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ire of the Warm Sea RAW novel - Chapter 5
* 5화 *
부친이 팔도군안(八道軍案)에서 본 선조 대의 전체 병력은 보인을 포함해 35만이었다. 수륙군 정병과 보인을 모두 합한 군정은 전라도에 83,685명, 충청도에 40,530명, 경상도에 94,056명인데 이것은 평상시 정원이라 했으니 전시에는 잡색군과 분부군, 운량병을 확충해 확 늘어난다는 뜻이었다. 군량만 확보된다면 백만 대군도 불가능하지 않았다. 물론 전근대 시대에는 군량을 필요한 지점에 운반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이민호가 현대 한국에서 듣기로 그것은 서류상의 병력에 불과하다고 하는데, 전쟁 나면 진짜로 그 숫자가 징발돼 전선에 배치됐다. 부친이 통제사 대감의 장계초 사본이라면서 보여준 서류에는 분명 그 숫자가 기록돼 있었다. 병력 징발은 고을의 권한이며 책임이라 고을 수령과 아전들이 징계를 받기 싫으면 군적을 새로 고쳐서라도 장정들 수를 맞춰 모아 보낸다고 했다.
“그런데 본론으로 돌아와서, 매년 소출 만석으로는 수군들 코에도 못 부친다. 계사년에 굶어죽은 사람이 많고 수군이 떼로 돌림병에 걸려 죽은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한 탓이니 네 말 대로 돈을 벌어 미리 준비해야겠구나.”
“저는 이 시대를 잘 모릅니다. 아버님과 대화를 하면서 재산을 불릴 방도를 찾아봐야겠습니다.”
“그런데 민호야. 나는 명색이 귀양살이 중이란다. 어제 같은 경우야 특별한 날이라서 넘어갔지만 국법에 따라 너는 나하고 같은 집에 살 수 없다. 그러니 수영 성하 마을에서 살면서 가끔 찾아오려무나. 네가 물에 빠져 죽은 것은 근친을 하러 오다가 배가 뒤집힌 탓이다. 그러니 배에 탈 때마다 항상 조심하여라.”
근친이라는 말을 듣고 야설을 떠올린 이민호가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근친(覲親)은 새색시가 친정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뿐만 아니라 자식이 부모님을 찾아 인사드린다는 뜻도 있었다.
대화중에 이민호가 못 알아듣는 말이 많아 부친께 말뜻을 자주 물어봐야 했다. 40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같은 언어에서 단어의 절반이 바뀐다는 언어사 연구가 있다지만 이민호가 느끼기에 이 시대 조선말과 한국말의 차이는 그보다 적은 것 같았다. 처음에 알아듣기 어려웠던 발음도 익숙해지니 이민호가 자연스럽게 따라할 수도 있었다.
“혜영이와 혜진이가 어린 나이에 비해 무척 똑똑하니 웬만한 집안일은 믿고 맡겨도 된다. 어디 다른 데 시집 못 가고 너하고 평생 함께 살아야 할 테니 절대 둘에게 함부로 대하지 말거라. 그리고 성하 마을 집에 집사와 마름들이 있으니 맘껏 부리도록 해라. 대부분 최소한 3대에 걸쳐, 어떤 이들은 개국 초부터 우리 가문에서 일을 해왔으니 믿을 만한 사람들이야. 일은 시키되, 섭섭지 않게 잘해주도록 해라.”
“명심하겠습니다, 아버님.”
밀무역이나 천일염전을 하는 게 가장 큰 돈이 될 텐데 만에 하나 아랫사람이 관아에 고변이라도 하면 이민호를 비롯해 관련자들은 참수당할 게 빤했다. 만약 부친이 가난했다면 서해안 무인도나 인적이 드문 섬에서 시작하는 게 유리하겠다 싶었는데 부친 덕택에 무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런데 민호 네가 살던 시대에는 유교 경전을 배우지 않는 모양이지? 흔히 쓰는 문자도 못 알아듣고 물어봐서 하는 말이다.”
“제가 살던 시대에는 유교 경전을 배우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다른 학문을 배웁니다. 학문 종류가 너무 많아 다 말씀드리긴 곤란하나 저는 주로 공학 계열만 배웠습니다. 뭐 만드는 학문 말입니다.”
“뭔가 만들 때도 학문을 배워야 하나? 으흠. 과거시험에 잡과나 산과도 있으니 세상이 달라지면 그런 것도 학문이 될 수 있겠군.”
“하하! 제 기분 신경 쓰지 마시고 그냥 보통 때처럼 말씀하셔도 됩니다.”
