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ire of the Warm Sea RAW novel - Chapter 115
* 115화 *
현대인 출신인 이민호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 당시 명나라 사람들이 부지런하고 조선 사람들은 게으르다는 평가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사실은 고용 형태와 사유재산의 보장 여부에 따르는 차이였다. 일을 시켜보니 복건 노동자들이 무척 열심히 일을 한다고 했다.
현재 복건에서 6만 명 정도가 고산국에 건너와 일을 하고 있었고, 적당히 돈을 벌면 복건으로 돌아갔다. 복건성은 명나라에서도 무척이나 가난한 곳인데도 고산국에 정착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돌아가는 복건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 보니 음식문화가 명나라보다 못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요리를 해먹고 싶어도 충분한 향신료나 재료가 없어서 복건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자존심이 상한 이민호는 복건에서 향신료와 부식으로 쓸 농작물 여러 가지를 들여왔다. 그리고 다양한 음식 종류를 개발하기 위해 혜진과 최 선생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해줬다. 그러나 강한 향신료를 쓰는 명나라와 발효식품 위주인 조선은 음식에 대한 취향이 많이 달라서 음식으로 복건 사람들을 정착하도록 유인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봤다.
“내년에 조선에 식량이 부족할 것에 대비해서 사탕수수는 줄이고 당분간 쌀 위주로 생산하도록 해. 볍씨 품종은 확인했지?”
“예. 조선 쌀 두 가지, 일본 쌀 세 가지 모두 단립종이에요. 생산된 단립종 쌀을 더 많이 보관하기 위해 복건성 노동자들에게는 안남이나 광동에서 수입한 길쭉한 쌀을 먹이고 있어요. 논을 늘리면서 사탕수수 재배 면적을 절반 이하로 줄였어요.”
“쌀이나 다른 작물도 마찬가지지만 어떤 품종이 생산성이 더 좋다고 해도 한 가지만 심으면 안 돼. 품종 다양성은 반드시 유지하도록 해. 돌림병에 대비하기 위해서야. 그런데 유구왕국 상선들은 잘 움직여?”
류큐왕국 왕립 상선대는 안남과 시암에서 장립종 쌀을 수입해 명나라에서 단립종과 바꿔 해중국 창고에 들이는 일을 맡고 있었다. 조선에서 감자와 고구마, 옥수수를 산골마다 심었다지만 군량 운송 때문에 많은 일이 있게 된다는 이야기를 부친에게 들어서 미리 동남아에서 쌀을 수입해 해중국 창고에 비축해두었다.
“유구국 사람들이 쌀과 목재 운반하는 일은 잘해요. 하지만 루손 섬에 중간 기착지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가 많으니 에스파냐와 접촉해보는 것이 좋겠어요. 그리고 유구왕국 궁궐에서 국서가 왔는데 좋은 전복의 종패를 달래요. 가격이 비싼 조선 전복과 품종이 다른 걸로 오해하고 있어요.”
고산국에서 보르네오나 안남으로 가는 중간인 마닐라에서 정박하면 좋은데 에스파냐는 류큐왕국 상선들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들은 외국 배의 입항 자체를 거부하거나 입항세를 많이 받아서 류큐국 선원들의 불만이 많았다.
그리고 류큐왕국은 전복을 양식해 보라는 이민호의 제안을 받아들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양식 전복을 광저우 등에서 판매하게 되면서 류큐왕국의 경제에 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었다. 강력한 경쟁력을 갖춘 상품을 생산해 일정 물량을 꾸준히 수출하는 것만으로도 그 동안 경제적으로 붕괴 직전에 처했던 류큐왕국은 간신히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비슷해 보이는 유구국 전복이 고산국에서 파는 완도 전복의 절반 가격도 못 받으니 억울한 모양이었다.
“완도 전복은 출하 전에 다시마를 먹여. 그런데 열대 바다에서 다시마를 키울 수는 없잖아. 그건 해중국에서도 어려운데 말이야. 유구왕국이 아직도 어렵나?”
“살림살이는 이전보다 훨씬 나아졌지만 의욕 넘치는 국왕이 욕심을 부리는 거여요. 기후에 따라 잘 자라는 해조류의 품종이 다르다는 사실을 잘 이해 못해요. 그래도 주인님과 협력을 유지하려는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 같으니 좀 더 보살펴 주세요.”
류큐왕국은 항해술이 좋은 선원을 많이 보유하고 있어서 이민호가 계속해서 이용할 계획이었다. 병에 걸려 만사가 회의적이었던 국왕이 의욕이 넘치다니, 일단 마음에 들었다. 왕국이 아직 예전만큼 활기를 되찾지 못했으므로 새로운 사업을 주기로 했다.
