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ire of the Warm Sea RAW novel - Chapter 418
* 418화 *
“흠! 브루나이에서 화승총을 자체 제작했어? 대단하군.”
7월 말, 미카가 해외정보를 취합해 이민호에게 보고하는 날이었다. 요즘 브루나이 술탄이 목재회사 덕에 돈을 좀 벌더니 행동하는 게 심상치 않았다.
원래 역사에서는 다음 술탄인 샤 베루나이 재위 중에 에스파냐로부터 노획한 화승총과 포르투갈 상인들에게서 구입한 화승총을 분해해서 연구한 다음 자체 제작 단계에 들어갔다. 그러나 자금이 풍부한 현재 술탄 사이풀 리잘이 기술자들을 고용하고 섬라에서 화약기술자를 초빙해 몇 년 앞당겨 화약무기를 제조하게 되었다.
“네, 주인님. 주인님께 받은 일본 조총 200정, 포르투갈 상인들로부터 구입한 300정, 자체 제작한 500정까지 다 합해서 화승총이 일천 정이 넘어요.”
“화승총이 예전 병사보다 많네?”
“예. 브루나이 섬 전체를 장악해서 거의 모든 주민들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번갈아 징병을 실시하고 있어요. 직업 병사만 3천 명이 넘어가요. 급히 징집을 해도 8천 명을 간단히 넘기고 시간이 충분하면 2만도 가능할 거여요.”
“그 동안 땅에 비해 병사가 너무 적었지.”
브루나이 술탄, 사이풀 리잘은 독립국의 국왕으로서 매우 잘하고 있었다. 그러나 브루나이에 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거의 종주국 역할을 하는 고산국 입장에서는 별로 내키지 않은 발전이었다.
그 동안 대장군 파두카 스리 베가완 압둘 카하라가 브루나이 남부를 재정복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다녔다. 자바 섬에서 건너온 말레이계 이주민들을 거의 다 종속시켰고, 산악지역 소수민족들에게도 지배력을 행사했다. 브루나이 목재회사가 무력을 동원해 많이 도와준 덕택이었다.
“술탄과 공주들에게 경고를 할까요?”
“아니. 축하를 해줘야지. 그렇지 않아도 브루나이 공주들이 요즘 무척 기뻐하더라고.”
여동생, 딸, 또는 손녀 입장에서 술탄이 권력 기반을 탄탄히 할수록 기뻐하는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브루나이 백성들도 전쟁과 내란에 시달리던 몇 년 전에 비해 훨씬 잘 살게 되었다. 고산국을 위하는 동시에 출신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것이 정략결혼을 통해 고산국에 시집 온 후궁들의 역할이기에 나무랄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브루나이가 발전하면서 만에 하나 고산국의 이익과 충돌하게 된다면 곤란했다. 브루나이에 대한 고산국의 이익은 목재, 해상안전, 그리고 석유였다. 술탄에게 우회적으로 경고해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이민호는 창고에 쌓여 있던 일본 조총 500정과 중고 중형 외륜선 두 척을 브루나이로 보내라고 지시했다. 보름도 안 돼서 술탄이 감사 인사라면서 이민호에게 황금 3만 냥을 바쳤다. 이민호가 내린 물품 시가의 열 배 이상 가치에 해당했다. 이로써 경고와 복종 표시는 충분히 이루어졌다.
“술탄에게 혹시 다른 수익이 있나?”
“세금과 유전 사용료 말고는 없어요. 브루나이 목재회사에 속한 벌목꾼과 삼림감시원들에게서 수입의 4분의 3을 세금으로 받고 있어요.”
“악착같이 뽑아먹는군. 그럼 백성들은 뭘 먹고 살라고?”
“세금 바치고도 굶지는 않는대요.”
“열대지방이라 그렇구나.”
이민호가 계산을 잘못했다. 의식주에 많은 비용이 소모되지 않는 열대지방 사람들은 그보다 적은 돈으로도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술탄도 잘못했다. 초반부터 세금을 너무 많이 걷어서 브루나이의 경기가 살아날 길을 처음부터 막아버렸다. 다른 나라처럼 상인이 분화되려는 시점이었으나, 세금이 무거운 탓에 상업은 술탄이 관장하는 어용 무역을 빼고는 다시 물물교환으로 돌아갔다.
“목재 가격을 인하해달라고 요구할까요?”
“아니. 가끔 술탄한테 직접 상납 받지 뭐.”
보고가 길어지면서 이민호가 집무실 소파에 드러누웠다. 미카가 무릎베개를 해주었다. 미카는 말투가 딱딱한 것과 달리 이민호의 머리칼을 쓰다듬어주는 손길은 무척 다정했다.
“에스파냐의 재정 규모가 확인됐어요. 들어보실래요?”
“응.”
에스파냐가 채무 불이행을 선언하면서 고산국이 북미 대륙을 매입하는 기회를 얻긴 했지만, 중요한 우방국이며 고객인 에스파냐의 재정 상태를 보다 확실히 알고 싶었다. 미카가 정보원들을 풀어 에스파냐 상인들은 물론 경쟁자인 포르투갈 상인들과 다른 외국 선원들에게 물어서 자료를 모아 분석했다.
