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ire of the Warm Sea RAW novel - Chapter 39
* 39화 *
“어 어? 우린 급히 오느라 전사가 겨우 50명이다. 너희는 비겁하게 두 배나 되는 병력에 신형 화승총까지 들고 있지 않느냐? 이건 너무 불공평하다!”
“그럼 너희도 100명 채우고 화승총 들고 와.”
“화승총은 너무 비싸잖아! 그럼 이렇게 하자. 흠흠!”
“뭘 어떻게?”
중국어를 할 줄 아는 놈이 뒷짐을 지더니 묵직한 목소리를 냈다. 마치 정주문명을 약탈하러 온 야만족들을 꾸짖던 왕이 아량을 야만족들을 불쌍히 여겨 은혜를 베푸는 듯했다. 내용은 좀 달랐지만.
“그대들이 우리 전사 50명, 너희 열 명으로 싸워서 만약 너희가 이긴다면 너희가 우리 전사들과 같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음을 인정하겠다. 그 이후 동등한 조건으로 우호 협력할 수도 있음을 제안하노라. 함께 남쪽의 다른 야만 부족을 정복해 재산과 포로를 똑같이 나눠 갖는 것이 어떤가?”
“착검!”
– 처억!
더 이상 들을 것도 없었다. 이민호의 구령에 100명이 일제히 소총에 뾰족한 총검을 꽂고 그 소총을 동시에 앞으로 내미는 모습은 제법 장관이었다.
저 통역 녀석은 이민호 일행에게 은근슬쩍 동등한 권리를 요구했다. 소규모 부족의 요구조건을 다 들어주다 보면 나중에 남쪽으로 영역을 확장할 때 다른 부족에게 제시할 당근이 없어진다. 그리고 대만 섬 전체를 복속시키고 원주민과 이주민들을 똑같이 백성으로 받아들일 계획을 갖고 있는 이민호에게 그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겁먹은 족장과 통역이 어깨를 들썩였으나 그래도 전사랍시고 도망가지는 않았다. 족장이 통역에게 뭐라고 말을 하자 통역이 다시 나섰다.
“좋다! 조선 왕자의 기개를 높이 사서 왕자군이 이긴다면 우리가 신민으로 그 밑에 들어가겠다. 패배 이후 저항도 하지 않겠다. 그러나 우리를 차별대우한다면 언제든 산으로 들어가 너희들이 섬에서 쫓겨나갈 때까지 불장난을 해주겠다.”
“신민들 사이에 차별은 없다. 그런데 너희들은 귀부한 후에도 반란을 일으킬 작정을 하는 신의 없는 놈들이냐? 너희가 그렇게 위험한 놈들이라면 지금 당장 몰살시키는 게 우리의 안전한 삶을 지킬 유일한 방법일 것 같다.”
“예? 그럼 우릴 다 죽이려고요? 아니, 뭐 저희가 패한 다음에도 반항하겠다는 것은 아니고요.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합니다, 왕자님.”
“싸울 거냐, 말 거냐?”
이민호는 원주민들이 1. 싸운다 2. 신속(臣屬)한다 3. 일본을 공격한다로 예상답지를 뽑았다. 통역 놈이 화승총의 강함을 아니 2번 아니면 3번을 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렇게 불리한 상황에서 싸우다 지면 우리가 패배를 시인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제발 아량을 베풀어 주십시오. 약속은 꼭 지키겠습니다.”
“이제야 조금 솔직해지는구나. 그러나 50대 10이 아니라 50대 5로 싸운다 해도 너희가 이기지 못한다. 아까 너도 봤듯이 이 총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으아아! 세상은 불공평해! 아니 뭐, 제 혼잣말입니다.”
이 상태로 전투 없이 복속한다 해도 가만 놔두면 원주민들의 불만이 누적돼 나중에 크게 터질지도 몰랐다. 차라리 지금 완전히 눌러주는 편이 좋았다.
“그렇다면 가장 강한 용사들 다섯 명씩 나와서 힘과 용기를 겨뤄보는 게 어떻겠느냐? 나는 백성들끼리 싸우다 다치는 것을 원치 않으니 몽둥이를 들고 싸우도록 해라.”
“우와! 왕자님 멋쟁이! 그럼 저희 부족 최고의 용사들을 준비시키겠습니다.”
원주민들이 웅성거리며 체구가 큰 용사들을 뽑고 있을 때, 이민호가 계복에게 지시했다.
“계복아! 알아서 몇 명 데리고 나가서 조져라.”
“꼬마들 상대로 무슨 몽둥인가요?”
