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ire of the Warm Sea RAW novel - Chapter 42
* 42화 *
일본 큐슈보다 따뜻한 곳이라 임시로 천막에 사는 일본인들이 얼어 죽을 염려는 없었다. 이곳에 본격적인 왕궁을 세우기로 하고 기술자나 장비가 더 필요할 것 같아 이민호는 일단 조선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제비뽑기로 1개 대를 백성 보호와 작업 지시를 위해 주둔시키고 나머지 3개 대는 귀국 준비를 했다.
이번에도 미카가 따라가려 해서 이민호가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엔 남겨두기로 결정했다. 미카에게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비록 바람은 피웠지만, 그리고 조만간 들키겠지만 혜영과 혜진의 속을 썩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곧 돌아오시는 거죠?”
“물론이지. 열흘 안에 올게.”
미카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정인이 고국에 돌아간다니까 다시는 못 볼 수도 있어 여자 입장에서 너무 불안할 것이다.
이민호는 밤새도록 그녀를 안아주었다. 현재까지 유일하게 건축된 통나무집에 방이 여러 개라 다행이었다. 그런데 방음 수준이 형편없어서 다음 날 아침 하녀들의 눈이 빨갛게 부었다.
2월 초가 되면서 가끔 남풍이 불어 외륜선 네 척은 빠른 속도로 전라좌수영으로 돌아갔다. 좌수영에 도착하기 전에 사공들과 간수군들에게 급료와 상여금으로 은과 비단을 나눠주면서 비밀을 지키라고 엄히 타일렀다. 이민호 앞에서는 당연히 입을 다물겠다고 말했지만 젊은 놈들 입에 술 한 잔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 빤했다.
그래도 이민호는 소문이 최대한 늦게 퍼지길 바랐다. 이민호는 도착하자마자 대만에 본거지를 마련했다고 내수사 전수를 통해 임금께 보고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임금이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 이런 보고는 즉시 해야 밤에 잘 때 가위에 눌리지 않을 것이다.
만약 조정 대신들이 알면 외국 땅인지, 혹시 중국 땅인지를 놓고 왈가왈부하다가 무주지임이 확인되면 관리를 파견할 것이 자연스러운 순서였다. 이민호는 여기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었고, 내수사 전수와도 미리 말을 맞춰두었다.
최선의 수는 흉년이 들었을 때 조정의 승인을 얻어 공개적으로 대만 개척민들을 모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정에서 강압적으로 삼남지방 백성들을 평안도와 함경도로 사민시킬 때도 반발이 심했으니, 외국으로 나가라고 하면 갈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기대하기 어려웠다.
좌수영으로 가는 중간에 잠시 방답에 들렀다. 이민호가 귀양지에 도착하니 부친의 오두막은 텅 비고 조금 높은 곳에 기와집이 세워져 있었다. 바로 전에 왔을 때 못 본 집이라 다시 생각해보니 이곳이 이파리 달린 대나무가 가득 세워졌던 곳임을 기억해냈다. 부친이 이민호에게 선물하는 ‘서프라이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 이민호가 기웃거리니 잠시 후 방문이 열리고 부친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 옆에서 부친의 바둑 친구 급제 최대성이 이민호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호구 왔능가?”
“윽! 제가 왜 호굽니까?”
“여기 저기 잘 퍼주고 다니니까 호구지. 뭐, 잘했다. 능력이 된다면 백성들에게 퍼주는 것이 양반의 의무니까.”
수하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잠깐 인사만 하고 다시 배로 돌아갔다. 최대성 때문에 부친과 이번 상행이나 해삼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지만 가까운 곳이니 다시 오면 될 일이었다.
장군도를 돌아 좌수영을 지나 소포에 도착하기 직전, 이민호가 외륜선 네 척을 바다에 모았다. 그리고 간수군들 전원을 갑판에 세워놓고 선미루에 올라서 훈시를 했다.
“이번에도 다들 무척이나 수고했다. 덕분에 일을 잘 끝내고 많은 이익을 얻어 내수사에 큰소리칠 수 있게 됐다.”
“저희들 이번에는 총 한 방 못 쏴봤는데요? 일한 것에 비해 너무 많이 받은 것 같아 송구합니다. 헤헤!”
“왜? 원주민들 앞에서 총만 들고 있었어도 충분히 역할을 한 셈이지. 이번처럼 앞으로도 바다 건너에서 근무해야 하는 시간이 더 많아질 거야. 마음 단단히 먹어.”
이민호가 원하는 것은 간수군들이 아예 대만에 정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살 만한 곳이라야 그런 생각도 들 것 같았다. 지금은 절대로 간수군들에게 대만에 정착하라고 강요할 수 없을 정도였다.
“밖에 오래 나갈수록 늠료를 더 많이 주지 않습니까? 언제든 환영합니다.”
