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ire of the Warm Sea RAW novel - Chapter 2
* 2화 *
– 총원 그대로 들어! 함장이다. 국방부에서 해군에 내린 대일 특별 교전규칙에 따라 어뢰가 3000야드까지 접근하면 자위를 위해 반격하겠다. 어뢰 탐지 즉시 대잠로켓을 발사해 유선유도를 끊도록 강요했어야 하지만 청정해역에 해양쓰레기를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저 미친놈들이 혹시나 냉정한 판단을 할 수도 있기에 조금 더 기다리겠다.
강감찬함의 함장은 아직도 인내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해군을 비롯한 국군이 최근 들어 노골적으로 변한 일본의 도발에 넘어갈 것을 우려해 국방부가 대일 교전규칙을 새로 정한 것도 함장의 발목을 잡았다.
일본이 최근 갑자기 미친 듯이 군사력을 증강하는 것은 후쿠시마 방사능 확산 사태 때문에 한국을 무력 침공하려는 의도로 보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니 한국은 어떻게든 일본에 자그마한 꼬투리라도 잡히지 않으려 노력했고, 특히 해군은 일본의 도발에 기본적인 대응도 할 수 없게 될 정도로 심하게 위축됐다.
“후쿠시마 제1원전 4호기의 사용 후 핵연료 저장 수조가 무너져 체르노빌보다 50배 이상의 방사능이 노출되고 있다는데 이것이 사실입니까? 총리대신! 말씀을 해보세요.”
“도쿄전력에 문의해보겠습니다.”
“자위대에서 핵무기를 개발 중이라는데 사실입니까? 총리대신! 대답을 하세요.”
“대답할 수 없습니다.”
“자위관 모병 인원을 크게 늘리고 무기를 증산해 자위대에 배치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건가요?”
“국가기밀이라 답변드릴 수 없습니다.”
몇 달 전 일본의 중의원 대정부질문에서 의원과 총리가 나눈 질문과 답변이었다. 현재 일본의 분위기가 저 정도였으니 한국 입장에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을 때, 그리고 외부로 힘을 분출시키고자 할 때 언제나 한국이 희생양이 되어야 했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있어 한국 정부는 물론 국민들도 긴장하며 살아야 했다.
일본 정부는 러시아와 긴급 협상에 들어가 사할린과 캄차카반도를 100년 임대하기로 하고 현재 그 조건을 협상하고 있었다. 호주 정부는 일본인들의 이주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일본 민간인들도 브라질과 몽골 등 세계 각국에서 땅을 사들이고 있었지만 그 나라 정부들은 유독 일본인에 대해서는 이민을 받아주길 꺼렸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는 방사능 확산의 위험에 대해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일본 잠수함에서 더 가까운 위치에 있던 을지문덕함에게도 갑자기 나타난 어뢰가 빠르게 따라붙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전혀 발견하지 못했던 어뢰였다. 어뢰 회피를 위해 침로를 급히 바꾸는 을지문덕함을 KNTDS 전시기를 통해 지켜보던 부장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함장님! 을지문덕함이 위험합니다. 지금 즉시 홍상어를 발사해야 합니다.”
– 나도 같은 생각인데 을지문덕함에서 거부했다. 더 기다려 달래.
그러나 더 기다렸다간 을지문덕함은 물론 강감찬함도 죽게 생겼다. 일본 잠수함은 한국 구축함들을 공격해서 전쟁을 일으키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함장님! 지금 즉시 대응공격을 해야 합니다. 거리가 더 가까워지면 잠수함과 같이 우리도 죽습니다!”
– 나도 안다. 그러나 일본이 도발한 전쟁에 말려들 수는 없다. 마지막 순간까지 인내한다.
겉으로는 평온했어도 이미 미국 정부는 물론 일본인들도 일본을 포기했다. 이대로 몇 년 더 시간을 보내면 일본만 죽지만,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한국이 말려 들어가면 영토를 빼앗긴 한국만 죽거나, 일본과 같이 죽을 가능성이 있었다. 함장은 바로 이것을 두려워했다.
역시나 일본 잠수함은 어뢰를 자폭시키거나 유선 유도를 끊지 않았다. 일본 잠수함에서 발사한 어뢰는 계속 을지문덕함에 접근했다. 부장이 주먹을 꽉 쥔 채 눈을 질끈 감았다.
