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ire of the Warm Sea RAW novel - Chapter 41
* 41화 *
“팔 물건은 일본에서 산출된 구리와 유황이고, 살 물건은 중국산 생사와 쌀입니다. 농기구가 있다면 그것도 있는 대로 주십시오. 필요한 쌀은 3천 석 정도, 생사는 그 비슷한 부피까지 추가로 실을 수 있습니다. 일본 은으로 결제하겠습니다.”
“유황과 구리를 모두 사겠습니다. 그런데 일본 은은 품위가 낮은 거 아시죠?”
“물론입니다. 결제 전에 품위를 확인하세요. 그쪽에서 금으로 결제해도 좋습니다.”
“오오! 금으로 결제할 수 있다면 저희는 아주 좋습니다. 협의해서 교환 비율을 정합시다.”
배를 접현하고 상품의 품질을 확인하면서 가격을 정했다. 나가사키 상관의 관리에게서 회사품으로 받은 구리와 유황이 중국에서는 꽤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지 상인이 좋은 가격을 쳐줬다.
상인이 믿을 만해서 이민호는 유리와 거울을 추가로 판매했다. 수원 본가에 도가니를 만들어놓고 재료 배합과 소성, 절단 과정까지 혼자서 만들어낸 물건이었다. 상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곧 평상시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민호에게 이미 포착된 다음이었다.
“이 유리와 거울은 혹시 해중국의 특산품 아닙니까? 남만에서 수입한 거울보다 훨씬 깨끗합니다. 양도 많군요. 가능하다면 제가 다 구입하겠습니다.”
“예. 어쩌다 우연히 구했습니다. 이 배에 있는 판유리와 꽃무늬 유리, 거울은 다 넘겨드리겠습니다. 금강석을 박아 넣은 유리절단기도 가져가십시오.”
이민호가 나가사키에서 판매하고 남은 유리와 거울을 상인이 높은 가격에 인수해갔다. 말을 들어보니 나가사키에서 며칠 전에 판 거울이 벌써 중국 땅으로 수입된 모양이었다.
“쌀을 가득 실은 배를 불렀습니다. 저기 한 척이 먼저 오고 있는데 저 배에 천 석이 실려 있고, 곧 2천 석을 실은 배가 올 겁니다. 가격은 배 운임을 포함해 항구에서보다 조금 높이겠습니다. 명나라 은 1냥에 쌀 3석 반이면 괜찮겠습니까? 항저우에서는 1냥에 4석입니다.”
“강남이라 확실히 쌀값이 싸군요. 좋습니다.”
쌀 천 석의 운임이 12.5퍼센트, 쌀로 125석이었다. 중국 관선들이 순찰하고 있으니 위험수당을 감안하면 비싸지 않은 비용이었다. 상인이 주판을 튕기면서 계산을 하더니 종이에 기록했다.
“상품 가격을 더하고 빼고 하니까 중국 은 기준으로 제가 은 5만 8천 냥을 드려야 합니다. 강남 백미 중품 기준으로 20만 석이 넘는 엄청나게 큰 거래입니다. 아까 귀인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금으로 드려도 되겠습니까?”
“교환 비율은 어떻게 됩니까?”
“요즘 광동 지역 금과 은의 교환 시세는 1대 5.6입니다.”
“은값이 계속 오르는 추세로군요.”
“예. 앞으로도 은값이 계속 오를 것 같습니다. 그럼 금 1만 냥 조금 넘게 드리겠습니다.”
은본위제를 유지하는 명나라에서 은의 가격은 상대적으로 높았다. 특히 20년 전에 명나라에서 모든 조세를 은으로 통일하는 일조편법이 시행된 이후 은값이 더욱 높아졌다. 1592년에서 17세기 초까지 10여 년 동안 광동 지역 금은 교환비율은 1대 5.5~5.7이었고, 같은 시기 일본의 금은 교환비율은 1 대 13, 스페인은 1대 12.5~14였다.
중국의 은값이 일본이나 유럽의 두 배 이상이었다. 그러나 이로부터 겨우 몇 십 년 후인 명나라 말기에는 1대 10에서 13까지 폭락해 일본이나 스페인과 비슷해졌다.
16세기 당시 유럽에서 금과 은의 평균 교환비는 1대 12 이상이었으니 유럽의 항해자들이 아시아에 올 때 결제수단으로 은을 잔뜩 싸들고 오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중국은 비단과 도자기 수출을 바탕으로 수백 년 동안 세계의 은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16세기까지 은광 개발이 유행해 은 생산량이 폭증했던 일본에서는 은값이 내려가고 금값이 높게 형성됐다. 그러나 17세기 이래 일본에서 은의 생산이 점차 줄어든 반면 유출이 지속되면서 막부 말기에는 1대 4 정도로 변해 은값이 세 배로 올랐다. 그래서 금과 은을 섞어서 주화를 만들었던 일본은 개화 직후 국부가 거덜 날 정도로 국제 환치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추가로 은을 금으로 더 교환해도 되겠습니까? 제가 왜은을 꽤 많이 가지고 있어서요.”
