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ire of the Warm Sea RAW novel - Chapter 50
* 50화 *
“해중국은 저기 고산국에 비한다면 완전 궁벽한 산골짜기 마을입니다. 왕경이라면 최소한 저 정도로 넓어야죠.”
“농사를 짓기에는 고산국이 좋지만 무역만 하기에는 해중국 쪽이 나을지도 몰라. 만 깊숙이 숨어 있다지만 처음 오는 배가 찾기 쉽고, 바다 쪽에서 공격하기 어려운 반면 방어하기에는 쉬우니까.”
고산국은 북쪽과 동쪽이 산으로 막혔고 남쪽과 서쪽이 훤히 개방돼서 한성부보다 넓어 보였다. 무역은 해중국에서 주로 하고 농업과 어업은 고산국을 중심으로 하면 적당할 것 같았다.
만 양쪽 바위산 고지대를 요새화시키면 바다 쪽에서의 공격을 완벽히 차단할 수 있는 곳이 해중국의 위치였다. 특히 해중국 쪽으로 조만간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배들이 함포를 싣고 올 테니 단단히 준비해야 했다.
“내려가서 좀 자세히 살펴보자.”
“길도 잘 닦였습니다.”
아직은 나무를 자르고 큰 돌만 파내는 수준이었지만 도로 자체는 꽤 폭이 넓었다. 비스듬한 경사를 여유 있게 말을 타고 내려가면서 건설현장을 자세히 살폈다.
해항이 아닌 강상항구에는 선착장과 더불어 부두시설이 갖춰지고 있었다. 창고 몇 동과 세관 겸 무역사무소로 사용할 널찍한 건물의 기초가 다져지고, 언덕 쪽으로는 대장간과 가마가 건설 중이었다. 건물에 소요될 기와와 벽돌부터 엄청나게 많이 구워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선착장에서 강 건너편에서는 갈대밭을 베어 조선소 시설을 만들고 있었다. 둥그렇게 돌을 높이 쌓아 물을 퍼낸 뒤 마른 곳에서 배를 짓고 배가 완성된 다음 수문을 열어 배가 나가는 조선의 선소 방식이었다. 그 안에서는 배를 올릴 선가부터 만들어지고 있었다.
“일본인들도 의욕이 대단하군. 하지만 명나라 앞바다에서 왜선이 돌아다니면 다들 놀랄 테니 명나라나 조선 배를 베껴야겠어. 그런데 양쪽 모두 건설하는 속도가 정말 빠르다.”
이민호는 무슨 건설 시뮬레이션 게임하는 줄 알았다. 이번에 일본에서 기술자 위주로 노예를 구했으니 건설 속도는 더 빨라질 것으로 기대했다. 이민호와 계복은 말을 타고 내려가면서 계속 구경했다.
“그런데 도련님! 저기 들판에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옵니다. 별로 우호적인 움직임은 아닌데요. 500명쯤 됩니다.”
“적인 것 같다. 빨리 가자!”
이민호는 말을 타고 내리막길을 빠르게 달렸다. 고산국 쪽을 개척 중인 인원 중에서 조선인 간수군들이 얼마나 있을지 몰랐다. 간수군은 상시 무장하라고 지시했으니 소총은 항상 들고 다닐 것이다. 그래도 상대방 수가 너무 많아 걱정이었다.
내리막길을 한참 달려 케타갈란족의 움집과 기장밭을 지나 양쪽 집단이 대치하고 있는 곳에 겨우 도착했다. 수확을 마친 조밭 양쪽에 전사들 500명 정도씩 몰려 있었다.
이민호는 말을 몰고 두 집단 사이로 파고들면서 크게 소리를 질렀다. 새로 나타난 원주민들에게 총을 겨눈 채 바짝 긴장하고 있던 조선인 간수군 다섯 명이 이민호와 계복을 반갑게 맞이했다.
“싸움을 멈춰라!”
새로 나타난 원주민들은 이민호가 계복과 함께 말을 타고 오자 놀라 물러섰다. 말이라는 동물은 말로만 들었지 보는 것은 처음인 것 같은 반응들이었다. 물론 침착한 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겁에 질려 무기를 움켜잡고 서너 걸음씩 물러났다.
남아메리카를 정복한 것은 스페인의 화약무기가 아니라 전염병과 말, 갑옷이라고 들었는데 역시 말은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남미와 다르게 이곳에서는 원주민들이 금속제 촉이 달린 화살을 사용하고 있었고, 하필 지금은 이민호가 방탄판이 든 군복을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전투가 벌어진다면 이민호도 위험에 처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냐?”
