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223
외전 4화
after Game (1)
시간은 흘러, 황진호가 은퇴한 이후로 흘러간다.
“화려했던 시절을 보냈던 선수 때와 지금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기자의 질문에 황진호는 조금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글쎄요. 확실히 지금은 조용하게 보내고 있는 것 같네요. 그래도 지금의 삶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가요?”
“네. 20대와 30대 중반까지 경기장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면 지금은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으니까요.”
황진호는 20대 시절보다 나이가 들었다. 세월의 흐름을 피할 수 없었다.
30대를 넘어 40대가 되었으니.
화려했던 시절이 가끔 그립기는 했지만 지금은 사랑하는 가족의 곁에서 함께하며 제2의 인생을 보내고 있었다.
“최근 구준서 감독님께서 은퇴를 선언하셨는데요. 은퇴하면서 황진호 선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알고 있으신가요?”
“네. 저도 그 인터뷰 기사를 봤었습니다.”
“구준서 감독님은 ‘선수’ 황진호에 대해 굉장히 특별한 존재로 여겼는데, 황진호 코치님은 구준서 감독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신가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여러 팀을 거치고 다양한 감독님을 겪었지만 구준서 감독님은 제 프로 선수 생활에서 첫 번째로 겪은 감독님이셨죠.”
“첫 번째로서의 의미만이 있는 걸까요?”
“그건 아니죠. 하지만 첫 번째라서 주는 의미도 무시할 수 없다고 봅니다.”
“감독님과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시는지요?”
“네. 지금도 종종 연락하고 있습니다. 구준서 감독님도 이제 연세가 있으셔서 자주 뵙지는 못하는데, 그래도 최근 은퇴하기 직전에 뵀었고요.”
“그렇군요.”
구준서 감독은 황진호가 프로에 데뷔했을 때부터 적지 않은 나이였다.
비록 건강상의 이유로 은퇴했지만, 그가 이룩한 결과물은 가볍지 않다.
서울 이클립스를 이끌며 K리그를 넘어 아시아를 호령했다.
이후 올림픽 대표팀을 이끌어 금메달을 따고, 이를 인정받아 일본과 중국 클럽 등을 이끌기도 했다.
“그럼 이번에는 코치 황진호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죠.”
기자가 다른 주제를 꺼냈다.
“선수를 마치고 바로 지도자 교육을 받으셨다고 들었는데요.”
“그랬죠.”
“혹시 지도자를 선택한 이유가 있으실까요?”
“음. 그저 저와 같은 선수를 발굴하고 싶은 이유가 큽니다.”
“황진호 선수만큼요? 그럼 너무 어려운 일 아닐까요?”
“하하. 그건 알 수 없죠. 그래도 재능이 있는 선수가 여러 이유로 꿈을 포기하는 일은 없게끔 하고 싶습니다.”
“그럼 지도자보다 행정가도 좋지 않았을까요?”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저는 시스템을 만드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가능성 있는 선수들을 발굴해서 재능을 크게 키워주는 거죠.”
“어쩐지. 황진호 코치님의 말씀대로 이번 U-17 선수들이 보여주는 활약은 최고네요.”
“하하. 저는 별로 한 게 없습니다. 다 아이들이 알아서 해준 거죠.”
“음, 아닌데요? 제가 듣기로 이번 U-17 선수 구성에 황진호 선수의 공이 가장 컸다고 들었거든요. 김상윤 감독도 저한테 개인적으로 인정한다고 얘기했고요.”
“하하.”
기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황진호는 U-17 대표팀의 수석코치로 합류했다.
U-17 대표팀 감독은 김상윤이었다.
서울 이클립스 시절, 팀 동료이자 주장으로 활약했던 김상윤이 맞았다.
U-17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김상윤은 코치 생활을 하고 있던 황진호에게 바로 대표팀 코치 합류를 부탁했다.
황진호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바로 코치로 합류했다.
이후 재능 있거나 미래 가능성이 큰 어린 선수들을 직접 발굴하고 다녔다.
