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ire of the Warm Sea RAW novel - Chapter 30
* 30화 *
두만강에 도착하자 대장 이일의 명령이 뒤로 차분히 전달됐다. 어둠 속에서 기마병들이 말에 재갈을 물리고 얼어붙은 두만강을 조용히 건넜다. 이제부터 확실한 적지였다.
무자년(1588) 정월, 국경을 넘은 원정의 성공 여부는 기도비닉에 달려 있었다. 수많은 인원과 물자가 동원된 원정이 적이 마을을 버리고 도망감으로써 허무하게 실패로 끝난 경우가 지금까지 많았다. 그런 이유로, 진군하는 원정군의 기마행렬 앞에 만약 조선에 우호적인 번호 야인이 나타나더라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조선에 협조하면서 조선의 영역 안팎에 사는 야인들을 번호(藩胡)라고 불렀다. 조정에서는 이들 여진족에게 의복과 양곡을 내리고 성하마을 10리 이내에 살게 하면서 농지를, 때로는 벼슬을 내려 정착을 도왔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번호가 갑자기 적호(賊胡)로 바뀌어 조선인 마을을 약탈하는 일은 수시로 일어났다.
여진족은 이합집산이 심하고 상황에 따라 조선에 붙었다가도 금방 배반하므로 고정적인 피아를 구분하기 어려웠다. 시전부락도 조선 영역 밖에서 번호 행세를 하며 조선과 무역을 하다가 세력이 커지자 배반하게 된 야인 무리였다.
북병사 이일은 여명이 밝아오기 전에 말에게 잠시 휴식을 주고 대열을 정비하도록 명령했다. 이민호는 간수군들이 앞뒤의 다른 선봉군들과 일정 간격을 유지하도록 신경을 썼다. 대장과 우위장, 우위장과 우위 선봉장 사이에 전령이 수시로 오가는 것이 공격 직전인 것 같았다.
“표확도장!”
“예, 영공!”
이민호에게 말 타고 달려온 용양도장 선거이가 이경록과 이순신도 같이 불러 상부의 작전명령을 전달했다. 그 동안 시전부락에 대한 꾸준한 정찰로 장막의 위치와 병력 배치, 적습에 대한 대응 절차까지 파악된지라 이일이 수립한 작전 계획, 이른바 ‘약속’은 대단히 세밀한 편이었다.
“약속한 것처럼 우위 선봉군은 남쪽에서 적 소굴을 치고 들어간다. 북쪽은 좌위가 맡고 서쪽은 중군이 맡을 것이다. 표확이 중앙, 우골격과 우화열이 좌우에 서서 우위에서 가장 먼저 적 소굴로 돌격해 야인 기마병들이 집결하지 못하도록 차단한다. 용양이 그대들을 뒤에서 받쳐줄 것이다. 적에게 포위되지 않도록 서로 호응을 잘 해줄 것.”
“알겠습니다!”
“선봉의 영광을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선거이가 말을 타고 다른 선봉부대로 향했다. 이경록이 이민호에게 다가와 씩 웃었다.
“우리는 자네에게 탄환 장전하는 시간만 벌어주면 되겠지? 이 생원만 믿네. 표확의 호위는 우리에게 맡기게.”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넓은 들판에 유목민 장막 수백 개가 설치돼 있는 곳이 시전부락이었다. 이곳 시전부락을 멀리서 포위한 다음 조선 기마병들이 천천히 진군했다. 동쪽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오는 가운데 말발굽 진동을 느끼고 잠에서 깬 여진족들이 횃불을 들고 장막 밖으로 나왔다.
– 피비비비비빅!
검은 하늘에서 야인의 장막들을 향해 화살이 무수히 쏟아졌다. 허둥대며 장막에서 쏟아져 나온 여진족들이 말에 타기도 전에 화살에 맞고 쓰러졌다. 시전부락을 중심으로 거대한 동심원 형태의 포위망이 완성됐다.
“돌격!”
점점 속도를 높여 시전부락을 향해 달려 나가던 우위 선봉군이 용양도장 선거이의 외침을 신호로 앞으로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이민호가 이끄는 간수군들은 좌우에서 호위해준 덕에 안정적으로 사격을 할 수 있게 됐다.
– 타탕! 탕!
간수군들이 여진족 전사들을 하나씩 조준 사격으로 해치웠다. 사실 간수군들은 말을 몰면서 소총을 쏠 정도로 마상사격에 숙달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간수군들은 장막 앞을 지나가면서 장막에서 나오는 여진족의 몸 앞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교전 거리가 워낙 짧아 명중률은 의외로 높았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전투가 계속 진행된다면 사거리가 길고 충격력이 높은 단발 소총보다는 총신이 짧은 기병총이나 6연발 리볼버가 훨씬 나았다.