“식민지를 제외한 세입이 매년 1300만 두캇에서 살짝 밑돌아요. 그런데 국가부채에 대한 이자가 절반, 네덜란드 주둔군 6만 7천 병력의 유지비로 177만 두캇, 지중해 함대를 유지하기 위해 146만 두캇을 고정비로 지출해야 해요. 매년 100만 두캇씩 부채가 늘어났고, 요즘처럼 전쟁이 일어나면 지출이 확 불어나요.”
“식민지에서 금은보화를 그렇게 실어 날라도 모자라다는 소리군. 채무불이행을 선언할 만했구먼.”
“지금도 하고 있지만, 전쟁을 너무 자주 해요.”
“해외 영토가 너무 많이 퍼져 있어서 그래. 지킬 곳이 많을수록 패배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군사격언도 못 들어봤나 봐. 그리고 에스파냐 딴에는 자기 영토를 방어한다는 건데, 다른 나라에서 보기에는 크나큰 군사적 위협이지.”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토는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신대륙에 넓게 퍼져 있고 심지어 아시아에도 있었다. 그런데 펠리페 2세와 에스파냐 지배층들은 영토 한 군데가 무너지면 도미노처럼 제국 전체가 무너진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한 곳에서 반란이라도 일어나면 전력을 다해 진압하려 했다. 문제는 협상을 해서 조금이라도 양보하면 계속 양보하게 된다는 인식을 갖고 처음부터 강경하게 상대방을 무조건 힘으로 누르려 한다는 점이었다. 펠리페 2세와는 도무지 대화가 통하지 않아 항상 전쟁으로 승부를 봐야 했다.
국가를 보다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확장하다가 자멸한 사례는 구 일본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세기 초 일본 총리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주권선과 이익선을 설정하면서 조선을 비롯한 주변국 영토에도 일본의 이익이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 주권선을 지키기 위해 이익선 안에 들어있는 외국 영토를 침탈하면, 그 새 영토를 주권선 안에 넣고 넓어진 영토를 지키기 위해 이익선을 끊임없이 확장하게 된다.
세계 정복을 하기 전에는 항상 불안에 떨어야 하는 국가전략이었다. 일본 입장에서는 수비적인 영토 보호 정책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필연적으로 외국과 매번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943년에 일본이 발표한 절대방어선에는 조선과 만주, 북중국은 물론 대만과 필리핀, 인도차이나 반도 전체, 인도네시아 전체, 파푸아 뉴기니 일부까지 들어갔다. 절대방어선이라는 명칭과 달리 절대로 지킬 수 없는 방어선이었고, 결국 못 지켰다.
“필리핀 총독이 바뀌었어요. 알고 계시죠?”
“그래. 캄보디아와 민다나오 원정이 연속 실패하면서 책임을 졌나봐.”
1596년 2월에 선장 에스테반 로드리게스 데 피게로아가 자비로 원정단을 구성해 민다나오에 원정을 떠났다. 필리핀 총독과 에스파냐 국왕의 승인을 받은 정식 원정이었다.
피게로아 선장은 에스파냐인 214명과 필리핀 원주민 병사들, 민다나오 현지인들을 포함해 6천 명을 이끌고 민다나오 강을 통해 내륙 깊숙이 들어갔다. 그러나 부하하엔에서 원주민들과 작은 전초전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피게로아 선장이 직접 지휘하려고 나섰다가 원주민에게 얼굴에 칼을 맞고 기함으로 후송됐다가 다음 날 죽었다.
민다나오 섬은 그 후에도 에스파냐가 끝내 정복하지 못한 지역으로서, 20세기 초에 미국도 제대로 점령하지 못했다. 1515년에 민다나오에서 건국한 이슬람 왕조인 마구인다나오 왕조는 자그마치 2006년까지 끈질기게 저항했다. 그러나 마지막 술탄, 아미르 빈 모하메드 바라구이르가 후계자 없이 암살당함으로써 왕조는 멸망했다.
“비올레타 님이 슬퍼하시겠어요. 잘 보살펴주세요.”
“응? 비올레타는 아버지가 위험한 일을 안 해도 되겠다며 좋아하던데?”
정말로 총독에서 물러난 루이스 페레스 다스마리냐스는 부인과 함께 마닐라와 바기오를 오가며 느긋하게 살았다. 고위 귀족 출신이 아닌 필리핀 총독이 퇴임하면 마닐라에 정착해 사는 경우가 흔했다.
이민호는 이면 등 사관학교 산악부가 방학을 이용해 히말라야 산맥에 등반하도록 허락해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다. 사관학교장 김학이 외국이라는 이유를 들어 거절하고 이면의 부친 이순신이 위험하다고 펄쩍 뛰었기 때문에, 이민호도 눈치를 보느라 허가를 내줄 수가 없었다.