전투를 각오하고 권총을 빼든 이민호가 중국어로 물었다. 저쪽 부족에도 반차오처럼 명나라에 일하러 가는 원주민들이 있었는지 중국어로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는 아타얄족이다. 케타갈란족 지역에 외부인이 침입해 정복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확인하러 왔다. 말을 탄 당신을 보니 소문이 사실인 것 같군.”
“정복이라고 말하면 케타갈란족을 무시하는 것이다. 나와 케타갈란족은 함께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있으며, 우리는 지배하고 종속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협조하는 관계다. 나는 노예를 부리지 않는다.”
“당신이 리 왕자인가? 면화로 만든 천과 찰기 있는 하얀 쌀로 케타갈란족을 홀렸다더니 말솜씨도 범상치 않군.”
“그래서? 원하는 게 뭐야?”
대답했던 원주민과 다른 원주민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봤다.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다가 처음 당당했던 때와 달리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기, 우리도 좀 도와주면 안 되겠나? 조를 수확하고 있는데 작황이 영 시원찮다. 여름에 보리를 수확하려면 아직 멀었으니 올해는 식량이 많이 부족할 것이다. 작년에 큰 축제가 있어서 술을 너무 많이 담근 탓에 여유가 없다.”
“사정은 알겠지만 지금 우리도 쌀이 부족하다. 나는 내 백성에게만 쌀을 주겠다.”
이민호는 아타얄 원주민들이 불쌍해서 쌀을 나눠주려다가 괜히 한 번 튕겨봤다. 반응은 금방 나왔다.
“쌀을 정말로 주실 거죠? 왕자님 만세, 만세, 만만세!”
“만세! 만세! 만만세!”
아타얄족 원주민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만세를 불렀다. 전사가 500명이면 마을에 남겨두고 온 부족민이 최소 3천 명은 더 있을 것이다. 이들이 투항한 다음 좋은 관계가 이어진다면 소문을 들은 다른 아타얄족 마을들도 연달아 귀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민호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기껏 백미 4천 석을 더 실어왔는데 아타얄족에게도 나눠줬다간 며칠 못 버틸 것 같았다. 이런 식이라면 이민호와 외륜선 네 척은 다른 곳에 가지도 못하고 매일 쌀이나 사러 다녀야 했다. 아직 명나라 항구에 들어가 본 적도 없으니 쌀 구입도 아직은 밀무역에 의존해야 할지도 몰랐다.
“처음부터 일하겠다고 찾아오지 왜 무력시위를 해? 무기 던져놓고 얼른 일해! 저런 복장을 한 간수군들에게 지시를 받아 일을 하도록!”
“예! 신명을 바쳐 논밭을 일구고 집을 짓겠습니다.”
지금 이곳에서는 쌀이 무기였다. 생존과 영토확장에 필수적인, 그리고 아주 효율적인 무기였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 일찍 쌀을 사러 외륜선 네 척을 몰아 복건성 복주로 향했다. 해안선에서 얼마 벗어나지도 않았는데 웬 배가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다가 외륜선으로 접근해왔다.
이민호가 눈에 익어 자세히 봤더니 저번에 거래했던 신라방 사람이 선주인 상선이었다. 마침 장 씨가 갑판에 나와 있었다.
“장 점주 아니십니까?”
“아! 이 귀인을 다시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이렇게 바다 한가운데에서 우연히 또 만나다니 저는 정말 운이 좋습니다.”
우연은 개뿔. 그 동안 바다에서 이민호가 탄 외륜선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쌀이 필요한데 구할 수 있겠습니까?”
“벌써 3천 석을 다 쓰셨습니까? 케타갈란 원주민들이 많이 먹죠? 앗! 실수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신라방 장 씨는 실수한 척 대만 북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고 있다고 전해준 것이었다. 신라방이 아닌 다른 명나라 밀무역상들도 대충 정보를 입수했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이쪽도 더 이상 숨길 것은 없었다.
“저번처럼 쌀을 구해주시오. 이번에는 부두까지 직접 배달해줬으면 좋겠소.”
“깃발 신호로 연락하겠습니다. 한 시진만 기다리시면 쌀을 적재한 배가 올 것입니다.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서쪽 수평선상에 뜬 작은 배에서 빨간 깃발이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봉수대에서 봉홧불을 올리는 것처럼 먼 거리에서 연락을 주고받는 방식이었다.