다만 부족한 사격 실력을 두둑한 배짱으로 채워 넣어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간혹 장막 뒤에 숨었다가 뛰쳐나오는 여진족 전사는 이순신과 이경록이 이끄는 조선 기병에 의해 참살되거나 화살에 맞았다.
이민호는 오늘만큼은 사격 후 꽂을대로 총강을 청소하는 과정을 생략시켰다. 전투 후에 총을 버리거나 수리해야겠지만 전투 중에는 열 발까지는 연속 쏴도 괜찮다고 말했는데 간수군들이 잘 믿지 않는 것 같았다.
그 동안 이민호가 총강 청소를 안 하면 화약 찌꺼기가 쌓여 총강이 터진다고 겁을 줬던 터라 간수군들은 조심스레, 가급적이면 적게 총을 쏘려고 했다. 이는 적극적인 전투를 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밀한 사격에 도움이 되었다. 어차피 이 시대에 열 발 이상 총을 쏠 일도 별로 없었다.
“이놈!”
– 탕!
말을 타고 달려오면서 커다란 월도를 휘두르던 여진족 전사를 이민호가 권총을 쏘아 낙마시켰다. 사방에서 총성이 울리고 비명소리는 모두 여진족이 내지른 것이었다.
그러나 전투는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이민호를 중심으로 3백 명의 조선군 기마병이 돌격하는데 사방에 여진족 천지였다. 정신없는 전투 중에 이순신이 말을 타고 달려왔다. 이순신의 갑옷은 이미 피에 젖었다.
“잘못하면 돌격이 막히겠어. 우리가 겉을 빙 둘러 막을 테니 이 생원은 안쪽에서 총을 쏴주게.”
“고맙습니다. 계속 돌격해야 하니 다만 정면은 비워주십시오.”
이민호는 간수군 1대와 2대를 이순신과 이경록이 지휘하는 기병 안쪽에서 엄호 사격하도록 보내고 3대와 4대 50명을 집결시켜 화력을 정면에 집중했다. 활을 쏘려는 여진족과, 말을 타고 조선군 대열에 돌입하려는 여진족이 최우선 목표가 되었다.
“계속 돌격! 조금만 더 가면 좌위 선봉군과 만난다.”
크게 소리를 질러 수하들을 격려하던 중에 이민호는 저 멀리서 이경록이 말에서 떨어지는 것을 봤다. 여진족이 쏜 화살에 말이 맞아 거꾸러지는 순간 이경록이 등자에서 발을 빼고 펄쩍 뛰어 땅에 우뚝 섰다. 주변에 여진족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이경록은 여진족 추장을 추격하다가 포위당해 위기에 빠져 있었다. 여진족 추장은 이미 활을 쏘아 죽였지만 다른 여진족 전사들의 분노를 샀다. 부대 지휘를 계복에게 맡긴 이민호가 서둘러 말을 몰아 이경록에게 향했다.
– 퍽!
“윽!”
말을 달리던 도중 여진족이 쏜 화살이 이민호의 가슴에 맞았다. 그러나 잠시 충격만 받았을 뿐 기다란 화살은 갑옷을 관통하지 못했다. 말을 타고 달려오면서 화살을 재는 여진족 전사를 이민호가 권총을 쏘아 떨어뜨렸다.
“으악!”
비명 소리에 놀란 이민호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비명을 지른 자는 칼을 빼들어 이경록에게 돌진하던 여진족 전사였다. 이경록이 다시 활을 쏘아 또 다른 전사를 낙마시켰다. 상황이 급해지자 이민호는 이경록을 포위한 여진족들 사이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남은 총알을 모조리 쏟아 부었다.
– 탕! 탕!
겨우 두 발이 발사되고 권총이 철컥거리는 소리를 냈다. 여진족이 말을 타고 달려오자 이민호는 안장에 걸어두었던 왜검을 빼어들었다.
“이 생원! 위험하니 여진족과 칼을 맞대지 말게!”
“이놈들이 그렇게 무예가 뛰어납니까?”
“아니. 놈들이 말을 워낙 잘 타서 칼싸움을 하면 상대가 안 돼.”
