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ire of the Warm Sea RAW novel - Chapter 7
* 7화 *
“도련님! 머리를 자주 감으실 필요는 없어요. 특히 차가운 겨울에는 머리를 차게 하시면 병이 나요.”
“며칠 안 감았더니 가렵잖아.”
“다음에는 가려울 때마다 참빗으로 머리를 빗어드릴까요? 아니면 잘 드는 칼로 정수리를 밀어드릴까요?”
“싫어. 머리 감을 거야. 근데 내 손이 짧아서 머리에 잘 안 닿아.”
이민호가 칭얼거리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던 혜영이 이민호의 머리를 감겨주었다. 편하긴 한데 이민호는 혜영의 손톱 끝이 두피를 긁을 때마다 진짜 아이처럼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다.
“긁지 말고 손끝으로 문지르기만 해.”
“예, 도련님.”
“흥! 사나이가 겨우 아낙네 손톱이 아프다고 비명을 질러.”
비듬 생길까봐 걱정한 게 아니라 실제로 아파서였다. 옆에서 혜진이 쫑알거리는 사이에도 혜영은 나긋나긋한 손짓으로 이민호의 머리를 잘 감겨주었다. 이민호는 다음부터는 미용실처럼 편히 누운 채 머리를 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머리 감기를 마친 이민호가 옷을 훌렁 벗고 물통 안으로 들어갔다. 차가운 바닷물에 빠져 죽은 것이 며칠 전이었는데 뜨뜻한 물이라 살 것 같았다.
“목간통이 충분히 넓으니 혜영이 혜진이도 들어와.”
“어머나! 저희는 도련님을 씻겨 드려야죠.”
“창피한 건 아니고?”
“풋!”
“혜진이 너 어딜 보고 웃는 거야!”
“흥! 볼 거라도 있나요?”
이민호는 다섯 살, 나이가 가장 많은 혜영도 여덟 살에 불과하니 피차 창피할 것은 없었다. 이민호는 혜영이 나이에 비해 생각하는 것이 굉장히 조숙하다고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부친이 참수당하는 장면을 직접 본 뒤에도 나이에 맞게 어리광만 부릴 수는 없을 것이다.
설을 쇠고 정월 보름까지 좌수영에 있었다. 이민호는 수시로 부친에게 찾아가 대화를 청했고, 부친도 기쁘게 맞아들여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이민호가 이 시대에 최대한 빨리 적응하는 것이 문제였으니 주로 부친이 설명하고 이민호는 듣고 질문하는 식으로 대화가 진행됐다. 대화의 범위는 군사나 산업뿐만 아니라 조선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쳤다.
“오늘 소포에서 출항하는데 상인들이 조보(朝報)를 돌려 읽더군요. 그런데 같은 날짜인데도 똑같은 것이 아니라 조보마다 다 다른 것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조선에 충분한 인쇄술이 있는데 어째서 활자로 대량 인쇄하지 않습니까?”
“조보는 승정원에서 매일 만들어 일정한 사람들에게 배포한다. 네가 본 것은 수군절도사에게 내려온 것을 몇 단계에 걸쳐 필사한 것일 게다. 그러니 저마다 필요한 부분만 필사하는 게 당연하지. 그러나 조정에서는 조보를 읽는 사람들의 범위를 제한하려고 한다. 사실 조정 대신들이야 새로운 법이나 윤음 같은 것은 꼭 알아야 하고 그런 게 있으면 편하니 인쇄하자고 청했지만 주상전하께서 용납지 않으셨다. 6년 전에는 한성에서 무뢰배들이 금속활자로 인쇄한 조보를 시중에 판매했다가 외국에 국가기밀을 누설한다고 주상전하의 노여움을 사서 그 사업을 허락해준 관리들이 대량으로 유배를 갔단다.”
수많은 종류의 신문이 발행되는 현대 대한민국에서 살던 이민호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민호 네가 보기에는 이곳 조선의 여러 가지 관행이나 제도가 불합리해 보이겠지. 하지만 너는 제도 자체보다는, 겉보기에 훤히 드러나는 다수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그런 제도가 계속 시행되는지,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제도가 변경되는지 너는 항상 그 뒷면을 주시해야 할 것이다.”
“웬만한 것은 다 이해하겠지만 군역과 공납에 있어서 불균형이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특히 수군은 근무 자체도 힘든데 가장 오래 근무해야 합니다.”
