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ire of the Warm Sea RAW novel - Chapter 34
* 34화 *
이민호는 서양에 도자기를 팔 계획이었다. 16세기 후반 중국에서 판매하는 도자기는 수량이 너무 부족해 유럽 귀족 사회의 높은 수요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래서 네덜란드 상인들이 중국 도자기의 대체품을 찾고 있던 시기였다. 전국시대가 끝나가는 시기 항구 몇 곳을 개방한 일본이 그 후보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때 일본에서는 아직 고령토를 발견하지 못했고 도자기 제조 기술도 낮았던 시기였다. 원래는 임진왜란 후에 끌려간 조선 도공들이 큐슈에서 고령토를 발견하고 도자기를 생산해 명청교체기의 혼란기에 빠진 중국을 대신해 일본이 유럽 도자기 무역의 중심지가 됐다. 그러나 이민호가 있음으로 해서 앞으로 그럴 일은 없었고, 그는 이 기회를 파고들기로 했다.
사실 상대가 네덜란드라면 아주 대놓고 바가지를 씌울 수 없었다. 물론 도자기를 비싼 가격에 사 가더라도 유럽에 도착만 한다면 상인들에게 충분한 이윤이 보장됐다. 그리고 유럽인의 취향과 미적 감각, 그리고 필요가 반영된 서양 식기 세트의 디자인을 이민호가 알고 있으므로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쉽게 예를 들면 유럽인의 식생활에 맞춘 다양한 크기의 접시는 동양에서 거의 만들어주지 못했으나, 이민호는 서양의 식탁에 필요한 납작하고 큰 접시를 알고 있었다.
도자기 물량은 현재 생산 중인 민요 중에서 몇 곳과 공급계약을 체결하면 문제가 없었다. 물론 고품질의 백자를 만들 도공들이 부족해 사옹원에서 관할하는 관요에서 몇 명을 빼돌릴 필요가 있었다. 그 문제는 내수사 전수에게 이민호가 떼를 쓰기로 했다.
이 시대에는 국제적으로 청자보다는 백자가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 기독교나 이슬람교나 백색을 더 높이 쳐줬고 기술적으로도 청자보다 백자가 더 발전된 형태였다.
귀족이나 학자들이 화려한 것보다는 소박하고 단아한 것을 더 좋아하게 된 취향의 변화도 큰 영향을 미쳤다. 황실에 공급될 그릇으로 송나라가 청자를 지정한데 반해, 원나라가 백자를 지정함으로써 유행 변화를 선도한 것도 아직까지 영향이 컸다.
“판관 나리! 혹시 난에 어떤 물건을 팔려고 하시는지요?”
“아? 이런 겁니다.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별로 필요 없고, 중국에서는 가끔 쓰는 접시입니다. 남만 여러 나라에서는 이런 납작한 접시를 많이 쓰니까 좋은 값에 사갈 것입니다. 이런 흰색을 만들어내기는 힘들죠.”
“아아! 하얀 광택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왜인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이민호가 내놓은 것은 시험 삼아 만든 본차이나 접시였다. 동물의 뼈를 섞어 하얀 광택과 질감을 극대화한 것인데, 동양보다는 서양인들의 미적 감각에 더 잘 어울렸다.
– 땡강!
“허어억!”
“어? 안 깨졌습니다. 이럴 수가!”
이민호가 본차이나를 높이 던져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러나 본차이나는 깨지지 않았다. 왜인들은 본차이나에 쇠를 넣은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단단한 것도 장점입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인기가 별로 없을 것 같아 화란에만 팔기로 했습니다.”
“일본에서도 살 사람이 많을 겁니다.”
“그러나 가격은 많이 쳐주지 않겠지요. 화란을 비롯한 남만에서는 중국 경덕진의 백자보다 이것이 더 비싸게 팔릴 겁니다.”
