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ire of the Warm Sea RAW novel - Chapter 25
* 25화 *
“아니, 계복아! 연못에서 인어를 키운다는 이야기는 또 뭐야?”
“홀아비나 과부가 외로우니까 뭐 그렇고 그런 거죠.”
“인어하고 대화가 통하나?”
“말은 안 통하는데 노래를 잘 부른답니다. 아! 인어고기를 먹은 여자가 예뻐졌지만 너무 오래 살아서 슬픈 이야기도 어릴 적에 들었습니다.”
일본의 전설과 비슷한 이야기가 조선에도 있었다. 단순한 소문이나 옛날이야기가 아닌, 선비가 기록한 인어 아이들 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서쪽에 섬이 보입니다. 산이 엄청나게 높습니다.”
“제주도 한라산이다. 여기서 판옥선들을 기다렸다가 남동쪽으로 항로를 변경하겠다.”
판옥선들을 기다리느라 외륜선이 멈춰 있는 동안 사공들은 더 바쁘게 움직였다. 해류가 흐르고 바람이 부는 바다 한복판에서 제자리에 멈춰있는 것도 꽤나 신경이 쓰이는 일이었다. 소들을 쉬게 하고 돛 방향만 바꿔가며 중심을 잡았다.
연자방아를 돌리는 소들에게 쇠여물을 쑤어 먹였다. 교대용을 포함해 소를 20마리나 태웠는데도 배가 커서 공간은 충분했다. 간수군들이 순번을 정해 점심을 해서 먹었다.
그 사이 판옥선들이 도착해 선단은 다시 항해를 계속했다. 북동으로 흐르는 해류와 강한 북서풍을 타고 선단은 빠른 속도로 남동쪽으로 순항했다. 돛이 바람을 가득 머금어 금방이라도 터져 나갈 것처럼 불안했다.
“멀리 육지가 보입니다. 섬입니다. 남서에서 북동 방향으로 섬 여러 개가 줄을 지어 있습니다.”
“가장 남쪽의 큰 섬이 오도다. 거리를 두고 남쪽으로 돈다.”
어느덧 해질녘이었다. 좌수영에서 200여 km 거리를 한나절 만에 주파한 셈이었다. 판옥선에 격군이 없으니 순전히 바람을 잘 탄 덕택이었다.
이민호가 이끄는 선단은 섬에서 40km 거리를 두고 빙 돌아서 고토의 남쪽으로 접근했다. 섬 높은 곳에서 배 네 척의 움직임을 알아채더라도 조선 판옥선의 선형을 정확히 알 수 없을 거리였다.
“새벽에 치는 것이 좋긴 한데, 판옥선에 탄 우후의 상태가 자못 심각한 것 같다.”
바깥 바다의 파도는 3미터에 달해서 평저선인 판옥선에 탄 우후와 사공들은 죽을 맛이었다. 멀리서 보니 통역관 역할로 따라온 왜학훈도가 갑판에 누런 국물을 연신 게워내고 있었다.
사실 이민호도 바깥 바다에서 밤을 새고 싶지는 않았다. 바다 한가운데는 파도도 강하고 밤이 되면 바람이 더 거세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민호는 밤중에 왜구 본거지를 기습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이민호는 고토의 위치만 알지 당시 왜구들이 이용하던 포구의 정확한 위치는 알지 못했다. 섬 길이가 20km나 돼서 정확한 포구 위치를 수색할 필요가 있었다.
“막둥이가 간수군들을 이끌고 탐망을 하고 와라. 해안 중에서 불 켜진 곳들이 포구다. 판옥선 네 척이 세워진 포구를 찾거든 바로 돌아오너라.”
“그런데 생원 나리, 저 이름 좀 바꿔주세요.”
“막둥이가 어때서? 크크! 울지 마라. 이번 일 성공하면 바꿔주마.”
외륜선 우현에서 단정이 내려지고, 이민호의 집안 노비인 막둥이를 비롯해 격군 역할을 맡은 간수군 다섯 명이 단정에 탔다. 단정은 빠른 속도로 해안으로 다가갔다. 그 사이 판옥선들이 도착해 외륜선들과 함께 돛을 내린 채 대기했다.
“도련님. 바람이 점점 거세집니다.”
“응. 아무래도 주변에 작은 섬에서 밤을 보내야 할 것 같다.”
파도가 거세져 4미터를 넘어가니 이민호도 슬슬 멀미가 났다. 선단은 동쪽으로 항해하면서 적당한 정박지를 찾았다.
고토 섬의 남쪽에 작은 섬들이 몇 개 있었다. 이민호는 적당하다고 판단한 가장 동쪽 섬을 골라 배 네 척을 이끌고 섬 북쪽에 위치한 선착장에 진입했다.
“우하하! 거미 떼처럼 흩어지는구나.”
