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ire of the Warm Sea RAW novel - Chapter 1052
* 1052화 *
1650년, 이민호가 어느덧 70대에 접어들었다. 후궁들 중에서 하나둘 세상을 떠나기 시작하자 인생무상을 느꼈다. 그 동안 제국과 세계에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2대 황제가 잘 처리하고 있었다.
지난 10년 사이 스코틀랜드에서 주교 전쟁이 일어났고, 2차에 걸친 잉글랜드 내전 끝에 찰스 1세가 참수 당했고, 에스파냐에서는 카탈루냐 반란이 일어났고, 중국에서는 북경에서 남경까지 대운하를 타고 역병이 크게 번졌으나 제국에서 의료지원을 통해 극복했다. 나머지 세계 대부분 국가들도 외국과의 전쟁보다는 내전과 전염병, 추위와 태풍, 가뭄 등으로 인한 내부 균열을 추스르는데 열중했다. 1646년 겨울부터 본격적인 소빙기에 접어들면서 국제 정치도 큰 영향을 받고 있었다.
“대서양 심층 해류의 수온이 2도나 낮아지면서 북반구 전체에 소빙기가 온 것을 확인했습니다. 북미 바위산맥과 남미 안데스 산맥 등에서 빙하가 매년 확장하고 있습니다. 아바마마께서는 소빙기가 언제 끝날 것으로 예상하십니까?”
“중간에 따뜻해지는 기간도 있겠지만 소빙기가 길게는 19세기 말까지 갈지도 모르겠다. 당분간 겨울 올림픽 경기에서 우리 제국의 선수들이 네덜란드와 덴마크, 스웨덴 선수들을 상대하기 어려울 거라는 이야기다.”
1607년 정도부터 운하의 나라 네덜란드에서 겨울에 외출하려면 스케이트가 반드시 필요했다. 스웨덴과 루스 차르국에서는 스키가 시내에서도 기본 외출 장비가 된지 오래였다. 중국도 소빙기로 인해 큰 타격을 받아 광서에서는 오렌지가 사라지고 광동은 매년 태풍에 의해 큰 피해를 입었다.
소빙기가 시작되자 영토가 넓은 제국도 마찬가지로 심각할 정도로 영향을 받았다. 새원산 항구와 강 전체가 겨울에 꽁꽁 얼어붙어 맨해튼 섬에서 긴 섬까지 차를 타고 강을 건널 수 있었다. 한참 남쪽에 위치한 새강릉 항구도 강에 떠다니는 얼음덩어리 때문에 선박의 안전이 위협을 받았다. 북미 전체에서 농업 생산성이 급락해 식량 재고가 예전 같지 않았다.
그러나 소빙기가 왔다고 해서 모든 지역이 동시에 추워지고, 소빙기가 끝날 때까지 200여 년 내내 추운 것은 아니었다. 연평균 기온이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면서 일정한 하향추세를 보이는 것일 뿐, 평년보다 몹시 더운 해도 자주 겪었다.
“아바마마 덕택에 제국은 충분히 준비가 돼 있었지만 다른 나라들은 몹시 어려운 것 같습니다. 잘못하면 제국이 200년 동안 남의 나라 백성들을 먹여 살려야 합니다.”
“이 기회에 세계 정복을 하든지. 지금도 제국에 의탁하겠다는 나라가 한둘이 아니지 않느냐?”
“대부분의 국가들이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려워서 제국에 복속하더라도 나중에 기후가 좋아지면 다시 반란을 일으켜 독립하려고 할 겁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다들 제 잘난 맛에 사는데, 굳이 세계를 한 나라로 만들 필요는 없다.”
그래도 국가 운영이 극도로 어려워지면서 제국에 땅을 팔겠다는 나라가 줄을 섰다. 제국에서는 가급적 영토 매입보다는 국채를 발행케 해서 인수하는 선에서 그쳤다.