일본 상인들이 군침을 삼켰다. 그러나 이민호는 쓸데없이 일본에 판매할 생각은 없었다. 대량 생산한 제품은 일본에서 절대로 고가품으로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경덕진에서도 같은 모양의 백자를 대량생산한다.
본차이나의 장점이라면 기계화로 인한 대량생산으로 싸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었다. 문양도 마음껏 넣을 수 있어 유럽 왕실이나 귀족가의 문장을 새기는 주문 생산으로 더 비싸게 판매할 수도 있었다. 물론 네덜란드 상인들에게 파는 본차이나는 도공들이 손으로 만든 백자보다 가격을 더 올려 받을 예정이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판관 나리.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럼 이제부터 아까 잠깐 언급했던 다완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 봅시다.”
“허억!”
상인들이 숨을 멈추거나 헐떡거렸다. 다 큰 남자들의 눈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모습을 보기란 좋지 못했다. 좋은 다완이라면 이 정도 수준의 상인들이 거래할 품목은 아니었다.
이 시대 일본에서는 선종의 영향을 받은 다도가 유행함으로써 백자나 분청사기로 만든 다기에 대한 수요가 높았다. 그러나 일본 다도와 비슷한 취향의 소박한 다기인 이도다완이 일본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 서민용 막사발은 아니고, 경남 남해안의 민간 가마, 즉 민요에서 일본의 주문을 받아 생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일본에서 보물로 꼽히는 다완들에는 막사발 형태의 자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분청사기, 초기 백자 등 다양한 제작방식이 있었다.
“일본 다도의 정신에 맞는 다완을 만들려 하는데, 어떻습니까? 아무래도 다완은 어느 유명한 다이묘나 사무라이, 혹은 스님이 사용한 사연 있는 물건이 소중하겠지만, 그래도 사용자의 취향을 감안해 잘 만들면 수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기술적으로 잘 만들었다고 보물이 되는 것은 아니지요. 사람의 감성을 자극할 만한 독특한 물건이거나, 훌륭한 사람의 정신이 담겨 있다고 사람들이 인정해야 합니다.”
“그럼 다양한 제품을 여러 가지로 만들어서 전시할 테니 상인 여러분이 골라서 사는 식으로 합시다. 그럼 그것은 상품이 아니라 예술품입니다. 가격이 엄청나게 올라가는 건 아시겠죠?”
무릎을 꿇고 팔꿈치를 다다미에 댄 채 이민호가 보기에는 그저 그런 도기 사발을 손으로 조심스럽게 돌리며 감상하던 왜상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차를 마시면서 다기를 손에 쥐는 맛이라는 인간적인 요소도 다완의 가치를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했다. 물론 일본에서의 이야기였다.
“판관 나리께서는 이런 보물을 대량으로 판다는 말씀입니까? 일본인들이 높이 평가하는 다완을 조선인들은 아주 우습게 본다는 것은 저도 압니다. 그러나 다완에는 일본인들의 정서가 녹아 있습니다. 조선인 도공으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아 저희 상인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기 어려울 겁니다.”
“요즘 일본에서도 비슷하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이도다완은 조선에서 나왔고 현재 일본에서 인정하는 최고의 보물들은 대부분 조선에서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최고의 다완이 되는 조건을 민요의 도공들에게 말하면 비슷하게 만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의심된다면 일단 만들어진 것을 여러분이 보고 나서 이야기하지요.”
시간이 있었다면 견본품 몇 개를 가져와 일본 상인들의 기를 누를 수 있었을 텐데, 이민호는 바로 어제까지 왜관에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창원과 합천에 가서 일본인 취향의 다완을 만들 수 있는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청빈하고 자연주의적인 일본 다도의 정신에 맞아야 하므로 더 좋게, 고급스럽게 만들 필요는 전혀 없었다. 다완의 형태나 무늬 등에 다른 이들이 공감할 뭔가 그럴 듯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했다. 초벌구이 후에 바른 유약이 잘못 번져 생긴 얼룩을 꽃이나 구름으로 비유한다던가, 도공의 손자국이 남아 버드나무 잎 모양으로 보인다거나 하는 것도 기술적으로 실패한 불량품을 명품으로 만드는 방법이었다. 일본에서는 이게 통한다는 것이 특이했다.
