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ire of the Warm Sea RAW novel - Chapter 29
* 29화 *
“북병사께서 좌위 배치를 명한 수원부 생원 이민호입니다.”
“그 열 살짜리? 용케 오늘 도착했네. 그런데 북병사 그 새끼는 씨발 하필 이런 골칫덩이를 좌위로 넘겨? 야! 좌위에는 사람이 많아 복잡하니 우위로 가. 어서 꺼져! 씨발! 병력은 적은데 왜 이리 특이한 인간들이 많아? 이 새끼나 저 새끼나!”
입에 욕이 붙은 변언수가 손을 휘휘 내저어 이민호를 막사에서 쫓아냈다. 기분이 상했지만 이민호는 꾹 참고 두정갑을 입은 진무에게 물어 이번에는 우위장을 만나러 갔다. 이민호는 시대를 넘어 다시 어리버리 신병이 된 기분이었다.
“도련님 오늘 구박을 많이 받으시는군요. 아직 연치 어리셔서 무시하는 걸까요?”
“어떤 핑계로든 남을 무시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 꽤 있어. 운이 나쁘다고 생각해야지 뭐. 어쩌면 악의 없이 누구에게나 저러는 사람일 수도 있겠지.”
계복에게 위로를 받으며 우위장의 지휘 막사로 찾아갔다. 우위장은 정3품 통정대부 온성부사 양대수라고 했다. 오는 길에 진무에게 물어보니까 전라좌수사였던 이천이 우위의 선봉장에 불과했고, 선거이, 김우추 등 정3품 당상관들이 우위 안에 우글우글하다고 했다. 우위장 양대수를 찾아 신고를 마쳤다.
“부방하러 온 병력이 승자총통을 쏠 수 있는 전라좌수영 대립군 100명이라며? 유군에 넣을까, 후부에 넣을까?
“이왕이면 선봉에 넣어주십시오. 전투 초기에 적이 몰린 곳에 총통을 한꺼번에 쏘면 효과가 꽤 좋습니다.”
“흠. 그래? 어디 보자. 선봉장 밑에, 에잇! 장수들 중에 웬 삭탈관직 당한 급제들이 이렇게 많아? 흐음! 호랑이, 사자, 곰, 표범 중에 아무 거나 골라 봐.”
“아무 거나 영감께서 정해주십시오.”
“황 찰방이 고뿔에 걸린 모양이니 표확도장(豹攫都將)을 대신 맡게. 황 찰방 휘하 병력은 다른 곳으로 돌릴 테니 자네 병력만 지휘하게.”
우위장이 황 찰방이라 부른 사람은 전 찰방 황진이었다. 황진이 말고 황진,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전사한 사람으로 이민호는 기억했다.
“알겠습니다.”
“밖에 나가서 선봉군 장수들하고 인사나 나눠. 어린놈이 전공 욕심 때문에 군령 무시하고 괜히 앞서 나가다가 뒈지지나 마. 아군에게 민폐야.”
“명심하겠습니다.”
전라좌수영과 달리 함경도 북병영은 지휘관들부터 터프한 군바리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이민호는 위에 무서운 사람들이 줄줄이 있는 군대에 오래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배치됐으니 윗사람들을 찾아 인사를 다녔다.
우위의 선봉장, 함경북도 조방장 이천은 전라좌수사에서 물러난 사람이라 만난 적은 없으나 서로 이름은 많이 듣던 사람이었다. 이천이 반갑게 맞아주었으나 부하 장수들을 곤장으로 때려죽인 사람이라는 인상이 강해 함부로 가까이 하기에 너무 무서웠다. 이천 옆에 앉아있던 사람이 이민호에게 물었다.
“그대가 이 첨사 응화의 아들이라고?”
“그렇습니다. 혹시 아산에 사시는 전 발포만호 이 장군이십니까?”
부친에게 키가 엄청나게 큰 사람이라고 들어 이민호는 그가 이순신이라고 생각했는데 맞아떨어졌다.
“나를 어찌 아는가? 지금은 백의종군 중이라 전직명도 쓸 수 없는 급제라네. 날이 추우니 뜨거운 차 한 잔 하게.”
“감사합니다. 5년 전 수원 가는 길에 아산에서 아드님이 말을 타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 막내가 자네하고 동갑이겠군. 면이 그놈 자식 여덟 살 넘어서 말을 타라고 했는데도 고집을 피우다가 나한테 종아리를 좀 맞았지.”
“이 친구가 그 유명한 이 생원이야?”
웬 희멀겋게 생긴 미중년이 이민호와 이순신 사이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순신이 그 사람을 이민호에게 소개했다.
