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ire of the Warm Sea RAW novel - Chapter 669
* 669화 *
이번에는 시간 여유가 있어서 벼르고 벼르던 쿠바의 아바나에 입항했다. 1589년에 완공된 모로 성을 비롯해 양쪽에 줄줄이 요새가 세워진 비좁은 엔트라다 해협을 통과했다. 순양함 양현에 수병들이 한 줄로 늘어선 것과 같이 성벽에 오른 요새 수비병들도 간격을 맞춰 똑바로 서는 식으로 인사를 교환했다.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꽤 넓은 항구 세 곳이 시야에 들어왔다. 도시 전체에 프랑스나 영국, 네덜란드 해적들에게 약탈당한 흔적이 남아 있었으나 아바나는 여전히 쿠바 섬에서 가장 활발한 도시였다.
국왕좌승함이 부두에 접안하는 동안 아바나의 관리, 군인, 상인들이 잔뜩 몰려와 고산국 함선들의 입항을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특히 이번에는 고산국 국왕이 직접 방문했다는 소문이 퍼졌는지 아바나 시민 거의 전부가 구경하러 몰려들었다.
“내립시다, 비올레타. 쿠바 사람들이 우방국 대접을 확실히 해주는 것 같소.”
“무역만으로 이 커다란 도시가 유지되는 것이 신기해요. 사탕수수를 재배하기에 적당한 기후인 것 같은데 왜 안 하죠?”
같은 합스부르크 가문인 오스트리아 외에는 유럽에 친구가 없는 에스파냐에게 고산국은 소중한 친구였다. 고산국에서도 북미 영토를 할양해준 에스파냐에게는 항상 최고의 우방국 대우를 해주었다.
아바나에 군항을 둔 에스파냐 해군이 바다 건너편 북미 플로리다에 전개된 고산국 대서양 전단과 함께 플로리다 해협을 틀어막고 있었다. 해협을 순찰하는 양국 함선 단 몇 척만으로도 넓은 멕시코 만 전체에서 해적의 위협을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고산국 해군 대서양 전단은 에스파냐 해군과 긴밀한 협조 관계를 맺고 가끔은 공동으로 카리브 해의 해적 토벌작전에 나섰다. 양국 함선들이 상대방 항구를 자주 방문했고, 수병들은 모항에서처럼 안전한 나들이를 즐겼다.
“사탕수수 재배가 돈이 된다는 것은 에스파냐도 잘 알고 있을 것이오. 아마도 인력이 부족해서 못하는 것 같소.”
에스파냐는 현재 필리핀과 마찬가지로 쿠바에서도 노예를 대량으로 투입하는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업을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 덕택에 고산국 몇몇 지역에서 생산한 설탕을 유럽에 높은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었다.
“신세계의 열쇠이며 서인도의 방벽인 아바나 ‘시’는 고산국 국왕폐하 부처(夫妻)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공식 환영행사에서 아바나 시장은 ‘시’에 엄청난 강세를 넣어 발음했다. 펠리페 2세의 칙허로 시의 호칭을 받은 것이 1592년으로 몇 년 안 됐기에 시장의 자부심이 남달랐다. 신세계의 열쇠이며 서인도의 방벽이라고 칭한 것은 에스파냐 왕국에서 허가해준 아바나의 공식 별칭이었다.
“아바나는 친구의 나라 에스파냐의 영토 중에서도 천국에 가장 가까운 곳 같소.”
“하하! 감사합니다, 폐하.”
그러나 고산국은 몇 년째 에스파냐령 쿠바를 침략 중이었다. 이 침략전쟁에서 고산국 대서양 전단 소속 군의관들이 주력을 맡고 있었다.
유럽인들이 가져온 전염병에서 아직도 살아남은 쿠바 원주민 마을들이나 항구 주변의 빈민촌, 집창촌 등을 군의관들이 돌아다니며 의료봉사를 하는 것이 작전의 중심이었다. 당장은 고산국이 쿠바를 공격할 일은 없겠지만, 도움을 받은 이들이 유사시에 에스파냐가 아니라 고산국 편을 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래를 대비하는 것은 군주의 의무였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 등이 쿠바에 상륙한 다음 거점을 마련하는 동안 했던 것은 무장투쟁이 아니라 주민들에 대한 의료봉사였다. 의료봉사와 약간의 선전, 선동만으로 산간 오지 마을들을 혁명군 지지 세력으로 돌려세울 수 있었다.
“펠리페 2세 국왕폐하께서는 좋은 군주이셨습니다만, 그 분이 돌아가시면서 쿠바의 경제 사정이 조금 나아졌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소?”
“전 국왕께서는 시가나 담배를 몹시 싫어하셨거든요. 본국에서는 공개적으로 시가를 피우기 어려운 분위기였습니다.”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와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는 광해군처럼 담배를 혐오하기로 유명한 군주들이었다. 그러나 담배를 싫어하는 국왕들의 치세에도 담배는 꾸준히 퍼져 나갔다.
