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ire of the Warm Sea RAW novel - Chapter 1026
* 1026화 *
1636년 10월 말부터 네덜란드에서 튤립 투기가 절정에 달했다. 튤립 구근 선물 가격이 끝도 없이 오르자 사람들은 앞으로도 가격이 더 오를 거라고 확신했고, 너도나도 투기에 가담해서 구근 가격이 더 빠르게 폭등했다.
그 전에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고산국 농업연구소에서도 다양한 튤립 품종을 개량해서 시장에 공급했기에 물량이 부족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튤립은 씨앗을 뿌려 꽃을 피우려면 7년이나 걸렸기 때문에 빠른 번식과 개화를 위해 구근을 이용했고, 그래서 단기간에 구근 가격이 폭등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물론 네덜란드에서 튤립 투기 열풍이 부는 동안 고산국 농업연구소에서 그 동안 톡톡히 재미를 본 것은 사실이었다. 원래 농업연구소에서는 품종 개량에 목적을 두었기에 튤립의 씨앗과 화훼 위주로 수출했다. 구근 판매량 비중은 예전에 절반도 못 미쳤으나 최근 구근 수출량이 확 늘면서 비중도 9할 이상을 차지했다.
“전하! 튤립 구근 가격이 끝없이 치솟고 있습니다. 겨우 보름 사이에 벌써 열일곱 배가 올랐습니다. 그건 평균에 불과하고 희귀 품종은 더욱 빠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오르면 언젠가 내리는 법이오.”
이 시기의 튤립 구근 가격 추이는 얼 톰슨이 조사한 튤립 가격 지수를 통해 어렴풋이나마 확인할 수 있다. 1636년 11월 12일부터 치솟기 시작해 최고가에서 한 달 20일 정도를 버티다가 1637년 2월 3일부터 폭락해 제자리로 돌아갔다.
특정 재화의 가격이 오를 때는 끝없이 오를 것 같은 환상을 심어준다. 그리고 오를 만한, 심지어 반드시 올라야만 하는 갖가지 이유를 대기도 쉬웠다. 그러나 언제가 최고점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이번이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전하! 튤립이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아서 가격이 내릴 일은 절대 없습니다. 우리 농업연구소도 지금까지의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튤립 구근 선물시장에 적극 참가해야 합니다.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이민호는 농업연구소장에게 손모가지를 걸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튤립 시장 규모가 갑자기 급팽창하자 평생 연구만 하고 살아왔던 농업연구소장마저 눈이 돌아가 버린 것 같았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선물은 금하겠소. 튤립 시장에서는 무조건 현물, 현금 거래가 원칙이오.”
“전하! 오직 국익을 위해서입니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반란이라도 일으킬 기세요.”
역사상 반란을 일으킨 모든 자들은 오직 국가를 위해서 궐기했다고 하지 개인의 영달을 위해 기회를 잡았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월급쟁이에다가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은 농업연구소장은 진짜로 순수하게 국가를 위해 이민호를 설득하려 했다.
“그건 절대 아닙니다만, 이 기회를 놓치면 고산국 전체가 바보 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전하께서 튤립 품종 개량을 지시하신 것은 바로 이때를 위함이 아니었습니까?”
“부정하지는 않겠소.”
‘영원한 제독’이니 ‘우아한 혜영’이니 하는 튤립에 붙은 특이한 이름도 많았다. 요즘에는 고산국의 새 왕도 이름을 따라서 붙인 티완이라는 품종이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네덜란드에서 고가에 거래되는 튤립의 절반 이상이 고산국에서 개량한 품종이었다.
“농업연구소에서 재배 중인 튤립 구근이 아주 많습니다. 종자를 뿌려 키우는 것에서 구근을 판매하는 쪽으로 당장 정책을 바꿔야 합니다.”
“이익을 얻더라도 얼마나 된다고 그러시오? 바보 소리 듣고 말겠소.”
“품종에 따라 비싼 건 구근 하나에 만원씩이나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농업연구소에서 튤립을 재배하는 것은 품종 개량이 목적이지 판매수익이 목적이 아니오. 튤립 판매로 고민할 바로 그 시간에 내한성 볍씨나 어서 만드시오.”
사실 튤립 구근 판매를 통해 고산국에서 이익을 충분히 올린 다음이었다. 네덜란드에서 비싸게 거래되는 것은 대부분 고산국에서 개량한 품종이었고, 나머지 일부는 바이러스에 감염돼 꽃 모양과 무늬가 특이하게 생긴 별종이었다.
실제 역사에서 네덜란드에 튤립 버블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가격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이민호가 시장 철수를 지시할 수 있었다. 또한 고산국에서도 슬슬 튤립 투자 열풍이 불어오고 있었기에 미리 차단할 필요가 있었다.