“그래. 사흘 푹 쉬고 나흘 뒤 아침에 이곳 소포에 모여라.”
일의 시작이 아침이라 이민호는 당연히 아침에 모이라 했는데, 보다 못한 사공이 참견을 했다.
“첨정 나리! 그 날은 다섯물이니까 사시에 모이면 곧바로 출항할 수 있습니다.”
“그래. 다들 사공 말 들었지? 사시에 모인다. 늦지 마라.”
이민호는 아직 물때를 몰랐다. 사시라면 오전 10시 전후였다.
“네 척이 개척지로 급하게 쌀을 싣고 가야 하니까 더 못 쉬게 해서 미안하다. 그때까지 쉬고, 절대 술 먹고 사고 치지 마라. 특히 일본이나 다른 섬에 간 이야기하면 안 된다. 알지?”
“예! 저희들은 그 동안 안도에서 봉수대만 열심히 쌓았습니다.”
외부적으로 윤선은 한성에 내수사 물건을 운송하고 간수군들은 안도에 연대를 쌓는 일에 동원됐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눈치 빠른 사람들은 대충 이민호가 하는 일을 알아챘을 수도 있었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쌀 3천 석을 사서 그나마 시간 여유가 있는 셈이었다. 원주민들이 만 명씩 오면 안 되겠지만 그 이하라면 간당간당하게 쌀을 지급할 양은 됐다. 그 동안 이민호는 축성기술자와 건축기술자를 불러 대만에 가자고 설득해야 한다.
드디어 소포에 도착해 간수군들이 우르르 배에서 내렸다. 이민호는 파도치는 바다에서 소리를 지른 바람에 목이 쉴 것 같았지만 마지막으로 간수군들 등 뒤에 대고 크게 외쳤다.
“수고했다. 나흘 후에 보자!”
“첨정 나리도요~ 와아!”
간수군들이 소포에 있는 상단의 분점으로 몰려갔다. 양인이 비단이나 은을 쓸 일이 없으니 분점에서 면포로 바꿀 생각들이었다. 다들 면포 30필씩 이고지고 웃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면포 30필이면 미곡 가격변동에 따라 쌀 열 가마 이상도 될 수 있었다. 한 달도 안 돼서 웬만한 하급 무관의 9개월 녹봉을 넘어선 쌀을 벌어들인 셈이었다.
“도련님, 머나먼 상행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바쁘신 대방이 어찌 좌수영까지 내려오셨소?”
이민호는 간수군들과 사공들을 집으로 보내고 해동상단 분점을 방문했다. 소포 선창이 내려다보이는 객방에 대방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이에 직원들이 배지기 몇을 고용해 외륜선 네 척을 지키게 했다. 상단과 계약된 목동들이 배에서 소를 몰고 나가고, 그 전에 배에 쌓인 쇠똥을 치웠다. 이민호가 보기에 이번 상행에서 사람보다 소들이 고생을 더 많이 한 것 같았다.
“지난해 상단 활동 보고서입니다. 도련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맨 앞면에 요약보고서를 첨부했습니다. 동래부를 도와 왜관과의 관무역을 대리하는 과정에서 이익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도련님께서 금과 은을 바꾸는 거래를 하실 때 필요하신 것 같아 금괴를 준비했습니다.”
“뭘 이런 걸 다. 고맙소.”
뜻밖의 횡재에 반가워 이민호가 대방이 내민 금괴 상자를 덥석 받았다. 상자를 열어보니 금괴에서 찬란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햇빛을 받은 금괴는 정말 아름다웠다.
같은 주인의 주머니이긴 하지만 그래도 상단의 회계가 따로 있으니 공짜로 받을 수는 없었다. 수원 본가 사창에서 면포 2백 동, 즉 만 필 또는 그 값어치에 해당하는 백미를 인출해가라는 증서를 작성해서 대방에게 건네주었다. 자산이 계속 불어나는 사창을 적정 규모로 유지하려다 보니 요즘은 어떤 이유로든 빼서 써야 했다.
봄이 와서 면포보다 쌀값이 오르는데도 대방은 쌀이 아닌 면포를 택했다. 올해 풍년이 들 거라고 예상했거나, 면포가 필요한 사업이 있는 모양이라고 이민호는 추측했다.
“지난해 요동과 일본에 풍년에 들어 면포 가격이 아주 높습니다. 밖으로 가져 나가면 조선보다 최소 네 배 가격을 받습니다.”
“오호! 많이 올랐군요. 좋은 정보요.”
“동래부사가 조정을 통해 요청했는데도 송상에서 내상에게 홍삼 찌는 기술을 안 가르쳐줍니다. 개경유수도 중국에서 홍삼 가격 폭락을 불러온다고 반대하고 있습니다. 풍기 인삼이 아닌 개경 홍삼을 일본에 팔라는 뜻입니다. 그럼 개경에서 홍삼은 물론 인삼 생산을 더 늘리겠죠. 다 먹겠다는 겁니다.”