“아하! 그렇군요. 쿠바에서 품질 좋은 시가를 생산한다고 들었소. 요즘 들어 쿠바 시가의 유럽 수출량이 대폭 늘었다지요? 하지만 고산국에서도 같은 품종의 담뱃잎을 생산하고 있어서 이해하기 어렵소. 영업비밀이 아니라면 알려주시겠소?”
고산국에서도 북미 남부와 필리핀 지역에서 시가를 생산했다. 1592년 마닐라 갈레온 산 클레멘테에 실린 담배 씨앗 110파운드가 필리핀 여러 지역의 전도소로 보내져 선교사들이 담배를 재배했다. 담배는 몇 년 새에 아시아 전역으로 금방 퍼져 나갔다.
필리핀은 담배 재배에 적합한 기후였고 토질도 좋았다. 현대 들어서 필리핀 담배는 싸고 독한 담배로 평가받았으나, 고산국 농업 연구소에서 필리핀 담배를 세 가지 품종으로 개량해서 대량 생산했다.
얼마 전까지 유럽에서는 북미 원주민들을 따라 파이프에 담뱃가루를 넣고 피우는 방식과 쿠바 원주민처럼 잎을 말아 만드는 방식의 시가가 더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고산국에서 종이에 말고 필터를 부착한 궐련을 생산하면서 담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물론 애연가가 늘어난 만큼 암환자도 늘었고 화재사건은 더더욱 늘어났다.
“일부러 사람을 사서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으니 당연히 비밀이 아니지요. 아바나 ‘시가로’는 여인들이 허벅지 사이에 비벼서 만든다는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아하! 거 참 야릇한 맛이겠소. 한 수 배웠소.”
“젊은 여자가 농사를 짓느라 바빠 시가를 말고 있을 틈이 어디 있겠습니까? 대체로 할머니와 꼬맹이들이 시가를 마는 일을 하는데 어쨌든 여자는 여자니까요.”
쿠바 시가에 비해 고산국 시가가 품질이 훨씬 좋았고 향에 기품이 서려 있었다. 최고의 담뱃잎을 엄선해 재료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몇 가지 향신료와 방향제를 첨가한 탓에 원가도 올라갔다. 궐련 형태와 달리 시가는 기계화로 대량 생산하기 어려워 근로자도 다수 고용했다. 원가가 많이 들었지만 쿠바산 시가는 몇 년 내에 사라질 거라고 자신만만했다.
그러나 최근 유럽에서 갑자기 쿠바 시가의 인기가 폭발했다. 왜 그러나 했더니 에스파냐 관리들이 시가의 주요 소비자인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를 자극한 덕택이었다. 기호식품의 선택을 좌우하는 가장 결정적 요인은 품질이 아니라 상품 이미지였다.
아바나 시청사에서 하루 묵고 새동래로 향했다. 원주민들의 압력에서 벗어난 새동래는 요새 도시 같은 삭막한 인상에서 벗어나 주변 토지를 빠르게 개발해나갔다. 시청에서 경운차를 지원해주긴 했지만 프랑스 이주민들과 새동래에 협력하는 우호적인 원주민들이 개발의 주체였다.
그리고 해적질하다가 붙잡혀 베라크루스에 넘겼던 프랑스 죄수들이 얼마 전에 몸값을 내고 겨우 풀려나왔다. 프랑스 국왕이 약속을 지킨 셈이었다.
그 해적들 중 일부가 가족과 함께 새동래에 정착했다. 해적이라고 해서 무작정 다 죽이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결과가 나왔다. 전직 프랑스 해적들은 주로 포도밭에서 일했다.
그 다음 기착지는 새강릉이었다. 정원수가 커가면서 해가 갈수록 별궁의 운치를 더해갔고, 날이 더울수록 시원한 그늘을 드리웠다. 일 년 사이 취수구를 통해 연못에 들어온 악어 네 마리가 붙잡혔다.
포우하탄 연합의 대추장을 시청 건물 옥상에서 다시 만났다. 새강릉 시청과 포우하탄 대추장은 이민호의 예상과 달리 담배 생산 면적을 겨우 30퍼센트밖에 안 늘렸다. 그에 반해 담배가 유럽에서 인기를 끌면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요즘 갑자기 아바나 시가가 잘 팔린 이유를 알았네. 쿠바 여인들이 허벅지 사이에서 시가를 만다는 소문을 유럽에 내고 있어서 인기가 높아졌다는군.”
“유럽인들은 여자들의 그곳 냄새가 좋다는 말씀입니까? 역시 변태 같은 사람들이군요.”
“그러게 말일세.”
대추장이 토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민호도 대추장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대추장은 시가와 담배의 주요 생산자로서 쿠바를 경쟁상대로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일일이 손으로 시가를 만드는 쿠바 여성노동자들을 불쌍하게 여겼다.
“다 같이 먹고 살아야지요. 그리고 쿠바 시가의 생산량은 그리 많지도 않습니다. 쿠바는 땅도 좁고 일할 사람은 더욱 적습니다.”
“그렇긴 하지.”