그러나 몹시 어려워진 나라들의 사정을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어서, 에스파냐로부터 시칠리아를 인수하고 제노바로부터 코르시카 섬을 매입했다. 그것도 흉년에 농지를 늘리지 않는다는 농업시대의 전통적인 교훈을 따라 환매조건부로 섬을 매입해 같은 가격에 다시 살 권리를 남겨두었다.
그 외에 제국의 영토 변화는 거의 없었다. 복건과 해남도는 남명 영토인데도 완전히 제국의 관리 하에 들어왔다. 남명에서 원하면 언제든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으나, 그곳 주민들은 완전한 제국의 영토가 되길 간절히 원했다.
제국 황제는 국제관계를 평화적으로 잘 주도해서 지금은 모든 나라로부터 세계 황제 대우를 받았다. 제국 젊은이들이 해외를 여행한 다음 콧대가 한껏 높아져서 돌아온다고 한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가 소빙기의 영향을 크게 받아 매년 10만 명을 북미로 이주시켰다. 그 외에도 유럽과 오스만제국 등에서 제국으로 이민의 물결이 끊이지 않았다. 예전에는 제국에 이민을 가려면 유학이 가장 쉬운 방법이었는데, 지금은 자국 내에서 100대 1 이상의 경쟁을 통과해야 가능했다. 농업 이민은 아직도 비교적 쉬운 편이었고, 주로 남미와 호주로 보내 정착시켰다.
“다양한 용도로 개발된 합성수지는 백성들이 아껴가면서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아바마마께서 우려하신 바와 달리 사용 후 회수율도 높고 재활용도 잘되는 편입니다.”
“우리 백성들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수준이 높구나. 참 고마운 일이다.”
제국의 백성들이 잘 살아서 이른바 ‘민도’가 높아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합성수지의 가격을 높이 책정해서 가능해진 일이었다.
그 동안 이민호가 가진 바 지식을 남김없이 모두 풀어놓았고 과학발전의 성과를 이용한 실용화에도 큰 진전이 있었다. 제국 백성들의 의식주 생활은 20세기 말과 큰 차이가 없었다.
통신용 및 관측용 인공위성을 좀 더 많이 쏘아 올렸고, 달 뒷면을 최초로 촬영하기도 했다. 세계에서 유일한 실험용 원자력 발전소는 5년째 큰 사고 없이 운영되고 있었다. PC는 아직 멀었지만 전자계산기 본체에 연결된 단말기를 통해 학계와 기업에서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었다. 바코드를 활용해 물류혁명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민호가 현장 연구에서 손을 뗀 지금은 학자들이 진행하는 연구를 지도하는 역할에 머물렀다. 과학연구소 소장 직에서도 물러나 지금은 학회지 편집장과 황실 종친회장이 이민호가 가진 직함의 전부가 됐다.
“소빙기가 왔다지만 꾸준한 기술 혁신을 통해 대부분 지역의 가계당 소득이 요즘도 꾸준히 오르고 있습니다만, 유독 몽골 유목민들의 소득만은 몇 년째 정체 상태입니다. 기온 하강 때문인지 여러 가지 경제적, 행정적 지원을 해줘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늦게 제국의 본토에 편입된 몽골이 가장 먼저 소득 한계에 도달한 셈이라 안타깝습니다.”
“유목에서 정착으로 전환할 때가 온 모양이구나.”
“가축을 축사에 평생 가둬 키우는 방법은 제국에서 금지돼 있지 않습니까?”
“목장을 가축들의 운동장으로 활용하고, 사료를 밭에서 키워 가축에게 먹이는 방법 말이다. 여름에는 주변 초지를 돌아다니게 하면서 키우면 된다. 스위스에서 목축하는 방식에서 겨울이 늘어난 셈 치지.”
“예. 그럼 몽골인들에게 정착을 권유하겠습니다. 몽골고원 남쪽에 도시와 마을을 건설하면 겨울에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을 테니 주민들이 환영할 것 같습니다.”
유목민 목동 1인이 방목을 통해 키울 수 있는 양의 숫자는 400, 많아야 500이 한계였다. 여기에는 목양견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는다.