“이쪽이 내 무과 동기 중경이라네. 첫 인사이니 이름이 이경록이라고 알아 두게. 경흥부사였다가 녹둔도 패전 때문에 나하고 같이 잘린 사람이야. 내 목이 잘리지 않은 것은 이 친구가 종친인 덕분이라고 생각해.”
“여해 자네하고 같이 잘려 든든하네. 이 생원 자네가 표확도장이라면 전투 초반에 우리 셋이 줄줄이 서 있게 됐군. 내가 우골격장, 여해가 우화열장이야. 말 타고 달릴 때 줄을 잘 맞추게. 어? 이제 보니 이 생원이 선임자이고 여해가 제일 졸병이잖아? 큭큭!”
이경록은 부사였고 이순신은 만호였는데 서로 반말하는 친구 사이라서 이민호는 무척 혼란스러웠다. 상명하달 관계가 뚜렷한 무관들은 지위에 더 민감하기 마련인데 지금은 전투 중이 아니라서 사적인 관계가 우선되는 것 같았다.
“우리 중에서는 내가 제일 높아. 내가 우위 선봉군 중에서도 절반을 지휘하는 용양도장이고 자는 사신일세.”
“처음 뵙습니다. 표확도장에 임명된 이민호입니다. 자는 아직 없습니다.”
우위 선봉군에서도 서열이 높은 용양도장은 정3품 당상관 절충장군 행부호군 선거이인데 실직이 없는 사람이라 선봉에 배치된 것 같았다. 이경록이 피식 웃었다. 급제와 당상관이 맞먹고 있었다.
“용양도장? 흥! 어린놈의 자식이!”
“왜 이래! 그래도 내가 무과 선배야! 새까만 후배 놈이 감히 하늘같은 선배에다 당상관에게 까불어?”
어떻게 보면 위아래가 없는 조직 같았지만, 뭔가 확고한 기준이 있으니 이런 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다. 이민호가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 헤맬 때 구해준 사람은 이순신이었다.
“듣자 하니 승자총통이 아니라 왜의 조총을 개량했다고?”
“그렇습니다. 계복아! 총 하나 가져오너라.”
처음 보는 특이한 화약무기가 막사 안에 들어오자 천생 무골인 장수들이 시선을 집중했다. 이민호는 소총에 총탄을 장전하는 시범을 보여주었다.
“승자총통이나 다른 화약무기들은 화약과 탄환을 따로 넣고 불을 지펴 쏘는 절차가 길지 않습니까? 이렇게 얇은 금속으로 만든 탄피 안에 화약을 담고 앞쪽에 총알을 답니다. 그리고 뒤쪽에 화약 불을 붙이는 장치를 달아 한 번에 여러 절차를 해치울 수 있습니다.”
이민호의 설명이 끝나자 역시나 질문이 마구 쏟아졌다.
“그거 좋군. 그런데 활보다 멀리 나가나?”
“이 총은 아직 발전하는 중입니다. 전쟁터에서 중요한 사람 크기를 맞힐 수 있는 유효사거리는 아직 활이 나을 겁니다. 가까운 거리에서 쏘는 정확도도 활이 낫군요.”
“그런 면에서는 승자총통보다 딱히 나을 것도 없군. 그럼 활을 쓰지 이런 거 왜 만들었나? 큰 소리를 내서 적을 경동시키려고?”
“총은 관통력이라 할 파괴력이 활보다 훨씬 큽니다. 갑옷이 의미가 없어지니까요. 그리고 한나절 훈련을 받은 군사도 쏠 수 있을 정도로 배우기 쉽습니다. 아주 싸게 궁수를 대체할 수 있지요.”
“오호! 이 젊은 생원이 무관들 실업자 되는 소리를 하네.”
“바로 그렇습니다. 이 총 때문에 앞으로 전쟁 양상이 많이 바뀔지도 모릅니다.”
다들 엘리트 무관들이라 그런지 생각을 깊이 하는 것 같아 이민호는 조금 기뻤다. 선봉군뿐만 아니라 다른 장수들도 임진왜란 때 큰 활약을 하는 무관들이었다.
어지를 받고 이민호가 급하게 달려왔는데 행영에서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결국 이민호만 괜히 뺑이 친 것으로 끝났다.
그러나 이민호는 이것을 기회로 여겼다. 간수군들에게 승마훈련과 사격훈련은 이미 했으나 그것은 개인 차원의 연습에 불과했다. 군대라고 하면 집단 전술을 운용해야 했으므로, 이민호는 유럽에서 흑기병이라 불리던 권총기병의 카라콜 전술을 도입했다.