그렇게 황진호의 손을 거친 U-17 대표팀 스쿼드는 기대 이상의 수준을 보여줬다.
결국 김상윤 감독의 U-17 대표팀은 지역 예선을 가볍게 통과하고 이후 FIFA U-17 월드컵에서 한국은 사상 첫 4강행을 이루었다.
내친김에 결승전까지 도전했지만 아쉽게도 네덜란드에게 패배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이후 치러진 3, 4위전에서 일본을 만나 4:0 대승을 거두며, 일본 킬러 황진호의 기세를 이어가게 됐다.
일본 언론은 또 황진호를 만나서 지게 됐다며 울상이 되었다.
“이번 U-17 월드컵에서 활약한 선수들은 향후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선수들이 될 겁니다.”
“정말 그렇게 되면 좋겠네요!”
황진호의 말에 기자도 기대감 어린 표정을 드러냈다.
“황진호 코치님의 향후 계획이 궁금하네요. U-17 대표팀 코치 이후 아직 소속팀 없이 지내시는 거로 아는데요. 혹시 계획이 있으실까요?”
“지금 몇 군데서 좋은 제안이 들어오긴 했습니다. 고민 중이기는 한데 조만간에 결론을 내릴 것 같습니다.”
“오, 그렇군요!”
“시간이 꽤 지났네요. 인터뷰는 이쯤에서 마무리 지을까요?”
“아! 얘기하다 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 * * *
“휴유. 인터뷰 한 번 하고 나면 진이 빠지네.”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황진호를 맞이한 건 이유림이었다.
“여보. 인터뷰는 어땠어요? 잘했어요?”
“응. 잘했지. 근데 좀 지치네.”
“고생했어요.”
황진호는 이유림과 가볍게 포옹했다. 그러다 저 멀리서 우다다다 뛰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오! 우리 건우!”
황진호와 붕어빵처럼 닮은 남자아이가 달려와 그의 품에 안겼다.
그 아이는 바로 황진호와 이유림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아들 황건우였다.
“아빠! 아빠! 나 오늘 해트트릭했어!”
“오! 역시! 우리 아들 최고다!”
“이히히히!”
핏줄을 속일 수는 없었다.
황건우는 어린 시절부터 대단한 축구 실력을 뽐냈다.
“바이에른 뮌헨에서 연락 왔다며?”
“네. 건우 때문에요. 언제쯤 독일로 올 수 있냐고 연락 왔어요.”
“하긴, 계속 머뭇거릴 수는 없지.”
황건우의 재능을 알아본 바이에른 뮌헨에서 바로 스카웃 제의를 해왔다.
축구에 막강한 재능이 있고 본인 또한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
그렇기에 부모로서 아들의 꿈을 돕고 싶었다.
“아들. 독일 가서도 잘할 수 있지?”
“응! 나 아빠처럼 멋진 축구 선수가 될 거야!”
“그래. 너는 분명 멋진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다.”
황진호는 웃으면서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황건우도 기분 좋게 웃어 보였다.
“그럼 여보, 우리 모두 독일로 가는 거야?”
“응. 마침 유럽에서 좋은 제안도 들어왔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지.”
FIFA 규정상 어린아이 홀로 외국으로 보낼 수 없다. 그래서 유럽에서 축구를 하려면 부모도 함께 가야 했다.
“김태성 감독님하고 함께 일할 생각인 거지?”
“응. 유럽에서 아들 뒷바라지하려면 그렇게 해야지. 그리고 김태성 감독님 밑에서 배울 수 있는 것도 많고.”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감독으로 평가받는 김태성 감독.
그는 현재 독일 바이에른 뮌헨에서 감독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 * * *
독일, 바이에른.
김태성 감독의 집.
2층 저택에서 사는 그의 집은 전체적으로 고동색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슬슬 추워지는 날씨에 안정감을 주는 색감이었다.
“이렇게 또 뵙네요. 감독님.”
“그래. 자네하고 또 축구를 하게 돼서 기쁘네.”