유목민들은 누구도, 아무리 부유한 자라도 양을 천 마리 이상 키우지 않는다. 양 천 마리와, 양떼를 이끄는 일부 염소들이 한꺼번에 지나간 초지는 회생불능이 되기 때문이다.
유목민들은 평균보다 세 배 이상의 부자가 될 수 없다. 만약 귀족이 되어 재산을 모은다면 다른 유목민들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착취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래서 토르구트의 귀족제는 현재 거의 붕괴됐다.
“조선 여의도에 61층 건물은 잘 운영되고 있느냐?”
“예.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외관이라 조선인들이 황금탑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장면을 보기 위해 한강변에 구경꾼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고 합니다.”
현대 63빌딩과 비슷한 높이와 외관이라서 남산에 가리지 않은 지역이라면 한성 어디서나 그 건물을 볼 수 있었다. 이제는 양반들이 아무리 가리고 왜곡해도 제국과 조선의 격차를 부정할 수 없게 됐다.
“그런데 조선 지배층이 영상수신기를 일반에게 판매하도록 허용할 줄은 몰랐다.”
“지배층들이 먼저 제국의 영상방송을 즐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방에서 영상수신기를 구입한 자들이 고장 났다고 항의하는 경우가 많아서 조선 팔도에 전파중계용 무인비행선을 띄웠습니다.”
조선 지배층들이 화상방송의 영향력을 무시한 게 실수였다. 게다가 조선과 제국은 기준이 되는 언어도 같았다. 1970년대에 유럽에서 문제 됐던 전파 월경 문제가 조선에서 100퍼센트 발생했고, 문화적 침략이 본격화됐다.
“그래서, 양반들 인식은 그대로고?”
“일반 백성들보다는 영상수신기를 소유한 조선 양반들이 더 많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향반이나 잔반들의 이주 행렬은 예전부터 이어지고 있었습니다만, 요즘은 유명 가문들에서도 차자 이하와 서자, 얼자들을 중심으로 제국에 이주하고 있습니다. 덕택에 현 조선국왕이 제국을 본 따 추진하는 각종 개혁정책이 아주 잘 먹혀들고 있습니다.”
“조선은 잘 돌아가고 있는 모양이다. 조선을 강제로 흡수할 필요는 없겠다.”
지은 공주의 남편인 조선 국왕은 비교적 훌륭한 통치자였다. 그는 삼국의 정립에 기여한 업적을 잘 활용해 남명과 촉나라를 상대로 동등한 지위의 국교를 새로 수립했다. 제국에 대해서는 형식적 책봉관계를 맺어 독립을 확고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국왕의 배후에서 지은이 권한 것 같았다.
조선과 제국에 대한 조선 백성들의 불만이 줄어들었고, 그래서 제국과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거의 없었다. 반대로 제국 신민들은 조선인들을 선산을 지키는 가문의 장손 대우를 해주는 편이었다. 물론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방을 무시하고 모욕하려는 인간들은 있기 마련이었으나, 제국과 조선 관원이 시원하게 곤장을 쳐주면 최소한 겉으로는 반성하는 척을 했다.
“황자들이 다 성장해서 드디어 황태자를 책봉할까 합니다. 후보는 원손을 비롯해 스물한 명인데, 다들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습니다.”
황제가 종친회장인 이민호에게 명부를 넘겼다. 아들 석현은 이민호에게 손자 32명, 손녀 29명을 안겨주었다. 석현이 황실의 번영을 위해 생산에 힘썼다고는 하지만 이민호의 위업을 따라잡기에는 벅찼다.
황자들 중에서 11명이 황태자 후보를 사퇴했다. 황녀는 물론 그 후손에게도 황위 계승권을 주지 않도록 가법이 정해졌다.
“됐다. 내가 볼 필요가 있겠느냐? 황제가 정치적으로 결정을 내려라.”
“정치적인 결정이라면 원자가 가장 낫습니다.”
“비정치적인 결정이라면?”
“헤헤! 그래도 원자가 낫습니다. 황후도, 태후마마도 원자를 선택하셨습니다.”