저임금 노동과 하루 열네 시간의 혹사에 시달리는 쿠바 원주민들에 비해 새강릉 주변 포우하탄 연맹 원주민들이 담배 생산을 통해 훨씬 많은 수입을 올렸다. 일부 기계영농을 도입한 탓도 있었지만 넓은 면적의 비옥한 토지를 전적으로 담배농사에 할당했기 때문이었다. 담배농사의 생산성은 구아노 비료를 쓰는 새강릉이 압도적이었다.
대추장은 요즘 아일랜드 이주민 출신 마부를 고용해 포우하탄 연맹의 수도인 마을에서 새강릉으로 출퇴근하고 있었다. 포우하탄 원주민들은 담배 농사를 짓느라 바빠 한가로이 추장의 마부를 해줄 시간이 없었다.
“다른 지역에서 인종차별로 인해 문제가 생긴 모양이야. 가난한 백인들을 무시하지 말고 잘 대해주게. 내게는 똑같은 백성이니까 말이야.”
“전하의 말씀은 무조건 옳습니다. 백인들도 우리 포우하탄 사람과 똑같이 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백인이 조금 열등한 것 같지 않습니까? 체구도 작고 힘도 딸리면서 뭔가 합리적으로 농사나 장사를 하려는 노력이 부족합니다.”
“아일랜드에서 평생 굶주리며 살아서 체구가 작은 모양이야. 제대로 된 교육도 못 받았어.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게나.”
아일랜드 이주민들이 고산국 북미에 정착하면서 얻은 대표적인 병이 과식으로 인한 소화불량이었다. 이주민들은 참 지독히도 먹어댔다. 평생 제대로 못 먹은 것이 한이었는지 이주한 다음 1년 새에 엄청나게 먹어치웠다.
북미에서 직접 소와 돼지를 키우면서 육류 부족 현상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이주민이 늘어나 호주에서 계속해서 소고기와 양고기를 공급했다.
얼마 안 되는 어민들이 북미 백성들의 단백질 공급 절반 이상을 책임지고 있었다. 이민호도 새강릉에 올 때마다 즐겁게 청게를 먹었다.
새강릉처럼 새원산 맨해튼 섬에도 12층 건물이 세워졌다. 마천루로 불릴 정도로 까마득한 높이는 아니었지만 주변 원주민들은 물론 유럽 상인들에게도 큰 충격을 준 것만큼은 틀림없었다. 다른 건물은 5층으로 고도 제한을 두었다.
새강릉 시청의 교훈을 받아들여 12층과 옥상을 처음부터 관광지로 개발했다. 승강기를 타고 12층과 옥상 전망대로 가려는 사람들로 1층 승강기 출입문에서 시작된 줄이 몇 백 미터나 길게 늘어서 있었다. 구경꾼들이 낸 입장료로 건물 건설비를 뽑고도 남았다.
“가격 인상 때문에 혼란은 없었소?”
“예, 전하. 임금과 함께 일괄적으로 인상이 이루어져서 큰 반발은 없었습니다. 올해 말까지 가격을 더 올리기로 하면서 집집마다 숨겨 놓았던 금과 은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유럽 상인들도 조금이라도 쌀 때 상품을 사려고 몰려와서 교역량이 대폭 늘었습니다.”
새원산 시장은 북미의 물가수준을 높인 일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나중에 가격이 오른 다음에 팔려고 매점매석하는 사람들이 많아 계획보다 가격이 더 높아지는 경우도 흔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일시적이었다. 가격 수준이 낮은 고산국 본토가 배후에 있기에 매점매석이나 사재기를 한 자들은 바로 철퇴를 얻어맞았다.
아직은 곡물을 제외하고는 다른 산업, 특히 본토의 공업 생산력이 북미보다 훨씬 더 높았다. 그래도 가격이 오를 1년 앞을 내다보고 창고에 상품을 쌓아놓고 버티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내년부터 수출액이 확 줄어들지도 모르겠소.”
“사실 지금까지 우리 상품이 비정상적으로 싼 것이 문제였습니다. 무역협회에서 유럽 물가수준에 맞춰서 적당한 가격에 수출했더라도 그 동안 대서양을 오가는 유럽 상인들의 배만 불려준 셈입니다.”
고산국이 대서양 무역에 전면적으로 등장했는데도 면직, 모직, 견직, 모피 등 유럽의 의류산업은 약간 위축된 정도에 그쳤다. 그 동안 수요에 비해 유럽 국가들의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모직 산업의 중심지인 네덜란드에서 걷는 세금이 중남미에서 에스파냐로 유입되는 은보다 많다는 소리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지금도 네덜란드는 모직 산업에서 나온 재원으로 수만에 이르는 군대를 유지하고 있었다.
유럽 상인들이 북미에서 매입한 시점에는 싸고 품질이 좋았던 고산국 상품이 유럽 소비자에게 소매가로 판매될 때는 유럽 생산품보다 높은 가격에 팔려나갔다. 그 차액을 새원산의 무역협회에서 일부 흡수했더라도 지역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인 유럽에서 상인들은 더 큰 이익을 볼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이어질 내용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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