“5속성의 정령왕?”
“이곳엔 아직 그 봉인의 힘이, 정령왕들의 기운이 남아 있다. 아직 사라지지 않은 봉인의 힘에 정령왕들의 힘을 더할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