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ire of the Warm Sea RAW novel - Chapter 172
* 172화 *
아이누족들은 사용하기에 복잡한 조총보다 간단한 구조의 승자총통을 더 마음에 들어 했다. 특히 왜군의 장창방진에 매번 호되게 당했던 아이누족들은 한 번에 한 발밖에 못 쏘는 조총보다 여러 발을 한꺼번에 날리는 승자총통의 장점을 높이 평가했다.
“뭐든 한 가지 무기에만 집중하면 좋지 않아. 승자총통은 사거리가 짧거든. 승자총통도 좋지만 앞으로 왜군과 상대하려면 조총 쏘는 연습을 열심히 해야 할 거야.”
“사실 와진들에게 조총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를 상대할 때는 창칼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오다테의 가키자키 가문 무사들만 내몬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야. 일본 본토에서 정벌하겠다고 바다를 건너오겠지. 너희들도 진형을 짜거나 전술을 활용하면 좋겠다만, 배우는 게 쉽지 않겠다.”
“추장들의 아들을 데려가서 왕께서 교육을 시켜주면 안 되겠습니까?”
“흠. 그것 괜찮겠군. 좋다! 2년만 맡아서 키워주마. 추장 후보가 아닌 전사 지휘관으로 만들어줄 테니 적당한 젊은이들을 모아라. 나는 며칠 후에 떠날 테니 그 전에 데려와라.”
이민호가 아이누족의 요구를 수용하자 사방에서 후보들을 데려왔다. 이민호는 중등학교 졸업생이 나올 때까지 사관학교 개교를 늦추려고 했는데 이들 때문에 앞당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숙사와 강의동, 훈련장 등 사관학교 건물은 이미 만들어놓고 지금은 이따금 신병 훈련소로 쓰고 있었다.
아이누 마을 오두막을 지나던 이민호가 꼬마들이 노는 것을 구경했다. 민희와 민영이 방긋 웃으며 꼬마들의 경계심을 풀어주었다.
“너희들 참 귀엽구나.”
아이누족 고유 문양이 새겨진, 마치 나코루루를 떠올리는 옷을 입은 꼬마 여자애들이 이민호를 보고 멀뚱거렸다. 꼬마들은 일본어를 모르고 이민호는 아이누어를 몰랐으니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이민호가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누어주었다. 아직 12살이 안 돼서 입 주변에 문신을 하지 않은 아이누족 꼬마들은 무척 귀여웠다. 꼬마들이 조심스럽게 사탕을 받아 입에 넣고 오물거리더니 생전 처음 맛보는 강한 단 맛을 느끼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사탕을 입안에서 굴리며 활짝 웃었다.
이민호도 씩 웃었다. 마치 꼬마 여자애를 노리는 변태 아저씨 같은 표정이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시대에는 그렇게 오해할 사람이 없었다. 실제 꼬마 여자애와 결혼을 하는 남자들도 있고, 남들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꼬마들이 사탕을 아주 맛있게 먹어서 이민호도 흐뭇했다. 이제 이 아이들은 어른이 돼서도 고산국에 무조건적인 호감을 느낄 것으로 기대했다.
“왕! 구슬 파세요.”
“헉! 예, 예. 드리겠습니다.”
조커를 연상시키는 입 모양의 아이누족 여자들이 몰려오자 이민호는 많이 무서웠다. 여자들은 황금 장신구를 주고 구슬을 받아갔다. 폭리도 이런 폭리가 없었다.
그러나 섬 북쪽 지방에서는 황금이 흔한 편이었다. 대부분 시간을 마을에 머무르는 여자들의 장신구로 쓰여서 섬 남쪽 끝에 사는 일본인들은 아직 그 사실을 몰랐다. 섬 북동쪽 오오츠크해로 흘러드는 어느 강에서 5년 동안 5만 냥의 사금이 나온 적도 있다고 했다.
아이누족 여자들이 몸에 걸치는 목걸이를 하나 만들려면 구슬이 최소 20개는 필요했다. 이민호는 아이누족 인구를 20만으로 잡고 목걸이를 할 만한 성인 여자를 일 만 이상으로 추정했다. 목걸이 한 개에서 세 개를 걸치는 여자들이 요구하는 구슬 수요를 맞춰줄 수 있다면 최소 황금 20만 냥, 7.5톤과 교환이 가능하다고 계산했다.
아이누족 여자들이 걸치고 다니는 황금 장신구의 양을 보면 충분하다고 이민호는 판단했다. 이민호는 아이누족을 일본으로부터 지켜주는 대가로 그들이 수백 년 동안 비축한 황금을 거덜 내기로 했다.
조총과 창칼, 철제 농기구를 팔고 얻은 대가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류큐 상인들도 아이누족 여자들이 장식한 황금을 봤을 테니 여자들이 황금을 주고 살 만한 물건을 팔았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고, 아이누족 여자들의 황금 장신구는 결국 이민호의 차지가 되었다.
“도련님. 입 찢어지겠습니다. 여기 온 목적을 상기하세요.”
