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ire of the Warm Sea RAW novel - Chapter 31
* 31화 *
지금은 간수군이라 불리는 겨우 100명뿐이지만 장기적으로 왕실로부터 허가받은 사병의 수는 천 명에 달했다. 먼저 사병이 된 이들이 이민호에 대해 좋은 소문을 내주면 사병 천 명을 우수한 인적 자원으로 금방 채울 수 있을 테니 그 동안 들였던 비용이 낭비는 아니었다.
“그래도 피해는 생겼겠지?”
“두 명이 부상했습니다.”
“죽은 사람이 없다니 다행이네.”
계복이 인원점검은 물론 총기 숫자도 다 확인했다고 한다. 간수군들이 전투현장을 따라서 탄피를 줍고 있어서 이민호가 웃으며 하지 말라고 했다. 탄피가 비싸긴 하지만 실탄사격 훈련장이 아닌 전투현장에서는 앞으로도 그럴 필요 없다고 해줬다.
여진 지역에서 만약 소총을 잃는다 해도 여진족이 카피할 능력은 없었다. 강선과 탄피, 뒤에서 탄환을 장전하는 것은 이미 유럽에 나왔으되 기술부족으로 인해 아직 화약무기에 일반화되지 못한 개념이었다. 금속가공 기술이 부족해 소총 한 정 만드는데 아직도 소 한 마리 가격이나 드니까 차라리 비싼 가격 때문에 소총을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했다. 조총이 일반화된 조선후기에는 조총보다 활이 비쌌다.
그런데 이민호에게 보고하는 계복의 표정이 조금 묘했다. 부상자에 대한 안타까움이 전혀 드러나지 않아 이민호가 물었다.
“저 둘이구나. 화살에 맞은 거야?”
“낙마로요. 버둥대다 떨어지는 바람에 한 명은 말발굽에 깔려 죽을 뻔했습니다.”
계복이 힐끗 부상자들을 보더니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전라좌수영으로 돌아가면 간수군들을 위한 지옥의 승마훈련 코스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안색이 안 좋아. 괜찮아?”
동쪽 지평선에 해가 떠서 말에 탄 혜진의 눈이 새빨개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혜진이 말을 몰아 이민호의 말에 나란히 붙인 다음 훌쩍거렸다. 잔뜩 껴입어 호빵 같은 몸 전체가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다시는 전쟁터에 안 나올래요.”
“저런! 고생했다. 그래도 잘 생각했어. 처참하고 끔찍한 걸 떠나서 나는 혜진이 다치는 꼴 보기 싫어.”
이민호와 혜진이 분홍빛 분위기를 연출하는 사이 북병사 이일과 중군 전체가 시전부락 중심에 도착해 본격적인 전후처리가 시작됐다. 장막 안에 있던 물건들이 모조리 빼내어진 다음 울타리와 함께 불태워졌다. 여진족 여자와 어린아이들이 살기등등한 조선 기마군의 창칼 아래에서 부들부들 떨었다. 들판에 널린 주인 없는 말을 잡느라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고, 외양간에서 소와 양이 울어댔다.
북병영의 원정군이 2천 명이 넘게 거주하는 여진족 부락을 무력 점거했으나 신기하게도 조선군에서는 단 한 명도 전사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완벽하게 기습이 성공했다 해도 여진족이 꽤나 저항했으므로 이는 무척 특이한 경우였다. 역시 전투에서는 적을 분산시켜 조직적인 대응을 못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현재 조선군 기병들은 여진족의 수급을 모으고 있었다. 계복이 한 이야기로는 지금까지 모은 수급만 500이 넘어갈 것 같다고 했다. 두툼한 털외투는 어딜 가든 좋은 값을 받을 수 있기에 조선군 기마병들이 여진족 전사자들에게서 빠짐없이 옷을 벗겼다. 이민호의 입장에서는 여진족이 불쌍하기도 하고, 그 동안 함경도에서 당한 것을 보면 속 시원하기도 했다.
