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ire of the Warm Sea RAW novel - Chapter 24
* 24화 *
5. 남정북벌
좌수영 서쪽 의관산 아래 벅수골에서는 추수가 끝난 밭에서 사격훈련이 한창이었다. 고려식 무복을 입고 이마에 머리띠를 질끈 동여맨 혜진이 단발 소총을 들고 100명의 훈련병들 앞에 섰다.
“다시 한 번 보여주겠다. 장전손잡이를 이렇게 잡아당기면 탄피가 자동적으로 빠져 나온다. 그 다음 총을 세운 뒤 꽂을대를 내려 총강 내부 청소를 마치고 꽂을대를 총신 밑에 끼운다. 탄알주머니에서 탄알을 꺼내 뾰족한 탄두를 앞으로 해서 탄알을 넣는다. 장전손잡이를 올려 탄알을 약실에 장전한다. 총을 들어 과녁에 조준. 가늠자와 가늠쇠, 과녁 중심이 한 줄이 되면 방아쇠를 당겨서 격발한다.”
– 쾅!
“관중이요!”
과녁 아래 호를 파고 들어간 조교가 과녁 정 중앙 명중을 의미하는 빨간 깃발을 흔들었다. 작은 종이 표적지 중앙에 자그마한 구멍이 새로 뚫려 있었다.
“어때? 쉽잖아! 서서 쏘나 앉아서 쏘나 엎드려 쏘나 다 똑같아. 그리고 탄피는 반드시 주워서 조교에게 반납하도록 해!”
혜진이 간수군들에게 소총 사격요령을 지도하는 동안 이민호의 이마에서 땀이 삐질 흘러내렸다. 혜진이 요리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사격 실력도 일품이었다. 사실 사격과 승마 실력만 놓고 보면 연구원 출신인 이민호보다 훨씬 나았다.
의주 기생들이 말 타고 달리며 활쏘기를 해서 명나라 장수들 입을 못 다물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혜진도 그에 못지않았다. 평안도에서는 기생이 말을 타는 것이 아니라, 말 타고 활 쏘고 놀던 보통 평안도 여자아이들 중 일부가, 또는 말 타고 활 쏘고 놀면서 시와 가야금을 배운 애기 기생이 커서 기생이 되는 것뿐이다.
전라좌수영 성하마을에서 간수군 모집은 쉽게 이루어졌다. 전라좌도의 수군들에게 보수를 받고 대신 번을 서던 대립군들은 수군이 잠시 해산하는 겨울 동안에는 실업자 신세였기 때문이다. 바다 멀리 섬에서 몇 달씩 일하게 될 수도 있다고 미리 공지했음에도 지원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군적이 보통 20년마다 개정되고 그것도 ‘성현의 도’를 따르느라 늘어지기 일쑤라서 수군 정병 대부분은 나이가 많았다. 그래서 대립군이라는 일은 농사지을 땅도 없고 수군 정병도 아닌 젊은이들이 많이 했다. 수군 대립군을 하던 때보다 훈련이 힘들어도 보수를 많이 주니 다들 참고 열심히 했다.
처음 5백여 명이 지원해서 나이와 체력 순으로 200명을 뽑고 지금은 왕실에서 허가 받은 정원 100명만 남아 훈련 중이었다. 이민호는 이들에게 제식훈련부터 시작해 활쏘기, 말 타기, 사격, 정찰, 맨손 무술인 수박, 윤선 운항, 단정 운행 등 꼭 필요한 것만 훈련을 시켰다. 혜진 외에도 이민호를 따라온 집안 종들이 조교 역할을 맡아 훈련병들을 굴렸다.
“오호! 화약 정제를 잘했는지 연기가 매우 적게 나는구나.”
좌수영에서 사람들이 수시로 들락거린 탓에 제대로 훈련시키기도 힘들었다. 오늘은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박선이 수영 서쪽 벅수골에 가설된 훈련장에 들러서 훈련을 참관했다. 공식적인 교지에는 일본 왜구의 본거지인 오도를 공격할 이민호를 지원하라는 뜻으로, 비밀 교지에는 감시하라는 뜻으로 좌수영에 내려왔다고 이민호는 의심했다.
간수군의 훈련은 기존 수군 훈련과 전혀 다르게 진행돼 좌수영 군관들도 수시로 들러 훈련 과정을 지켜봤다. 이민호는 수사의 허락을 얻어 그런 군관들에게 간수군들의 승마 훈련교관 일을 맡기기도 했다. 군관들은 대부분 무과 합격자 또는 무과 응시예정자들이라 기마 실력은 아주 뛰어났다.
