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ire of the Warm Sea RAW novel - Chapter 3
* 3화 *
1. 묘한 시대, 묘한 곳에 떨어졌다
“정신 차려라! 잠들면 안 된다!”
강민호는 무거운 눈꺼풀에 힘을 주어 살짝 눈을 떴다. 그러나 시야가 흐릿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겨우 20대 초반인 수병이 반말로 부른 것 같아 강민호는 기분이 몹시 나빴다. 뱃놈들은 급한 상황에서는 애비 자식 사이에도 서로 반말을 한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애야! 정신이 드느냐?”
누군가가 말하며 강민호의 팔과 다리를 열심히 주물렀다. 최소 두 사람이 그를 구하기 위해 마사지를 하는 것 같았다. 몸은 여전히 떨렸지만 지금 강민호가 차가운 물속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강민호는 물에 빠져 죽지 않고 살아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긴 어디죠? 병원인가요?”
“괜찮으냐? 이곳은 애비가 귀양살이하는 방답진의 오막살이다.”
특이한 억양과 발성법 때문에 말을 잘 못 알아들은 강민호가 거친 숨을 토해냈다. 그릇에 담긴 따뜻하고 달콤한 액체를 마시는 사이 그의 뒷머리를 지탱해준 사람이 물었다.
“자네 이름이 뭐지?”
“강민호입니다. ADD 6본부 소속 연구원입니다.”
“나이는? 가족은 어떻게 되나?”
강민호는 조난 중에 신분증을 잃어서 의사나 군 수사관이 신원을 확인하는 중이라고 판단해 제대로 대답했다. 물어보는 사람의 억양과 말투가 이상했지만 강민호는 설마 북한에 표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국방과학연구소 6본부는 수중 및 해양 무기체계 개발을 맡은 부서였다. 강민호는 그 중에서도 정밀타격을 담당하는 1본부, 감시정찰 및 센서 개발을 맡은 3본부와도 업무 교류를 많이 하는 연구원이었다.
“1980년 5월 1일생이니 만 서른다섯이고 부모님과 형이 있습니다. 아직 미혼입니다.”
“흐음. 김 박수의 말이 맞네 그려. 불쌍한 현수는 기어코 저승으로 떠난 것 같군.”
“안타깝습니다, 첨사 나리. 그래도 첨사 나리께서 도련님을 아주 많이 예뻐해 주셨으니 현수 도련님도 저승에서 그리 슬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 현수가 물에 빠져 죽는 것은 운명인 모양이네. 내가 과거로 돌아왔는데도 결국 익사를 막지 못했어. 현수가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것을 두 번이나 살려냈어도 내가 이곳에 있으니 아무리 말려도 현수가 배를 탈 수밖에 없었겠지.”
이상한 대화를 들으며 강민호가 간신히 시야를 확보했다. 흰 머리가 가득한 노인이 걱정스레 강민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상투를 틀고 망건을 쓴 사람은 영화나 드라마도 아닌 실물로는 처음 봤다.
그리고 반대쪽에는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깃이 길게 달린 모자를 쓴 이상한 남자가 혀를 차고 있었다. 김 박사가 아니라 김 박수로 제대로 들었다면 저 사람은 남자 무당인 것 같았다.
“일어날 수 있나? 앉게나.”
“끄응!”
노인의 도움을 받아 강민호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어지러운 와중에 두 사람을 본 강민호는 무척 혼란스러웠다.
“자네 몸을 잘 살펴보게나. 자넨 서른다섯 살이라고 하는데 그런 몸일세. 무슨 생각이 드나?”
노인의 말을 듣고 강민호가 두 손을 들었다. 자그마하고 오동통한 손이 눈앞에 들어왔다. 강민호는 품에 아이를 안고 있나 잠시 내려다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손가락을 하나씩 움직여보니 강민호의 손이 분명했다. 그리고 똑바로 앉았는데도 다른 두 사람이 엄청나게 커 보였으니, 저들이 거인이 아니라면 강민호의 몸이 작은 게 맞았다.
“도대체 이건 어떻게 된 겁니까?”
“조선말이 분명한데도 말을 영 이상하게 하는군.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자네 혼백이 내 아들의 몸에 들어왔네. 삼대독자인 귀한 도련님이 물에 빠져 죽고, 자네가 그 몸을 차지했단 말일세. 에잉! 쯧쯧!”