이순신이 이경록을 위로하는 모습을 보고 의아하게 여기며 이민호가 말을 몰고 다가갔다. 여진족들이 도망가는 순간까지 이경록이 다치지 않은 것을 이민호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경록이 이번 전투로 인해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잃었다는 비보를 전해 듣게 됐다. 활을 중시하는 조선의 무인으로서 가장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셈이었다.
엄지손가락에 깍지를 끼고 시위를 당겨야 하는데 이경록이 낙마과정에서 깍지가 부러져 추운 날씨에 맨손으로 활을 쏘는 바람에 이렇게 됐다고 했다. 마지막에 도망가는 여진족의 등에 이경록이 활을 쏠 때 왼손으로 시위를 잡아당긴 것이 이민호의 기억 속에서 떠올랐다.
“얼마나 활을 쏘셨기에……”
“걱정 말게. 손가락 하나를 잃는 대신 내가 한나라의 한비장군이라는 별명을 얻게 됐으니 오히려 이익이라네.”
“와아! 옆에서 보니까 중경 장군님 정말 대단했습니다. 여진족들이 장군님의 말에 화살을 맞혀 쓰러뜨려도 여진족에게서 말을 빼앗아 타고 다시 싸우는 식으로 여진족들을 아주 질리게 만드시더군요.”
“이 생원 자네도 대단했지. 결국 자네가 여진족들을 물러서게 만들었으니.”
“저 혼자였으면 벌써 죽었겠죠.”
“자네가 두려워하지 않고 나를 포위한 여진족 무리에 돌격해오는 것을 보고 감탄했네. 우리끼리 서로 금칠할 필요 없지. 우리는 전우 아닌가? 하하!”
이순신이 두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이민호는 쑥스러웠다. 그러나 이순신이 지휘하는 소부대가 지나간 길은 그야말로 여진족의 피로 젖어 있었다. 이순신이 전투 중에 완벽하게 부대를 통제하고 운용했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세 사람이 대화 중에 말 여러 마리가 다가오는 소리에 이민호가 고개를 돌렸다. 북병사 이일이 세 사람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병상!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이경록과 이순신이 주장인 이일에게 군례를 올렸다. 이일은 주변을 쓱 훑어보더니 콧방귀를 뀌었다.
“잘 싸웠다. 겨우 선봉 주제에 적 본진을 아주 초토화시켰더군. 여기 세 사람의 전공을 장계에 첫 번째로 기록하겠다. 수공자는 중경과 여해 중에서, 으음. 중경 이경록으로 하지. 전과는 여해가 더 많지만 중경은 적추를 끝까지 추격해 사살하고 이후 전투에서 적 주력을 흩어버렸으니까. 하지만 다음부터는 그런 위험한 짓은 자제하게. 손은 어떤가?”
“감사합니다, 병상!”
“저번에 둘을 삭탈관직 시켰다고 너무 섭섭하게 여기지 말게나. 어떤 이유로 패했든 패장은 어떻게든 처벌을 받아야 하니까.”
“옳으신 말씀입니다.”
이순신이 수긍하고 넘어갔다. 여진족이 녹둔도를 공격하기 며칠 전에 이순신이 병력지원을 요청했다가 이일이 거부했다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었지만 이일에게도 사정이 있었다. 함경도는 병력은 부족한데 지킬 곳이 너무 많았다.
이일이 이번에는 이민호를 지긋이 바라봤다. 이민호가 불안에 떠는 것을 즐기며 이일이 입을 열었다.
“꼬마야.”
“하명하십시오, 병상.”
이민호는 이일에게 병상(病床)에 누워계십시오, 라는 말이 나오려는 것을 꾹 눌러 담았다. 이일은 가선대부이니 아직 병상(兵相) 호칭을 들을 품계는 아니지만, 사회생활하려면 다 그렇게 넘어가야 했다.
“네 놈이 수하들을 이끌고 부산포까지 가는데 얼마나 걸릴까?”
“겨울에 북서풍이 부니 올 때보다 며칠 적게, 아마 이레쯤 걸릴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으음. 봐줬다. 나흘 안에 동래부에 가라. 네게 줄 상이 그곳에 있다고 한다. 하지만 군령이니 하루라도 늦으면 참수 당할지도 모른다.”
“예에에? 불가능합니다! 말도 안 됩니다!”