“군역 중에서 수군이 가장 힘들다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다. 힘들어서 도망간다고 수군 신분을 세습하도록 만든 것은 정말 심했어. 그래서 지금 조정은 물론 양반들 사이에서도 가장 많은 말들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수륙군을 수시로 교대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남의 일이라지만 그래도 생각은 하는군요.”
“하하! 그래. 남의 일이긴 하지. 심각하게 여기지는 않더라도 양반들이 문제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니 언젠가 좋은 해결책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수군의 군역이 가벼워지는 것은 이민호가 알기로 자그마치 100년 후였다. 조선의 제도는 분명히 꾸준히 개선되고 있었지만 그 속도는 답답하게 여겨질 정도로 느렸다. 이민호는 원래 계획보다 많이 나서기로 했다.
“상평창이 사실상 본업인 사창을 한다고 했지? 열 달에 5할 이자를 받는 내수사의 장리보다 사창의 이득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나도 안다. 그런데도 장리는 욕을 먹고 사창은 칭송을 받지. 겉치레라도 이익금 일부를 덜어 빈민들을 돕는 탓이다. 되도록 민폐 안 끼치도록 하고, 재산은 남들이 질시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불리도록 해라. 뭐든지 눈에 많이 띄면 욕먹는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수원 사창에서는 적당히 불리고, 좌수영 사창에서는 이익금 전부를 좌수영 내에 환원하도록 하겠습니다.”
부친 이응화의 재산을 기반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부를 늘리는 것도 합의했다. 원래 부친은 재산을 늘리는 것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부자는 재산을 늘리는 과정에서 당연히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게 된다고 여기는 사람이 부친이었다. 그런데 사실 부친은 주변에서 재산을 빼앗기 위해 정치적으로 공격하는 것을 더 두려워했다. 마침 지금 귀양살이 중이기 때문에 언제든 벌이 더해질 수 있었다.
이민호는 농장이나 사창이 남의 재산을 가져오는 것은 사실이나 공업은 부가가치를 새로 창출하는 산업이라는 식으로 부친을 설득했다. 몇몇 지방 특산품 생산이 큰돈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 부친은 이민호가 새로운 물품을 만들어 파는 것에 동의했다.
이민호는 신상품을 개발하는 것에 자신이 있었다. 변리사 시험을 잠깐 공부하면서 근세에 주로 인력을 절약해 대량 생산하면서도 상품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생산법을 많이 알고 있었다. 예를 들자면 조선 후기 조선의 면포산업을 박살낸 기계 생산 옥양목 같은 품목이었다. 간디가 물레를 돌린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나, 면포 가격을 충분히 내릴 수 있다면 오히려 백성들에게 큰 이득이었다.
그러나 철과 석탄 등 원료와 연료 문제를 해결한다 해도 운송 문제가 남아있었다. 조선은 의도적으로 도로를 닦지 않고 대부분 운송 소요를 수운으로 해결하므로 물자의 이동에 제한이 많았다.
그래서 이민호는 저번에 부친이 말한 조운선을 이용하는 거래 방법을 더욱 자세히 알아봤다. 그러나 각 지역 세창에서 한성 마포의 광흥창까지 세곡을 운반하는데 시간이 의외로 많이 걸린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간단히 외륜선을 직접 만들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부친께 하직인사를 올리고 수원 본가를 향한 긴 여정에 올랐다. 좌수영 북쪽 미평에 부친의 땅이 있다더니 꽤 넓었고, 이민호 일행이 가는 길을 붙잡고 마름과 소작농들이 인사를 올렸다. 다들 얼굴이 멀쑥한 게 소작농들치고는 잘 먹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여겼다.
이민호는 좌수영에서 출발할 때 집안 종이 끄는 조랑말에 탔다가, 너무 추워서 나중에는 혜영, 혜진과 계집종들이 탄 수레로 옮겨 탔다. 처음에는 그래도 체면 차리느라 자세를 바로 했으나 덜덜 떨다가 결국 혜영의 품안에 안기고 말았다. 그래도 춥다고 하니 혜영이 솜이불을 둘러썼다.
낮에 간단한 점심을 차리기 위해 혜영이 자리를 뜨자 그 자리를 혜진이 대신 차지했다. 다른 종들이 먹을 음식은 계집종들이 하는데 이민호가 먹을 죽은 혜영이 직접 끓이기 위해 나갔다. 이민호는 혜진의 눈길에 가득한 장난기를 보고 위기의식을 느꼈다.
“도망가지 마세요. 언니 대신 제가 꼭 안아드릴게요.”
“싫어! 놔!”
“까르르! 도련님 버둥거리는 것이 너무 귀여워요!”
“난 장난감이 아니야! 사내 체면을 세워줘!”