“유구국에도 상어 지느러미를 잘라서 광저우에 파는 어부들이 있을 거야. 하지만 거리가 머니까 어부 몇 명으로는 제대로 이익을 보기 힘들어. 그러니 왕국 차원에서 상어 지느러미를 대량으로 수집해서 판매하면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식으로 설득해 봐. 반드시 사람보다 큰 상어에서 등지느러미를 잘라 말려서 천 개 이상 단위로 명나라에 갖고 가서 팔라고 해. 단, 상어 사체를 육지로 운반해서 처리해야 한다는 규정을 포함시키라고 전해둬. 고기를 안 먹을 거라면 비료로 쓰든지.”
“상어 지느러미는 요즘 들어 명나라 부호들이 먹는 음식이라고 들었어요. 그게 맛이 있나요?”
“맛이야 없지. 그러니까 맛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특별히 느껴지는 맛이 없고 그저 식감으로 먹는다는 뜻이야.”
이미 명나라에 상어 지느러미 요리가 인기를 끌고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이민호가 생각하기에 조금 끔찍한 음식이라 그 동안 손을 대지 않았는데 류큐왕국을 위해 봉인을 푼 셈이었다.
상어 고기 자체를 활용하기 어려우므로 어부들은 상어를 잡아 등지느러미만 자르고 산 채로 물에 버린다. 그런데 상어는 계속해서 움직이지 않으면 산소 호흡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등지느러미가 잘리면 익사한다.
“이번에 온 칙사도 역시 환관인데 매일 같이 의용공주 전하께 알현 신청을 하고 있어요. 두 분이 아마 특별한 관계인 것 같으니 칙사를 만나기 전에 미리 공주 전하께 잘해주세요.”
“응. 그럴게. 그럼 혜영이는 밤에 보자.”
“공주 전하와 오래 있다가 오세요.”
“알았어.”
이때는 무슨 말을 해도 혜영이 섭섭하게 여길 것 같아 이민호는 얼른 집무실에서 빠져 나왔다. 물론 서둘러 나왔다는 이유로 점수가 깎이는 것은 당연한 결말이었다. 혜영도 여자였다.
이민호는 의용공주 주상아가 지내는 별궁으로 향했다. 이민호를 발견한 궁녀들이 분분히 공주에게 먼저 달려가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민희와 민영이 이끄는 호위병들이 공주의 침실 문 양 옆에 서서 궁녀들의 출입을 제지했기 때문이다.
이민호는 문손잡이를 잡고 열려다 멈칫했다. 공주의 침소에서 웬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이민호는 대화 내용에 더 놀랐다.
“공주 사랑해. 공주 사랑해.”
“전하. 저도 전하를 몹시 사랑한답니다.”
“공주 예뻐. 공주 예뻐.”
“전하께서도 너무 멋진 분이세요.”
이상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공주가 새장 속의 앵무새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공주와 시녀들이 놀라서 벌떡 일어섰다.
“전하! 무사히 돌아오셔서 소녀는 너무나 기쁘옵니다.”
“그대는 어째서 이리 모든 것이 달콤한지 모르겠소. 얼굴도, 몸도, 하는 짓도.”
이민호가 공주를 끌어 당겼다. 공주가 하는 짓이 예쁘기도 하지만, 남자에게 매달리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는 이 여자가 불쌍하기도 했다. 이민호는 공주에게 해줄 수 있는 것 중 공주가 가장 원하는 것을 해주기로 했다. 이민호가 원하는 것이기도 했다.
“아아! 아파요.”
“아, 미안하오.”
“너무 세게 깨물지는 말아주세요.”
“공주의 몸이 너무 달콤하고 향기로워서 가끔 이렇게 실수한다오. 혹시 다시 물더라도 살살 물겠소.”
이민호가 공주를 안고 난 뒤에 보면 공주 몸 곳곳에 이빨 자국이 벌겋게 나 있었다. 딱 그것 하나를 뺀다면 공주는 무척 행복해 보였다.
다음 날 오전 명나라 칙사가 고산국 국왕에게 알현을 신청했다. 복장은 전형적인 명나라 황실의 환관이었고, 어느 부서를 맡은 태감이라고 했다.
어쩌다 한 번 오는 책봉사를 모화관에서 영접하며 국왕부터 설설 기어야 하는 조선과 달리 고산국에는 명나라 칙사들이 수시로 들락거렸다. 칙사들은 주로 태감이었는데, 이들은 황실의 후궁들이 쓸 전복이나 옥 도자기, 백저포를 사러 오면서도 정식 칙사를 칭했다.
