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ire of the Warm Sea RAW novel - Chapter 559
* 559화 *
함대는 다음 날 시칠리아의 동부 해안 중간 카타니아에 도착했다. 미리 연락을 받은 시칠리아 부왕이 항구에 나와서 이민호를 영접했다.
“영웅 왕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폐하!”
“영웅이라뇨. 오늘 하룻밤만 신세를 지겠습니다. 교황청 특별대사이신 추기경 예하께서 부왕께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
이 시기의 시칠리아 부왕은 베르나르디노 데 카르데냐 이 포르투갈, 마퀘다 공작이었다. 부왕은 이민호를 우르시노 성으로 초대했고, 추기경은 관저로 동행했다.
우르시노 성은 13세기 중반 신성로마제국 황제로서 시칠리아 왕국 국왕을 겸임한 프레데릭 2세가 사용한 왕궁이었다. 우르시노 성은 정사각형에 높은 성벽을 자랑하면서 모서리마다 원형 탑을 세웠다.
당연히 대포 공격에 취약해 나중에는 궁전이나 요새로 사용하지 못하게 됐다. 성을 한때 감옥으로 쓰다가 지금은 높은 신분의 손님을 맞이하는 숙소로 전용됐다.
우르시노 성이 바닷가 높은 절벽에 세워져 있어서 창문에서 멀리 바다 경치가 시야에 다 들어왔다. 이민호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러나 우르시노 성은 1693년에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내륙 1km 정도에 위치하게 된다. 상전벽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곳이었으나, 이때는 아직 바닷가 절벽에 세워진 전형적인 중세의 음침하면서도 고즈넉한 성이었다.
“동화 같은 성이에요.”
“그렇지? 군사적 의미는 없더라도 도시의 경관을 전반적으로 높이는 것 같아. 이런 숙박업소를 왕도에도 하나 만들까? 손님들이 마치 중세 유럽의 왕자나 공주로 착각할 수 있게 말이야.”
“건축비가 너무 비쌀 것 같아요. 숙박요금을 많이 받아야겠어요.”
“그, 그렇겠지?”
민영뿐만 아니라 고산국에서 일하는 후궁들은 이렇게 낭만이 없었다. 이게 다 이민호 탓이었다.
시칠리아는 1409년부터 아라곤 왕국의 직접 지배를 받았고, 1516년부터는 에스파냐의 직접 지배를 받았다. 지중해가 온통 사라센 해적들로 몸살을 앓는 기간에 시칠리아는 몰타 섬의 구호기사단을 경제적으로 도우며 해적에 맞섰다.
구호기사단이 판매하는 무슬림 노예들 대부분을 시칠리아에서 매입하는 것이 경제적 지원 방법이었다. 그래서 이곳 우르시노 성에서도 무슬림 노예들이 손님들의 시중을 들었다.
북아프리카에 노예로 팔려왔다가 구호기사단에 붙잡혀 다시 시칠리아에서 노예로 일하는 흑인들도 있었다. 어느 쪽에 가도 노예인 가장 불쌍한 인간들이 흑인이었다.
다음 날 오전에 알바니아 이주민 대표들이 방문했다. 노인과 장년을 위주로 10여 명이 기가 죽은 모습으로 이민호에게 절을 올렸다. 이때 알바니아인들은 현대 국경 기준으로 알바니아와 코소보, 몬테네그로 남부, 그리고 마케도니아 서부에 주로 분포했다.
시칠리아에 어째서 알바니아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이민호는 이해하지 못했다. 알바니아 사람들이라면 오스만 제국이 점령한 발칸반도에서 특권층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지중해에서 해적질하다가 구호기사단에 사로잡힌 노예인가 했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제국에서 알바니아인들이 총독이나 제독 같은 고위 정치가, 군인, 관료 등으로 나선 경우가 많았다. 북아프리카나 이집트에서도 알바니아 관료나 사략선 선장들을 심심치 않게 봤었다.
그리고 이 알바니아 대표들은 일반적인 무슬림 복장을 입지 않았다. 그저 동유럽 여러 나라와 흡사한 치마 밑에 몸에 꽉 끼는 꽃무늬 바지와 투우사 상의 같은 옷에 망토를 둘렀다.
“알바니아인들은 무슬림이 아니었소?”