– 을지문덕함이 일본 잠수함에서 발사한 어뢰에 피격됐다. 현재 침몰 중이다. 일본 잠수함의 적대행위가 확인된 이상 즉시 적 잠수함을 목표로 대잠로켓 발사절차에 들어간다.
함장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나온 직후 수직발사관이 열리며 홍상어 대잠미사일이 발사됐다. 까치상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동쪽으로 날아간 대잠미사일은 까치상어가 입수된 바로 그 해역으로 날아가 어뢰를 떨어뜨렸다.
“적 어뢰 접근 중! 거리 3000입니다.”
“어뢰가 표적을 탐지하는데 시간이 걸려. 함장님! 홍상어를 한 발 더 발사하셔야 합니다. 우리 영해 안에서 적 잠수함을 확실히 격침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 맞다.
수상전투함이나 대잠헬기에서 발사하는 대잠어뢰는 크기가 작은 경어뢰에 속하며 잠수함에 구멍을 뚫는 정도의 타격을 줄 뿐이다. 물론 잠수함이 침몰할 가능성도 높지만 어뢰에 맞고도 긴급부상을 통해 한국 해군에 나포되거나 여차하면 수상항주를 통해 일본 영해로 도주할 가능성도 있었다.
실전에서는 이 정도로 충분하더라도 을지문덕함이 침몰하고 강감찬함도 곧 같은 운명을 따라갈 텐데 가해자인 일본 잠수함이 부상하거나 도망가게 놔둘 수는 없었다. 곧 익숙해진 진동이 강감찬함에 울리며 추가로 대잠미사일 두 발이 남쪽 바다를 향해 날아갔다.
“거리 500! 첫 번째 홍상어가 표적을 물었습니다. 거리 150! 잠수함이 쏜 어뢰는 아직도 유선 유도 중입니다!”
“미친놈들이 전쟁을 일으키려고 작정했군.”
부장이 이를 악물었다. 어뢰가 시시각각 강감찬함에 접근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 잠수함도 같은 운명에 처해질 것이다.
– 퍼엉!
남쪽 해수면에서 거대한 물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홍상어 대잠어뢰가 일본 잠수함 함수에 제대로 명중했는지 잠수함에 탑재된 중어뢰 여러 발이 한꺼번에 유폭한 것 같았다. 이렇게 되면 일본 잠수함 승조원들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한다.
– 쿠쿵!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강감찬함도 어뢰에 피격됐다. 일본 잠수함이 격침된 직후 무선 유도로 자동 전환된 어뢰 1기가 SLQ-261K TACM 예인형 기만체로 방향을 틀었으나 나머지 한 발이 흘수가 7미터인 강감찬함 아래로 파고들었다.
강감찬함의 함저 3미터 아래를 지나는 순간 중어뢰가 폭발했다. 급격히 팽창한 거대한 버블 제트가 만재배수량 5500톤의 강감찬함을 수면 위로 띄워 올렸다. 그리고 몇 초 후 급속히 수축한 공기덩어리로 인해 강감찬함이 수면 아래 몇 미터 깊숙이 빨려 들어갔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작용한 두 번의 강력한 충격으로 강감찬함의 함체가 세 조각이 나면서 함수와 함미가 떨어져 나갔다. 중어뢰는 1만 톤 급 순양함도 한 방에 격침시키는 위력이라 그보다 작은 강감찬함은 확실히 끝장나고 말았다.
강민호는 어뢰 피격 순간 몸이 1미터 넘게 떠올랐다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팔이 부러진 강민호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눈앞에서 뛰어다니는 해군 승조원들의 움직임이 마치 볼륨을 줄인 TV화면처럼 보였다.
미지근한 액체가 귀 밑으로 흘러서 만져 보니 손가락에 시뻘건 피가 묻어 나왔다. 화재가 발생했는지 함교 내부가 시커먼 연기로 가득 찼다.
– 총원 비상 이함 준비! 안전반과 수색반은 부상자를 먼저 구조하라.
함교 아래 전투정보실에서 강감찬함을 지휘한 함장은 아직 생존해서 승조원들에게 배를 포기하고 내릴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그 위에 있는 함교의 사정은 좋지 않았다. 부장과 함교 근무자들은 충격에 비틀거리면서도 부상당하거나 기절한 민간 연구원들을 함교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악전고투했다.