“아! 그렇구나. 전쟁하러 왔었지.”
계복이 이민호의 정신을 차리게 했다. 장사가 일단락되고 이민호가 데려갈 아이누족 젊은이들이 어느새 다 모였다.
이민호는 추위가 심해지기 전에 작전을 실행하기로 했다. 그래서 호수 주변에 거주하는 추장들을 모두 모았다. 그리고 오다테를 칠 계획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왕이 오다테를 무너뜨리고 와진들을 다 죽이면 우리는 걸어가서 점령만 하면 된다는 겁니까?”
“그렇다. 나를 믿어라.”
“조총을 많이 가진 왕이니 믿어보겠습니다. 하지만 와진들은 몹시도 강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대대로 싸웠지만 항상 패했습니다.”
“나는 더 강하다.”
이민호는 마치 사이비 종교 교주가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딱히 설득할 수단도 없으니 강함을 실제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확실한 설득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누족 전사들 천 명을 배에 태우고 북쪽 바다 건너에 사할린 섬을 두고 서쪽으로 빠져 나왔다. 그리고 하루 종일 남쪽으로 항해해서 다음 날 아침 섬 남단 오다테 서쪽 해안에 도착했다.
이곳 섬에 와서 처음에 도착했던 상륙장소에 아이누족 전사들을 내렸다. 기마병 300기와 해병 400명도 함께 상륙시켰다. 전선 8척은 계복에게 지휘를 맡기고 이민호는 지상군을 지휘하기로 했다.
병력을 오다테의 서쪽 언덕 너머에 남겨두고 이민호는 털옷 두 개를 덧대어 입었다. 그리고 아이누 인처럼 변장한 호위병들과 함께 오다테로 향했다. 민희와 민영은 아이누족 여자들처럼 입가에 검게 칠을 했다. 그러나 둘은 그렇게 분장을 하고서도 여전히 예뻤다.
길은 호수마을 추장이 안내해주었다. 아이누족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라 오다테에 들어갈 때 왜병들이 검문을 철저히 하지 않았다. 호위병들이 등에 진 모피 속에는 보병총이나 기병총이 슴겨져 있었다.
이때는 아직 아이누 인과 일본인이 거주지 구별 없이 섞여 살던 때였다. 아이누족과 거주 지역을 분리시킨 다음 섬 여러 곳에 교역 장소를 개설하고 가신들에게 교역권을 나눠준 것은 에도 시대 이후였다.
이 시대 아이누족이 일본인들과 무역을 하려면 오다테에 와서 영주 가키자키를 알현하는 과정, 즉 오메미에 의례의 일부로서 하는 조공무역 형식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민호는 아이누족 호수마을을 출발하기 전에 아이누식 인사 절차인 오무샤를 미리 배워두었다.
“와이마무라는 형식의 조공무역을 하는데 절차가 복잡합니다. 영주님을 알현할 때 마루 위 의자에 영주님이 앉아계시고 우리는 앞마당에 서서 정중하게 인사해야 합니다. 이것을 와진들은 도게자(土下座)의 예라고 합니다.”
“바가지 써가면서 무역을 하는데도 그런 멸시를 받아야 하나?”
“영주님을 알현하지 않으면 무역을 할 수 없습니다. 굴욕적이라도 우리에게 필요한 게 있으니 어쩔 수 없지요.”
호수마을 추장의 설명을 들으며 관에 들어갔다. 아이누족 복장을 한 청년 20여 명이 한꺼번에 들어가자 왜병들도 약간 긴장했다. 잠시 후 오다테의 영주 가키자키 요시히로를 대신한 사무라이가 등장해서 마루 위의 의자에 앉았다.
“쓸데없는 것들이 또 왔구먼. 칼을 차면 뭐해? 싸움도 못하는 것들이. 얼른 알현식을 진행해서 쫓아 보내!”
“예. 모리히로님. 야만인들은 어서 영주님의 장남이시며 대리를 맡고 계신 모리히로님께 인사를 올려라!”
가키자키 모리히로는 영주 가키자키 요시히로의 장남이었고, 올해 21세의 청년 사무라이였다. 영주의 젊은 장남이 대체로 그렇듯 모리히로도 아버지가 없는 자리에서 아랫사람들을 무시했다. 특히 상대가 아이누 남자들이라면 대놓고 경멸했다.
하급관리가 이런 식으로 구령을 붙이자 호위병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이민호의 호위병들이 관리의 멱살을 잡아 마루 아래에 내팽개쳤다.
잠입할 때까지만 참으라고 했으니 이민호는 더 이상 호위병들을 말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민호에 이어 민희와 민영도 두툼한 외투 안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 탕! 탕! 탕!
이민호가 노린 영주의 장남이 총에 맞는 것과 동시에 왜병 두 명이 쓰러졌다. 민희와 민영이 하나씩 맡기로 약속을 해두었었다.
“각 오별로 문 하나씩 맡아!”