분청사기 중에 거친 태토를 써서 유약이 제대로 코팅되지 않아 잘못 타거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산화되거나 하는 식으로 특이한 무늬나 모양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이민호는 일본인들의 시선을 끄는 이런 요소들을 메모해두었다. 그리고 조선 도공들에게 몇 가지 일본인들이 홀딱 반할만한 노하우를 전해줄 계획이었다. 소품종 대량생산이 아닌, 같은 도공이 만들어 같은 가마에서 나온 다기라도 제각각 다른 모양이 되도록 ‘대충’ 만들 능력이 조선의 도공들에게는 충분히 있었다.
순박한 다도를 최고로 친다면서 성 하나짜리 가치의 다완을 쓰는 일본인들을 이민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유행을 이용해 돈을 벌면 그것으로 되는 것이니 상관없었다.
“마지막으로 이건 어떻습니까?”
이민호가 백자로 만든 작은 상자를 열자 새빨간 홍삼이 담겨 있었다. 해동상단의 대상이 꾸준히 조금씩 만든 홍삼 중 하나였다. 왜상들이 입을 꾹 닫았다.
“여러분이 놀란 이유는 압니다. 금액이 너무 커요. 그러나 여러분은 바로 이것을 주력 상품으로 하셔야 할 겁니다. 다른 물품을 다 합해도 이 홍삼 판매액의 절반도 안 될 겁니다.”
숨 막히는 시간이 잠시 흐르자 왜상들 중 하나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저희야 좋습니다. 감히 판관 나리의 뜻을 거스르기란 어렵습니다. 오늘 판관 나리께서 보여주신 견본들은 하나도 예외 없이 대단한 명품들입니다. 판관께서 보여주신 어느 보화든 최상의 품질입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이 판관 나리께서 잠매의 혐의를 쓰고 화를 당할까 무섭습니다.”
“저야 내수사와 국왕 전하께서 뒷배를 봐주시니 괜찮습니다.”
큰소리 쳤지만 밀무역은 밀무역, 대신들이 탄핵하면 임금이 더 이상 보호해주지 못하고 물러서버릴 위험은 여전했다. 임금이 괜히 승서 교지를 동래부로 보내고, 이일에게 시켜 이민호를 동래로 보낸 것이 아니었다. 임금은 이민호에게 일본과의 무역을 허가하되, 밀무역을 시킨 것이다. 아무래도 임금이 시도한 조정대신들과의 협의는 실패한 것 같다고 이민호는 판단했다.
만약 밀무역이 탄로 난다면 그 책임은 모두 이민호가 져야 했다. 일본에서 국회의원의 비리를 비서관이 대신 책임지고 자살하는 것과 비슷했다. 이민호는 그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밀무역의 성격을 변경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민호는 숙소로 쓰는 동래부 객사로 돌아왔다. 얼른 가짜 나라라도 만들어서 조선과 공식적인 조공무역을 하고, 조선에서 생산된 물건을 일본과 중국 등에 파는 중개무역을 하는 것이 안전할 것 같았다. 조선에서 생산해 외국에 팔면 밀무역이지만, 새로 세운 나라에서 만들어 팔면 상관없었다.
비단과 유리공업 제품, 본차이나, 전기분해로 싸게 대량생산한 소금은 이민호 혼자서도 만들 수 있어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도공들을 초빙해서 백자와 다완을 만들어 네덜란드와 일본에 파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본격적으로 남쪽 바다에 진출하기 전이라도 일단 조그마한 나라를 하나 세워야겠어. 아무래도 무주공산이라 만만한 대만이 낫겠지? 그것도 원주민이 적은 북쪽이 좋겠고, 섬이 있다면 더 좋겠다.”
