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ire of the Warm Sea RAW novel - Chapter 13
* 13화 *
“그런데 지원군은 왜 아직도 오지 않습니까? 전라좌수영 소속 전선이 모두 합해 스물아홉 척 아닙니까? 수사가 제승방략을 발동하지 않았습니까?”
“제승방략에 의해 수군이 추가 동원되긴 했잖아. 5포 외에 저기 순천부나 흥양현 전선이 제승방략에 의해 동원된 배들이다. 각 포구의 후운도 급히 소집됐다는데 수사가 오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으니 다들 포구에 틀어박힌 모양이다.”
조선 초기 세종대부터 만호진에 500명 위아래, 첨사진에 천 명에서 2천 명 정도 수군이 소속됐었다가 시대가 흐를수록 포구 수는 늘어나는 대신 각 포구에서 근무하는 인원은 줄어들었다. 거기에 보통은 선후 2운으로 나뉘어져 근무했다. 명종 대에 개발된 판옥선 한 척에 125명에서 140명 정도 탑승하고 나머지는 진포에 남아 성곽을 지키는 식으로 근무한다.
그래서 평소 첨사진과 만호진에는 판옥선과 사후선 각 한 척만을 운용할 병력뿐이었다. 전체 소집 비상을 걸어도 집에 돌아갔던 수졸들이 투덜거리면서 수영이나 진포로 돌아오려면 며칠이나 걸렸다. 또한 제승방략이 발동된 후에야 수군 전문 진포인 5포 외에 순천부사 등 고을 수령이 지휘하는 5관의 함선과 병력도 추가 동원된다.
그러니 전라좌수영에 소속된 판옥선이 29척이라 해도 평소에는 5포의 각 한 척, 수영의 3척 정도를 즉시 동원할 수 있었다. 현재 손죽도 북쪽 해상에 출동한 전선은 5관 5포의 전선 각 1척, 수영 3척 해서 13척이었고, 녹도전선을 뺀 12척은 전투를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다.
“저런! 전선이 완전히 점령되고 권관은 생포된 것 같습니다. 권관이 작은 왜선에 태워져 손죽도로 끌려가네요.”
“나중에 돌아온 녹도 수군들에게 들으니 이 권관이 끝까지 항복을 거부하고 왜구들에게 욕을 하다가 죽는다는구나. 젊고 유능한 장수가 아깝게 죽었어. 아니, 곧 죽겠지. 혹시나 구해주자고 하지는 마라. 군령은 지엄한 것이니 너와 내가 당장 수사의 칼에 베이지 않더라도 함거에 실려 의금부에 끌려갈 것이다.”
부친 이응화는 미래에서 회귀한 사람답게 과거와 미래를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임진왜란을 잘 모르는 이민호 입장에서 이응화는 훌륭한 안내자이자 후원자였다. 덕택에 아무 것도 모르는 다섯 살 현대인이 험한 일 안 하고 원하는 것을 마음껏 만들어낼 수 있었다.
판옥선에서 항해사 역할을 하는 선두무상이 좌선의 깃발 신호를 응시하다가 이응화에게 보고했다.
“군령입니다! 퇴각 신호입니다.”
“수사 저 미친놈! 다시 보는데도 열이 뻗치는군. 두 번째인 내가 이런데 다른 장졸들은 어떻겠어?”
“저도 열 받네요.”
그러나 군령은 지엄한 것. 수졸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불만에도 불구하고 판옥선들이 북쪽으로 선수를 틀었다. 맨발로 깃대에 오른 선두무상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조선후기와 달리 깃대에 아직 망루가 만들어지지 않아 선두무상의 근무환경은 몹시 열악한 편이었다.
“왜선 세 척이 추격해 옵니다!”
순풍을 탄 작은 왜선들이 판옥선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다가왔지만 아직 거리가 제법 있어서 여유로웠다. 왜구 지휘관은 겁쟁이 조선 수군 상대로는 소선 3척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소선 지휘관들이 공을 세우기 위해 왜구 두목의 지시를 무시한 채 무리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이번 일이 나중에 어떻게 됩니까?”
“저 왜구들은 전라우도로 향할 것이다. 판옥선 한 척만으로도 밤새도록 전투를 해야 겨우 잡을 수 있는데 여기 출동한 판옥선 열두 척은 왜구들 입장에서는 너무 많거든. 우수영에 소속된 판옥선이 좌수영에 비해 두 배나 많더라도 차라리 몰래 기습하는 편이 왜구들 입장에서는 낫겠지.”
지금 영3선으로 왜 소선 3척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판옥선 상갑판에 수졸들이 배치된 상황에서는 방법이 없었다. 이들이 공격해오더라도 며칠 전에 녹도전선에게 잡힌 왜구들처럼 그저 화포와 활의 과녁으로 전락해 목이나 잘릴 뿐이었다.