“낄낄! 이놈 성질 나오는군. 농담이다. 주상전하 흉내 좀 내봤다.”
“아무리 농담이라도 말씀이 좀.”
이민호는 이것이 농담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너는 너무 눈에 띄니 앞으로 조심해라. 조선에 꼭 필요한 인재니 살아남는 게 우선이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영웅들이 소인들의 시기심에 희생됐느냐? 여기서 소인이란 당파싸움하는 조정 대신들을 뜻한다. 알지? 하하!”
“예에.”
이일도 직장생활을 오래한 만큼 최고경영자의 성격을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면서도 함부로 욕할 수 없는 사람이 국왕이었다.
이일이 이끄는 원정군은 시전부락 토벌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수많은 여진족 포로, 말과 소를 끌고 각종 전리품은 수레에 싣고 행영이 있는 종성부로 향했다. 출발할 때 누군가 처음 짓고 다른 병사가 가사를 이어 붙인 ‘두만강변에서 승리한 노래’가 어느새 전군이 행군하면서 합창하는 곡이 되었다.
이민호는 두만강을 건너면서 이일과 이순신, 이경록에게 하직인사를 한 다음 수하들을 이끌고 해안선을 따라 남서쪽으로 달렸다. 승전을 올리면 한성에서 고위 관료가 내려와 병사들에게 음식을 먹이는 호궤 의식이 있게 마련인데, 이민호의 수하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되었다. 그러나 최소 보름을 기다렸다 거하게 한 끼 먹느니 차라리 따뜻한 남쪽 지방으로 얼른 내려가는 것을 간수군들은 더 좋아했다.
“동래부에 나흘 안에 도착하라는 어지, 날짜는 글씨체가 다르고 아직 잉크, 아니 먹물도 안 말랐어. 이일 저 인간이 쓴 게 틀림없어!”
“얼른 가요, 도련님. 하여튼 도련님은 눈치가 없어요. 그 동안 그렇게 당했으면 적당히 날짜를 늘렸어야죠. 그 고생을 또 해야 해요?”
혜진이 이민호가 탄 말 엉덩이에 채찍을 휘둘렀다. 예상 일정을 길게 잡지 못한 피해를 고스란히 수하들과 함께 져야 해서 이민호는 대꾸하지도 못했다.
“말 놀란다. 하지 마! 그런데 집안 노비들도 죄다 면천시키는 내게 무슨 여진족 노예를 준다고? 웃기고 있어.”
“줄 때 받지 그러셨어요. 여진족은 조선에 충성심이 없으니 어떤 일이라도 시킬 수 있잖아요.”
“혜진이 너 좀 불온한 이야기를 한다?”
“바다 건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몰라요. 조선의 유교 관습에 얽매이지 않은 사람이 필요할 수도 있어요. 마침 북병사가 주겠다는 포로가 어린애들이잖아요? 여진족은 부모의 원수를 갚기보다는 키워준 사람에게 은혜를 갚는 사람들이니 괜찮아요.”
“유목민들이 그렇긴 한데 시전부락은 완전한 유목민도 아니던데 말이야. 어쨌든 이미 늦었으니 상관없겠지.”
생존 환경이 열악한 초원 유목민의 경우 그런 경향이 더 강했다. 강한 부족이 약한 부족을 공격해 흡수할 경우 포로들은 승자의 처분에 따랐다. 포로가 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 다음에는 당연히 그 부족의 일원으로 행세했다.
그리고 만약 부족 단위로 흡수되면 그 부족 전체가 강한 부족의 이름을 따서 쓰게 된다. 몽골군이 원정을 떠났다 돌아오면 출발 때보다 더 많은 숫자가 되더라도 이상할 것은 전혀 없었다.
오후 늦게 북병영이 위치한 경성에 도착해 객사에서 쉬지도 않고 바로 외륜선이 정박 중인 선착장으로 향했다. 도착하겠다고 연락도 안 했는데 외륜선 두 척이 이미 출항준비를 마치고 이민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상한 것은 또 있었다.
“애들은 뭐냐? 조선말 할 줄 아는 사람?”