“왜은의 품위가 보통 7할에서 8할 사이이니 귀인께서 갖고 계신 은의 품위를 잠시 확인해보겠습니다. 제가 금 5만 냥을 더 가지고 있고, 주변 다른 상인들에게 빌려서라도 최대한 많이 금으로 바꿔드리겠습니다.”
작은 상선에 현대 한국 기준으로 100억 원 어치 이상의 금을 쌓아놓고 다니는 이 상인은 엄청나게 통이 크다고 볼 수 있었다. 은괴에서 미세한 가루를 떼어 상인이 조사를 마쳤다. 이민호가 일본에서 받은 은은 의외로 품위가 높아 8할로 인정됐다.
이민호는 개인 계정에 포함되는 은을 최대한 금으로 바꿨다. 상인이 다른 배를 부르더니 금괴를 더 수송해왔다. 합계 400킬로그램이 넘는 금괴와 그 이상의 은괴가 상자에 담겨 배 두 척 사이에 왔다 갔다 했으나 지켜보는 간수군들은 그저 모르는 척했다. 그 사이 외륜선 세 척에 쌀 3천 석을 나눠서 적재했고, 생사와 농기구는 이민호가 탄 배에 실었다.
이 금괴들은 이민호에게 자본, 앞으로의 거래를 위한 종자돈이었다. 이 금을 일본까지 가져가 은으로 교환하기만 해도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중국과 일본을 왕복하며 이 짓만 해도 금방 재벌이 될 수 있었다. 물론 태풍에 배가 침몰하면 쫄딱 망한다.
“감사합니다. 귀인 덕택에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밀무역 중이라 통성명하기 곤란하군요. 혹시 다음에 다시 거래를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해중국의 사신인 이 가입니다.”
“아! 해중국 사신이시라면 나가사키에서 거울을 파신 분이군요. 요즘 항저우와 광저우에서 인기가 아주 좋습니다. 난징에서 고관대작의 부인들에게 비싼 값에 팔려 물건이 동이 났다고 합니다. 저는 장쑤성 롄수이의 장이라고 합니다.”
“장쑤성 롄수이? 강소성 연수현이군요.”
“쑤저우, 소주에 저희 상회의 본거지가 있습니다. 안휘성 추저우, 예. 초주에도 분점이 있습니다.”
같은 한자라도 지역마다 발음이 달라 간혹 알아듣기 어려웠다. 같은 중국인들도 광둥어와 베이징어 사이에서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해 통역이 필요할 정도였다.
대만에서 한참 북쪽, 제주도보다 약간 낮은 위도에 현대의 상하이가 있는 곳에서 양자강 하구를 거슬러 올라가면 남경이 나오고, 그 북쪽으로 동정호가 있고 그 주변에 초주와 연수가 있었다. 그런데 복장이 보통 중국인들과 약간 달라서 이민호가 물었다.
“혹시 신라방 출신인가요? 산동성 말고도 신라방이 있나 보군요.”
“어? 어떻게 아십니까? 신라의 후손 맞습니다.”
연수와 초주는 신라인들 중에서 상공업을 하던 사람들이 몰려 살던 신라방들이었다. 장보고가 신라방을 세운 것이 아니라, 중국 해안 지방에 산재한 한민족계 집단거주지들이 원래부터 신라방이었다. 특히 월주 지역의 신라방은 마한이나 석탈해 시기부터 개발됐다는 증거도 있었다.
“제 본거지가 아니더라도 상인 조합을 통해 연락을 주시면 어디든 제가 달려가겠습니다. 저희들은 천 년 넘게 상인으로 활동했으니 신용 하나만큼은 확실합니다.”
“이번 거래 아주 좋았습니다. 다음에도 같이 일합시다.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상인이 탄 배가 떠나갔다. 외륜선에서 안 보일 때까지 선원들이 손을 흔들었다. 신라방 상인의 말에 따르면 오늘 5년 치 장사를 한꺼번에 했다고 한다. 수수료를 받고 금괴를 빌려준 상인도 역시 신라방 출신이라고 했다. 제주도 사람으로서 중국에 표류한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신라방 사람들이 지금은 옛말을 잊었지만 조선 중기에만 해도 어느 정도 전통을 유지하고 있었다.