“얼마 전까지 알바니아인들 대부분이 로마가톨릭 아니면 그리스 정교를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에게 국토가 점점 점령되면서 알바니아인들이 대대적으로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100년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시칠리아로 이주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알바니아인들은 이탈리아, 그리스, 이집트로 대규모로 이주했으며, 알바니아인으로서 정체성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이민호는 알바니아인들이 신앙의 자유를 위해 이주했다는데 어째서 오스만 제국 지배하에 있는 그리스와 이집트로 이주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꾸준히 이주하는 것도 아니었다. 알바니아 땅에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고 오스만 제국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될 때마다 한꺼번에 배 몇 백 척 단위로 이주했다고 한다.
장화 모양을 닮은 이탈리아 남부에서도 발가락 부분과 발뒤축 부분에 알바니아인들이 특히 많이 이주했다. 시칠리아에서는 주로 북서쪽 해안 도시인 팔레르모에서 내륙으로 좀 들어간 곳에 마을 몇 개를 건설했다.
오늘 알현을 신청한 자들은 시칠리아 왕국의 카타니아와 메시나, 시러큐스에 거주하는 자들 외에도 바다 건너 나폴리 왕국의 남단 고원지대에 거주하는 자들이었다. 시칠리아에 거주하는 알바니아인 다수는 이민호가 카타니아에 온 줄도 몰랐으나, 뜻은 알현을 신청한 자들과 같을 거라고 보장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을 물었다.
“북미로 이주하고 싶어서 온 것이오?”
“그렇습니다, 폐하. 저희들은 로마가톨릭을 믿는 아일랜드인도, 신교도인 프랑스 위그노도, 에스파냐에 살던 무슬림도 아닙니다. 저희도 북미로 이주할 수 있겠습니까?”
“종교나 인종은 전혀 상관이 없소. 북미로 가면 무엇을 하고 싶소? 직업 말이오.”
“저희들이 알바니아에 살 때는 농민과 목동이 반반이었으나 시칠리아에서는 주로 산기슭에서 양을 치는 목동을 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다 할 수 있으니 그저 시켜만 주십시오.”
알바니아 산악지대나 시칠리아 고원지대와 비슷한 지형을 북미에서 찾기 어려웠다. 이들이 살던 곳과 비슷한 지형인 로키산맥을 개발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알바니아와 비슷한 곳이 좋겠지만 북미에 고지대로서 선선한 곳은 없소. 덥고 건조한 평지와 춥고 습기 찬 호숫가 중에서 고르시오.”
“아무래도 더운 곳이 좋겠습니다. 춥거나 덥거나, 습기 찬 곳은 저희들이 살기에 최악일 것 같습니다. 덥고 건조한 지역이 북미에도 있습니까?”
알바니아인들은 일단 더운 곳을 골랐다. 그리고 텍사스와 플로리다 중에서 더 건조한 텍사스로 낙점됐다. 플로리다나 미시시피 강 유역은 프랑스 위그노 위주로 개발시킬 예정이었다.
“인원은 얼마나 되오?”
“시칠리아와 나폴리 왕국을 합쳐 4만 정도 될 것입니다. 지금도 가끔 알바니아에서 배를 타고 이탈리아 남부로 넘어오고 있습니다.”
“나폴리 왕국에 사는 알바니아인들에게도 내 말을 전하시오. 한 달 안으로 시칠리아와 나폴리에 배를 보내겠소. 북미 남부에 가면 농업이나 목축을 희망에 따라 선택하시오.”
알바니아인들을 이주시키는 대신 나폴리에서 교역도 적당히 해줘야 했다. 함대에 상품이 없다니까 몹시 실망하던 나폴리 상인들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나 제노아에서 상품을 다 팔아버린 것은 이민호의 의도가 작용했다.
나폴리는 따로 산업이랄 것도 없고 주로 중개무역에 의존했다. 생산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무역항이라면 고산국에서 짧은 시간에 말려죽일 수도 있었다. 동 지중해는 베네치아와 크레타, 서 지중해는 발렌시아, 북아프리카와의 무역은 몰타 섬을 중점적으로 키우면 아무리 지리적인 이점을 갖는 나폴리 왕국이라 해도 손가락만 빨아야 했다.
“감사합니다, 폐하! 폐하의 백성으로서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일한 만큼 부유해질 것이오. 기회는 많소.”
북미 이주 과정에서 새인천 북부의 비옥한 중앙평원에 자리 잡은 농민들이 가장 큰 기회를 잡았다. 그곳 농경지는 금방 농민들로 채워질 것 같았다. 중앙평원에서는 일 년 내내 곡식이 수확되면서 계속해서 세곡이 들어오는데 시장들이 세곡 창고를 짓는 일도 감당을 못할 정도였다.
“고산국은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라고 알고 있습니다. 북미에 가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하오면 저희들의 신분은 어떻게 됩니까?”