“있는 대로, 구할 수 있는 대로 보내주시오. 일단 3만 석 정도를 부탁하겠소. 저쪽 강 하구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선착장이 있습니다. 일만 석은 따로 케타갈란족과 아타얄족 경계 지점의 해안에 내려주시오. 결제는 은으로 선금 지급하겠소.”
“오늘 안으로 만 석, 내일까지 2만 석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결제는 은보다는 저번처럼 다른 상품으로 교환하면 더 좋겠습니다. 아! 은을 많이 갖고 계실 귀인을 위해 교환하실 금도 8만 냥을 준비해왔습니다.”
“오오!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그럼 일단 일본 구리를 넘기겠습니다.”
“저번에 넘겨주신 구리에서 은의 함량이 예상보다 높더군요. 그래서 이번에는 1할을 더 쳐드리겠습니다. 양은 많습니까?”
배에 가장 많이 실린 것이 구리였다. 신라방 장 씨가 부른 다른 화선에 구리를 모두 옮겨 실었다. 쌀과 구리의 총액을 계산해보니 이민호가 내야 할 것이 있어 모자란 부분은 거울로 채웠다. 양쪽 모두 만족한 거래가 되었다.
“잠깐 이쪽으로 건너오시겠습니까?”
이민호가 신라방 장 씨를 외륜선 선장실로 초대했다. 무슨 뜻인 줄 알아듣고 장 씨가 하인들을 시켜 황금이 든 궤짝을 외륜선으로 실어 날랐다. 이민호는 장 씨를 아직도 경계했는데 장 씨는 이민호를 너무 믿어주는 것 같아 미안했다.
선장실에서 다시 인사를 나눈 다음 거래를 계속 이어갔다. 이번에는 부친과 전라좌수영 어민들이 지난겨울에 생산한 상품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할 때였다.
이민호가 건해삼을 접시에 담아 상인 쪽으로 들이 밀었다. 서양 상인들이 환장하고 좋아하던 하얀 옥 도자기에 담았는데도 상인의 눈길은 해삼에만 가 있었다. 이민호는 명나라에 옥 도자기를 판매하려는 계획을 취소했다. 명나라 사람들은 흰색을 딱히 선호하지 않았다.
“이 물건은 어떤가요?”
“흑해삼이군요. 돌기가 굵고 많아 모양도 아주 좋습니다. 산동산 해삼이나 아주 가끔 항저우에 들어오는 요동산 해삼보다 나은 것 같습니다. 잠시 물을 부어 불려보겠습니다.”
상인이 찻주전자를 따라 접시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잠시 기다린 상인이 맨 해삼을 입으로 뜯어먹었다. 조선시대 개성상인이 남의 집 뒷간에서 똥을 구입하면서 품질을 판단하기 위해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봤다는 이야기가 생각나 이민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오! 아주 좋습니다. 이 정도면 상품이니 가격만 맞으면 제가 많이 구입하면 좋겠습니다.”
부친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민호가 한국에 있을 때 중국에서 거래되는 해삼의 가격 관련 기사를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중국의 마트에서 건해삼 30마리가 담긴 300그램짜리 해삼선물세트가 2백만 원이 넘게 거래된다고 해서 농담인 줄 알았다. 그래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 홋카이도 해삼처럼 더 비싼 해삼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 때는 서민들도 해삼을 먹었다. 그러나 영국인들이 술루왕국 등을 시켜 노예노동으로 채취한 열대 해삼이었다. 건조 가공한 열대 해삼을 요리하면 두부처럼 푸석푸석해지기 때문에 찬 바다에서 자라 살이 찰진 온대 해삼보다 가격이 훨씬 낮게 거래됐다.
그래서 열대 해삼은 서민용으로 판매되는 해삼이 된다. 어쨌든 해삼 먹은 기분은 낼 수 있는 상품이 되기에 광저우를 통해 대량 수입되었다. 덕택에 아시아와 유럽 해적들이 남태평양 여러 섬들을 노예 약탈전쟁의 지옥으로 바꾸어놓았다. 멀리 이스터섬에 사람이 살지 않게 된 이유로 노예 약탈을 드는 견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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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 편 더 올려야 챕터가 끝날 것 같습니다. 나머지는 내일 올리겠습니다.
제목을 바꿔야겠네요. ㅜ.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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