대립군들이 수군이라 해도 말을 전혀 못 타는 것은 아니었지만 승용 승마와 전투승마술은 전혀 달랐다. 시간이 흐르자 간수군들이 말 타고 활을 쏘는 기사는 못하더라도 기창을 들고 돌격해 허수아비를 찌를 수준에는 올랐다. 이참에 무과에 응시하겠다는 간수군들이 많아 간수군들에게 한자 교육과 함께 희망자에 한해 무과 시험에 대비한 병서 강독 교육을 시켰다.
이민호는 욕심을 부려 간수군들에게 마상 사격술도 훈련시켰다. 말을 달리면서 쏘는 수준은 절대 아니고 말을 세운 채 안장에 앉거나 등자에 두 발을 딛고 서서 총을 쏘는 훈련이었다. 근세 유럽의 용기병 같은 승마보병 수준에 오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전마가 총소리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도 많이 걸렸다.
병사들을 훈련시키면서 편제를 짰다. 전통적인 조선식 편제에 따라 병사 5인을 오(伍), 25인을 대(隊)로 구분 짓고 똘똘한 놈으로 오수를, 이 기회에 면천시켜준 가문 노비를 대정으로 삼아 오와 대를 통솔하게 했다. 처음 이민호가 면천시켜주겠다고 했을 때 군역과 요역, 납세의 의무를 지게 될까봐 노비들이 기겁해서 형식적으로는 아직 노비였다.
간수군들을 위해 군대 내무반 비슷한 막사를 만들어 훈련 중 휴식공간으로 제공했다. 조선의 모든 사회 조직에는 신참 괴롭히기라는 악습이 있어 병사들이 도무지 내무생활을 하려 하지 않았다. 그것은 한성에 상번하는 경군이나 평안도와 함경도 국경지대에 지원 배치되는 다른 도의 병력, 수영이나 수군 진포에서 근무하는 수군이나 다 마찬가지로 다들 하숙이나 셋집을 얻어 생활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그래서 간수군들도 모두 출퇴근하면서 훈련에 참가했다.
그 사이 새로 만든 외륜선 두 척은 기본 건조를 마치고 지금은 외장공사가 한창이었다. 본격적인 원양 무역선 겸 군선으로 활용하기 위해 기존 윤선들과 달리 길이와 폭을 늘렸으며 높은 선수루와 선미루를 만들어 거주공간으로 삼고 그 위에 포좌를 설치했다. 그래서 서양 범선과 비슷한 선형이 되었다.
그런데 상선과 다른 전투용 선박이라 들어가는 판재의 두께가 달라 설계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다. 설계하면서 이민호는 배의 무게 중심을 낮추기 위해 그야말로 별 짓을 다했다. 선수부에 용골과 연결된 두툼한 충각을 달고, 그것도 모자라 나중에는 밑판에 철판을 붙이고 부식을 막기 위해 얇은 동판을 덧붙였다.
이민호가 전라좌수영에 내려가 간수군을 모집해 훈련하는 사이 조정에서는 녹둔도 참화의 대응 수위를 논의하고 있었다. 녹둔도 참화는 두만강에 있는 섬으로서 둔전이 설치된 녹둔도가 시전부락 여진족들에게 공격당해 군인과 민간인 100여 인이 납치당한 사건이었다. 함경북병사 이일은 패전의 책임을 물어 경흥부사 이경록과 조산만호 이순신을 병영에 감금했다고 조정에 보고했다.
시전부락을 토벌하는 논의가 조정에서 이어졌고, 그 사이에 선전관이 좌수영까지 내려왔다. 간수군들을 동원해 외륜선 두 척으로 수전 훈련을 실시 중이던 이민호가 소포로 돌아가 선전관 일행을 맞이했다. 이민호는 바짝 긴장했으나 다행히 사약을 내린다는 어지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오도의 왜구를 토벌해 조선인 포로들을 구출한 다음 1월 초까지 함경도 회령부에 출두하라는 겁니까? 간수군들 훈련은 아직 안 끝났고 지금이 벌써 12월 초인데요? 겨울이 되면서 바람이 북풍으로 바뀌어 배로 올라가기 어려울 텐데 말입니다.”
“위에서 말씀하시길, 이 생원께서는 둘 중에 하나만 해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말 타고 함경도에 가는 데만도 보름은 걸릴 테니까요.”
“명령서에는 두 가지 다 하라는데 어떻게 된 겁니까?”
“가능하다면 해도 된다는 거지요.”
이민호가 선전관의 눈치를 살피자 선전관은 짐짓 먼 산만 쳐다보고 있었다. 만약 이민호가 선전관이 한 말을 믿고 한 가지만 했다가 자칫 명령불복종으로 참수당할 우려가 있었다. 그렇다고 둘 다 해결하면 능력이 너무 좋다고 앞으로 내내 견제 당할까 겁이 났다.