분명히 황제의 칙서를 소지하고 있으니 그들이 정식 칙사가 맞긴 했다. 황제가 친필로 작성한 칙서 내용은 ‘고산국왕에게. 공각황귀비가 복왕이 쓸 식기가 필요하다고 짐에게 자꾸 조르네. 태감에게 은을 들려 보낼 테니 옥 도자기라는 물건을 적당히 골라주게. 우리 상아를 많이 예뻐해 주게.’ 이런 식이었다.
알현 절차가 진행되다가 태감이 공주를 보더니 갑자기 얼이 빠졌다.
“공주 마마! 제가 고산국에 온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알현하였사온데 하룻밤 사이에 어찌 이리 아름답게 변하셨사옵니까? 소인 이해할 수 없사옵니다.”
태감의 말에 이민호가 공주의 모습을 살폈다. 화려한 대례복을 입고 수수한 기초화장을 해서 평소보다 예쁘긴 한데 뭐가 달라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하룻밤 사이에 공주의 표정이 밝아진 것만은 확실했다.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가 살짝 미소 지은 공주의 입에서 꿈결처럼 흘러나왔다.
“훗! 왕 태감은 환관이라 남녀 사이의 일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오.”
경우에 따라서는 환관에게 심한 모욕이 될 수도 있는 발언이었다. 그러나 공주와 이 환관 사이에서 이 정도는 쉽게 오고간 농담이었던 모양이다.
“공주 마마! 설마 제가 생각하는 것이 맞사옵니까? 잘하셨습니다. 다른 후궁들이 부마도위 저 놈, 아니 국왕전하를 감히 넘보지 못하도록 몸으로 휘어잡으셔야 하옵니다.”
“전하께서 계신 자리이니 부끄러운 이야기는 하지 마시오. 그리고 그건 왕 태감이 걱정할 필요 없소. 본 공주는 아주 잘하고 있소.”
“오오! 자신감이 넘치시는군요. 공주 마마께서 작은 나라로 오신 다음부터 제가 잠을 설치며 그토록 걱정했는데 이게 다 기우였습니다. 이 늙은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공주 마마!”
태감이 정말로 눈물을 줄줄 흘렸다. 쭈글쭈글한 얼굴을 지나 흘러내린 눈물이 대전 바닥을 적셨다.
칙사로 온 환관은 만력제보다 더 진짜 장인 같았다. 이민호를 노려보는 환관의 적대적인 표정에서 아비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국왕전하! 공주 마마를 잘 부탁드리옵니다. 으드득!”
“그건 걱정 마시오. 그런데 인상은 좀 푸시오. 무섭소. 과인은 여전히 황상께 충성을 다하는데 태감은 무슨 일로 오셨는지 모르겠소.”
그제야 임무를 환기한 환관이 헛기침을 했다. 기나긴 여정의 칙사 임무라 고위직의 태감들이 기피할 만한 일인데도 일부러 공주를 보기 위해 자원해 온 환관이었다.
“공주 마마의 기쁜 일에 비하면 별 일은 아닙니다만, 병력 5천 정도를 조선에 파병해주실 여력이 있으신지 여쭙고자 합니다.”
“흐음. 지난번에 오신 칙사가 하신 말씀과 다르구려. 그때는 기병 천 명을 보내되 군량은 자체 해결한다는 것이었소. 그 대신 무역에서 혜택을 받기로 했지요. 고산국은 작은 나라라서 군대가 별로 없는 것은 칙사도 잘 아실 것이오. 필사적으로 모집해서 이번에야 천 명을 갓 넘겼다오.”
물론 그 이상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지만 혜영의 권고도 있고 해서 이민호는 일단 버팅기기로 했다.
“고산국에 백성이 꾸준히 늘어나서 징병을 하거나 월봉을 주고 모집을 하면 십만 명까지도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압니다. 복건 출신으로서 품삯을 받고 고산국에서 일하는 자들만 6만이라는데, 월봉을 좀 더 준다면 군사 1만 정도를 못 얻겠습니까?”
“나는 내 백성들을 전쟁터에 몰아넣어 고달프게 하고 싶지 않소. 더욱이 천조의 복건성 백성들은 그저 먹고 살기 위해 멀리 외국까지 와서 일을 하는데 그들을 돈으로 유혹해 사지로 내몰고 싶지도 않소.”
“과연 국왕전하는 성군이십니다. 하오나 황상폐하의 작은 걱정을 덜어드리면 이 또한 충성이며, 왜적들에게 침략을 당해 어육이 되고 있는 조선 백성들에 베푸는 군자의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소만 나라 사정이 별로 좋지 못해서…… 과인 개인적으로는 공주하고 같이 있고 싶기도 하고, 그렇소.”
“예에?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시옵니까? 국왕전하께서는 당연히 공주 마마 곁에 계셔야지요.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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