이민호를 따라온 호위병들이 동문과 서문, 남문으로 달려갔다. 병사 숙소로부터 왜병들이 몰려왔으나 숫자가 몇 안 돼서 호위병들이 금방 제압했다.
– 두두두두~
관 안쪽에서 울린 총소리가 신호가 되어 기마병이 오다테에 들이닥쳤다. 기마병 300기가 휩쓸고 지나가자 서쪽 길 검문소를 지키던 왜병들 10여 명이 단숨에 쓸려 나갔다. 기마병들이 시가지에서 왜병들을 쏘아 죽이거나 참살하는 사이 해병들이 검문소를 통과해 시가지로 몰려들었다.
그 사이 계복이 이끈 함대는 바다에서 포구를 향해 곧바로 쳐 들어왔다. 거대한 전선들이 포구에 들이닥치자 배에 탄 자들이 땅에 내려 도망가려 했다. 그러나 해병들이 왜병과 왜인 몇 명을 쏴 죽인 다음 모조리 포로로 사로잡았다.
– 콰직!
미닫이문을 발로 차 버린 이민호가 권총을 앞세우고 방으로 뛰어들었다. 푸르스름한 연기가 무겁게 떠다니는 내실에 웬 기모노를 입은 젊은 여자가 허연 허벅지와 가슴을 드러낸 채 담뱃대를 빨고 있었다. 나이로 미루어 영주의 처는 아니고 첩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여자가 몽롱한 눈빛으로 이민호를 보더니 야릇하게 웃었다. 이민호는 분노나 성욕보다는 여자에게서 측은한 감정을 느꼈다.
“아편 중독에서 도저히 못 빠져 나올 것 같으면 차라리 지금 죽여줄까?”
“아니에요. 정신을 차릴게요.”
아편을 피우던 여자가 억지로 일어나 앉았다. 속옷을 입지 않아 다리 사이 검은 숲이 다 드러나 보였으나 이민호는 이 여자가 썩은 고깃덩어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민희와 민영도 여자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금을 원하신다면 비밀 금고로 안내하겠습니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여자가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허우적거리는 여자를 민영이 부축해줘야 할 정도였다. 여자가 작은 문을 열고 커다란 금고를 가리켰다.
“됐다. 죽이지 않을 테니 어서 나가라.”
여자가 시녀에게 부축을 받고 빠져 나갔다. 오늘 싸움에서 승리한 쪽에 붙은 아이누족들이 일본인 여자들까지 죽일 것 같지는 않았다.
호위병들을 불러 도끼로 오동나무 금고를 깨 부쉈다. 안에 금과 은, 진주가 많이 쌓여 있었다. 그러나 큰돈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호위병에게 자루에 모두 담도록 시킨 이민호가 투덜거렸다.
“실망이야. 아이누들과 교역하면서 매년 황금 일만 냥도 못 모았을까?”
“나고야 성에 가면서 다 들고 갔을지도 모르겠어요.”
“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뇌물을 바치러 나고야 성까지 가다니. 영주 노릇하기도 힘들겠구나.”
이민호가 뜰로 돌아오니 내실 비밀통로에서 잡힌 영주의 가족들이 밧줄에 묶여 있었다. 정복자 앞에서 영주의 40대 정처와 아들, 딸들이 덜덜 떨었다.
이민호는 영주 딸들의 턱을 하나씩 손가락으로 들어 올려서 얼굴을 구경했다. 어려서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이고 겁에 질린 표정인데도 제법 미색이 고왔다.
희망을 발견한 영주의 정처가 뭔가 말을 하려는 순간 이민호가 먼저 물었다. 영주의 사위가 될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다.
“이보시오, 부인! 영주의 성이 점령당한 다음 영주의 가족들을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겠소?”
영주의 처는 다이묘의 딸로 커온 여자답게 이런 상황에서도 냉정하게 판단했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저희를 인질로 삼아주시면 저희 주인이 몸값을 내거나 무사님을 주군으로 모실 것입니다. 집안 여자들은 전부 무사님의 노리개로 삼아도 좋으니 가문의 후계자로 세울 사내아이 한 명만은 제발 살려주십시오.”
“싫어! 영주의 직계 가족 남자들은 사형, 여자들은 풀어주겠다.”
이민호는 전국시대 다이묘가 아니니 일반적인 처리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울부짖는 여자들을 관에서 쫓아낸 다음 영주의 아들 세 명의 목을 치게 했다. 장남까지 해서 영주의 아들 넷의 목이 창대에 꽂혀 정문에 높이 걸렸다.
이민호는 여자들이 미카와 시녀들처럼 복수를 다짐한다면 얼마든지 받아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영주의 처자들이 아이누족의 분노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 배를 한 척 내서 왜인 사공들을 붙여서 보내주었다.
그 사이 아이누족들이 오다테의 시가지를 완전히 박살냈다. 뜻밖에 일본 민간인에 대한 보복은 자제하는 것 같았다. 교역을 하면서 낯을 익힌 일본인들이 많은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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