그러나 대만에서 도자기를 만들어 팔 생각을 하니 고령토를 수입해야 하는 문제가 생겼다. 대만에도 고령토가 난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정확한 산출 위치는 이민호도 몰랐다. 아직 원산지 증명제가 실시되기 훨씬 이전의 시대이지만 유독 홍삼에만 적용된다는 문제도 있어서 홍삼은 조선을 통해서 판매해야 했다.
무역을 하기 위해 나라를 만든다는 착상 자체도 특이하지만, 나라를 만들려면 자금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애초에 나라를 세우기 위해 돈을 벌려고 무역을 할 계획이었는데, 어느새 수단이 목적이 되어버렸다. 어쨌든 이민호는 세금회피를 위한 페이퍼 컴퍼니가 아니라 합법적 무역을 위한 가짜 왕국을 만들 생각을 해봤다.
그런데 씻고 방에 돌아온 혜진이 듣고 기뻐했다.
“어머나! 나라를 세운다면 그럼 저는 왕비가 되는 건가요?”
“얼씨구? 언니는 어떡하고 네가 왕비를 해?”
“언니도 왕비하고 저도 왕비하면 되는 거죠. 아니면 도련님이 왕국을 두 개 만드세요.”
“오! 그 방법이 있었구나. 하하! 혜진이는 머리가 좋아.”
농담 따먹기가 절대 아니었다. 이민호가 다시 지도를 보며 고민에 빠졌다. 행복한 고민이었다.
“병력이 적으니까 일단 대만 북단의 기륭이나 타이페이에 작은 성을 쌓고 시작해볼까? 가까운 곳에 있으니 두 군데에 다 만들어야겠다. 그럼 왕은 누굴 시키지?”
“나라를 두 개 세우려고요? 정말 대단하세요.”
“내가 비록 주상전하에게 시달리고 무관들에게 욕도 먹었지만 혜진이를 왕비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나라를 꼭 세우고 말 거야.”
“깔깔! 도련님 정말 재미있으세요.”
정말이라고 하면 혜진에게 실없는 남자로 비쳐질까봐 이민호도 농담이라고 하고 넘어갔다. 혜진이 이부자리를 깔자 이민호도 상의를 벗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내일은 어딜 가실 건가요?”
“김해에 집안 땅이 조금 있잖아. 김해에 갔다가 그 다음에는 창원에 도자기 만드는 곳을 찾아봐야겠어. 배를 타고 가자.”
“땅이 조금이요? 호호! 그럼 김해 땅에서 나오는 쌀로 떡이나 해먹어요. 과자를 만들어서 우리 둘이 나눠 먹을까요?”
“그런 식으로 계산하면 너무 많지.”
혜진이 이민호에게 푹 안겼다. 눈이 마주치자 혜진이 살짝 눈을 감았고, 곧이어 입술이 마주쳤다.
“하아! 전에 도련님이 처음으로 제 입에 혀를 집어넣었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어요. 지금은 너무 좋아요. 다시 해요.”
“응.”
역시 혜영보다 혜진이 이런 일에 더 적극적이었다. 이민호는 미래를 위해 혜진의 납작한 가슴을 두 손으로 부드럽게 만졌다. 이 마사지를 꾸준히 해줘야 나중에 보답을 받는다는 생각에 혜진과 키스하면서도 열심히 만졌다.
이민호가 혜진의 몸 위로 올라갔다. 속바지와 속치마를 입은 채 둘이 서로 몸을 비볐다. 혜진이 뜨거운 숨을 내뿜었고, 두 다리로 이민호의 몸을 꽉 죄였다. 얼마 전부터 시작한 놀이는 날이 갈수록 뜨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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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을 하려니 문화를 알아야 해서 어려운 챕터였습니다.
다음 편은 건국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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