불만이 쌓인 산악부원들에게 산에서 놀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것은 행글라이더였다.
“투구하고 이 이상한 흉갑, 슬갑, 완갑까지 단단히 입히더니 겨우 이런 허름한 연에 태우겠다고요? 숙부! 실망입니다.”
이면이 이민호에게 화를 냈다. 언덕에 행글라이더 여러 대를 준비해놓았는데 시험 탑승자가 탑승을 거부하고 있었다. 무게 중심까지 잘 맞췄으나 아직 사람이 타고 날아보지 못했다.
“연처럼 매달려서 나는 것이 아니야. 타는 사람이 방향과 높이를 직접 조종해서 하늘을 난다니까!”
“이런 한심한 것으로요? 지난 임진년에 영남 어느 성에서 어떤 사람이 비거를 타고 사람들을 탈출시켰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이건 너무 작잖아요?”
이규경이 지은 은 워낙 난해하여 국역이 어렵다. 이것은 옛날 중국과 서양, 그리고 조선에서 하늘을 나는 여러 가지 기계들에 대한 기록을 모으고 저자가 비행을 가능케 하는 방법을 나름대로 논한 항목이다.
그 내용 중에 순창 출신 신승선(申丞宣 승지. 신경준)이 책문에 대한 답변으로 논한 글이 인용돼 있다. 그 내용은 임진왜란 때 왜군에게 겹겹이 포위되어 함락 직전인 영남의 어느 성에 어떤 이가 비거를 타고 날아 들어가 친하게 지내던 성주를 태우고 공중으로 30리를 난 다음 지상에 내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양 악라(鄂羅)에 하늘을 나는 수레가 있고 서오(西隖)에 풀무질로 바람을 일으켜 공중에 떠다니는 기술이 있다고 했다. 파리 근교에서 열기구를 최초로 비행시킨 것이 1783년의 일이니 풀무 운운한 내용이 에 충분히 기록될 수 있으나, 아직 라이트 형제가 비행하기 전에 발간된 책이다.
인터넷에 김제의 정평구가 비거를 만들었으며 기타 여러 가지 살이 붙은 것은 다른 책의 기록이거나 거짓이다. 정평구(1566-1624)는 수백 년째 김제에서 그 이름이 내려오는 유명한 거짓말쟁이 이름이다.
“숙부! 차라리 특수대대원들처럼 기구에서 낙하산 타고 떨어지게 해주세요. 아주 짜릿하다던데요?”
“형님한테 허락 받으면 나도 허락해주마.”
“아버지가 허락해주실 리가 없잖아요! 그럼 사관생도 정식 학과목으로 만들어주세요. 예?”
“사관생도들 집단 자퇴하게 만들 일 있냐?”
좀 더 익숙해진 다음이라면 몰라도 사람이 하늘을 날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인 이 시기에 사관생도들에게 낙하를 강요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안전을 강조했어도 천 번에 세 번 정도 낙하산이 안 펴지는 사고가 발생해서, 한 명이 죽고 두 명은 중상을 입어 퇴역했다. 문제가 된 부품 몇 가지를 교체한 다음 사고가 줄어들었다.
헬륨을 채운 커다란 기구에 줄을 매달아 하늘에 높이 띄우고 궁궐에 연결해두었다. 고산국은 지진다발 지역이라 건물 고도를 제한하고 있었다. 이 지역에 전파 송출용 탑을 세우느니 차라리 기구를 띄우기로 했다.
비행선을 만들어 프로펠러를 달고 나는 시험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속도가 느리고 조종성이 나빠서 이민호 기준으로는 답답하기만 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조만간 태평양을 횡단할 수 있는 중형 고정익기가 필요했다.
“종이비행기가 뭔지 알지?”
“이름이 이상하지만 애들이 종이를 접어 날리는 장난감 아닙니까? 혹시 이것과 같은 원리입니까?”
이면이 행글라이더를 다시 보게 됐다. 잠시 고민하는 이면에게 이민호가 비행계획을 설명했다.
“이 날틀은 바람을 타고 날게 돼 있어. 날틀 방향을 좌우로, 상하로 조절하는 손잡이 보이지? 저걸로 조종해서 원하는 방향으로 날면 돼. 언덕 아래가 죄다 사탕수수 밭이니 추락해도 위험하지는 않을 거야.”
“위험한지 않은지 자신은 없으시군요.”
“그러니까 맨땅에서 연습 좀 해보고 됐다 싶으면 그때 뛰어내려.”
“숙부님! 제가 이런 위험한 걸 뭐하러 탑니까? 그리고 이 날틀이란 것은 새와 달리 뼈대가 쇠로 돼 있고 날개에 깃털도 안 달렸습니다. 이게 어떻게 날겠습니까?”
풍동시험까지 마치고 무인으로 온갖 실험을 해서 탑승자의 안전은 보장될 것으로 이민호는 믿었다. 그러나 이 시대에 사람이 난다는 거부감을 이기는 것이 어려워서, 강력한 미끼가 필요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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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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