“어릴 때는 이런 대우도 받아보는 거여요. 애가 애다운 면이 있어야죠. 도련님은 쓸데없이 너무 어른스러워요.”
이민호는 금방 힘이 다해 혜진에게 포옥 안겼다. 잠시 서로 말이 없다가 혜진이 입을 열었다.
“도련님 세 살 때 기억 안 나시죠? 제가 작은 마누라니까 지켜줘야 한다면서 도련님이 강아지 앞을 가로막았어요. 제가 키우던 강아지와 장난치고 있었는데 도련님이 오해하신 거죠.”
“그랬나? 몰라. 기억 안 나.”
“고마워요. 그때 아버지 돌아가신지 얼마 안 됐을 때였어요.”
“그래? 정말 안 됐다. 앞으로 슬플 일이 없도록 우리 잘 지내자. 혜진이도 이제 힘 내.”
“고마워요.”
혜진의 목소리가 깊이 잠겨 있었다. 잠시 후 쪽 하는 소리와 함께 이민호가 볼에 간지러운 감촉을 느꼈다.
이민호는 혜진이 눈물을 흘린다고 생각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눈이 마주친 순간 혜진이 갑자기 배꼽을 잡고 웃었다.
“도련님 너무 순진하시다! 그런 단순한 거짓말에 속아요? 도련님은 놀리는 재미가 있어요. 깔깔!”
“혜진이 너 싫어.”
“도련님. 죽 드세요. 혜진아! 도련님 놀리지 마.”
김이 올라오는 잣죽을 보고 이민호는 혜진이가 놀리던 것을 금방 까먹고 수저를 떴다. 몸이 어려지니 식탐이 늘고 마음까지 어려지는 것 같았다. 부친과 같이 있을 때는 무게를 잡다가도 혜진과 함께 있으면 일부러 어린 척을 안 해도 비슷한 나이의 보통 아이가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민호는 장난기가 많으면서도 생각이 깊은 혜진이 좋았다. 물론 다정한 혜영이 더 좋았다.
마차를 타고 가서 걷는 것보다 여정이 훨씬 단축됐다. 오후에 순천부에 도착해 집안 종의 안내에 따라 부친의 무과 동기의 댁에 묵었다. 무과 동기라는 분은 함경도에서 만호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수원으로 가는 길에 이런 식으로 부친 지인의 댁이나 고을 유명 인사의 댁에서 묵었다.
이민호는 어른들에게 이야기를 청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애들이 들으면 지겨울 이야기를 이민호가 흥미를 갖고 잘 들어주니 한 마디도 안 했는데 충청도 땅에 접어들 때쯤 이민호는 신동으로 소문이 났다. 그래서 지나는 고을마다 유명한 양반 댁에서 이민호를 초청하기도 했다. 이것도 인맥관리랍시고 이민호는 예의를 다해 어른들과 만났다.
아산 땅을 지날 때 일부러 이순신 장군의 댁 근처를 지나갔다. 집이 생각보다 잘 사는 것 같아 의외였다.
“하아!”
커다란 전마가 이민호의 수레 앞을 휙 지나갔다. 이민호는 웬 꼬마가 커다란 전마를 타고 달리는 것을 보고 놀랐다.
“이보게! 저 동자는 누군지 아시는가?”
지나가는 농민에게 물어보니 이 만호의 셋째 아들 이면이라고 했다. 나이는 이민호와 동갑인 올해 여섯 살이었다. 이때 이순신은 다시 훈련원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그 전에는 전라좌수영의 발포만호진에서 권관으로 근무했다. 품계 낮은 권관이라도 공식 명칭이 만호이니 지금도 동네 사람들은 권관이 아닌 만호로 부르고 있었다.
귀양살이 하느라 통제 대감을 자주 뵈러 가지 못해 부친이 땅을 쳤다는 이야기는 방답에서 자주 들었다. 이민호는 아직 이순신 장군을 만나지 못했는데 이왕이면 좀 더 커서 만나고 싶었다. 너무 어렸을 때 만나면 꼬마로 인상이 고정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우와! 정말 장군의 피라서 뭔가 달라!”
“맞아요. 우리 도련님은 아직 머리 위에 손도 못 올리시는데요. 도련님의 머리가 큰 걸까요, 팔이 짧은 걸까요?”
혜진이 놀려도 못 들은 이민호는 턱이 빠진 채 이면의 마술을 지켜봤다. 과연 장군의 아들이었다. 잠시 후 이민호는 이면의 기세에 눌려 인사도 못하고 황황히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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