고르고 고른 원주민 전사 다섯 명이 방패와 몽둥이를 들고 앞서 나왔다. 그러나 계복이 혼자 성큼성큼 나가더니 주먹으로 다섯 명 전부를 단숨에 다 때려눕혔다. 수박 실력만큼은 무과 장원을 해도 모자라지 않았다.
계복이 손을 털고 대열로 돌아오자 잠시 멍하니 서 있던 족장과 통역이 결국 무릎을 꿇었다. 꼭 이렇게 힘을 직접 보여줘야 믿는 자들이 있었다.
“저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절대로 왕자님을 배신하지 않을 것을 천지신명께 맹세 드립니다.”
“너희 부족 전체가 내게 영원히 충성을 바치는 게 아니고?”
“헤헤! 후손들에게도 선택권을 주셔야죠.”
“뭐?”
“헤헤! 그래도, 헤헤!”
실없이 웃다가도 눈치 봐서 비열하게 뒤통수를 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의지가 강한 놈이었다. 더 억누른다 해서 물러설 놈도 아니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란 이민호도 남에게 신념까지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좋다. 임금이 잘못하면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는 일이니 그 문제는 양해하겠다.”
이로써 일단 대만 북부의 꽤 넓은 지역을 장악했다. 대만 북단에 평지족은 없고 원래 산지족에 속하는 케타갈란족만 비교적 넓은 산악과 평지를 세력권으로 삼고 있었다. 남쪽에 할거하는 나머지 부족들은 천천히 복속시키도록 하고 이민호는 일단 튼튼한 근거지를 만들기로 했다.
“내일부터 너희 부족의 성인 남자들 3분의 1씩 교대로 부역에 징발하겠다. 품삯으로 쌀을 하루에 석 되씩 주겠다. 불만이 있나?”
“아이고! 사냥감도 없는 겨울에 일 좀 한다고 쌀 석 되씩이라뇨. 너무 고맙습니다.”
알고 보니 통역이 부족장의 아들이라고 했다. 원주민들을 돌려보내고 일본인들과 간수군들을 시켜 목책 쌓는 작업을 계속했다. 그리고 1개 대에서 4개 오(伍)를 뽑아 여러 방향으로 정찰을 시켰다.
이민호는 정찰대에게 가급적 원주민과의 충돌을 피하고 무조건 해 지기 전에 돌아오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자그마한 탐욕이 원주민들의 큰 저항을 불러와 전체 계획을 망그러뜨리는 경우를 경계하니 정찰대로 뽑힌 간수군들은 걱정 말라고 했다. 간수군을 뽑을 때 힘으로 남의 물건을 빼앗을 만한 인간은 이미 추려서 걱정을 덜었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그 사이 간수군 하나가 나무막대기를 들고 다니면서 우물 자리를 찾아 돌아다녔다. 이민호는 우물이 발견되면 그곳을 성의 중심으로 삼기로 했다.
오후 늦게 물 기운이 몇 곳에서 발견되고 몇 십 명씩 달려드니 금방 우물이 세 개나 파졌다. 흙탕물 사이에서 새 물이 솟아나 맛을 보니 텁텁한 곳이 두 곳, 깔끔한 곳이 한 곳이었다. 그곳을 중심으로 성곽을 축조하기로 결정하고 일단 밑바닥만 돌로 두르는 작업을 했다. 돌을 깎을 장비가 없어 적당한 크기와 모양의 돌을 구해 우물 밑 옆면을 둥그렇게 둘러막았다. 마무리는 나중에 하고 일단 지붕부터 얹었다.
외륜선이 운항을 하든 말든 매일 아침저녁으로 소에게 쇠죽을 끓여 먹여야 하므로 꼴을 베는 일에도 병력 일부를 내보냈다. 그런데 사공들이 소를 풀밭에 풀어놓자고 제안해서 이민호가 허락하고 사공들이 소를 몰았다.
“도련님! 설마 목책만 쌓고 지내실 건 아니죠? 왕궁이라고 하기에는 영 볼품이 없습니다.”
“이번에는 일본인들 임시 거주구역만 만들려고. 제대로 도시를 만들려면 설계부터 해야지. 이 땅에 대리석이 많다고 하니 그 돌로 궁궐을 짓고 다른 단단한 돌로 성을 쌓아야겠다.”
내일 계복과 함께 석공 출신 간수군을 데리고 주변 산을 돌아보기로 했다. 적당한 바위산을 찾으면 왕궁과 성벽 건설을 위해 돌을 잘라 운반할 계획이었다.