동래부사가 조정의 허락을 받아 지난해부터 일본과의 인삼 교역량을 늘렸다. 경상도 풍기에서도 인삼 농사를 짓는데 홍삼 찌는 기술이 없어 기술자를 요청했으나 개경 상인들이 필사적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수입한 홍삼을 절반도 소비하지 않고 대부분을 명나라로 다시 수출한다는 것이 개경 상인들의 주장이었다.
경강상인들은 전통적으로 송상과 경쟁관계였다. 대방도 경강상인인 만큼 송상보다는 내상과의 협조관계를 더 중시했다.
“음. 사실 내가 일본에 내수사의 홍삼을 팔고 있어요. 관무역을 통해 홍삼이 들어가면 나도 손해를 봅니다.”
“죄송합니다. 계획을 취소하겠습니다.”
“하지만 동래부와 내상, 풍기 인삼 재배농가와 수집상들까지 해서 이해관계가 많이 걸려 있어요. 가격이나 보관에서 홍삼을 파는 편이 확실히 낫지요. 그러니 경강의 증포 가마를 통해 한 해 일정량만 홍삼으로 쪄서 동래부에 건네주세요. 어느 정도가 좋겠어요?”
말이 홍삼을 찐다고 하지만 사실 수증기로 건조하는 방식이었다. 한성에 유일한 증포 가마를 두고 관에서 독점적으로 운용한 것은 조선 후기였으니 아직 민간에서 홍삼을 찌는 행위에 대한 법적 규제는 없었다.
해동상단에는 인삼 판매권이 없기에 북경으로 가는 사신 수행원들이 요구할 때와, 태평관에서 명나라 사신 수행원들과 사무역이 열릴 때 쓸 홍삼을 증포 가마로 쪄주고 있었다. 내수사에서도 이 가마를 이용해 만든 홍삼을 이민호에게 넘겼다.
“백 근 정도면 왜상들이 요구하는 양의 4분지 1쯤 될 겁니다.”
“그 정도로 합시다. 고가 정책을 유지해서 왜은을 최대한 빨아먹어야 합니다.”
중국은 개방된 지역이라 건국 초기에 공세적으로 확장할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수세적인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러나 일본은 섬나라라서 국력이 신장됐을 때는 영토적으로도 확장하려는 경향이 있었고, 그때마다 조선이 첫 번째 피해자가 됐다.
그게 아니더라도 돈을 많이 벌면 개인적으로도, 국가적으로도 일단 좋은 것이었다. 비단처럼 노동력이 심하게 많이 드는 제품이 아니라 홍삼이나 백자처럼 고부가가치 제품이라면 백성들의 복지하락을 우려할 필요도 없었다.
“수입 품목은 어떤 것이 좋겠습니까? 유황은 관아에서 부족하던 양을 이미 채워서 이제는 구리와 후추 등 향료에 치우치고 있습니다. 국내 구리 가격이 많이 떨어지고 있어서 향료를 주요 수입 품목으로 삼을까 합니다.”
“앞으로 고추가 본격적으로 재배되면 식품용 향료는 수입할 필요가 줄어들 겁니다. 가급적이면 구리를 많이 사도록 하세요. 국내 상인들이 제시하는 가격보다 좀 더 높여도 됩니다.”
“명나라에서 일본 구리를 비싸게 사니까 국내에서 못 팔면 명나라에 넘기겠습니다. 요즘 명나라에 군사용으로 사용될 구리가 많이 부족하나 봅니다.”
“그게 아니라 일본의 구리에는 은이 조금 포함돼 있어요. 일본에서는 은을 뽑아낼 기술이 없지만 명나라에는 그 기술이 있어 구리값에 은값을 포함한 가격을 쳐주는 것입니다. 다른 상인들이 조선에서 수입한 일본 구리를 중개료만 조금 받고 명나라에 넘기던데 그건 손해입니다. 은을 추출하거나 명나라에 더 비싸게 받고 파세요.”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순수한 은광은 드물고 은과 아연, 은과 금, 은과 납 이런 식으로 산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민호는 유황을 적절히 조선으로 빼돌려 임진왜란에 대비하려는 생각이었는데, 명나라와 무역하면서 구리보다 유황을 택하면 바보 짓하는 꼴이 되어 곤란해졌다.
“어쩐지 내수사에서 사업을 많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내수사 전수께 선물을 보내도 받기를 거부하십니다.”
“그 짠돌이 영감이 나를 그렇게 부려먹었으면 가끔 보태주는 것도 있어야겠지요.”
이민호가 으드득 이를 갈았다. 어렸을 때 어물전 점원을 했었는지 내수사 전수는 전혀 만만한 인간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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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야기가 좀 남았는데 그냥 챕터를 바꿔서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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