“설마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래도 혹시나 그 말씀이 사실이라면 죄송합니다.”
“염치는 있구먼. 그런데 이상한 소리를 하던데, 자네 조선 사람 맞나?”
“한국인이니 조선 사람도 맞습니다. 혹시 지금 2015년 12월이 아닙니까?”
“임오년 동짓달이라네. 해로 따진다면 명종대왕 다음 금상 15년째이며 대명 연호로 만력 10년일세. 하는 말로 미루어 조선인은 확실한데 같은 시대 사람은 아닌 것 같군 그래.”
임금이 죽은 다음 묘호가 지어진다.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명종 다음이 선조. 선조 25년이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이니 선조 15년이면 1582년이라고 강민호는 계산했다.
“그럼 올해가 임진왜란 10년 전이군요. 저는 대략 430년 후세 사람입니다. 조선과 같은 핏줄 맞습니다.”
“오오! 왜적이 쳐들어온 임진년에서 10년 전이 맞아. 신기한 일이야. 자네가 건강을 회복하면 물어보고 싶은 게 많네.”
“과거로 돌아오신 첨사 나리도 신기한 분입니다. 그런데 미래의 일을 알면 크게 공을 세워 입신양명하실 수도 있는데 첨사 나리께서 욕심을 부리지 않아 하늘에서 새로운 인물을 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가? 그럼 하늘의 뜻을 받들어 이놈을 보좌해줘야 하는 것이 여분의 삶을 얻은 내가 할 일인가?”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나리.”
옆에서 젊은 박수무당이 한 마디 보탰다. 무당이 설명하길, 전 첨사 이응화라는 이 노인은 임진왜란 다음 해인 계사년 동짓달에 순천부에서 배를 타고 한산도로 가는 도중 물에 빠져 죽었다가 그 15년 전인 지금으로부터 4년 전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물에 빠져 죽은 삼대독자 귀한 아들의 몸을 다른 혼이 차지하고, 강민호가 전혀 다른 시대 사람이라고 해도 노인이 놀라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 노인은 아니고 아직 장년인데 마음고생을 많이 했는지 흰머리가 가득했다.
“이렇게 됐으니 잘 살아보게. 자네가 차지한 이 몸의 이름은 원래 이현수야. 아직 다섯 살이니 다른 이름으로 바꿔도 되네. 족보에 올릴 때와 다른 이름을 쓸 수도 있으니 돌림자는 신경 쓰지 말게. 그냥 편하게 옛 이름을 그대로 쓰겠나?”
“예. 민호로 부탁드립니다.”
“그래. 자네는 지금부터 강민호도 이현수도 아닌 이민호일세. 경주 이씨에 수원 출생이고 아직 다섯 살이니 기억해두게. 혹시나 사람 얼굴을 몰라보더라도 자넨 겨우 다섯 살이니 다들 이해할 걸세. 더욱이 삼대독자라 가까운 친척도 없어.”
“다른 가족은 없습니까?”
“자네 모친은 자넬 낳고 두 해 안에 죽었네. 내 저번 생에서는 마누라가 자넬 낳자마자 죽었으니 이번에는 조금 더 호강한 셈이지. 그리고 자네에게 열일곱 살 손위의 누나가 하나 있는데 몇 년 전에 시집갔네. 사위는 오 진사라고 하는데 사돈이 워낙 싸가지가 없어서 자네가 만날 일은 거의 없을 거야. 유학 주제에 꼴에 선비랍시고 내가 무인이라며 괄시가 심해.”
혀를 차는 것이 사돈에게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은 것 같았다.
“자네라고 하니까 불편하군 그래. 어차피 새로운 삶인데 내가 자넬 아들로 여겨도 되겠는가?”
“몸은 확실히 아드님 아니겠습니까? 이왕 이렇게 된 것, 앞으로 저를 아들로 여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맙네.”
엉겁결에 다른 시대로 떨어졌는데 정착하는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덕택에 강민호는 한 시름 놓았다.
잠시 미래에 남아있을 부모님을 떠올렸지만 건강하게 잘 사시는 분들이니 이렇게 다른 인생을 살게 되더라도 큰 걱정이나 회한은 없었다. 다만 이민호가 떠난 대한민국이 일본과 전쟁이 나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 걱정이었다.
