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ire of the Warm Sea RAW novel - Chapter 4
* 4화 *
이번 생에서도 군사무기 개발이나 할 팔자인 것을 깨달은 강민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무기개발 과정에서 시간과 자금보다는 공돌이들을 더 많이 갈아 넣어 대덕연구단지 전체에 공밀레 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지게 만든다는 국방과학연구소에서 강민호는 정말 뼈 빠지게 일했었다. 고생한 것만큼 보람도 많이 느껴 후회는 없었다.
그러나 해군 함정의 전자전 체계인 소나타 다음 신 개발품의 명칭은 경차인 모닝이었다. 이것은 시간이 갈수록 연구원들의 경제력이 하락한 것을 반영했다. 국가에서 적은 연봉마저도 제대로 주기 싫어 정규직보다 임시직을 더 많이 고용한 탓이다. 그러나 이번 생에는 부친이라는 막강한 후원자가 있으니 전생처럼 힘겨운 연구 생활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다행이었다.
“첨사 나리! 도련님의 안색이 아직도 좋지 않습니다. 방에 불을 더 때게 해서 몸을 따뜻이 해드려야 합니다.”
“아! 그래. 민호 자네 경황이 없을 줄은 알지만 기왕 이렇게 됐으니 인생을 잘 살아보게. 내가 그래도 재산이 좀 있으니 자네가 하고 싶은 건 뭐든 마음대로 하게. 다만 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조총은 반드시 만들어줬으면 좋겠네. 그래야 더 신나게 왜적들을 박살내지.”
“으드득! 일본 놈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도 조총은 반드시 만들겠습니다.”
“좋아. 아주 좋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부친과 박수무당이 나가자마자 화려하지는 않지만 깔끔한 옷을 입은 계집애 둘이 들어왔다. 아마도 부친의 명으로 강민호를 수발들러 온 계집종인 것 같았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둘은 역적으로 내몰린 애비가 참수당하고 관비로 끌려갈 뻔한 것을 부친이 많은 돈을 들여 빼돌린 양반집 따님들이라고 했다. 현재는 부친이 면천을 시켜줘서 양인 신분의 하녀였다.
둘은 얼굴이 비슷하게 생겨 묻지 않아도 분명히 자매였다. 그런데 각각 여덟 살, 일곱 살 정도 되는 계집들이 갑자기 옷을 훌렁 벗었다.
“어? 어?”
“도련님을 따뜻하게 해드리라는 주인마님의 명을 받자왔습니다. 그럼 도련님의 옷을 벗기겠습니다.”
“어? 아청, 아청.”
벌거벗은 여자애 둘이 두꺼운 솜이불 속으로 들어와 양쪽에서 알몸의 강민호를 껴안았다. 강민호는 조금 바동거린 것이 저항의 전부였고, 그보다 큰 여자애 둘이 꼭 껴안자 손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강민호가 여자와 맨살이 닿은 건 꽤나 오랜만이었다. 대학 졸업학번 때 두 달 정도 연애해본 것이 강민호의 연애경험 전부였는데 이번에는 양쪽에 둘이나 됐다.
그러나 하녀 둘 다 가슴도 안 나온 어린아이였고, 그것은 강민호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강민호가 더 작았다. 서로 맨살이 닿으면서 자극을 받아 아래 분신에서 신호가 오긴 했는데 새끼손가락만 한 것이 벌떡 서봤자 전혀 의미가 없었다.
“도련님 살아계셔서 천만다행이에요.”
“어? 어.”
“도련님은 몸에 비해 머리가 커서 중심 잡기 힘드니까 배 탈 때는 특히 조심하라 했잖아요!”
“어? 미안.”
“혜진아! 도련님께 실례잖아. 어서 사과 드려라. 죄송합니다, 도련님.”
“헹! 싫어.”
언니는 자애로운 편이고 여동생 쪽이 성질머리가 있는 편이었다. 혜영이라는 이름의 언니가 강민호를 꼭 껴안자 여동생도 질 수 없다는 듯 반대쪽에서 힘껏 안았다. 몸이 작은 강민호는 숨이 막혔으나 꾹 참았다. 자매는 힘을 풀고 곧 잠에 빠져 들었다. 강민호 만큼 이 소녀들도 오늘 받은 정신적 충격이 커서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강민호, 이제 이민호가 된 국방과학연구소, ADD 연구원은 양쪽에서 쌕쌕 내뿜는 숨결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이민호는 부친이 과거로 회귀한 아주 특이한 사람인 덕택에 그의 아들 몸에 빙의하면서 받은 충격이 피차 아주 적었다고 느꼈다.