그러나 칼을 든 왜구 몇 명이 일단 판옥선 상갑판에 올라서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고 부친이 설명했다. 훌렁 벗고 훈도시만 찬 자그마한 체구의 왜구가 판옥선 상갑판에서 조선 수군을 상대로 무쌍난무를 펼치는 장면을 상상하던 이민호가 부친에게 물었다.
“왜선들이 서쪽으로 간다면 전라우도에 피해가 생깁니까? 제가 을묘왜변은 좀 들었는데 정해왜변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습니다.”
“너도 봤다시피 왜선 자체의 전투력은 별 거 없다. 그러나 왜구는 기습이 장기지. 가리포에서 복병하던 전선 네 척이 불타고 전라우수사가 지휘하는 전선 다섯 척도 왜구에게 빼앗기게 된다. 이 일로 전라도와 충청도의 감사, 병사, 수사가 모두 파직되거나 교체되고 심 수사는 당고개에서 참수 당한다. 팔도에 조리돌림 당한 다음 서대문에 목이 걸리는 최악의 벌을 받게 돼. 금상께서 무관의 잘못은 결코 용서하지 않거든. 물론 임진년이 되면 워낙 많이 패해서 패장에 대한 처벌도 흐지부지해진다만 지금은 꽤 가혹한 처벌이 행해지는 편이다.”
“그래요? 저 얄미운 심 수사가 벌을 받는다는 말씀이죠? 그럼 우리가 저 왜구들을 때려잡은 다음 수사에게 수급을 전부 바쳐도 나중에 우리 전공이 인정되겠는데요?”
이응화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의 입은 분명히 좋아서 웃고 있었다.
“왜구들과 싸우자고? 나야 좋지만, 무섭지 않느냐? 네가 결정해라. 원래라면 저 왜구 소선들은 적당히 추격해오다가 돌아가게 돼 있다. 후퇴하라는 수사의 군령이 걱정된다면 왜선에 따라잡혀 어쩔 수 없이 싸웠다고 핑계를 대면 상관없다.”
“아버님! 저는 이미 한 번 죽었던 사람입니다. 다시 죽는다 해도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더욱이 왜놈들 때문에 전생에 죽었으니 저들은 나의 원수입니다.”
“열 살 꼬마치고는 기개가 제법이구나. 으하하! 과연 무관의 자식이다. 좋다. 왜선들이 좀 더 접근하면 싸우자.”
“아버님! 꼬마라거나 능구렁이라고 그만 좀 놀려요, 제발!”
“사실이지 않느냐?”
이민호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부친이 이민호의 나이로 평생 놀려먹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정말 잘 만들었다. 네 말대로 방답 오두막에서 과녁판을 놓고 가끔 사격 연습을 하고 있다.”
“오늘은 그 권총 쓸 필요도 없을 텐데요.”
부친 이응화가 6연발 리볼버 권총을 품속에서 꺼냈다. 사실 이 시대에 이미 비슷한 연발권총 개념을 가진 권총이 유럽과 일본에서 개발됐으나 사용하는 데에 문제가 많았다. 권총이라도 아직 화승총의 개념을 벗어날 수 없으니 총신이 여럿이라 아주 무겁거나 한꺼번에 여섯 발 모두 발사되는 문제는 연발 권총이라는 장점을 무색케 했다.
그러나 이민호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고, 5년 만에 6연발 권총을 만들어냈다. 이민호가 권총을 만드는 과정에서 구리탄피나 탄두, 총강은 기본적인 압연과 주물로 의외로 간단히 만들었다.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익히 접해본 물질인 니트로셀룰로오스도 쉽게 합성해 무연화약을 만들어냈다. 이민호의 지식 수준에서, 그리고 민간에서 유황을 구하기 어려운 조선에서는 흑색화약보다 차라리 무연화약을 만들기 쉬웠다.
심지어 탄피 뒤쪽에 뇌관까지 제대로 만들어 화승도 필요 없었다. 권총 재료로 사용된 철은 코크스가 없어 아직 제대로 가공된 것이 아니었지만 기본적인 열처리를 거치고 강선까지 새겼다. 그래서 내구력은 떨어지더라도 미국 서부시대에 사용하던 권총과 비슷한 성능을 낼 수 있었다. 물론 관통력은 이민호가 만든 것이 훨씬 우세했다.
그러나 제작 과정에서 철의 품질을 수공업적으로 조금이라도 끌어올리는 것과 용수철 제작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리고 뇌관식 격발장치에 사용할 물질인 염소산칼륨을 만드느라 들인 시간이 가장 많았다. 염화칼륨 수용액을 전기 분해하느라 결국 전기발전기까지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컴퓨터나 3D 프린터가 있었다면 쉽게 모형을 만들 수 있을 텐데 나무토막을 칼로 깎아 일일이 맞춰보느라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그래서 리볼버 권총 2정의 제조 과정에 들어간 비용은 자그마치 쌀 2천 석에 달했다. 만약 권총을 추가로 만들지 않는다면 권총 하나 만드는데 현대 가치로 십억 원씩 들어간 셈이었다. 그러나 수원의 이민호 개인 대장간에 제조시설이 남았고 믿을 만한 대장장이들을 종신 고용했으니 언제든 같은 물건을 빠른 시간 내에 다시 만들어낼 수 있었다.
