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ire of the Warm Sea RAW novel - Chapter 36
* 36화 *
“오는 길에 본국인들에게 물어보니 일본의 임금님을 천황이라고 써야 한다는데 미처 모르고 실수를 범했습니다. 국서에 문제가 없겠습니까?”
“흠. 국서에 일본국 국왕이라 돼 있군요. 그럼 이 국서는 천황이 아닌 관백에게 바치는 걸로 하지요. 다음부터는 천황이라고 기록해주시기 바랍니다.”
“실수를 눈감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이민호는 천황이라고 쓰기 싫어서 일부러 모른 척했다.
“그런데 위치가 인도에서 조금 동쪽이군요. 사신의 용모가 저희 일본인과 크게 다르지 않아 더욱 반갑습니다. 남만인들은 도깨비 같이 생겨 무섭거든요.”
“푸른 눈에 노란 머리를 한 남만인들이 무섭게 생기긴 하지만 자주 보다 보면 익숙해집니다. 하하! 남만인들이 해중국 근처에 자주 나타나 해적질을 하는데 정말 미치겠습니다.”
“중국 남쪽의 바다에서 남만 해적들 문제가 심각하다던데 정말이군요. 해적들을 피해 멀리 일본까지 잘 오셨습니다.”
이어서 관백에게 바칠 해중국의 방물을 관리들 앞에서 늘어놓았다.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나라의 특산품을 준비하느라 이민호는 꽤나 골머리를 앓았었다. 그래서 만국 공통의 명품인 비단과 하카다에 풀지 않았던 유리와 거울, 약재로 쓰는 백단향, 그리고 가상의 섬나라답게 건어물과 말린 해삼을 준비했다. 조선을 연상시키는 물건은 단 하나도 내놓지 않았다.
“혹시 오사카에 방문해서 직접 입조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다음에 저희가 올 때 답서만 준비해주시면 됩니다. 지금 해중국이 내부 사정이 조금 복잡해서 곤란합니다. 나중에 정리된 다음 정식 방문할 때 사신단이 황도에 입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좋겠군요. 저희도 갑작스런 사신의 방문에 조금 당황했습니다. 다음에 오실 때까지 답서만 준비하겠습니다.”
이민호가 관리와 대화 중에 하급관리들이 방물의 품질과 양을 조사한 다음 회의를 가졌다. 일본인들이 처음 보는 것은 없지만 유리나 거울 같으면 기존의 것과 워낙 달라서 가격을 책정하기 어려울 것으로 이민호는 예상했다.
객실에서 한 시간쯤 기다리자 일본인들이 방물에 대한 회사품이라 해서 황금 100매와 은괴 몇 상자, 그리고 유황과 구리를 가져왔다. 값을 치자면 이민호가 산 가격이나 제조 원가보다는 높은 금액이었지만 하카다에서 무역으로 판매할 때보다는 적은 양이었다.
관백에게 조공품을 보내면서 나가사키를 관리하는 고위 사무라이와 다이묘가 중간에 빼먹어야 하니 이민호도 이해하기로 했다. 서로가 만족할 만한 거래가 되자 이민호는 관리들에게도 적당한 물건을 선물했다. 관리들은 금붙이보다는 비단을 더 좋아했다.
관청에 도착해 입국 신고와 교서 교부를 마친 이민호는 숙소를 배정받아 하루 쉰 다음 내일 오전에 상인들을 소개받기로 했다. 바다로 이만 리 넘게 항해해 왔다는 선원들에게 일단 쉬게 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겨우 하루 항해한 이민호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조금 난감했다.
그래도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몇 명을 데리고 숙소에 묵었고 나머지는 배에 머물렀다. 조선인이라고 하면 일본인들이 조선의 해금령 운운하거나 하카다로 보낼 것 같아 다들 입을 다물게 했다.
일본식 정원과 창고까지 딸린 넓은 저택에 화물을 운반했다. 푼돈에 고용한 부두 노무자들이 화물을 지고 날랐는데 그 사이 관청에서 파견한 왜인 사무라이들이 짐꾼들을 감시해줬다.
하카다는 국내용 항구이고 사카이는 국내외 겸용, 나가사키는 외국 배가 많이 드나들었다. 주로 포르투갈 배들이 무역을 했는데 네덜란드 범선과 아주 가끔 스페인 갈레온도 들렀다. 나가사키는 해외로 진출하는 일본인들의 출항지이기도 해서 여송으로 이민 떠나는 일본인들은 나가사키에서 출발했다.