이민호는 다섯 살 꼬마로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비록 놀라운 경험이긴 하나 이미 죽었던 목숨의 여분이라고 편히 생각하기로 했다. 나중에 박수무당이 종종 찾아와서 그를 이 시대로 보낸 하늘님의 뜻을 잘 받들어 최선을 다해 행동하라고 강요했으나, 이민호는 적당히 눈치 봐가며 좀 더 편하게 살기로 마음먹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친 다음 이민호가 부친에게 대화를 청했다. 어제 알몸으로 같이 잤던 하녀들 중에서 언니가 귤껍질을 꿀에 절인 새콤한 차를 내왔다. 혜영이 뒷걸음질로 방을 나가자 부친이 눈을 찡긋하고 목소리를 낮췄다.
“혜영이 어떠냐? 원래 네 몸종으로 들였는데 내가 귀양 와서 수원 본가를 비웠더니 저 어린 나이에 집안 살림을 꿰차고 다 알아서 하더구나. 어차피 너를 위해 준비했으니 잘해봐라. 괜찮지?”
“예. 조, 좋습니다.”
“하지만 본 부인은 안 된다. 혜영에게도 그렇게 일러두었으니 너도 그렇게 알아라.”
“예? 양인이면 양반의 배우자로서 자격이 있지 않습니까?”
“정치라는 괴물이 사람의 미래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아무도 모른다. 구봉 송익필 선생은 그 조모가 노비라서 관직 진출이 막혔다. 부친 송사련이 역모죄를 고변하는 공을 세워 양반이 됐고 당상관을 역임했는데도 옛 주인을 배신했다는 이유로 그 화가 자손에게 미쳤다. 비록 현재 신분이 양반이라도 서얼의 자손은 문과를 못 본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꽤나 복잡했다. 노비 출신인 천첩의 소생 서얼 송사련이 옛 주인 가문인 안당의 집안을 역모죄로 몰아 멸문시켰다. 송사련의 아들 송익필은 꽤나 재주가 있는 자였는데 여기에 동인과 서인의 당파싸움이 개입해 그를 견제하거나 옹호하기 위해 양쪽에서 무리수를 많이 두게 되었다. 송익필이 정여립의 난과 기축옥사를 조장한 배후인물이 됐다는 소문까지 부친이 자세히 이야기해주었다. 기축옥사는 몇 년 후, 1589년 동인들에게 피바람이 분 해였다.
“그렇다면 남쪽 바다 건너에 나라를 세워 왕비로 맞이하겠습니다.”
“오오! 사나이가 그 정도 배포는 있어야지. 하하하하하! 혜영이 마음에 들긴 한 모양이구나.”
이민호는 먼저 현재 조선의 상황을 물었다. 부친은 양반답게 아는 것도 많아 물을 때마다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부친이 설명하는 중에 이민호는 현재보다는 미래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민호가 몇 가지 사업구상을 밝히려는데 부친이 말렸다.
“먼저 돈을 벌겠다고? 민호야! 내 아들아! 너는 도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돈이 너무 많아서 취미생활로 만호와 첨사를 했던 사람이다. 말 타고 전국을 싸돌아다니다가 심심풀이로 무과 급제를 하고 돈 주고 관직을 샀지. 지금 네가 마시는 감귤 차가 싸구려라고 생각하느냐? 궁궐로 갈 진상품을 빼돌린 아주 비싼 물건이다. 그냥 네 특기를 살려서 조총이나 만들면 안 되겠느냐? 아직 몸이 작아서 당장은 못하겠지만 말이다.”
나중에 들었는데, 이 시대에는 조선 후기와 달리 매관매직은 세도가나 정승 판서들이 하는 것이 아니었다. 비변사나 이조, 병조의 인사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임금이 직접 제수하는 관직 중에서 내수사를 통해 관직 희망자에게 돈을 받고 파는 경우가 꽤 있다고 한다.
그러나 임금과 신하들 사이에 정치적 사안으로 대립할 때는 엉뚱하게 이런 관리들이 불똥을 뒤집어썼다. 사간원이나 사헌부에서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 그 관리들을 파직시키라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임금은 거부하며 버티는 식으로 대립이 진행된다고 한다. 물론 보통 때는 적정한 선에서 눈 감고 넘어갔다.
“아버님! 무기를 대량 생산하기 전에 처음 한두 개만 만들 때도 자금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시간과 자금을 많이 들일수록 더 좋은 무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아버님 재산이 어느 정도 됩니까?”
“네 누나가 시집갈 때 이미 절반을 넘겨줬고 나머지는 네 것으로 남겨두었다. 수원과 평택, 나주와 김해 등지에 넓은 농지가 있고 여기 순천부에도 수영 북쪽 미평이라는 곳에 땅이 있어 소작농들이 부쳐 먹고 있단다. 한성 주변에 내 소유로 된 산도 많다. 나는 조선 통틀어 몇 안 되는 만석꾼이야. 매해 소출이 벼가 아닌 쌀로 만 석이 조금 넘는단다.”
