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ire of the Warm Sea RAW novel - Chapter 37
* 37화 *
오후 늦게 니시무라 겐타로 밑에서 일하는 점원들이 포르투갈과 스페인, 그리고 네덜란드 상인들을 데리고 이민호가 머무는 객사로 찾아왔다. 분명 항구에 배라고는 포르투갈 범선들뿐이었는데 의외로 스페인과 네덜란드 상인들도 나가사키에 거주하고 있었다. 멕시코를 왕복하는 마닐라 갈레온처럼 1년에 1회만 운항하는 무역방식도 있으니 배가 항구에 없더라도 상인들이 계속 거주하면서 상행위를 한다 해서 이상할 것은 없었다.
“이 시대에 세 나라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이기 힘들 텐데, 과연 무역의 힘은 위대하군요. 네덜란드의 독립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해중국 사신이라는 분의 국제적 식견이 대단하십니다.”
“귀하께서는 귀족이라 들었습니다. 동 리께 인사드립니다. 저는 포르투갈 상인 두아르테입니다.”
“동 두아르테! 당신 조국의 광복도 멀지 않았을 겁니다.”
“멀리 떨어진 홀란드나 조그마한 포르투갈 따위는 얼른 독립하는 게 차라리 낫지 말입니다. 저는 에스빠냐에서 온 호세입니다.”
“돈 호세, 반갑습니다.”
모두 일본어로 대화를 나눴다. 이 시기는 포르투갈이 왕통이 끊겨 스페인에 합병된 때였으나 동아시아, 특히 마카오에서는 포르투갈의 국기가 내려가지 않았다. 최소한 동아시아에서는 포르투갈 상인들이 독립적으로 무역행위를 해나갔다. 네덜란드는 스페인과 독립전쟁 중인데 1568년에 시작해 1648년에 끝나는 80년 전쟁 중에서 아직 4분의 1밖에 지나지 않았다.
“비단이나 중국 도자기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다 해서 왔습니다. 설마 중국에 비해 기술이 훨씬 뒤떨어진 일본에 그런 훌륭한 상품이 있다고 믿지 않았는데 역시 다른 나라 분이시군요. 하지만 과연 중국 도자기와 비단으로 눈이 높아진 우리 상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물건이 있을까요?”
“그건 두고 보셔야지요. 저녁을 들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니 잠시 티타임이나 가집시다.”
객사는 일본식 저택인데 응접실은 남만 상인들의 상담을 위해 다다미 위에 기다란 서양식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었다. 이민호가 상석에 안고 서양 상인들에 이어 겐타로가 말석에 앉았다. 인사말에 이어 최근 유럽의 정치, 중국 경제 동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미카가 하녀들과 함께 홍차와 케익을 내왔다. 겐타로가 미카를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어 이민호는 상당히 어색하고 민망했다.
홍차는 일회용 포장인 종이 티백에 담겨 있었다. 티백으로 쓰는 종이 품질이 충분하지 못해 아직 본격적으로 판매하지 못하고 이민호가 개인적으로 쓸 분량만 제조한 것이다. 홍차를 종이로 포장한 것에 잠시 놀란 서양 상인들의 눈길을 제대로 사로잡은 것은 찻잔과 접시였다.
“세상에!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도대체 이 빛깔과 광택은 어떻게 만들어낸 거야!”
“하느님 맙소사! 중국산은 분명 아닙니다. 중국에 이런 물건은 없습니다. 이 유려한 디자인은 유럽인 취향에 가깝고 인도 토호나 이슬람 술탄들도 좋아할 만합니다.”
“유리잔이 아닌 도자기에서도 홍차나 와인의 색깔을 제대로 즐길 수 있겠군요. 유럽의 귀족부인들이 홀딱 반할 훌륭한 제품입니다.”
역시 왜인들보다 훨씬 강렬한 반응이 나왔다. 서양인들이 놀라든 말든 계복이 상인들 앞에 본차이나 제품 견본들을 진열했다. 주전자와 찻잔, 접시 종류가 대부분이었고 항아리 종류는 몇 개 없었다.
“포르투갈어로 Ilha Formosa, 포르모사 섬이라 불리는 해중국의 특산품인 옥 도자기입니다.”
포르모사는 대만 남부에 잠깐 상륙했던 포르투갈 항해자들이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한 해 뒤인 1590년에 붙인 이름이었으니, 포르투갈 상인도 포르모사 섬의 정확한 위치를 알 길이 없었다. 이민호는 대만 섬에서 어느 정도 기반을 닦은 다음 서양 상인들에게 정확한 위치를 알려줄 계획이었다.