이민호는 학부 3학년 겨울 방학 동안 변리사 시험공부도 두 달 정도 했다가 포기했었다. 변리사법 8조에 특허권 소송의 대리권이 변리사에게 있음을 명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특허권이 중심인 산업재산권의 침해소송에 관한 소송대리권의 유무를 두고 변호사 쪽에서 말이 많아 열이 받은 탓이다.
또한 공돌이는 아무리 똑똑해봤자 인문사회계열 출신 경영자들에게 착취당하는 구조가 한국 산업계에 고착된 지 오래였다. 십 년 넘게 연구해 특허를 취득해봤자 대기업과의 지루한 소송 끝에 패하거나 간신히 이기더라도 망하기 십상이었다.
조선시대에도 공돌이들이 착취당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사농공상 순서가 그렇듯 공인들은 신분이 낮은 상민이거나 천민에 속했다. 특허법도 없으니 새로운 것을 개발해봤자 지적재산권을 보호받지 못한다. 이민호가 특이한 물건을 만들어도 언제든 복제되고 이민호에게 새로운 금속제련법을 배운 장인들이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그래도 조선은 유교를 정치와 경세의 기본으로 한다. 살아가면서 남들에게 무식하다는 소리 듣기 싫으면 남는 시간에 기본적인 유교 경전 정도는 배우도록 해라. 진사나 생원만 되면 더 이상 바라지 않으마.”
“과거를 꼭 봐야 합니까?”
“책 읽기 싫으면 나처럼 무과에 급제해도 된다. 식년시가 당연히 더 좋지만 돈이 있으니 무과 별시도 나쁘지 않다. 내년 초에 니탕개의 난이 있고 5년 후에 정해왜변이 있으니 매년 별시 때마다 천 명 가까이 뽑을 것이다. 다만 무과에 합격하고 벼슬에 오르지 못한 자를 신선(新選)이라 하는데 조정에서 수시로 불러서 군량 운반 같은 하찮은 일에 부려먹는다는 문제가 있다.”
“끄응!”
별시라도 무과급제자는 장교급인데 전시 노무자 부리는 식으로 부려먹는다면 그것도 참 곤란했다. 매년 수백 명 단위로 뽑으니 별시 무과가 쉽긴 한데 급제한 다음 걸핏하면 소집해서 인신의 자유가 제한된다면 확실히 문제가 있었다. 그렇다고 문과를 보자니 조선 천지의 모든 천재들이 응시하는 문과는 합격하기 엄청나게 어려울 것 같았다. 이민호 입장에서는 문과나 무과나 만만한 게 하나도 없었다.
“넌 이제 겨우 다섯 살이다.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생각해도 된다. 공부할 준비가 되면 내게 말해라. 좋은 스승들을 소개해주마.”
“예. 일단 천자문이나 외우고 잘 먹고 잘 자면서 체력이나 키워야겠습니다.”
“무관을 하지 않더라도 키가 크면 좋지. 성장에 필요한 음식이 부족하면 언제든 집사나 마름을 통해 구해서 먹어라.”
“감사합니다. 아버님이 부자라서 제가 편하군요.”
“다섯 살짜리 애하고 오랜 시간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참 새로운 경험인 것 같다.”
“하하하! 예. 저 삼척동자 맞습니다. 다섯 살짜리 꼬마 맞아요. 어휴!”
“껄껄! 꼬마 몸으로 한숨을 쉬니 왜 그리 웃기냐?”
이민호가 오두막에서 나와 주변을 둘러봤다. 전라좌수영에서 바로 남쪽 섬이 돌산섬이라 흔히 부르는 두산도이고 이민호가 있는 곳은 두산도 남쪽 섬이었다. 이민호는 여수시 남쪽 돌산도가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것으로 알았는데 지금은 좁은 해협인 무슬목으로 섬이 분리돼 있다고 한다. 이곳은 두산도 남쪽 섬, 방답의 북쪽이었다. 방답첨사진에 가려면 남쪽으로 고개 두 개를 넘어야 했다.
오두막 주변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들판이 엄청나게 넓어 보였지만 작은 몸으로 봐서 과장된 면이 있을 것이라 여겼다. 사방이 산봉우리로 둘러싸인 고즈넉한 분지 지형에 오막살이 한 채만 달랑 서 있는 꼴이 조금 우스웠다. 부친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임진년에 이순신 장군이 장계를 올려 둔전과 말을 키우는 목장이 된다고 한다.