“무기 만드는 데에도 돈이 많이 들어가지만 왜란 때 제대로 수군을 건사하려면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합니다. 아버님의 재산으로 계사년에 일 년 동안 조선 수군 전체, 하다못해 전라수군이라도 먹여 살릴 수 있습니까?”
임진년 다음 해인 계사년과 그 다음 갑오년에 엄청나게 많은 조선인들이 굶어죽었다는 이야기는 이민호도 잘 알고 있었다. 잠시 생각에 빠진 부친이 이윽고 고개를 저었다.
“으음! 그건 못하지. 임진년 말부터 계사년 여름까지는 수군 보인까지 총동원하는 바람에 전라도 수군만 4만 7천 명이나 돼.”
“예? 말도 안 됩니다. 한 도에 수군이 그렇게 많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이민호가 믿기 어렵게도, 부친은 삼남 지방에는 육군보다 수군이 많다고 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북방지역에는 여진족이 말 타고 기습해오니 기병과 보병을 포함한 육군이 많고, 남해안 지방에는 왜구들이 배를 타고 쳐들어오니 수군이 많은 것이 합리적이었다.
수군은 배를 타고 왜선에 맞서 싸우는 것뿐만 아니라 해안지방에 상륙해 노략질하는 왜구들을 상대로 지상전도 벌이니 삼남지방에 육군보다 수군이 많아야 하는 게 맞았다. 전라병영은 강진에, 경상우병영은 창원에, 경상좌병영은 울산에, 충청병영은 해미에 있으니 삼남지방에서는 병마절도사 주진들도 해안지방을 침범하는 왜구에 대비해 바닷가 가까이 전진 배치된 셈이었다.
“왜? 안 믿기면 자세히 따져볼까? 전라좌수영 전체에 수군 정병 4천여 인, 수영과 5관 5포에 소속된 진무와 사노까지 합해서 평소 6천 2백여 명, 전라우수영에 수군 정병 약 8천 인, 진무와 분부군까지 하면 더 많아. 수군 정병 1인당 보인 3인이니 수군 정병 1만 1천 8백 36호(戶)에 삼보(三保)를 합치면 4만 7천 3백여 인 맞아. 진무와 사노까지 합하면 5만이 조금 넘는군.”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전라수군이 5만이나 된다는 것도 믿기 어렵지만, 수군 5만을 태우기에는 배가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맞아. 그 전에 통상께서 전선을 두 배로 건조해서 늘렸다. 전선에 다 태우고도 남는 인원은 수영과 진포만 지키고 있었지. 그런데 임진년 말부터 명군과 왜군이 휴전 협상을 하는 동안 전투가 없는데도 군사를 총동원한 조정 중신들이 바보였어. 조정이야 전쟁을 핑계로 돈 한 푼 안 들이고 수군 전체를 동원할 수 있으니 그런 멍청한 결정을 쉽게 내렸지. 결국 농사를 망친 백성들만 호되게 고생했어.”
“임진년과 계사년에 흉년이 들지 않았는데도 그래서 굶어죽은 사람이 많았군요.”
듣고 보니 계사년에 딱히 흉년이 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전쟁통에 농민들이 농사를 짓지 못하고 피난 갔거나 장정들이 수군과 육군, 그리고 의병으로 복무하느라 농토에 신경을 못 쓴 탓에 수확량이 뚝 떨어졌다.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이민호는 잘못 알고 있는 게 많으니 부친에게 잘 배워야겠다고 다짐했다. 현대인 입장에서 임진왜란 당시 수군이 전라도에만 5만이라는 말은 사실 지금도 믿기 어려웠지만 부친의 말에는 일점의 거짓도 없었다.
부친은 육군의 동원 방식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었다. 전라도 육군이 평소에 1만인데 그 숫자는 교대로 한성에 상번하는 경군과 지방에 주둔하는 영진군을 합한 숫자였다. 그러나 그것은 정병과 갑사만 합한 숫자에 불과했다.
임진년에 삼도근왕군이 용인에서 패했을 때 전라감사와 방어사가 지휘하는 병력이 5만이었고, 같은 시간에 병마절도사가 4만 병력을 거느리고 전라도와 경상도 경계지역을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수군 5만과 육군 9만을 합하면 14만이나 됐다. 전라도 한 도에서만 해도 엄청나게 많은 숫자가 동원된 셈이었다. 물론 전시에 병력을 총동원하느라 평소에 군사훈련을 받지 않은 농민들까지 전쟁에 나서니 당연히 육군이 오합지졸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유사시 전라도 한 도에서 육군만 10만 가까이 동원한다는 사실에 이민호는 많이 놀랐다. 인구가 더 많고 왜군과 접적지역이라 병력이 최대한 동원된 경상도에서는 계사년 한때 수군 2만과 육군 4만을 포함해 총 22만 명이 수륙군과 의병, 군량운반병인 운량병 등으로 복무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는 군량이 부족해 병력동원력은 뚝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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