재료 일부가 동물의 뼈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싫어 이민호는 본차이나를 옥 도자기라고 소개했다. 본차이나라는 이름에서 기술의 핵심이 드러나니 밝힐 수 없었던 것이다. 도자기 제조 기술만 있으면 본차이나는 금방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군주들이 기술자와 연금술사들을 실험실에 감금하며 옥 도자기 제조기술의 비밀을 밝히라고 명령했을 때 이름 때문에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할 것이다. 사실 이 시대 유럽에서는 중국 도자기의 재료가 고령토라는 사실도 몰랐다. 중국 도자기와 비단을 사기 위해 은이 계속 유출되어 경제가 망가지자 유럽의 군주들은 기술획득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을 경주했다. 중국 도자기를 복제하기 위해 투자와 연구는 기본이고 기술자 납치와 살인 등 온갖 음모가 판쳤다.
서양 상인들의 표정을 살피면서 이민호가 커다란 접시를 들어 높이 던졌다. 예전에 동래 왜관에서 한 번 했었던 퍼포먼스였다.
– 땡강!
다다미에 떨어진 접시는 중국 도자기와 달리 깨지지 않았다. 돈 호세가 얼른 접시를 집어서 살폈다. 다다미가 두툼해서 접시에는 흠집도 나지 않았다. 서양 상인들이 접시를 샅샅이 살펴보며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어떻습니까? 중국 경덕진 도자기보다 낫지요?”
“으음. 으으윽! 예. 그렇습니다.”
중국 도자기보다 가격이 올라간다는 소리였지만 서양 상인들은 어쩔 수 없이 옥 도자기의 품질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얀 접시를 손으로 만지는 상인들의 눈에 탐욕이 어렸다.
그러나 상담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이들이 이민호가 제시한 가격과 물량을 제대로 소화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서양 상인들에게 기대를 했던 이민호에게는 무척 실망스런 순간이었다.
“욕심은 나지만 결제할 은이 부족한 게 문제입니다. 포르투갈의 크루자도 금화로 일부를 결제해도 되겠습니까? 혹시 시간을 주신다면 마카오에 가서 은을 모조리 긁어오겠습니다.”
“음. 금화를 담보로 맡고 있을 테니 다음 거래에서 금이나 은으로 교환해주십시오. 그래 준다면 결제를 허락하겠습니다.”
포르투갈 상인이 상관에서 뛰쳐나갔다. 범선으로 달려가서 은과 금화를 모조리 지고 올 기세였다.
“인도의 동인도회사에도 은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저희 네덜란드 상인들의 자금 동원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실지도 모르겠지만 유럽까지 왕복하려면 시간이 보통 많이 드는 게 아닙니다.”
“동아시아에서 가까운 인도나 이슬람 국가들에게 판매한 다음 돌아오셔도 좋습니다. 저는 나가사키에 자주 올 예정이니 거래할 기회는 많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여러분을 해중국에 직접 초대할 테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이민호는 서양 상인들에게 돈이 없으면 배달이라도 시킬 생각이었다.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인데 우리나라가 가난해서 너무 슬프군요. 그래도 저희 자금에 맞춰 최대한 물량을 주시기 바랍니다.”
“첫 거래이니 편의를 많이 봐드리겠습니다.”
이민호가 싸게 넘겨준다고 말했지만 중국 도자기보다 최소 2배 가격으로 시작했다. 네덜란드 상인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주로 접시를 선택했다. 찻주전자나 찻잔과 달리 유럽 어느 나라에 가든지 접시의 수요가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항아리에 대한 유럽인들의 미적 감각과 취향은 중국이나 한국과 약간 달랐으니 적절한 선택이었다.
“다른 두 분에게 자금이 부족하다니 저희 스페인 상인에게는 이번이 아주 좋은 기회가 되겠군요. 저에게 최대한 많은 물량을 배정해 주시고, 다음 거래도 기대하겠습니다. 필리핀에 다녀오면 충분한 결제대금을 마련할 수 있으니 다음 거래에는 더 많은 물량을 부탁합니다. 돈 리께서 유럽을 아신다면, 우리 에스빠냐가 얼마나 부유한 나라인지도 아실 것입니다.”
필리핀에는 마닐라 갈레온이라 해서 1년에 한 차례 필리핀과 멕시코 아카풀코를 왕복하는 범선이 있었다. 이때 필리핀 총독령은 멕시코를 근거지로 하는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의 관할 아래에 있었다.