“판관 나리 잘 오셨스무니다.”
동래 왜관에서 만났던 상인들이 저녁 때 이민호를 찾아왔다. 몇몇은 하카다에서도 본 얼굴이었다. 이민호가 얼굴을 알아보고 씩 웃으니까 상인들도 웃음으로 인사했다.
“하카다에서 구입했던 이도다완은 잘 판매됐습니까?”
“판관 나리 덕택에 상계에서 새로 눈을 뜨게 된 것 같습니다. 가르쳐주신 대로 상인들끼리 지역을 나눠 다이묘나 고위 사무라이 가문에 하나씩 제 값을 받으며 판매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보물은 희귀해야 가격도 높아지고 지역별 독점으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하카다에서 판 물건 덕택에 왜상들의 자본이 더욱 늘어났을 테니 이번 거래도 기대할 만했다. 이민호는 일본인들이 영직 판관을 체아직 첨정보다 높게 볼 것 같아 관직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카다에서 상품을 모두 판매하시고 나가사키에는 안 오시는 줄 알았습니다. 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 사이 나가사키 관청에 고용된 일본인 하인들이 식사를 내왔다. 이민호는 상인들에게 앞으로 나가사키와 사카이에서 해중국이라는 이름으로 무역하기로 했음을 알려주었다. 하카다에서는 조선에서 온 밀무역선으로 하고, 홍삼은 하카다에서만 판매하기로 결정한 사실도 알려주었다.
홍삼을 이곳에서 팔지 않겠다는 말에 상인들이 아쉬워했지만 명품은 가격 결정에서 원산지 증명이 중요한 요소이므로 어쩔 수 없었다. 나중에는 이민호가 파는 홍삼이 조선 제품인 것을 알아볼 테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면서 비단과 청람포, 조선 백자, 거울과 유리제품 견본품을 내놓고 경매에 들어갔다. 청람포는 중국산을 이민호가 카피한 제품이었다. 현대에는 중국이 한국 공산품을 카피했지만, 이 시대에는 중국산이 세계 최고 품질이었다.
치열한 경매 끝에 오늘 판매할 물건은 모두 팔려나갔다. 내일 항구에서 팔 물건은 미리 따로 빼 놓았다.
왜상들이 만족한 표정으로 돌아가고, 이민호는 동래 왜관에서 사카이의 네덜란드 상인과 접촉하는 방법에 대해 솔직히 말했던 왜상만 따로 만났다. 나가사키에 온 것은 단순히 일본 상인들과 무역을 하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혹시 노예를 구할 수 있겠소?”
“나가사키와 히라도에 노예 시장이 있으니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에는 노예제도가 없지 않습니까?”
왜관을 방문하는 왜상들은 조선의 노비를 소작농이나 집안 하인 정도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저번에 왜관에서 말씀드렸다시피 다른 곳에 작은 나라를 세우려는데 인력이 많이 필요합니다. 구전을 좀 드릴 테니 구해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힘 좋은 젊은 사내놈들로 많이 구해드리겠습니다. 혹시 아리따운 젊은 여자 노예도 필요하십니까?”
“노예끼리 결혼시킬까 하니 남녀 비율을 맞춰주십시오. 어린이나 노인이 딸린 가족 단위로 구매해주셔도 됩니다.”
외륜선이 네 척이고 여물과 식수, 식량도 실어야 하기 때문에 많이 태울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번 상행은 간수군도 꽤 많이 태우고 와서 빈 공간이 별로 없었다. 일단 500명을 사기로 하고 결제는 상품으로 해주기로 약속했다.
“아! 노예들을 접붙여서 새끼를 보려고 하시는군요. 일본에는 노예 제도가 없어서 나가사키에 처음 왔을 때는 당황했었습니다만,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는 습속이 다르니까 이해합니다.”
“아니. 오해하신 모양인데 제가 세운 나라의 백성으로 삼으려고 하고 있어요. 노예란 생산성이 많이 떨어지니까 집과 땅을 주고 가족을 형성해서 생산에 종사하도록 하려 합니다.”
“역시 판관 나리는 대인의 풍모가 있으십니다.”
조선과 요동에 대량의 유민이 발생하려면 아직 몇 년 남았다. 그 동안에는 일본인 노예와 대만 원주민들을 활용하기로 했다. 건국 초기에 인력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오? 미안하게도 이제야 묻게 되는군요.”
“이름을 물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니시무라 겐타로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나가사키에서는 니시무라 씨를 통해 거래를 진행할 테니 많이 도와주십시오.”