차기 황제의 정당성, 적격성 여부를 따지는 여러 조건들 중에서 적장자란 아주 강력한 무기였다. 원자의 능력이 평균 이상만 되더라도 가장 문제가 적은 후계 선출 방법이기도 했다.
“황자들 삼촌 석균이 이야기 말인데.”
“예. 이제 10년이 지났습니다. 그만 등대지기에서 풀어줄까요?”
오래 전에 석균이 저녁 식사시간에 학문 토론을 빙자해 원자를 공격한 것은 애교에 불과했다. 그 후 석균은 장군과 고위 관료들을 몰래 만나고 다니면서 황제에게 단단히 찍히고 말았다. 또한 주변 사람들에게 통 크게 은혜를 베풀면서 야심을 드러냈다. 정치인들이 호구 짓을 하는 이유가 명백히 있었고, 이는 당연히 정치적 야심으로 의심된다.
만약 석균이 장군과 고위 관료를 개인적으로 만난 사실이 정보국 같은 사찰기관에 포착되지 않기를 바랐다면 욕심에 비해 지적 능력이 떨어진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석균은 알류산 열도의 무인도에서 등대지기를 하라는 명을 받아 현재 10년째 문명세계와의 접근을 차단당했다.
“아니다. 황제는 황태자 시절에 삼촌들이 없어서 간과하는 모양인데 이 문제를 더욱 심각히 여겨야 할 것이다. 세계 역사를 보면 삼촌이란 정당한 후계 승계 과정을 방해하는 강력한 경쟁자로 작용한다.”
“휴우~”
“황제로서 다른 형제를 핍박하는 모양새라 안타깝겠지만 석균이는 정도가 지나쳤다. 내가 아들 두 명, 딸 한 명을 어린 시절부터 별궁에 유폐시킨 사실을 알고 있느냐?”
“예. 그때는 아바마마께서 지나치다고 여겼는데 나중에 다시 알아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었습니다.”
“석균이는 그 시험을 어떻게 빠져 나온 모양이다. 미안하게 됐지만 석균이 문제는 황제가 책임을 지도록 해라. 혈육이라고 봐줬다간 자칫 더 많은 혈육들을 잃게 되고 나라가 두 동강 날 수도 있다.”
적법한 후계자가 황위를 잇는 승계과정을 유지하는 것도, 나쁜 지도자가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것도 모두 황실의 의무였다. 전란의 시기에는 군주의 동생이 군주의 아들을 제거하고 권력을 쥐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제국은 정치적으로 이미 충분히 안정돼 있었다. 황제 석현의 아들만도 30명이 넘어 황태자의 삼촌이란 존재는 만약에 대비한 예비 후계자로서의 의미조차 없었다.
“명심하겠습니다, 아바마마. 혹시 이모님께서 아바마마께 하소연하지 않겠습니까?”
“살려주는 것만으로도 네게 고마워할 거다. 죽여도 할 수 없지.”
“살려는 주겠습니다.”
역사학자인 고석균은 평생 등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책을 읽거나 저술만 하게 됐다. 나무 한 그루 나지 않는 극한지대의 무인도라서 뗏목을 만들어 문명세계로의 탈출은 불가능하며, 보급품을 끊는 단순한 행위만으로 살아남기 어려웠다.
“그리고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이 우리 황실에 혼사를 신청했습니다. 국혼은 아닙니다. 원손이 황태자에 책봉되든 말든 스웨덴 여왕의 배우자로 맞아들이기를 원한답니다.”
“원손은 이미 결혼했지 않느냐? 정실 관계가 되지 못하면 여왕의 자식이 스웨덴의 후계자가 되지 못할 텐데?”
이민호가 헤드비히 여왕과 결혼하면서, 여왕 사후 아이슬란드를 고산국 영토로 편입하는 문제를 해결했다. 아이슬란드 군주라는 후계 문제는 생길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원손이 이미 결혼했기 때문에 여왕의 결혼 신청은 전혀 다른 문제에 봉착하고 있었다.