마닐라 갈레온은 남미와 멕시코에서 산출된 은을 가져와 중국의 비단, 도자기와 교환해갔다. 아카풀코에 도착한 상품은 산을 넘어 베라크루스를 거쳐 유럽으로 향했다. 대양 두 개와 대륙 하나를 횡단하고 스페인으로 가는 길고 긴 항로였다. 중국 상품 수입이 지나쳐서 나중에는 스페인 본국의 은까지 투입되기도 했다.
서양 상인들이 가난하고 마닐라 갈레온도 일 년에 달랑 한 번 왕복하기 때문에 유럽 상인들에게서 많은 수입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 시대 최대의 국가는 중국이었으니 이민호는 서양과의 무역은 적당히 하고 중국 시장을 노리기로 했다. 나중에 동아시아 무역에 늦게 참가할 영국은 산업혁명을 거치고 나서도 여전히 거지라서 이민호는 전혀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혹시 중국 남부에서 조선인삼이 팔리는지 아십니까?”
“조선인삼이요? 소문은 많이 들었고 중국산 인삼은 봤어도 조선인삼은 구경도 못해봤습니다. 말린 인삼 한 근을 조선에서 수입하는 원가가 은 600~700냥이나 하고 빨갛게 찐 인삼은 그 열 배 이상이나 하는 영약이라더군요. 하지만 황궁에서 대부분 소비되어 민간에 유통되는 양은 극히 적다고 합니다.”
헌종, 철종 연간에 공무역으로만 4만근을 청나라에 수출해 포삼세로만 20만 냥 전후를 거뒀다. 이것은 호조의 연간 세입 전체, 또는 3분의 2에 맞먹었다. 임진왜란 전후가 아닌 조선후기에 홍삼의 근 당 가격이 조선에서 100냥인데 청나라에서 근 당 600~700냥에 달해 판매 총액은 2천만 냥이 넘어선다. 조선 사신이나 역관, 의주 상인이 중국 상인에게 넘기는 가격이 이 정도였으니 중국 내 거래 가격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시기에 따라 다른데 현재 조선에서 백삼이 한 근에 은 25냥, 구증구포한 홍삼이 그 열 배 이상 가격입니다. 명나라로 가면 또 열 배, 스무 배로 뛰지요. 조선인삼이 유럽에서 팔리기는 힘들겠죠?”
“오! 하느님! 그건 너무 비쌉니다. 웬만한 귀족들은 먹기 힘들 겁니다. 아마 왕은 못 먹고 왕이 사랑하는 왕비가 불치병에 걸렸을 때나 간신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항해시대 이후 유럽이 경제적으로 급성장 중이었으나 아직 구매력이 제대로 갖춰졌다고 하기 어려웠다. 한 마디로 가난했다. 유럽인들이 자양강장제를 구입할 정도로 재력을 갖추려면 본격적인 산업혁명 이후에나 가능할 것 같아 이민호는 홍삼을 유럽에 판매할 계획을 포기했다.
그리고 남중국에서 인삼의 인기가 급등한 것은 명나라 말기였으니 홍삼을 팔 때 제값을 받으려면 아직 최소한 십 년은 더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이민호는 당분간 중국에 판매할 주력 상품으로 해삼을 택했다. 중국 내륙에서 해삼은 전복보다 비싸고 상어지느러미와 맞먹는 고급 음식이었다.
조선에서는 같은 종의 해삼이 서식지에 따라 홍해삼, 청해삼, 흑해삼으로 구분되었다. 제주도 해녀들이 물질로 잡은 홍해삼과 남해안에서 채취한 청해삼, 개펄에서 서식하는 흑해삼을 작년부터 좌수영 저택에서 사들여 종류별로 가공해 말리고 있었다. 말리면 20분의 1로 무게가 줄어들지만 가격은 그 이상으로 급등하니 건해삼이 무역에 유리했다. 맛이 좋은 홍해삼을 최고로 치는 조선과 달리 중국에서는 흑해삼이나, 찬 바다에서 자라 살에 탄력이 있고 돌기가 많고 굵은 해삼을 고급품으로 쳐주었다. 이민호는 돌기가 6열로 난 홋카이도 해삼을 리스트에 올려두었다.
중국인들이 해삼을 좋아하는 것은 몸통 일부가 잘려도 새 살이 돋는 해삼의 재생력 때문이었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중국과의 해삼 교역을 위해 필리핀과 그 남부 해역의 공동체들을 아주 박살낸 영국인 등 서양인들은 해삼이 남자 성기를 닮아 중국에서 정력제나 춘약으로 쓴다고 알고 있었다. 물론 중국인들도 생긴 것처럼 해삼은 남성에게, 전복은 여성에게 좋다고 믿었으니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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