“일을 시켜주시면 목숨을 바쳐 수행하겠습니다.”
겐타로가 이민호에게 절을 했다. 상인인데 마치 사무라이처럼 결사의 신념을 드러내 조금 부담 갈 정도였다.
“나가사키에서 고정적인 거래를 할 계획이니 창고가 딸린 상관이 필요합니다. 자금을 드릴 테니 여기보다 조금 큰 상관을 구해보세요.”
“하카다와 이곳 나가사키에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갚는 의미에서 제가 상관을 구해 판관 나리께 바치겠습니다.”
“그럴 필요는 없지만, 예. 고맙습니다.”
표정을 보니 거절하기 너무 어려워 결국 받아들이기로 했다. 겐타로가 이민호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받아낼 테니 손해는 아닐 것이다. 겐타로는 아주 행복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날 밤에 겐타로의 딸, 미카(美香)라는 이름의 여자가 성장을 하고는 시중 들 하녀들과 함께 왔다. 뜻은 대충 알겠는데 이런 식으로 여자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이민호가 거절했다.
“아가씨는 그냥 집에 돌아가는 게 좋겠소. 부친께 고맙지만 내가 이미 성혼했으니 아가씨를 정중히 사양하겠다고 전해주시오.”
열일곱 살이라는 미카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미카는 이민호에게 절을 한 다음 날카로운 칼을 뽑아들어 자기 목에 겨눴다.
“스톱! 잠깐! 좃도! 좃도맛떼! 기다리시오. 젠장!”
이민호는 어쩔 수 없이, 순전히 사람 목숨 하나 살린다는 의미에서 미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날 밤 미카는 처녀 주제에 꽤나 적극적으로 이민호의 몸을 받아들였다. 이민호는 혜영, 혜진과의 약속을 못 지키게 되어 미안한 마음을 가졌지만 할 때는 좋았다. 자세한 묘사는 생략한다.
다음 날 오전에 겐타로가 노예들을 이끌고 이민호가 머무는 객사를 찾아왔다. 말이 500명이지 마당에 꽉 차고도 넘쳐서 대문 밖에도 줄을 섰다. 이민호의 뜻을 잘 받든 겐타로는 가급적이면 가족 단위로 노예를 구입해왔다. 모자라는 인원은 젊은 남녀로 채웠다.
“수고했소. 소모된 비용에 2할을 더해서 은이나 비단으로 가져가시오.”
“감사합니다, 판관 나리. 비용에 1할만 더해서 비단을 가져가겠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보기 힘든 여송 노예도 두 명을 구했습니다. 어이! 이리 와!”
척 보니 피부가 까무잡잡한 전형적인 필리핀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나이가 꽤 들어보였고, 한 사람은 젊은 편이었다.
“늙었지만 일본에서 찾기 어려운 특이한 외모이니 나리께 용도가 있을 것으로 알고 싼 값에 샀습니다.”
“잘했소. 으음. 외모가 그럴 듯하니 조선이나 중국에 입조시킬 때 사신 대역으로 쓸 만하겠소.”
사실은 필리핀으로 진출할 때 이들을 통역 겸 앞잡이로 삼을 계획이었다. 상황에 따라서는 명목상 왕으로 삼을 수도 있었다.
노예들을 씻기고 새 옷을 입힌 다음 묽은 죽부터 시작해 진한 죽을 여러 번 먹였다. 겐타로가 신경 써서 건강한 노예 위주로 구입했으나 그 동안 제대로 못 먹고 폭력에 시달린 이들의 속은 썩어 들어가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민호는 수하들에게 노예들을 잘 관리하도록 지시했다.
오후 내내 겐타로의 도움을 받아 나머지 물품을 팔았다. 어느 나라에 가도 베스트셀러인 중국 비단 정도의 품질이라면 보관했다가 외국 상인에게 더 비싸게 팔아도 되니 일본에서 거의 무한정으로 소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시대 오버 테크놀로지의 산물인 판유리와 거울이 아주 대박을 쳤다. 거울 판매량이 워낙 많아 나가사키에 거울을 재료로 경대를 만드는 산업이 일어났다. 이민호는 작은 금강석을 박아 넣어 만든 유리절단기도 팔았다.
판매대금으로 일부 받은 금을 환전상에게 수수료를 떼어주고 모두 은으로 바꾸었다. 은값이 싼 일본과의 무역에서는 은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것이 무역에서 이익을 남기는 것보다 더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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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중에 하나 더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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