“그런데 아버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나는 함경도에서 첨사를 지내다가 멀리 이곳 순천부 방답진까지 귀양 온 몸일세. 그리고 앞으로 임진년, 계사년에 전라좌도수군절도사 겸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영감, 아니 정헌대부로 승차하셨으니 대감이지. 그 분의 막하에서 한후장이나 참퇴장을 하면서 전공을 세웠던 사람일세. 아직은 아니고 지금으로부터 10년 후 미래가 되겠지. 자네가 미래에서 왔다면 임진계사년 왜란에서 명장으로 이름을 날린 내 이름을 당연히 들어봤겠지? 이응화야. 내 이름은 이응화라고.”
강민호는 국사책과 위인전, TV드라마에서 봤던 이름들을 떠올려봤다. 통제사 이순신, 전라우수사 이억기, 경상우수사 원균, 순천부사 권준, 녹도만호 정운, 어디 현감 어영담, 어디 첨사 같은 발음 다른 한자 이순신, 거제현령 안위. 그 외에도 많은 장수, 군관들이 있었지만 이름까지 외울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어디에도 부친의 이름은 없었다.
“죄송합니다. 오늘 처음 들어본 함자입니다.”
“에잉! 쯧쯧! 역시나 아무리 큰 전공을 세우더라도 후손이나 일가친척이 없으면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아. 이번 생에는 나도 마음먹고 한 번 이름을 날려봐야겠어.”
강민호가 차지한 육체의 아버지 이응화는 과거로 회귀한 사람이고 강민호는 다른 사람 몸에 빙의한 꼴이 됐다. 시대의 차이는 있지만 부자지간에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것은 같았다. 강민호는 판타지를 비롯한 장르 소설에서 회귀물이나 리턴물, 리셋물도 빙의물과 함께 역행물로 엮이는 것으로 기억했다.
“자네가 아는지 모르겠지만 통제 대감 밑에서 싸우는 건 엄청 재미있어. 불리할 것 같은 상황에서도 이상하게 통상께서 지휘하면 항상 압도적으로 이기거든. 내가 물에 빠져 죽으면서 더 이상 왜군과 못 싸우는 게 제일 아쉬웠고, 그 다음은 손이 끊긴 거였어. 하늘님이 내 소원을 들어주셨는데 우리 현수가 물에 빠져 죽을 팔자는 결국 고치지 못했다네.”
“죄송합니다.”
“자네가 죄송할 건 없지. 그래도 몸은 그대로이니 핏줄은 남길 것 같아 다행이야. 자네가 남자 구실을 할 수 있겠다 싶으면 바로 말하게. 옛날 왕후장상이나 공경대부들처럼 4부 8처 12첩은 안 되더라도 본 부인 외에 자식을 쑴풍쑴풍 낳을 엉덩이 큰 계집들을 자네가 감당한 만큼 구해주겠네.”
“그건 좀.”
강민호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으나 꼴에 사내랍시고 싫다고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자네, 아니 내 아들 민호아! 네가 살던 시대에 너는 뭐하던 사람이었지? 연구원이라는 게 경전 연구하는 사람인가? 네 조부께서 진사였고 집안 대대로 문반직을 지내셨으니 사실 우리 집안은 원래 동반이란다.”
“국방과학연구소 소속 연구원입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국가 소속 연구기관에서 군사 무기를 만들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군기시 장인 같은 사람이었군 그래. 자넨 운이 좋아. 내가 비록 무반이라고 해도 어엿한 양반이니까 저번 생에서 양민이나 천민이었을 자네 입장에서는 신분 상승한 셈이지. 그리고 잘 됐어. 자네 특기를 살려 조총이나 만들어보게. 통상 대감과 주상 전하께서 아주 좋아하실 거야.”
“제가 만든 것은 총이 아니라 어뢰나 미사일, 로켓 쪽인데요.”
그것도 하필 탄두나 폭발물 분야가 아니라 유도 분야가 강민호의 전공이었다. 전기, 전자 분야 연구가 시작되려면 앞으로 최소 300년은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의 인생 통틀어 다시 전공을 연구할 기회란 사실상 없어졌다.
“그게 뭔가? 비슷한 거 아냐?”
“비슷한데 좀 큽니다. 대포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큰 게 대포고 작은 게 총이지. 만들 수는 있지?”
“기본적인 것만 알아서 혼자서는 어렵겠는데요. 시설과 장비도 많이 필요합니다.”
“에잉! 그래도 비슷하게라도 만들어보게. 내가 팍팍 지원해줄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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