어깨가 축 쳐져 돌아가는 농업연구소장에게 이민호가 한 마디를 던졌다. 이번 일에서 너무 욕심을 부려 밉상이었지만, 그래도 평생 곡식의 종자개량에 골몰해온 개국공신이었다.
“기존 거래분을 배로 운송하면 늦을 테니 항공편을 이용하시오. 그리고 올해 안에 외상 거래를 모두 정리하시오.”
“예, 전하. 어명을 받들겠습니다.”
말이 선물시장이지 은행에서 지급보증을 할 수 없다면 계약서는 종잇조각에 불과했다. 이민호가 선물 거래를 반대한 이유였다. 그러나 튤립 선물시장 진입과 투기는 금하면서도 버블로 인한 단물은 최대한 쪽 빨아먹기로 했다.
최근 고산국에서 네덜란드로 사치성 소비재의 수출이 급증했다. 너도 나도 투기 광풍에 휩쓸린 네덜란드에서 사람들이 앞으로 벌어들일 미래의 소득을 현재에 미리 당겨서 흥청망청 소비했기 때문이었다.
튤립 투기에 가담한 직조공, 농민, 가정주부들은 벼락부자가 될 꿈에 부풀어 있겠지만 피라미드의 하부구조가 채워진 다음에는 더 이상 구매자를 찾기 어려웠다. 구매자가 없이 모든 사람들이 쳐다만 보고 있으면 가격이 더 이상 유지될 수가 없었다.
“넉 달 후에 이번 일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시오.”
“그때는 천 배 이상 오를 것 같습니다만, 예! 작성해서 보고하겠습니다.”
이민호가 노려보자 농업연구소장이 얼른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소장을 설득하기가 절대로 불가능했다. 남들은 실컷 수익을 올리고 있는데 어명으로 가만히 있자니 열불이 날 것이다. 이민호가 보기에 소장은 투자사기에 아주 잘 넘어갈 사람 같았다.
20세기 중반 이후 미국에서 구두닦이가 주식을 매입하면 주식시장 호황이 끝난다는 말이 있다. 평소 경제 정보에 어두운 사람들까지 시장에 참가할 정도라면 더 이상 구매자가 남아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증권회사 객장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나면 주식 활황이 끝난다고 한다. 전업주부들이 시장에 새로 참가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개인 투자자들이 피 같은 재산을 투자하면서도 필요한 경제 공부는 절대 안 한다.
예전에 으로 재미를 본 이민호가 이번에는 을 지었다. 조선에 아직 심청전과 비슷한 이야기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다음이었다. 미래 작품 표절은 21세기를 살았던 이민호만의 특권이라고 생각했다.
에는 효녀와 젖동냥이라는 긍정적인 요소와 용궁이라는 환상적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여러 가지 사회적 적폐를 담고 있었다. 장애인 가정이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사회 시스템적 미비, 인신매매라는 폭력성과 금권주의, 인신 공양이라는 인간 생명 존중의식의 부재 등등 이 시대 동아시아 여러 나라가 갖고 있는 문제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에 비해 고산국이 우월하다는 점을 자랑할 수 있는 괜찮은 정치적 선전 수단으로 을 동원하려 했다.
그러나 정식 출간 전에 왕실 식구들에게 읽어보게 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평이 영 좋지 못했다. 출판국 편집장도 말은 못하고 곤란하다는 표정만 지었다. 대학에서 국문학과 역사학 복수 전공을 했다는 편집장을 이민호가 채근하자 그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제가 보기에 줄거리는 진성여왕 때의 거타지 설화 주인공을 남자에서 여자로 바꾼 것과 흡사합니다. 여주인공이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 바다에 투신한 것은 바람이 불지 않아 배 탑승자 중에서 한 사람을 섬에 남겨두고 떠난다는 이야기와 반대입니다만, 사실 동일하게 선박의 안전 항해를 위한 인신공희(人身供犧)를 소재로 한 것입니다.”
“그 부분은 좀 비슷하군. 하지만 핵심적인 소재는 아닐세.”
그러나 효자 설화에서 아이를 가마솥에 억지로 집어넣어 삶았더니 산삼이더라는 둥 하는 혐오스럽거나 충격적인 이야기가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는다. 처녀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바다에 몸을 던지는 장면 이상으로 비장하고 인상적인 장면을 새로 만들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거타지는 용왕의 딸과 결혼하고 이 작품에서 여주인공 심청은 육지로 돌아와 왕과 결혼합니다. 거타지 설화는 에서 태조 왕건의 조부, 작제건의 신화로 이어졌습니다. 게다가 에 묘사된 소재들이 신라시대 효녀 설화 몇 가지와도 비슷합니다. 독창적인 작품으로 내놓기엔 과거 설화들과 비슷한 요소가 너무 많습니다. 인신공희만 어떻게 좀 바꾸고 나머지도 손을 좀 대면 안 되겠습니까?”