“손잡이를 상아로 만들라니까 기어코 나무로 만들었구나. 너무 싸 보이지 않느냐?”
“그래야 혹시라도 남들 눈에 띄었을 때 변명거리가 있죠. 고급스러워 보이면 높은 사람에게 빼앗길 겁니다. 더욱이 아버님은 지금 귀양살이 죄인 신분 아닙니까?”
“욕심쟁이 심 수사라면 당장 빼앗아가겠지. 그렇다 해도 좀 아쉽다. 그런데 이건 언제 조선군에 넘길 예정이냐?”
“이 시대에 비해 과도한 기술이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제 도움 없이도 장인들이 만들 수 있는 적당한 성능을 가진 소총을 이미 만들었으니 적당한 시기에 관군에 넘길까 합니다. 실제로는 이런 비싼 호신용 권총보다는 시대에 맞는 기술 수준으로 대량 생산된 소총이 전쟁에서 훨씬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쓸데없이 압도적으로 강력한 무기를 만들 필요는 없었다. 그 시대 기준으로 너무 앞서나가는 물건은 어쩌다 제작이 가능할지라도 6연발 권총처럼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민호가 5년 사이에 만든 물건은 또 있었다. 조총보다 월등한 성능의 소총과 파편이 사방으로 터져 나가는 수류탄을 만들어 동래성과 부산성에 배치할 기술과 자금이 이민호의 손에 있었다.
물론 이민호는 작렬탄을 쏘는 근대식 화포를 경상우수영 소속 판옥선에 싣고 왜선에 퍼부어 원래 역사의 임진왜란을 임진왜변 수준으로 끌어내릴 능력도 있었다. 그러나 이민호는 더 길게 보고 전쟁을 기회로 활용하기로 했다. 다만 민간인을 포함한 인명피해는 최소화하고 싶었다.
임진왜란 해전 참가에 욕심이 많은 부친도 이민호의 뜻에 동의했다. 그런데 이민호가 부친과 대화를 하면서 스케일이 점점 커졌다. 욕심 많은 부친은 이민호에게 아들이 원하는 수준보다 더욱 앞으로 나서길 원했다.
“왜란이 끝난 후에는 어떻게 살 작정이냐? 일본 놈들이 망하는 꼴을 보고 싶다만, 가능하겠느냐?”
“저도 일본을 멸망시키고 싶습니다. 아니! 반드시 멸망시켜서 앞으로 영원히 농사만 지어야 합니다.”
“왜놈들이 죽일 놈들이긴 하지만 앞으로 공업이 중요하다고 말했으면서 그런 말을 하다니 무섭구나. 그런데 그것이 정말로 가능하겠느냐?”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된다면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최소한 일본 땅이 다시는 통일되지 못하게 만들겠습니다.”
“그래. 아주 좋다. 그런데 왕이 되기는 여전히 싫고? 외국 말고 조선 임금 말이다.”
부친이 목소리를 죽이며 물었다. 물론 이민호는 부친이 조선 왕실에 충성스러운 무장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떠보는 이야기에 넘어가면 앞으로 재미없어질 것 같았다. 방답 오두막에 붙잡혀 일 년 동안 소학과 삼강행실이나 읽어야 할지도 몰랐다.
“제가 공학을 연구해서 그런지 정치는 일단 귀찮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필요에 따라 동남아나 호주, 만주와 미주를 정복하더라도 최소한 조선은 그대로 내버려둘 생각입니다.”
“너는 조선의 제도를 답답하게 여기지 않느냐? 네 생각대로 하나씩 바꾸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억지로 정권을 잡아봤자 양반들의 저항이 클 테니 부담 가거든요. 조선에 남아서 권력 다툼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훨씬 많은 지역을 정복하거나 개발할 수 있습니다. 정복지 주민들도 백성으로 받아들여 잘 살게 만들고 싶습니다.”
“끄응! 우리 아들이 외국에 나가서 왕이나 황제가 되더라도 벗들에게 자랑도 못하겠네. 그런데 외국에 일단 나가면 다시는 조선에 못 돌아오는 게 아니냐?”
“조선국을 명목상의 상국으로 모시는 제국을 만들어 제가 수시로 들락거릴 수도 있습니다. 남쪽 섬에 나라를 세우더라도 조선과는 서로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버님이 아니라 음식 문제 때문에라도 조선에 자주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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