지금은 선조 임금과 협력관계이긴 하지만 이민호는 기본적으로 임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어쩐지 일이 잘 풀린다 했더니 상전이란 사람이 변덕을 부려 이민호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럼 병력을 둘로 나누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100명 모두를 함경도에 도착시켜야 한다는 것이 어지입니다.”
역시나 선전관이 바로 토를 달았다. 이민호는 함정이란 생각을 했다. 이렇게 의심하며 온갖 일에 굴려도 충성심이 계속 보장될 거라고 믿는 임금이 이상한 사람이었다. 가능하다면 얼른 독립해버리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시간이 부족하니 바로 움직여야겠군요.”
역시나 이래야 선조 임금답지, 라고 투덜거리며 이민호는 방답으로 달려갔다. 부친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였는데, 위에서 까라면 까는 것이 무관의 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군인 정신은 제 정신이 아니라는 말이 이민호의 뇌리에 떠올랐다.
다음 날 아침 이민호는 수영으로 가서 좌수사에게 협조를 얻어냈다. 겨울이라 병력이 없어 우후와 사공들만으로 판옥선 두 척이 출동하기로 했다. 화포장과 사부, 격군이 없어 전투력이 전혀 없는 판옥선들이지만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했다.
그 사이에 혜진이 외륜선 두 척에 보급품을 실었고, 간수군들은 출동 전 목욕을 했다. 목욕탕을 나온 간수군들 앞에는 새 군복이 놓여 있었다. 이민호의 집안 종인 계복이 군복 입는 법을 알려주었다.
“속옷을 입고 이렇게 바지를 입은 다음 발목 부분을 조인다. 버선을 신은 위에 목화나 갖신을 신는다. 쉽지?”
“속옷 모양이 이상합니다. 바지도 폭이 너무 좁아요. 버선은 왜 이렇게 생겼죠?”
현대식이니까 당연히 기존 조선 복색과 다른 모양이었다. 간수군들은 투덜거리면서도 이 시대 기준으로는 지나치게 꽉 조이는 군복을 입었다. 다 입고 보니 조금 멋져 보이기도 해서 불만이 줄어들었다.
“너희들이 입은 것은 겨울에 입는 동계 근무복이다. 선상에 배치됐을 때나 대기 중에 입는다. 동계 전투복은 윤선에 준비돼 있으니 환복할 때 다시 설명하겠다. 휴가나 행사 때는 동정복과 하정복을 입을 예정인데 아직 제작 중이다. 근무복과 전투복은 각각 두 벌씩에 속옷은 일곱 장이니 자주 갈아입도록 해.”
“어? 비싼 옷들 같은데 저희가 다 사야 합니까? 겨울 여름 다 따로요?”
“간수군은 소요되는 모든 물품을 고용주가 준비한다. 물자 지원은 내게 맡기고 너희들은 싸움이나 잘 하도록 해.”
이민호는 계복에게 행정보급관을 시키면 잘 하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부족해 다음 날 아침 밀물에 전라좌수영 소포를 떠났다. 외륜선 두 척과 판옥선 두 척은 일단 정남향으로 항로를 잡고 북서풍을 받아 빠르게 순항했다. 따뜻한 남쪽 바다라고 하지만 바람이 강해 무지무지하게 추웠다.
네 척으로 이뤄진 선단이 방답진을 지날 때 사후선을 타고 기다리던 방답첨사의 환송을 받았다. 이민호의 부친이 첨사 옆에 서 있었다.
올망졸망한 섬들을 지나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금오도와 안도, 연도를 차례로 지났다. 멀리 서쪽으로 거문도와 백도를 두고 외양에 들어선 선단은 계속 남쪽으로 향했다. 외륜선이 훨씬 앞서갔으나 판옥선들이 수평선에서 사라지지 않은 동안에는 걱정할 필요 없었다.
“도련님, 저기 거문도 서도 신지께여에 인어가 산답니다. 인어를 연못에서 키운다는 이야기는 가끔 들었는데 신지께 인어는 여왕 출신이라 전혀 다르답니다. 비바람도 부르고 태풍이 칠 때는 돌을 던지거나 휘파람을 불어 뱃사람들에게 경고한답니다.”
이민호가 거문도와 백도를 구경하는데 계복이 말을 걸었다. 바다에서 목격된다는 인어는 물개나 듀공, 한국 해역에 많은 상괭이를 착시현상 때문에 잘못 본 경우가 많다고 이민호는 생각했다. 그러나 연못에서 키운다면 단순한 착시현상은 아니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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