“편집장도 알겠지만 인신공양은 세계적으로 흔한 이야기일세. 성서부터 유럽 여러 나라 신화와 이란, 고대 중국까지 모든 문화권에 흔한 이야기야. 얼마 전까지는 중남미에도 있었네.”
“물론 페르세우스 신화처럼 흔한 이야기는 맞습니다. 조선 땅에서는 인신공양을 그치게 한 이야기가 많으니 차라리 그쪽으로 변경하면 어떻겠습니까? 하여튼 소재를 바꾸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편집장을 보내고 비올레타에게 보여줬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잠재우기 위해 선원들이 주인공을 바다에 빠뜨리는 이야기는 구약에 나온 예언자 요나의 일화 아닌가요? 실제 역사에서는 기원전 8세기나 9세기 이야기일 거여요. 용궁에 가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보다는 차라리 요나처럼 거대한 물고기의 뱃속에서 며칠 지내게 하는 게 어때요?”
“인신공양은 전 세계적으로…… 됐소.”
을 읽은 우크라이나 궁녀들도 거들었다.
“이 글에서는 선원들이 주인공을 바다에 던지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주인공이 물에 빠져 죽어야 할 운명이네요. 주인공이 바다 밑 왕국에 가서 바다 차르를 만났고 이 일이 주인공의 혼사와도 연결됐으니 완전히 사드코(Sadko) 이야기와 동일해요. 그리고 사드코 이야기는 12세기 후반 노브고로드 공국의 건국 서사시와 거의 판박이에요. 프랑스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대요.”
“음. 그렇구나.”
날로 먹으려던 표절작가의 최후였다. 이 판소리와 함께 성장했다면, 혹은 민중설화니까 집단창작이었다면 욕을 안 먹었을 텐데 이민호 개인이 지었다고 하니까 이렇게 비판을 받게 됐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전하. 쉬운 말로 쓰셔서 저 같은 어린아이도 잘 이해하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황태자라도 재미있게 읽었다면 다행이다. 황태자가 머리가 좋아서 고산국 말이 금방 느는구나.”
확실히 어릴수록 외국어를 쉽게 익혔다. 중한사전과 한중사전이 이미 있으므로 황태자는 고산국 말로 된 책을 혼자서도 잘 읽었다.
“전하! 이번 작품은 다른 문화권의 설화나 전설과 흡사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출간을 취소했다오.”
“소재 자체는 흔하다 해도 이야기의 독창성은 살아 있잖아요. 장님 아버지에 대한 효녀 심청의 지극한 효성을 이대로 사장시키기에는 너무 아까워요.”
주상아 공주의 말을 듣고 다시 생각해보니 그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나 어머니를 살리기 위한 효자 설화는 흔했으나 효녀 이야기는 극히 드물었다. 현대에도 살아있는 효녀 심청 이야기가 이 시대에 안 통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세계의 설화가 비슷한 것은 외국 설화를 웬만큼 아는 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홍수 설화만 해도 구약성서와 중동지역 신화, 전설에 국한하지 않고 동아시아 전역과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대대로 전승된 인류 공통 설화였다.
“맞는 이야기요. 다만 어제(御製) 소설이라고 하기엔 말이 많으니 필명으로 출판해야겠소.”
“잘 생각하셨어요. 전하께서는 어찌 이런 교훈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내실까요?”
“내가 잘 나서 그렇소. 하하하!”
을 일단 소설로 출간하고 조선 왕궁에 보내 지은 공주를 통해 만화화할 계획이었다. 인기가 높아지면 만화영화나 영화를 제작할 계획도 세웠다. 뮤지컬이나 오페라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았다. 영상방송국 개국을 앞두고 콘텐츠 부족에 시달리던 세자가 엄청나게 좋아했다.
“아바마마! 과 에 이어 을 영상방송 연속극으로 제작하면 어떻겠습니까?”
“좋긴 한데, 조선의 후진적인 사회제도를 너무 노골적으로 공격하는 것 같아서 조금 망설여진다.”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없으면 문학작품으로서 가치가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 동안 조선 양반들의 일방적인 비판에 아국이 관대하게 대처했으므로 우리가 조선을 비판해도 저들이 뭐라고 하지 못할 것입니다.”
“계몽주의적 시각에선 그렇겠지만, 일종의 문화 전쟁이 될지도 몰라.”
하필 지은 공주가 조선 왕실에 있었다. 그래서 만화화 계획을 취소하고 영상 연속극을 먼저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TV 드라마 하나 만드는데도 이렇게 정치적 고려를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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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 버블의 주체가 되면 안되니까 살짝 벗어났습니다. 심청전도 개인 명의로 내면 욕을 먹겠더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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