갑판에 올라온 간수군들이 실컷 웃었다. 처음 보는 커다란 배들의 등장에 놀란 왜인들이 죄다 산으로 달아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 네 척이 차례로 선착장에 접안한 다음 병력이 하선했다.
그런데 웬 작달만한 체구의 젊은 일본 무사가 선착장으로 나오면서 고함을 질렀다. 어이가 없어진 이민호가 판옥선에서 내린 왜학훈도에게 물었다.
“훈도 아저씨! 저 놈이 뭐랍니까?”
“아카시마, 그러니까 이곳 적도라는 섬의 사무라이인데 용기를 겨뤄볼 사람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계복아~”
“예, 도련님.”
– 쾅!
오랫동안 함께 생활해서 계복은 말투만으로도 이민호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주인의 명령을 수행했다. 소총에 맞은 사무라이가 쭉 뻗었다.
“제3대가 나가서 물은 구하지 말고 땔감만 구해와라. 항상 2인 1조로 움직이고 민가를 약탈하지 마라. 적대적 행위를 하지 않는 왜인들을 죽이지도 마라. 출발해!”
“예!”
간수군들은 약탈 금지령에 불만이 있더라도 직접 표출하지는 않았다. 급료를 받으면서 약탈할 권리까지 요구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흑흑!”
“뭐야?”
웬 젊은 일본 여자가 길에 뻗은 사무라이의 시신을 안은 채 울고 있었다. 간수군들은 여자의 정체를 대충 이해하고 지나쳐갔고, 왜학훈도가 몇 마디 묻더니 돌아왔다.
“저 무사의 부인이랍니다. 시신을 가져가서 장사를 지내도 되는지 생원 나리께 여쭙고 있습니다.”
“쯧! 거기 네 명! 저 일본 무사의 시신을 댁으로 모셔가도록 도와줘. 계복아! 장례식 때 쓸 수 있도록 미망인께 면포 몇 필 드려라.”
“예! 나리.”
계복이 면포 스무 필을 힘겹게 등에 지고 시신 운구 행렬을 따랐다. 원래 면포가 부족한 일본에서는 품질이 더 좋은 조선 면포로 높은 값을 받을 수 있으니 적지 않은 돈이 될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잠시 후 계복이 돌아오는 길에 웬 늙은이를 데려왔다.
“이 노인이 판옥선이 세워진 포구를 알려주겠답니다.”
“응? 계복이가 일본어를 할 줄 아나?”
“저는 왜어를 할 줄 모르는데 이 노인이 조선어를 압니다.”
일본인 노인이 이민호 앞에 와서 엎드려 절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마도에서 태어나서 조선어를 아는 노인이었다. 젊었을 때 남중국에서 왜구로 활동했다는 노인인데 아까 죽은 사무라이가 이 노인의 아들이었다. 부자지간에 나이 차가 많이 나는 것으로 미루어 노략질로 한 몫 잡은 노인이 이 섬을 사서 결혼해 정착한 것 같았다.
“노인의 아들이라니 참으로 안되셨소. 그러나 무사가 싸우다 죽었으니 후회는 없을 것이오.”
“사무라이로서 주군에 대한 의리를 다했으니 그것으로 된 겁니다, 장군님. 그리고 장군님의 후의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지난봄에 왜구들에게 죽은 조선 전라좌, 아니 전라우수영 수군들의 가족인데 올 초에 노략질한 왜구 놈들을 찾고 있소. 조선 판옥선이 끌려간 포구를 아시오?”
“고려 전선이라면 저기 후쿠에 섬의 동쪽 후쿠에 항, 그러니까 복강 포구에 있습니다.”
노인이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이민호는 작은 섬 앞에 인공적인 불빛이 바다에 살짝 비치는 곳을 확인했다. 그런데 조선이 건국된 지 200년이나 됐어도 일본에서는 여전히 고려라 부르는 경우가 흔한 모양이었다.
“저 북쪽 섬이 오도 아닌가?”
“고토, 그러니까 오도는 여러 섬들이 이어진 열도이기도 하고 저 섬의 옛 이름이기도 하고 포구 마을 이름이기도 합니다. 포구는 따로 복강이라고 부릅니다.”
“끌려온 포로가 100명이 넘는다는데 다들 저 포구에 있소?”
“조선인들은 복강 포구 남쪽 가미오오쓰. 그러니까 상대진의 창고에 갇혀 있습니다. 조선인들이 병사들의 감시 아래 낮에는 강제 노역을 하는데 지금은 밤이니 창고에 있을 것입니다.”
“고맙소. 우린 해적이 아니니 밤새 정박하는 동안 마을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는 않을 것이오. 잘 설명해주었으니 나도 선물을 드리겠소. 계복아! 노인께 비단 몇 필 드려라.”
“감사합니다, 장군님.”