이민호는 해가 지기 전에 바닷가에 가서 물에 손을 담가 보았다. 날은 따뜻한데 이곳이 대만에서도 북단이라 그런지 바닷물은 차가웠다. 해삼을 양식하려면 찬 바닷물이 좋고, 수온이 25도인가를 넘어가면 해삼이 여름잠을 자느라 성장이 멈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여름 수온을 알아야 하는데. 안 되면 제주도에서 양식하지 뭐.”
좌수영에서 해삼 말리는 기술은 이미 확보했다. 인공양식을 하더라도 성체가 될 때까지 2년 넘게 양식하는 것은 아니고, 바다에 종묘만 뿌려도 효과는 충분하다고 알고 있었다.
이민호가 바다에서 돌아오는 길에 천막촌에서는 이미 배식이 시작됐다. 그런데 일본인들이 밥을 먹으면서 웅성거렸다.
“밥이 너무 많은데. 혹시 주인님이 우리 배를 터뜨려 죽이려는 거 아냐?”
“더 이상 못 먹겠어요. 그런데 안 먹으면 우릴 죽일 것 같아 무서워요.”
일본인들에게 조선 군사들과 똑같이 밥을 주니 다들 절반도 먹지 못했다. 소식하는 일본인들에게도 조선 군사가 먹는 양을 기준으로 줬으니 너무 많았다. 이민호는 일본인들에게 적당히 먹어도 괜찮다고 말해두고 다음부터는 자율 배식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밤에는 원주민들의 야습을 경계해 1개 대씩 교대로 경계임무에 투입했다. 일본인들이 자는 천막이 100개나 돼서 외륜선에 돌아가서 잘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야간 경계에 많은 인원을 투입했다.
이민호도 간수군들이 쓰는 5인용 천막에 미카와 함께 들어가 잤다. 하녀들 네 명이 미카와 항상 함께 있어서 이민호 입장에서는 불편하기도 하고, 조금 야릇하기도 했다. 하녀라고는 하지만 무사 집안 딸들이라 어렸을 때부터 기본적인 무예를 수련해서 몸매가 다들 탄탄한 편이었다.
“주인님. 가능하다면 저희 가문을 되찾아준다고 하셨잖아요?”
“응. 하지만 오래 걸릴지도 몰라.”
미카를 안은 이민호 주변에 누운 하녀들이 고개를 들고 대화하는 두 사람을 지켜봤다.
“그럼 저희들도 준비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저희 가문이나 가신 가문들에 살아남은 남자가 전혀 없어요.”
“그, 그렇구나.”
“저들이 각각 다른 남자를 구하는 것보다는 주인님을 중심으로 피가 이어지는 편이 결속력 높은 가문을 재건하는 방법일 것 같아요.”
“그것이 합리적인 선택인 것 같다.”
“그럼 주인님께서 오늘부터……”
일본에서 가문끼리의 결혼이란 잠재적인 우군을 형성하는데 기여한다. 그러나 이미 멸문한 가문이라 일본에서 활동하는 무사들 중에서 쓸 만한 사내를 구하기 어려운 미카와 하녀들이 가진 선택 폭은 좁을 수밖에 없었다.
“한데 미카를 제외하곤 다들 어리니 좀 더 천천히 생각해보자. 오늘 일하느라 다들 피곤하지? 얼른 자자. 가문을 재건하고 영지를 되찾게 해준다는 약속은 꼭 지키마.”
하녀들이 슬그머니 일어나 앉으려 하자 이민호가 무서워져서 얼른 물러섰다. 엉뚱하게 일본 여인들이 모인 하렘이 형성되려 하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원주민 천여 명이 삽과 괭이를 들고 일하러 몰려왔다. 쌀을 3되나 준다는 소문을 듣고 멀리서도 찾아오고 어린 애와 여자들도 호미를 들거나 광주리를 이고 찾아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통역 놈이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고, 그 꼴이 보기 싫어 이민호가 호통을 쳤다.
“부역은 어른 남자만 하는 거야! 애들까지 데려오면 어떡하나?”
“헤헤! 애들도 먹고 살아야죠. 내일부터는 아이들이 못 나오게 할 테니 여기까지 온 정성을 봐서라도 오늘 품삯은 제발 주십시오.”
“알았어. 그래도 장정이 받는 그대로 다 줄 수는 없지. 성인 여자는 하루에 두 되, 애들은 하루에 한 되. 내 허리 밑으로 오는 애들한테는 없어!”
“감사합니다요, 왕자님.”
원주민들은 하루 쌀 석 되에 눈이 뒤집힌 것처럼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원주민들은 침략자들이 약속을 제대로 지킬지 몰라 불안한 눈빛을 보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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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있어 다른 하나는 준비되는 대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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