화승식 단발 권총을 들고 말을 탄 기병들이 대열을 맞춘 다음 앞줄에서 권총 일제사격을 하고 뒤로 물러서면 다음 줄이 권총 일제사격을 하는 전술이 카라콜이었다. 물론 이것은 소총의 위력이 아직 약하다고 조선의 장수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에 불과했다. 다급한 상황이라고 이민호가 판단하면 일렬로 서서 빠른 재장전을 통해 화력을 퍼부을 수도 있었다.
“보병 밀집방진 상대로 아주 유효하겠는데?”
“그렇지요. 기병을 상대하기에는 좀 약합니다. 차라리 말에서 내려 안정된 자세에서 총을 쏘는 게 낫습니다.”
북병영의 장수들이 가끔 훈련을 참관하고 가면서 의견을 냈다. 이민호는 아직은 겸손해야 할 때였다.
북병영이 중심이 된 정벌군은 매일 낮에 전체 진법 연습을 한 시진씩 하고 보급품을 쌓으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덧 새해를 맞이했고 날이 갈수록 행영의 분위기가 점점 달아올랐다. 장졸들의 눈빛이 살기로 번득거렸다.
“여자가 군중에 있으면 말이 많을 텐데, 혜진이는 괜찮아?”
“여긴 함경도잖아요. 여자가 말 타고 종군하는 것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없어요.”
혜진도 이민호 및 간수군들과 함께 말을 타고 훈련에 참가했다. 명목은 표확도장의 종인이었다.
두 사람은 밤이 되어 종성부 어느 아전의 집에서 묵고 있었다. 함경도는 남부 지방과 달리 온돌을 설치한 집이 많아서 추위에 약한 이민호도 그나마 살만했다. 그런데 군인들이 거주할 집이 부족해 전라좌수영에서 함께 온 간수군들은 좁은 방에서 열 명씩 서로 부대끼며 살았다.
“남자들은 두만강 건너 북방의 땅에 묘한 감정이 있다던데 도련님도 같아요?”
“고토 회복? 좋긴 한데 추워서 나는 싫어.”
“단호하시군요. 부하에게 북방을 점령하라고 시켜도 되잖아요. 야인은 분열돼 있으니까요.”
“건주여진은 만만치 않아.”
잠만 자기에는 겨울밤이 너무 길었다. 둘이서 할 일도 없었다.
“도련님은 인재를 모으지 않나요?”
“요즘 심하게 감시받고 있어서 어려워. 일단 밖에서 기반을 잡은 다음에 인재를 받아들이든지 해야겠어. 그런데 혹시 혜진이는 조선 왕조나 왕실에 불만이 있어?”
“저희 아버님 때문에요? 아니요. 신하들끼리 정권 다툼하다가 패한 거니까 왕실과 상관없어요.”
“그렇구나. 혹시 불만이 있더라도 나중에 힘이 생긴 다음에 생각해.”
“저는 따로 원하는 것이 없으니 도련님의 꿈이 항상 먼저여요.”
“고마워.”
얼굴을 맞대고 꼭 껴안고 있으면 행복했다. 그러나 며칠 후 피가 튀기는 전쟁이 예정돼 있었다.
해를 넘겨 진을 유동적으로 바꾸는 연습인 습진을 계속하다가 1월 14일에 드디어 출전했다. 토벌군은 종성에서 남동쪽으로 50리 넘게 달려 초저녁에 산 속에서 숙영하고, 새벽 두 시 정도에 일어나 다시 말을 타고 달렸다.
함경도와 한성에서 보낸 병력 합 2,300명 전원이 기병이었다. 전원 정예만 골라 뽑았고 단위 지휘관들도 최고 수준이었다. 어떻게 보면 숫자만 적지 조선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부은 작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생원이 이끄는 부방군 대부분이 원래 전라좌수영의 대립군이라고 했지? 역시 기병들보다는 못하지만 생각보다 승마 실력이 좋군.”
“좌수영 군관들에게 간수군의 승마 교관을 부탁했습니다.”
“말을 제대로 타기 힘드니 수영은 군관들에게 근무지로 인기가 별로 없어. 수군은 조선에 꼭 필요하지만 무과 시험과목이 기마군 위주이니 말일세.”
이민호는 원정 도중 이순신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대개의 경우 군 경력이 긴 이순신이 아직 어린 이민호에게 조언을 많이 해주는 식이었지만 화약무기와 수군 운영에 관해서는 이민호가 더 많은 말을 해줄 수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서로에게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도강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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