부친은 유배 중이었지만 집 주위에 가시나무를 둘러 외부인과의 접촉이 차단된 위리안치가 아니라서 어느 정도 운신의 자유는 있었다. 조선 중후기 귀양 간 양반들이 유배지에서 제자들을 기르거나 책을 지은 경우가 많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다만 부친은 매달 초하루에 방답진에 출두해서 방답진첨사에게 점고를 받아야 하고, 전쟁이 나면 수영에 소속돼 군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삭탈관직 당해서 공식적으로 급제로 불리는 다른 이들과 달리 부친은 여전히 전 첨사로 불린다는 점에서 큰 죄를 지은 것 같지는 않았다. 서얼 후손과 마찬가지로 탐관오리의 후손도 문과 응시 자격에 제한을 받는다는데 이민호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이민호는 병을 핑계로 부친의 귀양살이 오두막에 사흘 동안 머물렀다. 그 사이 오두막을 방문한 사람이 아무도 없어 다행이었다. 그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눴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웠다.
부친은 고향인 수원은 물론 한성과 함경도부터 경상도와 전라도까지 조선 전체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부친이 무과 급제 직후 한성에서 훈련원 봉사로 1년 넘게 근무했고, 함경도에서 오랫동안 만호와 첨사, 관직이 없을 때는 함경도 북병영이나 경상감영, 경상우수영에서 군관으로 근무한 덕택이었다.
“만들어 팔거나 교역하거나 간에 돈을 벌려면 상단이 필요한데, 혹시 아시는 곳 있습니까?”
“동래의 내상이나 의주의 만상, 개경의 송상 말고는 큰 상단이 없다. 다만 조졸들과 엮여서 조운선을 이용해 무역을 하곤 하지.”
“무역이라고요? 그럼 명나라나 왜국과 밀무역을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세금을 안 내니 사실상 밀무역은 맞는데 해금령이 엄하고 물길이 험해서 외국으로 나가는 건 아니야. 만약 홍삼 몇 관을 항주나 남경에서 제값 받고 팔 수 있다면야 어마어마한 이익이 되겠지만 그런 간 큰 상인은 없어.”
조선 땅 안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과의 대규모 상거래를 무역이라 칭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홍삼 이야기는 나중에 혹시 모르니 잘 기억해두었다.
이민호는 홍삼이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줄 알았는데 부친 이야기로는 현재는 물론 고려시대에도 홍삼 제조법이 있었다고 한다. 송나라 사신 서긍이 지은 에 솥에 찐 인삼 이야기가 있었다. 드라마나 일부 주장과 달리 인삼 재배는 삼국시대부터였다.
쪄서 말린 홍삼이 9년 정도 지나면 만고의 영약이 되는데 보통 절반 정도는 홍삼으로 제조하고 나서 두 달 안에 곰팡이가 슨다고 했다. 현재 조선에서 홍삼 한 근의 가격은 쌀 50섬 위아래였는데 명나라에서는 가격이 따로 없었다. 공식 조공품은 모두 명 황실에 들어가고 사신이나 역관이 조금 가져가 몰래 판 것은 다들 쉬쉬하며 조심스레 거래한 탓이었다.
그리고 이민호는 부친에게서 조운선을 이용한 대량 거래에 관한 노하우를 들었다. 예전에는 수군 군선이나 조운선이나 모두 맹선을 썼다고 한다. 그러나 맹선은 왜선에 비해 느리고 갑판이 낮아 싸움에 불리해 명종 때 새로운 군선으로 전선이라 칭하는 판옥선이 개발됐다고 한다.
“조운선은 나라를 통틀어 71척이 있고 조졸 신분은 세세토록 대물림한단다. 수군처럼 세습이야. 조운선을 만드는 자금도 조졸들이 내고, 세곡을 운반한다고 해서 세창이나 관아로부터 대가를 받는 것도 아니야. 반대로 운반 중에 세곡이 썩거나 쥐가 먹으면 손실분을 조졸이 물어내야 해. 만에 하나 조운선이 침몰해 세곡을 잃거나 물에 젖게 만들면 치도곤을 당하지. 양반들이 보기에 신량역천 중 수군보다 불쌍한 양인 백성이 바로 조졸들이야. 그래도 조졸들은 안 도망가고, 아전들에게 뜯기면서도 대대로 세곡 운반을 하지. 무슨 돈이 있어서 그럴까?”
“다른 물품을 운반해서 수입을 충당하는 모양이군요.”
“그렇지! 그런데 다섯 살짜리 꼬마 입에서 그런 소리를 들으니 좀 어이가 없긴 하군.”
“저 원래 서른다섯 살이라니까요. 우리 나이로 서른일곱입니다.”
“나이로는 내 동생뻘이지만 겉보기엔 꼬만데 뭐. 우리 아들 보물이 밤새 좀 컸나 볼까?”
“저리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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