“그래서 왕위를 버리겠답니다. 데카르트 공작이 여왕을 설득하고 있지만 씨알도 안 먹힌다고 합니다.”
“왕위를 버릴 명분으로 혼사 문제를 이용할 모양이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둘째에게 미남계 임무를 맡겨 스웨덴에 보냈습니다. 여왕과 잘 지내고 있답니다.”
문제는 항상 생기기 마련이었다. 군주는 그 문제를 적절히 해결하거나 적은 피해로 막는 일을 맡아야 했다. 황제와 황후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이 바람둥이 기질이 있어서 여왕을 순식간에 함락했다고 한다.
혈육을 정치에 동원한 것 같지만 제국이나 스웨덴 여왕, 그리고 스웨덴 대신들과 국민들 입장에서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아들 황제가 잘하고 있어서 이민호는 마음이 놓였다.
“제가 원래 65세까지 맡기로 했잖습니까? 계복 아저씨하고 같이 전략연구소를 만들기로 했는데, 제가 좀 일찍 퇴위하면 안 되겠습니까?”
“황태자가 이번에 책봉되더라도 겨우 20대다. 군주가 되기에는 아직 한참 어린 것 같은데?”
정치라는 수렁에 한 번 빠지면 제 발로 나오기 어려운 법이었다. 2대 황제가 이미 환갑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황실과 관료들, 백성들은 그가 약속한 시기보다 더 늦게 퇴위하길 원했다. 이민호가 보기에 2대 황제가 당분간 과로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업무시간을 쪼개서 전문 관료군을 키워. 군주가 과로사의 위험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야.”
“아바마마께서는 후궁들을 여러 분야에 배치하셨습니다. 훨씬 유리한 방법인데 제겐 후궁 숫자가 적습니다.”
“대부분 처음에는 글도 모르던 여자들이었어. 내가 대단하지 않아?”
2대 황제를 실컷 비웃어주었다. 당대는 물론 후대를 위해서라도 전문 관료들을 키우는 게 바람직한 방법이었다.
이민호는 대화하면서도 결정권은 철저히 황제에게 맡기려 했다. 생존하는 것만으로도 황제에게 큰 힘이 되므로 오래 살기로 마음먹었다.
“제가 집권 전반기에 문화 기반 확장에 주력했습니다. 후반기에는 문화 창조를 정책 기조로 삼으려 하는데 잘 될 것 같습니까?”
“그거야 황제와 신민들에게 달린 일이지. 나는 잘 모르겠다.”
세계의 신화와 민요, 민담을 모아 정리한 다음 출간한 것이 현 황제의 전반기 최대 업적이었다. 문화인을 육성하고 문화시장이 독자적으로 생존할 환경을 만든 것도 미래를 위한 필수적인 투자였다.
“과학소설 공모전이나 환상소설 공모전에 필명으로 작품 하나 내주세요. 요즘 소설가들이 타성에 젖어서 새로운 발상이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영화계에서도 소재난에 빠졌습니다.”
“봐서 시간이 남으면.”
그러나 이민호는 얼마 전에 과 를 완성해두고 있었다. 남의 대작을 날로 먹겠다는 참으로 나쁜 소설가였다.
이민호는 3대 황제가 등극하고 나서도 꽤 오래 생존했다. 계복과 감불, 감동, 이면 같은 동지들이 이미 다 늙어죽었으나 후궁들은 대부분 그와 함께 천천히 늙어갔다.
이민호가 90살을 넘기면서 군사, 과학,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제국의 살아있는 역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가 직접 만든 제국이 발전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곤 했다. 제국의 인구가 3억을 찍은 1673년의 가을에 아이들이 활짝 웃으며 뛰어노는 놀이동산에 다녀오고 나서, 다음 날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침대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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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덕분에 드디어 완결했습니다. 엄청 길었네요. 임진왜란 전후 시대 여러 지역 역사를 알아보고 싶어서 이런 내용을 기획했고, 중간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완결까지 오게 됐습니다.
그 동안 미뤄둔 종이책을 낸 다음에 조아라에서 다시 새로운 장르에 도전을 계속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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