황진호가 선수였던 시절 40대였던 김태성 감독은 어느덧 60대가 되었다.
아시아에서 트레블을 기록하고 이후 1번의 월드컵 우승으로 유럽으로 떠난 그는 프리미어리그와 유럽을 제패한 뒤, 현재는 이곳 바이에른 뮌헨에서 성공적인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자네에게도 익숙한 곳이지?”
“그렇죠. 저에게는 제2의 고향 같은 곳인데요.”
선수로서 이곳에서 누렸던 것들을 결코 잊지 못했다.
이렇게 코치로서 다시 한번 찾아오게 돼서 설레고 기뻤다.
“내가 자네를 왜 이곳으로 불렀는지 알고 있나?”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처음에 김태성 감독이 함께하자고 불렀을 때 의아함이 앞섰다.
어떤 이유가 있었겠지 정도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지금 설명해주었다.
“바이에른 뮌헨은 현재 세대교체를 진행 중이네.”
“세대교체요?”
“그래. 단순히 선수단만의 세대교체가 아닌, 구단 전체의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어.”
“……!”
“구단은 자네를 내 후임 겸, 다음 세대의 바이언을 이끌 후계자로 지목해둔 상태야.”
몰랐다.
전혀 몰랐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황진호는 상당히 놀랐다.
“제가 과연 그 자리에 어울릴만한 사람일까요?”
“물론이야. 왜냐하면 자네를 추천한 사람이 바로 나거든.”
“……네?”
“자네라면 충분히 바이에른, 아니, 다가올 거대한 세대교체의 새로운 인물로 나설 수 있을 거라고 보네.”
너무나도 고평가에 황진호는 순간 부담감을 느꼈다.
그런데 이어지는 김태성의 말에 앞선 부담감이 모두 날아갔다.
“나는 자네의 비밀을 알고 있네.”
“네?”
“놀랐나?”
황진호를 바라보는 김태성의 두 눈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 눈빛 앞에 황진호는 그만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가진 비밀이라면…… 설마?’
아니겠지.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할 비밀을 어떻게 그가 알고 있을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분명 자신이 생각하는 다른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자네도 회귀했나?”
“……?”
영문을 모르는 얼굴을 하는 황진호의 모습에 김태성 감독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회귀는 아닌가 보군. 그럼 상태창?”
“……!”
“맞군.”
황진호가 두 눈을 부릅뜨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 그의 반응에 김태성은 납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를 곤란하게 만든 것 같군.”
“…….”
“좋아. 자네에게도 내 비밀을 알려주지. 나는 회귀자야.”
“뭐, 뭐라고요?”
“미래에서 돌아온 사람 말일세.”
“……!”
세상에 드러나면 안 될 비밀.
그 비밀이 김태성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황진호의 충격은 배가 되었다.
“어째서…….”
“이런 이야기를 자네에게 하는지 궁금한 모양이군.”
“…….”
“굳이 이유를 들자면, 자네나 내가 서로 동지이기 때문이야.”
“동지?”
“그래. 우선 자네가 왜 그런 특별한 기연을 손에 넣었는지 궁금하지 않나?”
그 말에 황진호는 옛 기억이 떠올랐다.
평행 세계에 사는 또 다른 내가 나와서 스마트폰과 평행 세계는 얼마만큼 다른지 얘기해줬다.
“아는 모양이군.”
끄덕.
김태성의 말에 황진호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나도 나만의 이유를 알고 있지. 하지만 자네나 나나 공통적으로 무너져 가는 축구계를 구하기 위해 기연을 얻었다는 것일 거야. 맞나?”
“맞습니다.”
황진호는 순순히 인정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김태성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쉽게 꺼낼 인물도 아니다.
“내가 회귀하기 전에…….”
“……?”
“자네 같은 선수는 없었네.”
“……!”
“회귀 전에도 나는 축구 감독이었어. 그렇다고 지금 같은 감독이 아니었지. 별 볼 일 없는 감독이었어.”
본인에게 과거이자 누군가에게 앞으로 다가오지 않을 미래에 관한 이야기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