상품은 아직 조금 남았지만 충분히 만족한 거래를 해서 대만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며칠 여정을 잡고 움직였는데 한나절에 다 끝나서 이민호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다른 배들이 슬금슬금 외륜선을 따라오다가 포기하고 중국 해안 쪽으로 돌아갔다.
중국의 개항장에 정식 입항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무역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이민호는 조금 놀랐다. 물론 이때 중국 수군의 군선이 들이닥치면 배와 물건을 빼앗기고 참수당할 위험도 있었다. 군선이 해적선으로 돌변할 수도 있고, 실적을 올려야 할 때면 뇌물이 통하지 않았다.
“계복아! 장사하는 것 봤지?”
“엄청난 양의 금은보화가 왔다 갔다 하는데 지켜보는 제가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나 없는 동안에는 네가 해야 한다. 중국어와 일본어 꾸준히 배우고 있지?”
“저는 머리가 나빠서…… 그냥 도련님 따라다니면서 호위나 하면 안 될까요?”
계복이 천자문과 소학까지는 간신히 떼었는데 그 이상은 좀 무리였다. 특히 어학에도 별로 소질이 없었다.
“시끄럿! 사람이 편한 일만 해서는 발전이 없어. 너도 책임지고 하는 일이 있어야 내가 편해지지. 앗! 네가 성장한다는 뜻이다.”
“그렇군요. 도련님을 편하게 해드리기 위해 열심히 일을 배우고 중국어, 일본어를 익히겠습니다.”
이민호가 미카와 하녀들을 돌아봤다. 상행위를 옆에서 지켜본 적은 많았지만 금과 은을 대량으로 교환하는 거래는 처음 봤을 것이다.
“명나라에서는 은값이 굉장히 비싸네요.”
“그렇지? 일본에서 은을 생산한다고 해서 은값이 싼 게 아니라 원래 그 정도가 정상이야. 명나라 은값이 특이하게 비싼 거지. 그 가격차를 이용해 이익을 챙기는 게 쉬워 보이지?”
“아니요. 배를 만든 자금이나 선원들 인건비, 운영비를 감안해야겠어요. 그리고 권력자들이 내버려두지 않겠죠?”
“오오! 계복이보다 훨씬 낫다.”
해지기 전에 다시 대만 북단의 만, 이른바 해중국의 수도로 돌아왔다. 한나절 사이에 황무지가 어느새 널따란 농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원주민들을 불러 쌀과 농기구를 창고로 옮기고 나서 쌀을 나누어주었다. 그런 다음 저녁을 먹였다.
“이제 대충 일이 끝났으니 원주민들은 내일부터 부역하러 나오지 않아도 돼.”
“왕자님! 저희들을 버리시나이까! 계속 일하게 해주세요!”
통역 놈이 달려와 무릎을 꿇고 이민호에게 진언했다. 이민호는 어이가 없었다.
“뭔 소리야? 일이 없는데 무슨 일을 한다고 그래?”
“쌀이 저렇게 많은데 서울 사람들한테만 나눠주시려고 합니까? 치사합니다. 저희도 왕자님의 백성입니다.”
“서울 사람? 풋! 그런데 할 일이 없는데 어떻게 하냐?”
일본인 노예들이 대만까지 끌려와서 졸지에 서울 사람이 되었다. 원주민 입장에서는 왕국의 수도에 사는 자들이니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사실 이제 일본인들은 노예가 아니었다.
“좋아. 겨울에 할 일도 없을 테니 일을 만들어주마. 저기 산 위에 나무 있지? 그 나무 옆으로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닦는다. 폭은 수레 두 대가 넉넉히 교차해서 지나갈 정도로 넓게, 이왕이면 직선으로 닦아라.”
“3천 명씩 오니까 한 사흘 걸리겠습니다. 그 다음에는요?”
“산 너머 평원은 누구 땅이지?”
“저희 부족 땅인데 50가구 정도 삽니다. 모두 왕자님의 백성입니다.”
“그럼 도로를 그곳까지 닦고 황무지가 있으면 있는 대로 개간해라. 농기구를 나눠주마. 품삯을 주고 일을 시켰으니 모두 내 땅인 것은 인정하지?”
“당연합니다. 이 섬의 모든 땅이 왕토이며 왕자님, 아니 국왕전하의 땅입니다.”
“아직 이르다.”
사실 이민호는 이곳 해중국의 왕으로 즉위할 생각도 없었다. 해중국과 다음에 건국할 고산국은 페이퍼 컴퍼니가 아닌, 무역을 위한 페이퍼 커먼웰스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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