여진족이 활쏘기 외에 무예훈련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명나라 기마대와 싸우면 거의 항상 승자는 여진족이었다. 활 대신 창칼을 잘 쓰는 명나라 요동기마병들은 접촉 전에 여진족의 화살 공격에 일단 피해를 입으면서 거리를 줄여도 창과 칼로도 상대하기 버거워했다.
이경록이 한 말처럼 여진족의 전투력은 다름 아닌 마술에서 나왔다. 조선 기병보다 활을 못 쏴도, 명나라 기병보다 칼싸움을 못해도 여진족이 이기는 경우가 많았다.
– 챙강!
눈앞에 번쩍이는 섬광에 놀란 이민호가 얼떨결에 칼을 들어 막았다. 여진족이 놀라 커다란 눈을 하고 이민호 앞을 지나갔다. 여진족이 들고 있는 칼이 반 동강 나 있었다.
또 다른 여진족이 다가오자 이민호가 검을 횡으로 베었다. 칼날이 날아간 여진족이 급히 안장에 자세를 낮추다 못해 몸을 말 뒤로 빼어 검을 피했다. 마상재가 뛰어난 그놈은 그렇게 이민호와 교차돼 지나가버렸다.
이번에는 기다랗게 염소수염을 기른 자가 이민호에게 도전했다. 사선으로 베는 여진족의 칼을 막은 이민호가 수직으로 베었다. 얼굴이 반으로 갈라지면서 안장과 말의 척추까지 한꺼번에 베어 갈색 말이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좋은 검이었군. 득템했다.”
그 사이 이경록도 여진족 기병 한 명을 활로 쓰러뜨리고 그 말을 빼앗아 타고 있었다. 이경록이 활로 여진족 전사들을 견제하는 동안 이민호가 얼른 권총탄을 장전했다.
“끼요오오오!”
– 탕!
돌격해온 여진족을 이민호가 때맞춰 장전을 끝내고 쏘아 죽일 수 있었다. 이민호가 발사한 직후 다른 여진족 전사가 월도를 휘두르며 말을 몰고 왔다.
여진족들도 조선군이나 명나라군과 접촉한 적이 많아 화약무기인 총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재장전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래서 이민호가 발사 직후 돌격해왔는데, 불행히도 이민호가 가진 권총은 6연발 리볼버였다.
이민호에게 달려오다 여진족 전사들이 하나씩 쓰러져도 계속해서 몰려왔다. 그러나 이민호가 여진족 6명 째를 연속 쓰러뜨렸을 때, 즉 권총 탄창이 비었을 때 여진족들의 인내심도 한계에 이르렀다.
이민호가 칼을 들기 위해 권총을 권총집에 넣으려하는 순간에 여진족들이 일제히 말 머리를 돌리고 도주했다. 도망가던 여진족 하나가 이경록이 쏜 화살에 맞고 뒤로 나뒹굴었다.
“이 생원! 방금 그거 뭔가? 계속 탄환이 나가는 것 같던데.”
“삼연총이나 총통기 비슷한 겁니다.”
“그렇게 작게 만들다니. 대단하군.”
그 사이에 시전부락 중심지의 전투는 끝나 있었다. 이민호가 말을 몰아 간수군들에게 돌아갔을 때 간수군들이 열심히 꽂을대를 총구에 쑤셔 넣고 있었다. 이것으로 간수군들이 치열하게 싸운 것을, 그리고 이들이 얼마나 총을 아끼는지를 알 수 있었다.
선봉군 세 부대가 지나온 길에는 수없이 많은 여진족들이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고 주인을 잃은 말이 서 있었다.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곳에 쓰러져 있는 여진족 전사자들 중 절반 이상은 총상에 의해 죽었다.
시전부락 중간에서 좌위와 우위가 만나 여진족들의 중심을 분쇄하자 아직까지 살아남았던 여진족들이 사방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처음부터 단단히 구축돼 있던 포위망을 뚫고 도주한 여진족은 거의 없었다. 도망갈 길이 막히자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는 여진족들이 속출했다.
간수군들 중에는 화살을 맞은 자가 많았으나 동계 전투복과 외투의 이중 방어력을 뚫고 몸에 박힐 화살은 없었다. 전투복 가슴 부위에는 엄심갑이나 현대 방탄복처럼 얇은 철판이 끼워져 있었다.
그 동안 전투복이 무겁다고 투덜거리던 간수군들은 방탄판에 맞고 부러진 화살촉을 보면서 고용주 이민호의 마음 씀씀이에 크게 감동했다. 여진족의 부러진 화살촉은 간수군들에게 시전부락 토벌전의 인상적인 기념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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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시전부락 토벌전 마무리 한 편 더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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