이민호가 분명히 북병영까지 일직선으로 달려왔는데 시전부락에서 포로가 된 여진족 50명이 더 먼저 와서 선착장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남녀 골고루, 주로 어린애들이었다. 어리다 해도 젖먹이는 없고 다들 이민호보다 조금 어리거나 비슷한 나이 또래였다.
“네. 제가 좀 해요, 나리.”
“여기 어떻게 왔지?”
“새벽에 조선군이 쳐들어와서 다 죽이고 저희들을 잡아갔어요. 말 탄 조선군들이 저희들을 말 잔등에 두세 명씩 태워 산길로 느긋하게 넘어와서 한 시진 전에 도착했어요. 군인들이 북쪽으로 돌아가면서 우리에겐 ‘꼬마’라는 장군님을 기다렸다가 따라가래요.”
“이 인간이 끝까지 꼬마래.”
조선 기병들이 산길로 돌아서, 아이들을 태우고도 평지를 달린 이민호보다 더 빨리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여진족 기준으로는 느긋하게 이동했다는 말에 더욱 놀랐다.
한겨울인데 부모 친척 다 잃어서 갈 데도 없다기에 여진족 포로들을 일단 외륜선에 다 태웠다. 주로 아이들이라 말 몇 마리의 무게와 비슷해서 배에 하중 부담은 없었다. 포로 아이들에게 밥을 주고 나온 혜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노비로 받아들이시려고요?”
“노비는 무슨? 나이 들어서도 갈 곳이 없으면 소작농이나 시키지 뭐.”
“도련님이 꿈을 펼치실 때 기반이 되어줄지도 몰라요.”
“글쎄?”
이민호의 명령에 의해 늦은 오후인데도 돛을 올리고 바로 출항했다. 배 두 척은 강력한 북풍을 받아 빠른 속도로 남하를 시작했다. 멀리 해안을 오른쪽 가시거리 내에 두고 남쪽으로 쭉 달렸다. 북쪽으로 올 때 생고생했던 소들은 배밑판에 느긋하게 앉아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다.
계복이 출항한 뒤부터 계속 고민하더니 이민호에게 다가왔다.
“음. 도련님. 이번에 보니까 우리 기마 능력에 큰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함경도 마군의 승마술이 뛰어나다지만 사실 우리 집안에서는 방답에 계신 주인마님 말고는 제대로 배우신 분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 나도 느끼는 바가 많다. 저 애들 말 잘 타겠지? 저 아이들을 승마 교관으로 삼아야겠다.”
“예. 열 살이면 충분히 잘 탈 겁니다.”
그러나 반대도 있으니, 혜진이었다.
“도련님! 여자애들한테 그런 일은 시키지 마세요.”
“여진족 여자들은 말 잘 타. 함경도나 평안도 여자들보다 나을 걸?”
“어휴! 도련님은 아직 남자가 아닌가 봐요.”
“뭐?”
이민호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여자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라고 알고 넘어가기로 했다. 지금 이민호는 동래에서 일어날 일을 예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결국 혜진이 여진족 여자 아이들을 맡아 키우기로 했다. 혜진도 아직 겨우 열두 살, 해가 바뀌었으니 열세 살에 불과했다. 그러나 애가 애를 키우는 일은 성공해서 배에서 내리기도 전에 여진족 아이들이 웃음을 되찾았다.
그러나 배에 전혀 문제가 없지는 않았다. 부상자 두 명 중 한 명은 단순 타박상이라 금방 일어나 움직였지만 다리가 부러진 간수군 하나는 골절 부위가 퉁퉁 부어올랐다. 그마나 경험 많은 간수군이 초기 응급조치를 제대로 해서 조만간 완치되겠지만 병력을 움직이는데 군의관 역할을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큰 문제였다.
총상 환자를 수술할 정도의 수준을 원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러나 부상자를 초기에 치료해 병력 손실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었다. 공중위생 관리도 군의관이 할 일이었다.
“끄응! 화학은 약하고 의학 쪽 지식은 전무한데.”
이민호가 할 일이 또 늘어났다. 그러나 군의관 또는 의사는 이민호가 오래 살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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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5가 끝났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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