“신분? 고산국 백성이면 다 백성이오. 귀족이 따로 없소.”
“저희도 아무런 제한 없이 일등국민이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일등국민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요?”
일등감자도 아니고 일등국민이라니, 이민호는 웬 낡은 식민지시대 용어를 들은 기분이었다.
“고산국은 일등, 에스파냐와 오스만 제국은 이등, 나머지 나라 백성들은 삼등국민이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저희들처럼 고향에서 도망쳐 나온 자들은 삼등국민에도 못 낍니다.”
“맙소사! 모든 사람은 평등하오. 고산국에서 그대들을 차별하지 않을 테니, 그대들도 다른 인종에게 차별대우를 하지 마시오. 흑인이나 북미 원주민을 차별할 경우 큰 벌을 받을 것이오.”
“명심하겠습니다, 폐하.”
북미 새순천에 흑인노예를 실은 에스파냐 배들이 들어온 적이 있었다. 노예를 매입하지 않는다고 유럽 여러 나라에 알렸지만 밀수를 시도하는 노예상인들은 언제든 있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새순천 시장 강항이 흑인노예들을 압수하고 배를 불태워버렸다. 에스파냐와의 관계를 감안해, 노예상인들은 곤장 스무 대를 맞은 다음 리스본으로 압송됐다. 다시 노예무역을 시도할 경우 평생 탄광에서 강제 노역을 시키겠다고 단단히 경고한 다음이었다.
“텍사스에 가면 아마도 양이 아닌 소를 키워야 할 것이오. 시칠리아 부왕에게 부탁해서 말을 몇 백 마리 준비해줄 테니 이주 희망자들은 미리 승마를 배워놓으시오.”
“소를 키우는데 말을 탈 필요가 있습니까?”
“당신들이 생각한 것보다 단위가 좀 클 것이오.”
텍사스에서 카우보이로 일할 자들을 구했다. 목축은 원래 여진족에게 맡길 계획이었으나, 북미로 이주한 여진족들이 정착하는 것보다는 계속 군대에 남기를 원했다. 목장을 대신 맡아줄 사람들이 필요했는데 마침 잘 됐다.
알바니아 주민 대표들과 오찬을 함께 했다. 알바니아인들이 황송해했으나 당신들도 이제 일등국민이라는 말로 간신히 착석시킬 수 있었다.
“폐하! 궁전으로 오는 길에 시장에서 이상한 말을 들었습니다.”
“무엇이오?”
“고산국이 시칠리아와 나폴리에서 무역을 안 하는 것은 지중해 중심에 있는 이들 지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고산국 함대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카타니아로 몰려든 두 나라의 상인들이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래요? 상품이 매진된 것뿐이오.”
이민호는 속셈을 들킨 것 같아 뜨끔했다. 제노아에서 아예 작정하고 다 팔아버려서 여기서는 팔 물건이 없었다.
그런데 오찬을 마치고 디저트를 먹을 때 특이한 것을 발견했다. 평범하게 설탕을 잔뜩 넣어 만든 과자인데도 알바니아인들이 마치 천상의 음식을 맛 보는 듯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덴마크 공주와 시녀들을 초청해 식사를 할 때도 비슷한 반응을 봤었다.
“지중해 지역에 오래 전부터 이미 설탕이 들어오지 않았소?”
“물론입니다, 폐하. 십자군전쟁 때부터 유럽에 설탕이 수입됐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가격이 비쌉니다.”
“옛날에는 같은 무게의 금과 비슷한 가격이었다고 들었소. 향신료라면 몰라도 설탕이 그렇게 비싸다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요. 그렇지 않소?”
“제가 그리스에서 상인을 했습니다만, 과장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폐하. 물론 지금은 가격이 많이 낮아졌지만 같은 무게의 밀보다 백 배 정도 비쌉니다.”
이민호가 잠시 멍해졌다. 고산국 개국 초부터 화약을 만들기 위해 전략적으로 대량 재배한 작물이 사탕수수였다. 남아도는 사탕수수로 설탕을 생산해 동남아시아는 물론 아랍 지역에도 비싸게 팔아먹었다. 아부다비에서는 토후들에게 선물로 돌렸다.
그러나 고산국 본국에서 에스파냐 상인들에게 설탕을 많이 팔았으므로, 유럽에 와서 설탕을 직접 판매한 적은 없었다. 또한 무어인들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하고 설탕정제법을 알고 있었기에 에스파냐 상인들에게 설탕을 비싸게 팔 엄두를 못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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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이야기, 유대인 이야기를 마친 다음 이집트로 넘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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