“김 중사는 세 명을 데리고 전정실로 내려가서 확인해! 전정실은 함교보다 피해가 더 클 것이다. 생존자를 구조하고 특히 함장님 상태를 확인해 보고하라! 그 사이에 나는 비밀문서를 파기하겠다.”
“알겠습니다, 부장님!”
부상당한 부장의 명에 따라 수병들이 계단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그 사이 강민호도 다리를 절룩이며 시커먼 연기 사이로 축 늘어져 있는 선임연구원을 찾았다. 그리고 스승과 다름없는 선임연구원을 부축해 함교 밖으로 나왔다. 박봉에도 불구하고 평생 국방과학연구소를 지킨 선임연구원을 죽게 놔두는 것을 강민호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함교 바깥에서 비상 이함 절차를 진행하느라 다들 정신이 없었다. 사다리 줄을 통해 내려간 승조원들이 구명보트나 천막 모양의 구명벌에 타는 동안 세 동강이 난 채 화재에 휩싸인 강감찬함의 함수와 함미가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연구원님! 총원 비상 이함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어서 단정에 타십시오.”
“고맙습니다만 저보다는 선임연구원님을 부탁합니다.”
강민호는 수병들의 도움을 받아 정신을 잃은 선임연구원을 고속단정에 태웠다. 그 사이 비교적 멀쩡한 해군 승조원들이 부상자와 민간인들에게 구명보트 자리를 양보하고 물로 뛰어들었다. 부상자들을 가득 태운 고속단정과 구명보트들이 출발하자 그제야 강민호도 카포크를 조작해 팽창시킨 다음 바다로 뛰어들었다.
물에 빠져들었다가 팔을 휘저은 강민호가 수면 위에 고개를 내밀었다. 그런데 뜻밖에 수면 위에서 헤엄치는 생존자들은 강민호의 생각보다 훨씬 적었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은 것이 아니라, 대부분이 고무보트 위에 텐트를 친 모양의 구명벌에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원에 비해 구명장비가 충분했는데 구명벌이 뭔지 모르는 강민호가 구축함이 침몰하기 전에 일단 물에 뛰어들고 봤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
구명벌에 탄 승조원들이 바다에 떠 있는 승조원들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구명벌은 구축함 현측에 드럼통 모양의 케이스 안에 보관됐다가 수면에 투하되면 자동으로 부풀어 오르는 식의 구명장비였다. 강민호도 구명벌에 타기 위해 한 팔로 헤엄을 쳤다.
강감찬함은 어느새 완전히 가라앉았다. 굉음에 놀란 강민호가 고개를 들어보니 대잠헬기가 침몰해역 상공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나면서 가까운 포항에서 날아온 해병항공단 소속 헬기 몇 대가 승조원 구조작업을 진행했다. 강민호도 조금만 더 버티면 해군 구조함이나 해경 구난경비함이 도착해 승조원들을 구조할 것이다.
그런데 강민호가 팔을 젓는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부상 입지 않은 오른팔을 억지로 휘저으며 생각해 보니 지금은 겨울이었다. 동해바다가 서해보다 훨씬 따뜻하다지만 그래도 차가운 겨울바다였다. 그리고 강민호는 팔과 다리, 양쪽 귀에서 출혈 중이었다.
헬기가 부상자들을 먼저 구출하는 것을 보면서 강민호는 갑자기 몸이 떨리며 졸음이 쏟아졌다. 조금만 더 버티면, 또는 조금만 더 헤엄을 쳐서 구명벌에 도달하면 살아남겠지만 온몸에서 힘이 빠져 나가 마지막이 오는 것 같았다. 강민호는 이렇게 허무하게 죽도록 만든 일본 놈들이 정말 싫었다.
“연구원님 정신 차리세요! 저체온증 같은데 졸면 절대 안 돼요! 어서 구명벌에 타세요.”
표류하는 강민호를 발견하고 구명벌에서 뛰어내려 헤엄쳐 온 수병 두 명이 강민호의 어깨를 쥐고 흔들었다. 그러나 강민호는 힘겹게 떴던 눈을 다시 감았다. 부드럽게 일렁이는 물에 떠서 그런지 강민호의 심신은 아주 편안했다. 수병들이 강민호를 끌고 헤엄친다는 느낌을 마지막으로 강민호는 모든 감각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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