이민호는 방금 남편을 잃은 며느리를 데려가서 같이 살라는 노인의 청을 사양하느라 혼이 났다. 일본은 전국시대가 끝난 지 얼마 안 돼 아직도 여자가 전리품 취급을 받았다. 살기 힘든 세상에서는 미망인의 복지 수단일 수도 있었다. 이민호는 미망인이 남편의 복수를 할까 그것이 더 두려웠다.
막둥이가 탄 단정이 선착장에 돌아왔다. 섬 남쪽만 찾아 헤맸으니 당연히 판옥선이 정박한 포구를 찾지 못했다. 막둥이는 투덜거리면서 배식 받는 곳으로 향했다. 이민호도 병사들과 똑같은 식판에 저녁을 먹었다.
판옥선 장대 앞 또는 뒤에 벽돌과 흙으로 만든 부뚜막이 설치돼 있었다. 외륜선에도 선미루 식당에 쇠죽을 짓기 위한 커다란 가마솥과 부뚜막이 있어 식사를 만들었다. 물과 식량은 많이 가져왔으니 땔감만 구하면 배에서 식사를 차릴 수 있었다. 수군 판옥선에서는 관비가 밥을 해주지만 여기서는 남자들이 밥을 해서 나눠먹었다.
쌀밥과 된장국, 짭짤한 염장 어포와 말린 두부튀김이 오늘 저녁의 식단이었다. 원래는 밀감이나 오렌지를 제공할 계획이었으나 아직 밀감 묘목이 크는 중이라 식사를 마친 간수군들에게 대구에서 생산한 사과를 하나씩 먹였다. 어떤 품목이든 마찬가지로 조선에서는 운송하는 비용이 워낙 크게 들어서 산지의 사과 값은 싼데 소비지에서는 금값이었다.
“훈련 받은 대로 한 시진씩 교대로 번을 선다. 이상이 생기면 당번 오수 또는 당직 대정의 판단 하에 선 조치 후 보고하도록. 특히 화공의 기미가 보이거든 즉각 사격하도록 해. 수고!”
“알겠습니다. 편안히 주무십시오.”
선단은 선착장에서 약간 떨어진 바다에 닻을 내리고 정박 태세에 들어갔다. 판옥선 두 척을 가운데에 두고 양쪽에 외륜선이 위치했다. 왜인들의 마을에 도망갔던 사람들이 돌아왔는지 저녁을 하는 연기가 하늘 높이 솟았다.
“괜찮아?”
“몰라요!”
선장실 침대에 누워서 끙끙 앓던 혜진이 이민호가 들어오자 몸을 홱 돌렸다. 이민호를 졸라서 배에 타긴 했으나 연해와 달리 원양에서 뱃멀미는 아주 지독했고, 혜진은 호되게 고생하고 있었다.
“주먹밥 가져왔어. 지금은 못 먹을 테니 나중에 좀 나아지면 먹어. 사과라도 먹을래?”
“됐어요. 히잉~”
이민호는 군복을 벗고 훌쩍이는 혜진 옆에 누웠다. 목욕은커녕 발도 씻지 못해 찝찝했으나 전투항해를 시작하는 순간 세수도 못하니 어쩔 수 없었다. 선실에 식수는 충분히 선적했으나 씻을 물은 부족했다. 잠시 부스럭거리며 옷 벗는 소리가 나더니 혜진이 품에 파고 들어왔다.
“아직 멀었어요?”
“뭐가?”
“그거요. 부부가 하는 일.”
“어렸을 때 머리 크고 팔다리 짧다고 그렇게 날 놀렸으면서 이제는 나하고 하고 싶어? 악! 꼬집지 마.”
혜진이 씩씩거려 조금 무서웠다. 이민호는 혜진을 가볍게 끌어안았다.
“내 거시기에 아직 털도 안 난 거 혜진이 너도 봤잖아.”
“가능하지 않을까요? 민호 도련님은 옛날부터 발랑, 아니 조숙했잖아요. 거기도 벌써 까졌, 아니, 모자를 벗었잖아요. 어머! 오늘 내가 왜 이래.”
혜진이 두 손으로 빨개진 얼굴을 감쌌다. 남자 거기가 자연적으로 까지면 성행위가 가능할 정도로 성숙해진 표시라는 속설이 있었다.
“그건 목욕할 때 씻으려고 벗은 거야. 나도 어리고 혜진이 너도 너무 어려. 바람 안 피울 테니 걱정하지 마.”
“헤헤! 정말이죠? 언니 말고 다른 여자는 본부인 딱 하나만 인정해줄 테니 알아서 하셔야 해요.”
“혜진이 너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피곤한데 여자가 많으면 뭐해?”
“씨잉!”
이민호는 혜영과 혜진 자매에게 매번 이렇게 확인해줘야 했다. 물론 둘이 이민호의 정식 부인이 되겠다는 욕심은 없었지만 가끔 투정을 부리곤 했다. 이민호는 이미 익숙해진 혜진의 향긋한 숨결을 느끼며 편안히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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